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메모]김용판 ‘기밀 유출 의혹’ 뒷짐진 경찰
박홍두 사회부 기자  입력 : 2013-09-25 00:00:00ㅣ수정 : 2013-09-25 00:00:01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 수사의 축소·은폐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58) 측 변호인은 지난 1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 심리로 열린 4차 공판에서 문건 하나를 제시했다. 서울 수서경찰서가 지난 1월 국정원 직원 김모씨(29·여)의 휴대폰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을 당시 검찰의 수사지휘 내용(영장기각 사유 등)이 기록된 문서였다. 문서에는 김 전 청장이 수서서에 압수수색 영장 청구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힌 것에 대해 ‘검찰도 동의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 순간 검찰 측이 의문을 제기했다. 검찰은 “경찰 내부에서 수사 관련 기밀을 요하는 문서인데 검찰이나 법원에 적법절차를 거치지 않은 문건을 어떻게 입수했는지 경위를 설명하라”고 추궁했다. 변호인 측은 답변을 거부했다.

경향신문은 이 문건을 김 전 청장 측이 어떤 경로로 입수했는지를 취재했다. 기밀문서를 제공한 것으로 의심되는 경찰은 이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24일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김 전 청장이 재직 중에 검사 지휘 내용이 담긴 문건 등을 보고받은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퇴임 전까지 국정원 수사내용을 보고받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그 문서 내용을 다 알고 있어 문제 될 게 없다는 주장이다.

김 전 청장은 지난 4월2일 퇴임식을 끝으로 경찰을 떠났다. 수서서는 그로부터 16일 뒤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검찰에 사건을 송치했다. 경찰 내부에 공여자가 없다면 결국 김 전 청장은 수사 결과가 확정되기도 전에 자신의 향후 상황을 염두에 두고 문서를 다 복사해둔 셈이 된다.

문건 유출 경위에 대해 당연히 자체 감찰을 진행해야 함에도 경찰은 “문건 유출과 관련해 김 전 청장이 퇴직해 확인되지 않는다”고만 답하고 있다. 

감찰에 나설 의지가 없다는 얘기로 들린다. 형법상 공무원의 공무상 비밀누설죄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하게 돼 있다. 법을 다루는 기관이 법을 무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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