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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연(燕)을 취하고 요동 정벌 후 용담산에 축조
역사의 숨결어린 요동- 고구려 유적 답사기행<27>
데스크승인 2010.07.26     

심양~대련 간 철도선 와방점(瓦房店)역에서 서북쪽으로 2.5km가량 가면 용담산(龍潭山)이라는 높지 않은 산이 있다. 득리사산성(得利寺山城)은 바로 이 산에 있다. 그래서 이 산성을 용담산산성, 또는 득리영성(得利瀛城), 용담사산성(龍潭寺山城)이라고도 일컫는데 중국학자 가운데 고구려시기 역성(力城)이나 독산성(禿山城)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자치통감(資治通鑑)》에 따르면 “동진(東晉) 안제(安帝) 12년 3월 고구려가 연(燕)을 취하고 요동을 차지했다. 이로써 요동은 모두 고구려 차지가 되었다”고 기록돼 있다. 득리사산성은 바로 이 시기에 축조됐다는 것이 학자들의 정설이다. 이 산성은 요남지역에서 비교적 일찍 축조된 성으로, 1985년에 대련시 문화재보호단위로, 1988년에는 요령성 문화재보호단위로 지정됐다.

성안의 이름난 도교사찰

득리사산성에는 동쪽과 서쪽에 각각 성문이 있는데, 동문이 이 산성의 정문이다. 정문에 들어서 200m쯤 가면 용담사로 들어가는 솟을대문이 나타난다. 그 윗면에 ‘용담사(龍潭寺)’라는 글이 흰 바탕 위에 새겨져 있다. 그 오른편 아래에 ‘용담촌 왕둔(龍潭村王屯) 165번지’라고 쓰인 자그마한 문패가 붙어 있다.

용담사는 용화궁(龍華宮), 용담만(龍潭灣), 노군전(老君殿), 진인탑(眞人塔), 관제전(關帝殿), 오성사(五聖祠), 장양각(張陽閣), 종루(鐘樓)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용화궁은 청나라 건륭(乾隆) 연간(年間)에 지어진 도교사찰로, 건축면적이 1천200㎡에 달하며 상·하 사찰로 나뉘어져 있다. 1994년에 중국 정부는 거액을 투자해 용화궁을 중수하였다. 용화궁의 원래 이름은 ‘용왕묘’였는데 후에 ‘용화궁’으로 고쳤다.

우리가 산성 답사 차 용화궁에 들렀을 때는 지난해 11월 6일, 낙엽이 진 늦가을로, 산을 찾는 관광객의 발길이 드문 계절이었다. 그러나 용화궁 대문 앞에 주차된 적지 않은 승용차들이 눈에 띄었고, 사찰 마당으로 들어서자 도복을 차려입은 남녀 도승들이 분주히 오가는 모습이 보였다. 마침 지나가는 도승에게 오늘은 무슨 행사가 있는 날이냐고 넌지시 물었다. 나이 지긋한 비구니가 우릴 보고는 마침 잘 왔다며 얼른 들어가서 점심식사를 하라는 것이다. 오늘은 용담사 장리거(張理炬) 주지스님의 아흔다섯 번째 생신이라는 것, 그래서 용담사 도승은 물론 요남지역의 여러 도교사찰에서 온 도승들과 타 지역 도교사찰의 대표들까지 합세해 수십 명의 도승들이 이렇게 모였다고 했다. 오늘만큼은 이 절을 찾는 모든 관광객에게 점심을 무료로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오늘 이 절을 찾아온 것은 참으로 운 좋은 관광객이라는 것이다. 그 말에 필자가 둘러보니 평상복을 입은 관광객이라야 우리를 포함해 채 열 명도 되지 않아보였다. 시계를 보니 바늘이 막 정오를 향해 치닫고 있었다. 그러나 산성 답사길이 먼저인 우리는 사찰음식을 정중히 사절하고 용담사 이곳저곳을 둘러보고는 산성 서문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점심은 준비해온 먹을거리로 대강 때우기로 하였다.

용왕신을 모셔놓고 있는 용화궁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현지에 전하고 있다. 송나라 때, 한가위를 앞둔 어느 날 목동이 잃어버린 소를 찾느라 이곳 용담을 지나는데 홀연 못 속에서 한 동자가 나오더니 사방을 둘러보고 아무런 동정이 없자 물 위에 떨어진 낙엽을 쓸더니 다시 못 속으로 들어갔다. 한참 후 못 속에서 팔각상을 떠인 동자가 다시 나타났는데 상 위에는 이름 모를 진귀한 과일들이 가득했다. 그 뒤로 여시종(女侍從) 넷이 웬 백발노인을 부축하고 나오는 것이었다. 흰 채수염을 기른 노인은 몸에 녹색 비늘이 가득한 도포를 입고 있었는데 팔각상 앞에 앉자 풍악이 울려 퍼졌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목동은 눈앞의 정경이 너무도 신기해 자신도 모르게 손에 든 채찍을 휘둘렀다. 짱! 소리와 함께 눈앞의 기이한 정경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잠시 후 못 속에서 한줄기 핏물이 솟구치더니 커다란 잉어 한 마리가 떠오르는 것이었다. 소문을 듣고 달려온 마을 사람들은 사연의 자초지종을 듣고는 필시 용왕님이 인간의 비경을 감상하기 위해 먼저 잉어를 동자로 변신시켜 못 위의 동정을 살피게 하였는데 데면데면한 동자가 인간을 보지 못한 채 용왕님을 모시고 와 놀라게 하였기 때문에 용왕님이 노해서 잉어동자를 죽이게 한 것이라고 말했다.

마을 사람들은 용왕님의 화가 자기네들한테까지 미칠까 두려워 매일 같이 향을 피우고 기도하면서 이곳에 사찰을 세운 뒤 용왕신을 모시게 되었다. 목동은 못 속에서 건져낸 잉어동자를 못 옆에 정성스레 묻어주었다. 그 뒤로 이곳 사찰에서는 향불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용담사를 둘러보면서 뭐니 뭐니 해도 볼거리는 산성 한가운데 위치한 용담만일 것이다. 용담만은 용화궁 산문을 들어서면 사찰 앞마당에 있다. 길이는 55m, 너비는 25m로 그리 크지 않다. 그러나 이 못은 신비하고 영험하기로 소문나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용담 옆에는 비석 하나가 세워져 있다. 거기에는 이렇게 소개돼 있다.

“용담은 물밑으로 서해바다와 통하고 있어 이곳 용담에서 떨어뜨린 멜대가 서해 바닷가에서 발견되었다. 이 용담에서 용왕이 잔치를 베풀었다는 이야기가 널리 전해진다. 수면 위에 구름이 드리우면 그날은 꼭 비가 내린다.”
 
옛날에 이 용담에서는 바다가재도 더러 잡혔고 천년 묵은 거북이도 있었다고 한다. 바다가재가 있었다는 것은 이곳으로 바닷물이 통했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러나 전설일 뿐 이곳의 물은 짜지도 않고 그냥 담수일 뿐이다. 지금 이 못에는 많은 비단잉어들이 자유로이 노닐며 관광객들이 던져주는 음식부스러기를 먹는 것으로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용담만과 관련해 많은 신비한 전설이 전한다. “용담은 깊이가 얼마인지 아무도 모릅니다. 주변의 노인들이 그러는데 이 못의 물은 서해바다(요동만)와 통해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아까 사찰에서 만났던 주지림(周智林, 73)이란 도승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언젠가 이 못에 사람이 빠져죽었는데 며칠 후 서해 바닷가에서 시신이 발견되었단다. 그래서 이 못이 서해와 통해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2003년 이 못을 정비하기 위해 인근 주둔 군부대에서 양수기 두 대를 동원하여 사흘 밤낮 동안 물을 펐는데 물이 조금도 줄어들지 않아 결국 포기했다고 한다. 

장광섭/중국문화전문기자  윤재윤/요령조선문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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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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