원전 수익 좇아 33% 감원…과로에 빨간불 켜진 ‘원전 안전’
등록 : 2013.09.22 20:20수정 : 2013.09.22 20:50

MB 정부 ‘공공기관 선진화’ 방안 따라 한수원 등 10~33% 인원 감축, 업무 과다에 노동자 자살하기도 
“고참 운전원 공백이 부른 참극” 피로 누적·숙련인력 부족 등 문제
원전 운영상의 안전 위협할 수도 “경제성 아닌 안전성 최우선해야”
“당장 ‘발등의 불’만 끄는 식이다보니 적재적소에 숙련자가 배치될 수 있겠습니까.”

부산 고리원자력 제2발전소 정비기술팀에서 일하는 한경철(가명·49)씨는 최근 몇 년 새 현장 인력이 줄어들면서 ‘보이지 않게’ 안전을 위협하는 요인들이 도사리고 있다고 말했다. 고참 직원 20명가량으로 구성됐던 계통기술팀이 사라진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았다. 이 팀은 정비 업무 전반을 아우르면서 복잡한 기술적 문제가 발생할 때 근본 원인을 찾아서 해결하는 일을 맡고 있었다. 이명박 정부 기간에 한씨가 속한 부서에서는 현원이 정원의 80% 수준으로 줄었다.


숙련 인력 부족에 따른 현장의 불안감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고리원자력 제1발전소 발전팀에서 일하던 김아무개(32)씨는 지난 5월 과로로 인한 스트레스로 불면증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입사 6년차였던 김씨는 고도의 업무 노하우를 필요로 하는 전력설비 운전원이었다. 서병만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인력감축으로 경력 20년 이상 고참 운전원들이 맡아온 ‘발전대리’ 보직이 없어졌다”며 “경력이 짧은 직원들의 미숙함을 지근거리에서 보완해온 이들의 공백이 부른 참극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수익성과 효율성을 우선시하는 국내 원자력 산업 구조가 결과적으로 중대 사고의 배후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원전은 다른 산업부문과 달리 고위험 산업인 탓에, 노동자들의 업무 과다와 피로도 누적, 숙련 인력 부족 등의 문제가 자칫 원전 운영상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이다.

22일 사회공공연구소와 원전 관련 4개 공기업 노조 등이 지난 5~6월 실시한 ‘원자력 노동자 의식조사 및 작업장 안전문화 평가 조사’ 결과를 보면, 한수원과 한국케이피에스(KPS), 한전원자력연료, 한국전력기술 등에서 일하는 노동자 1754명 가운데 1269명(72.3%)이 최근 5년여 동안에 수행 업무가 늘었다고 답했다. 각자 담당해야 할 시설과 설비가 증가했다고 응답한 이들도 전체의 70.4%에 이르렀다.

2008년 당시 이명박 정부의 공공기관 선진화 방안에 따라, 한수원은 정원을 1067명(기존 정원의 13.1%) 줄이고 한전케이피에스와 한국전력기술도 각각 460명(10.2%)과 195명(10.2%)씩 감축한 바 있다. 일부 발전소에서는 운영과 정비를 포함해 17~33%까지 현원이 줄었다.

이런 영향 탓에 이번 조사에서 인력 부족으로 과거와 같이 꼼꼼하게 안전 시스템을 운영할 수 없다고 답한 이들의 비중은 전체의 80%에 이르렀다. ‘계획예방정비’(점검을 위해 발전소 가동을 멈추는 것) 기간 단축 문제가 안전에 미칠 영향을 묻는 질문에서도 93%가 우려를 드러냈다. 1990년대 대략 60일이었던 계획예방정비 기간은 한때 27일(2011년 기준)까지 줄어든 바 있다. 이런 무리한 기간 단축은 보수 불량으로 이어지고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 자료를 보면, 국내 원자력 발전기 고장률은 2010년 10%에서 2012년 39.1%로 치솟았다. 이번 조사에서는 또 원전 노동자의 74%가 ‘일본 후쿠시마 사태 이후 원자력 종사자로서 피해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걱정한 적이 있다’고 답변했다.

진상현 경북대 교수(행정학부·에너지정책전공)는 “원전 비중이 큰 프랑스도 지난 20년간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하청업체 비중을 늘리면서 안전성이 침해되는 문제가 발생했다”며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달성 가능한 최고의 안전 관리를 원전 운영의 원칙으로 제시한 것처럼 경제성이 아닌 안전성을 최우선에 두고 원전을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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