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사/독립운동
2) (3.1운동 후 간도에서의) 독립군의 편성 - 우리역사넷
civ2
2025. 12. 31. 00:27
2) (3.1운동 후 간도에서의) 독립군의 편성
우리역사넷 > 신편 한국사 > 근대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1. 독립군의 편성과 국내진입작전
서북간도와 연해주의 한인사회에서는 3·1운동 발발 직후부터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항일전을 표방한 수많은 독립군 부대가 편성되고 있었다. 1919∼1920년 사이에 북간도에서 조직된 독립군단만 보더라도 대한군정서(大韓軍政署)·대한국민군(大韓國民軍)·대한독립군(大韓獨立軍)·군무도독부(軍務都督府)·대한의군부(大韓義軍府) 등 대규모 군단에서부터 대한광복군(大韓光復團)·의민단(義民團)·대한신민단(大韓新民團)·대한정의군정사(大韓正義軍政司) 등등 중소규모의 여러 독립군단이 있었다. 또한 서간도에서도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와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 등을 비롯해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광복단(光復團)·의성단(義成團)·천마대(天摩隊) 등 수십 개의 대소 군단이 독립전쟁을 표방하고 나섰다. 이러한 현상은 한민족의 독립을 향한 고조된 열기가 일시에 분출된 결과였다.
* 북로군정서 (北路軍政署) - 민족문화대백과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4657
1919년 북간도. 서일, 김좌진, 이장녕, 김규식, 최해, 정훈, 이범석, 계화, 윤복영, 양현 등
대한군정서 = 북로군정서(서간도의 서로군정서 구별 위해) = 군정회
중광단(대종교) -> 1919년 대한정의단+대한군정회(군정회) -> 대한군정부(군정부)
1920년 10월20-23일 청산리대첩
* 대한국민회군 (大韓國民會軍) - 민족문화대백과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78013
1920년 길림성 연길. 안무, 조권식, 임병극, 마룡하, 마천룡, 이원, 최기학 등.
대한국민회군 = 대한국민군 / 대한국민회의(동만주 통일 기관) 독립군 부대 / 임시정부 산하.
의사부(용정) -> 조선독립기성회(朝鮮獨立期成會) ->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
* 대한독립군(大韓獨立軍) - 민족문화대백과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4966
1919년 왕청현 봉오동. 홍범도,주건,박경철. 200여명->600여명. 대한국민회 산하.
1920년 군무도독부(최진동)과 연합작전
1920년 대한독립군+대한국민(회)군+군무도독부 = 대한북로독군부(大韓北路督軍府)
1920년 6월4-7일 삼둔자전투·봉오동전투.
1920년 7월20일 북간도 독립군
= 대한독립군(300명)·국민회군(250명)·의군단군(250명)·한민회군(200명)·의민단군(100명)
·신민단군(100명)·광복단군(200명) + 북로군정서군(김좌진,1,600명) + 군무도독부(최진동, 600명)
= 대한독립군(300명)·국민회군(250명)·의군단군(250명)·한민회군(200명)·의민단군(100명)
·신민단군(100명)·광복단군(200명) + 북로군정서군(김좌진,1,600명) + 군무도독부(최진동, 600명)
1920년 7월21일 백운평전투, 22일 완루구전투·천수평전투·어랑촌전투, 24일 천보산전투
대한독립군단 = 대한독립군(홍범도)+대한국민회(구춘선)+대한신민회(김성배)+광복단(이범윤)
--> 러시아령 이동
* 군무도독부(軍務都督府) - 민족문화대백과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6608
1919년 북간도. 최진동,박영,이춘승,이동춘,최문인. 600여명.
군무도독부 = 도독부 = 독군부
대한독립군(홍범도), 국민회군(안무)과 연합작전
* 의군부(義軍府) - 민족문화대백과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3134
1919년 조직된 의군부 - 나무위키 https://namu.wiki/w/%EC%9D%98%EA%B5%B0%EB%B6%80#s-2
1919년 4월. 북간도 -> 1921 자유시 참변 때 와해 -> 1922년 해산
이범윤·진학신·최우익·김청봉·김현규 등. 청산리전투 참여.
* 대한광복군(大韓光復團)
* 의민단(義民團) - 민족문화대백과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3224
1919년. 북간도 -> 자유시참변 해산
천주교인 중심. 방우룡, 김연군, 김종헌, 허은, 정준수, 홍림 등. 300여명. 임시정부 예하.
청산리전투 참여.
* 대한신민단(大韓新民團) - 민족문화대백과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5113
1919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김규면, 한광택, 최상진, 이존수, 김덕보. 2만여명 단원.
독립군 - 500여명. 김준근, 박승길, 한경세.
대한신민단 = 신민회 = 대한신민회 = 신민단
북간도 무력독립운동 8개 단체 중 하나. 어랑촌전투 참가.
대한독립군단 = 대한독립군(홍범도)+대한국민회(구춘선)+대한신민회(김성배)+광복단(이범윤)
* 대한정의군정사(大韓正義軍政司) - 민족문화대백과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5183
1919년. 북간도. 한말 의병 출신. 이규·강희·이동주·조동식 등 + 구군인. 900여명
대한정의단임시군정부 -> 대한정의군정사 -> 대한독립군단
대한독립군단 = 대한독립군(홍범도)+대한국민회(구춘선)+대한신민회(김성배)+광복단(이범윤)
*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 - 민족문화대백과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7714
신흥무관학교 (新興武官學校) - 민족문화대백과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3613
1919년 서간도 -> 1922년 대한통군부.
서간도 삼원보 총본영/군정부.
1910년 신흥강습소 -> 1913년 신흥중학교 -> 1919 신흥무관학교 (군사교육) -> 1920 폐교
조선독립운동 후원 의용단 (경상도 재정 후원 비밀결사)
경학사(耕學社) - 1910년 자치 기관. 이시영· 이상룡·김창환 등 설립
* 대한독립단 (大韓獨立團) - 민족문화대백과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4970
1919년 서간도. 박장호 · 조맹선 · 백삼규 · 조병준 · 전덕원 · 박양섭 등. 560여명.
* 광복군총영 (光復軍總營) - 민족문화대백과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5136
1920-1922년. 서간도 안동현. 대한민국임시정부 군무부산하 서간도 지방사령부.
오동진, 이탁.
광복단+민국독립단(대한독립단 분파)+기원독립단(대한독립단 분파)+한족회+대한청년단연합회
* 광복단 (光復團) - 민족문화대백과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5137
1920년 서간도. 김성극(金星極) 전성륜(全聖倫), 이범윤. 300여명. 청산리전투 참여.
* 의성단 (義成團) - 민족문화대백과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3271
1923년 11월 서간도. 정의부. 편강렬·양기탁·남정 등. 250여명
* 천마대(天摩隊) - 민족문화대백과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5852
1920년 평안북도 의주. 천마산대(天馬山隊). 구한국 군인 출신. 500여명
최시흥·최지풍·박응백·최천주·심용준·김세진·양봉제 등
수많은 항일단체와 독립군단이 정비·편성된 것은 항일독립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했다는 점에서는 그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러 갈래의 군단이 도처에서 편성된 결과, 활동면에서 볼 때 각기 고립 분산적으로 항일전을 수행하게 됨으로써 결국 전력의 분산이라는 한계를 노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여러 독립군단의 전력 통합은 항일전 수행을 위해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였다. 이에 따라 여러 항일단체와 독립군단은 각기 조직을 정비하면서 항일전을 수행하는 한편, 내부적으로 상호 통합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일제와의 독립전쟁을 표방하고 서북간도 각지에서 편성된 독립군단 가운데 중요한 사례를 들면 다음과 같다.408)
주 >
408) 독립군단의 편성내용에 대한 서술은 윤병석(尹炳奭) 외,≪중국동북(中國東北)지역 한국독립운동사(韓國獨立運動史)≫(집문당/集文堂, 1997),<북간도 독립군단의 편성>(93∼107쪽)의 주지를 따랐음을 밝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