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
[한중 역사전쟁] (중) 중국, 우하량 유적 ‘중화문화 원류’로 치장…“고조선 연관설 근거는 미약” - 한겨레
civ2
2025. 7. 5. 22:53
중국, 우하량 유적 ‘중화문화 원류’로 치장…“고조선 연관설 근거는 미약”
[기획르포, 한중 역사전쟁 현장을 가다] (중) ‘홍산문화’ 우하량 유적지 가보니
노형석 기자 수정 2019-10-19 11:23 등록 2015-08-06 18:48

우하량(뉴허량) 유적을 대표하는 여신상. 출토 당시 모습이다. 사진 노형석 기자


여신상이 나온 우하량의 신전터 유적. 현재 보호각 건물 안에 있다. 노형석 기자
고조선 실체를 둘러싼 한·중 학계와 국내 주류, 재야사학자들의 지루한 논쟁은 최근 수년 사이 새 국면을 맞았다. ‘요하문명’ ‘홍산(훙산)문화’로 불리는 중국 내몽골, 요서 일대의 7000~3000년 전 신석기·청동기 문화가 고조선의 원류로 지목되면서 관심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홍산문화’만 치면 장문의 글과 답사기록을 숱하게 볼 수 있을 정도다.
홍산문화 유적은 기원전 7000년~기원전 2500년대 만주, 한반도, 중원 고대 문명의 ‘수원지’로 꼽힌다. 고조선을 비롯해 황하문명, 거란, 선비 문화의 기원과 각기 얽힌 신석기, 청동기 관련 유적들이 다기하게 확인된다. 특히 돌무지무덤(적석총)이나 빗살무늬토기, 곰토템 등 고조선 문화유형과 비슷한 유적, 유물들이 확인돼 고조선의 시원 문화로 간주하는 비주류 연구자들이 적지않다. 이들은 홍산문화를 황제족이 일으킨 중화문명의 뿌리라며 대대적으로 선전해온 중국의 ‘역사 공정’에 우리도 대응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한사군·낙랑군 강역 논란과 ‘장성 공정’에 이어 한·중 역사분쟁의 또다른 말판이 등장한 셈이다.
지난달 13일 난하와 갈석산, 산해관을 둘러본 국사편찬위원회·동북아역사재단의 공동답사단이 이튿날 여정을 랴오닝성 링위안의 깊은 산속에 있는 우하량(뉴허량) 유적공원으로 잡은 데는 이런 이유가 있었다. 기존 학계는 침묵하고 민족사의 시원지라는 재야·비주류의 목소리만 드높은 홍산문화의 실체를 우하량 유적에서 살펴보려는 생각이었다.

우하량(뉴허량) 유적 박물관 현관에 전시된 이 지역 선사인들의 복원상과 거대한 출토 옥기 모형. 노형석 기자
14일 낮 도착한 우하량국가고고유적공원은 5년 공사 끝에 2013년 준공된 거대시설이다. 7169㎥의 박물관과 중국 최대 규모라는 제단·적석총 보호전시관, 여신묘 보호전시관 등이 삼림 속에 들어서 있다. 인적 드문 산중에 5억여위안(1000억여원)을 들여 지었다는 설명에 일행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2018년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국가 프로젝트라니 홍산문화를 중화문명의 원류로 세계에 알리려는 중국의 의지가 느껴진다. 박물관 현관에는 우하량 선사인들의 조상과 이곳에서 출토된 용모양 옥기의 거대조형물이 눈길을 끌었다.
만주·한반도·중원 고대문명 수원지 ‘고조선 문화 유사’ 곰토템 등 발견
비주류 연구자들 “고조선 시원문화”유적공원엔 중 최대규모 제단
적석총·빗살무늬토기 있지만고조선·고구려 연관 단정 어려워
1980년대 발굴된 우하량 유적은 중국 국민문화재인 왕방울 눈의 여신상과 여신묘·제단, 옥기로 유명하다. 신석기 유적이지만, 여신묘나 제단, 거대 적석총 등으로 미뤄 권력이 집중되는 국가단계 문명이란 게 박물관 쪽 설명이다. 반신반의한 답사단이 눈여겨본 것은 고조선, 고구려와의 연관성이 제기되는 적석총과 토기류들이다. 토기는 밑바닥 없는 통형관과 빗살무늬토기류 등이 일부 눈에 띄었지만, 이질적인 중원풍의 갖가지 채색토기들도 진열돼 연관성을 단정하기가 쉽지 않다는 의견들이었다.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과 정원철 동북아재단 연구위원은 돔형의 유적 보호관에서 수십기의 적석총을 유심히 살폈다. 거대한 터 아래 무덤방을 판 뒤 주위를 돌로 쌓으면서 원형, 방형, 장방형의 다양한 무덤자리를 만들었다. 원형 제단을 만들거나, 무덤 자체를 제단으로 활용한 흔적도 보인다. 적석총은 요동의 고조선 무덤인 강상묘나 만주 지안의 고구려 고분, 서울의 한성백제 무덤에서 보이며, 중앙아시아, 남유럽 등에서도 나타난다. 김정배 위원장을 비롯한 답사단원들은 신중한 견해를 내놓았다. “3000~4000년 전의 신석기시대 것이어서 기원전 10세기 전후 고조선 적석총과는 시기 차이가 너무 큽니다. 지상매장인 고구려 적석총과는 시기 차가 더 벌어지고 얼개도 달라 섣불리 양식을 연결시키긴 어렵네요.”
유명한 여신상이 출토된 여신묘 보호관에서는 엇갈린 십자 형태로 신전시설과 주거터를 조성한 여신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유적 대지 표면을 깔끔히 정비해 발굴 당시 상황을 실감하기는 어렵다. 재야학계에서는 여신묘에서 나온 곰 형상 조각을 모계사회를 상징하는 여신상과 결부시켜 단군을 낳은 웅녀 신화의 실체가 아니냐는 설도 제기한다. 하지만 맹수발톱 조각 등 소수의 복제유물들에서 그런 시원의 상상력을 느끼기란 어려운 노릇이었다. 곰, 돼지 등이 용의 형상과 결합된 박물관의 옥기류들은 섬세한 조형성이 눈길을 끌었는데, 강원도 고성 등에서 출토된 곡옥과 재질·제작경위 등을 비교하면서 계통관계를 세밀히 살펴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차오양/노형석 기자 nu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