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정권 친위부대 '방첩사', 해체해 역사 속으로 보내야" - 오마이뉴스

civ2 2025. 5. 1. 12:20
 
"정권 친위부대 '방첩사', 해체해 역사 속으로 보내야"
[인터뷰①] 강건작 전 육군교육사령관 "강경일변도 윤석열 정부, 군 인사시스템도 붕괴시켜"
글: 김도균(capa1954) 사진: 이정민(gayon) 25.05.01 10:49ㅣ최종 업데이트 25.05.01 11:25 
 
저서 <강군의 조건>을 발표한 강건작 전 육군교육사령관이 4월 2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출판사 클라우드 나인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저서 <강군의 조건>을 발표한 강건작 전 육군교육사령관이 4월 2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출판사 클라우드 나인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이정민
 
34년간의 군 복무를 마치고 2년 전 전역한 강건작 전 육군교육사령관(육사 45기·예비역 중장)에게도 2024년 12월 3일은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범한 날이었다. 안보 관련 세미나를 마치고 참석자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한 뒤 귀가한 그는 부인과 함께 OTT 영화를 보고 있었다.
 
밤 11시가 좀 넘었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TV 보았느냐. 비상계엄이 선포됐다." 이게 무슨 뜬금없는 소린가 싶었다. TV를 켰더니 대통령 담화가 반복해서 방송되고 있었다. 사실이었다. 화가 치밀었다. 계엄 선포 사실을 알려 준 친구는 특수통 검사로 오랫동안 검찰에 몸담은 보수 성향이었지만, 난데없는 비상계엄 선포에는 함께 분노하고 있었다.
 
'명령이니 장병들이 어쩔 수 없이 동원되긴 했지만, 현장에서 태업이라도 해서 부당한 지시에 어떻게든 저항할 것이기에 계엄은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걱정하는 친구를 다독였다. 이후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하고 계엄군이 국회에서 물러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강 전 사령관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의문이 생겼다. 어떻게 21세기에 대한민국에서 비상계엄이 선포될 수 있었는지. 평소 '쿠데타는 과거의 유산일 뿐 더 이상 군의 정치개입은 가능하지 않다'는 굳은 믿음이 있었기에 의문은 더 증폭됐다.
 
왜 육군참모총장과 계엄작전에 동원된 주요부대 사령관들은 대통령의 불법적 지시에 누구 한 사람 '안 된다'고 말하지 못했나. 군사정권 종식 이후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다고 믿었던 군의 정치적 중립은 왜 한 순간에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었는가. 외형상 한국군은 세계 5위(미국 글로벌화이어파워 2024 보고서) 평가를 받는 강군으로 성장했지만, '계엄의 밤' 장군들의 처신은 이들이 민주주의 국가의 군대를 이끌어 갈 의식도 갖추지 못했고 의지와 능력 역시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이런 지휘관들이 지휘하는 군대가 유사시 국민의 생명은 제대로 지켜낼 수 있을까.
 
강군을 위한 첫 번째 조건, '엄격한 정치적 중립'
 
강 전 사령관이 최근 펴낸 <강군의 조건>은 이런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그는 창군 이후 수많은 정치상황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되어 온 군의 역사가 한국군의 내부 역량을 한없이 약화시켰다고 지적했다.
 
강 전 사령관은 강군을 위한 첫 번째 조건으로 '엄격한 정치적 중립'을 꼽았다. 이를 위해 정권의 친위부대로 전락한 국군방첩사령부(방첩사)를 해체하고 현행 장군 인사제도를 대폭 손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순수 민간인 국방장관을 임명하고 장군 보직 안정성을 위해 국회의 견제 기능을 확장해야 할 필요성도 역설했다. 특히 헌법적 가치를 지키면서도 강력한 군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군복 입은 시민'으로 정의되는 독일 연방군의 '내적 지휘' 개념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한국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4월 25일 오후 서울 동교동 '클라우드 나인' 출판사에서 강 전 사령관을 만나 12.3 비상계엄 사태로 드러난 한국군의 고질적 문제점과 군의 정치적 중립 강화 방안, '인구 절벽' 문제 등 산적한 도전 과제들을 극복하고 '전쟁할 수 있는 군대'를 만들기 위한 그의 생각을 들어 보았다. 인터뷰는 2시간 가량 진행됐다.
 
- 지난해 12월 3일 밤 비상계엄 선포 소식을 듣고 제일 먼저 어떤 생각이 들었나.
 
"계엄 선포가 말도 안 된다는 생각에 화가 났다. 현역 시절 김용현 국방부 장관과 근무를 같이하진 않았지만 간접적으로 조금 알고 있었다. 군인 정신이 충일하거나 군사적 역량이 높은 사람은 아니었고,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람이라는 생각은 갖고 있었다. 그래도 설마 이렇게까지 할 수 있었을까 쉽사리 믿기지 않았다."
 
- 비상계엄이 어떻게 되리라 예측했나.
 
"비상계엄 선포 사실을 전화로 알려 준 친구와 얘기한 게 '요즈음 군인들은 위에서 지시를 내린다고 해서, (부당한 지시에) 일사분란하게 팍팍 움직이진 않을 거다'. 지시가 자신의 양심과 합치하고 임무와 역할에 합당하다고 생각해야 수긍을 하지, 위에서 밀어붙인다고 그대로 실행하지 않을 것이라 봤다. 그래서 계엄은 실패할 거라 봤다. 친구도 '이번 일로 윤석열 대통령은 끝났다'고 말하더라."
 
- 지난해 8월부터 더불어민주당 국방위원들을 중심으로 대통령이 계엄을 준비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됐는데, 가능성이 있다고 보셨나.
 
"사실 믿기지 않았다. 아무리 정치적인 관점이 다르더라고 상식적으로 어떻게 계엄 선포까지 할 수 있을까 싶었다.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으면 그날 밤에 그렇게 놀라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윤석열, 그나마 남아 있던 인사시스템마저 붕괴시켰다"
 
강건작 전 육군교육사령관이 지난 4월 2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출판사 클라우드 나인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강건작 전 육군교육사령관이 지난 4월 2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출판사 클라우드 나인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이정민
 
- 윤석열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합참의장 후보자 한 사람을 제외하고 4성장군을 한꺼번에 옷을 벗겼고, 2023년 후반기 인사 때도 육·해·공군 대장 전원을 전역시키는 등 두 차례나 전례 없는 '물갈이 인사'를 했다. 또 보통 5년, 10년 주기로 열리던 국군의날 시가행진을 2년 연속 진행했다. 일련의 이런 흐름이 비상계엄 선포까지 이어졌던 것은 아닌가.
 
"모든 안보 정책은 강온 양면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강경일변도로만 갔다.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서는 물론 국방도 강해야 하지만, 대화 역시 끊임없이 시도하면서 안정되게 평화를 유지하는 게 핵심이다. 그런 관점에서 계속 강경책으로 가는 것에 대해서 문제가 있다고 봤다. 군 인사도 전혀 동의할 수 없었다. 그렇게 인사를 하면 안 되는 것이다. 군 수뇌부를 경험 안 한 사람으로 한꺼번에 싹 다 갈아치우는 것은 국방태세를 위태롭게 하는 것은 분명하다. 내가 듣기로는 그런 식의 갑작스러운 인사에 대해 미군들도 굉장히 우려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 윤석열 정부의 군 수뇌부 인사가 어떤 점에서 문제라고 봤나.
 
"그동안 보수정권이든 진보정권이든 군 인사시스템을 신뢰하지 못하고 정권친화적인 인사를 찾아서 발탁했다. 군은 고도의 군사전문성을 바탕으로 엄정하게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지만 정권 코드에 맞는 장군을 중용하면서 군사 전문성은 점점 약해졌고, 정치에 순응하는 군대가 됐다. 윤석열 정부에서 이런 현상은 극에 달했다. 군 수뇌부를 두 번이나 전면 교체했다. 마음에 안 들면 몇 달 만에 보직을 바꿨다. 그나마 남아 있던 인사시스템마저 붕괴시켰다. 이런 방식으로 육군참모총장과 주요 작전사령관들을 정권에 무조건 충성하는 하수인들로 만들었다. 그 결과 장군들은 무기력하게 12.3 비상계엄의 동조세력이 되어버렸다."
 
- 한국 현대사에는 1961년 '5.16'과 1979년 '12.12'처럼 두 차례 성공한 군사 쿠데타 외에도 집권세력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을 동원했던 역사가 있다.
 
"군을 투입하기 위해 계엄이라는 수단을 쓴 것은 모두 똑같다. 군이 현실정치에 개입했다는 점도 같다. 그런데 군이 주도 했느냐, 또 특정 정치 세력이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군을 이용했느냐 하는 점에서는 차이가 있는 것 같다. 권력자가 정치적 목적을 위해 계엄을 선포하고 군을 동원했던 1952년 '부산 정치파동'과 1972년 '10월 유신'이 이번 비상계엄 사태와 맥을 같이한다. '5.16'과 '12.12', '5.17 비상계엄 확대 조치' 등은 군이 스스로 나서 정치에 개입을 한 사건이었다. 군사 정부 시절 군이 스스로 정치에 개입하는 것을 오랫동안 지켜본 경험 속에서 이래서는 안 된다는 합의가 죽 지켜져 왔다. 그런데 특정정치 세력이 군을 끌어들였을 때 이것을 어떻게 제어할 수 있느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명확한 관점을 가지지 못했던 게 사실인 것 같다."
 
- 1952년 5월 25일, 이승만 대통령은 국회에서 자신의 입지가 줄어들고 재선가능성이 희박해지자 공비 소탕을 명분으로 임시 수도 부산 일대에 계엄을 선포했다. 당시 계엄사령관에 임명됐던 이종찬 육군참모총장은 국회의원을 체포하고 계엄군을 증원하라는 대통령의 지시를 거부하고, 오히려 전 군에 정치중립을 지키라는 훈령을 하달했다. 더군다나 그는 군부가 정치적 영향력을 강하게 행사했던 일본군 출신이었다. 이미 73년 전 육군참모총장이 불법적 지시를 거부했던 역사가 있는데, 왜 2024년에는 그러지 못했다고 생각하시는가.
 
"일본군 출신이라고 해서 모두 군이 정치에 개입하는 것에 찬성하는 사람들만 있었던 게 아니라. 일본이 군국주의로 치달았던 결과 2차 대전에서 패망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군이 정치에 개입하면 안 된다'는 철학을 가지게 된 일부 군인들이 있었고, 그 대표적인 인물이 이종찬 장군이었던 것 같다. 정치 중립의 중요성을 깨우쳤기 때문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대통령의 지시를 거부한 것이다. 군 경력은 물론이고 목숨까지 위태로울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신의 신념을 지켜야 하는 건데, 12.3 계엄 당시 육군참모총장은 그렇게까지 이 점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깊은 내면적 철학이 없으니 불법적인 지시가 내려왔을 때 자신의 입장을 명확하게 취하지 못하고 동조하게 된 것이다."
 
"장군, 결코 몰랐다는 말로 면책 받을 수 없어"
 
- 12.3 계엄에 연루된 육군참모총장과 주요 사령관들 중 어느 누구도 불법적인 계엄선포에 '안 된다'라고 말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군에서 상관의 정당한 명령에 대한 복종은 엄격히 적용되어야 할 가치라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장군과 같은 최고위 지휘관들은 이러한 기본적 가치를 넘어 그 이상을 봐야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장성은 상급자의 지시를 무조건 따르라고 국민이 그런 높은 직책을 부여한 게 아니다. 육군참모총장을 비롯한 주요 지휘관들 대부분이 '계엄을 사전에 몰랐다'는 취지의 진술로 일관하고 있다. 그 말이 사실일 수도 있다. 하지만 최고위직에 있는 장군은 결코 몰랐다는 말로 면책 받을 수 없다. 높은 직책일수록 무능에도 큰 책임이 따른다. 장군의 무능은 부하의 생명뿐만 아니라 국가 안위도 위태롭게 만들기 때문이다."
 
- 장군들이 무력하게 대통령의 지시에 순응했던 모습을 보인 것과 달리 조성현 수방사 1경비단장, 김형기 1특전여단 1대대장, 김문상 전 수방사 작전처장의 용기 있는 처신이 불법적 계엄을 막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공교롭게도 계엄에 연루된 장군들이 모두 육사 출신인데 비해, 이들 장교들은 비육사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 점은 어떻게 봐야 하나.
 
"그게 꼭 출신의 문제인 것 같지는 않다. 나도 육사를 나왔지만 계엄에 연루된 장군들을 비판하지 않는가. 계엄 전 국방장관이 군 인사를 하면서 자신의 지시에 고분고분 잘 따를 것 같은 후배들을 그 자리에 앉히다 보니 육사 출신 일색으로 라인업이 된 것이다. 영관급까지 그렇게 세팅하기는 어렵다. 또 장군은 인사명령이 나면 갑자기 바뀌지만, 영관장교들은 조금 더 시스템적으로 인사를 한다. 그러니 사전에 인사를 통해 장군들을 주요 보직에 앉히기는 했지만, 영관 장교들까지 모두 장악하기는 어려웠을 것이고 그러다보니 이들의 행동은 장군들과는 달랐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12.3 윤석열 내란 사태'를 수사하는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가 지난해 12월 9일 오전부터 경기도 과천 소재 국군방첩사령부 등에서 압수수색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진은 이날 압수수색이 진행 중인 국군방첩사령부.
▲'12.3 윤석열 내란 사태'를 수사하는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가 지난해 12월 9일 오전부터 경기도 과천 소재 국군방첩사령부 등에서 압수수색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진은 이날 압수수색이 진행 중인 국군방첩사령부. ⓒ 연합뉴스 
 
- 계엄에 연루된 장군들, 특히 방첩사령관과는 각별한 사이로 알고 있다.
 
"개인적으로 아주 아꼈던 후배 중 한 명이다. 제법 감각도 있는데다, 균형감을 가지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친구다. 방첩사령관이 된 후 인사 문제나 병사 봉급 인상 문제에 대해 '대통령과 국방장관이 다 고등학교 선배니 잘 말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했더니 '사실 자신도 특정 사안에는 끼어들기 어렵지만, 기회가 생기면 균형을 잡으려 건의도 한다'고 하더라.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민주당에서 계엄 의혹이 나왔을 때, 그런 걸 좀 끄집어내서 얘기를 했더라면 더 좋았을 뻔 했는데, 나 스스로도 계엄 가능성은 현실성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 이번 비상계엄 사태에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드러난 방첩사령부를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역대 모든 정권에서 그 이름은 달랐어도 방첩사를 친위부대 삼아 군을 견제하고 쿠데타를 방지하는 수단으로 이용해 왔다. 하지만 거의 모든 쿠데타 시도에서 방첩사는 쿠데타 세력과 함께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에서도 방첩사령관이 친위 쿠데타 시도의 핵심을 맡았던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한국군 내에서 방첩사의 존재감이 강한 것은 인사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작성하는 인사보고 자료가 자신의 진급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방첩사 요원의 눈치를 안 볼 수가 없다. 민주주의가 발달한 국가의 방첩기관들은 정치권력과는 거리가 멀다. 군 인사에 개입할 수도 없다. 우리 방첩사와 같이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정권 보위를 위해 활동하는 별도의 부대를 가진 나라들은 북한이나 중국 같은 공산주의 국가들이다. 우리 방첩사는 보안과 방첩 업무를 수행하면서 축적한 정보력을 바탕으로 정권에 반기를 드는 것을 방지하는 부대라는 점에서 공산국가나 독재국가의 정치군관 제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 방첩사가 해체되면 방첩업무에 큰 지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주장도 있다.
 
"방첩 업무를 오랫동안 하다 보면 데이터가 쌓이고 경험이 쌓인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 임무를 잘 수행하는 것이다. 앞으로도 그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연계시키면 되는 것이다. 방첩사든 군사경찰이든 방첩업무만 잘 해내면 되는 것 아닌가. 방첩사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방첩, 정보보안일 텐데 이런 기능들을 각각 가장 적절한 조직에 넘겨 제대로 작동하게 만들면 될 것 아닌가."
 
"역대 정부가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방첩사를 개혁하려 했지만, 제대로 바꾸지 못한 것이 방첩사의 '본질적 역기능'이다. 집권세력은 쿠데타 방지를 위해 방첩사를 통해 군을 들여다보는데, 이렇게 되면 필연적으로 방첩사 자체가 정권과 유착하게 된다. 군이 정치에 직접 개입하는 것을 방첩사를 통해 견제한다고 하더라도 정권 자체가 정치적 목적으로 군을 끌어들이는 친위 쿠데타를 막지는 못하는 것이다. 국방부는 국방 장관을 중심으로 움직여야지, 방첩사가 장관을 견제하는 세력으로 남아서 군에 영향력을 미쳐서는 안 된다. 군사 전문성을 약화시키고 엄정해야 할 군 기강을 문란하게 하는 방첩사를 이제는 역사 속으로 보내버려야 한다."
 
 
강건작 장군은
 
1985년 육군사관학교 45기로 입교해 2023년 7월 전역할 때까지 38년간 각급 야전부대와 국방부·육군본부·한미연합사 등에서 지휘관과 참모를 역임했다. 중대장시절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젊은이들이 모인 대한민국 군대가 왜 세계 최고의 전투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일까?'란 특별한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소령 시절 육군대학 졸업과 동시에 해당 대학 교관으로 선발돼 2년간 전술학을 가르쳤다. 교관 때 학생 장교들이 뽑은 최우수 교관으로 연속 선발되기도 했다.
 
국방부 장관실 정책총괄장교와 육군참모총장실 정책과장을 역임하면서 대한민국 군사체제의 문제점과 국방정책의 현실을 인식하게 됐다. 한편으로 향토사단 작전참모, 3야전군 작전과장, 전방군단 작전참모와 연합사 작전처장 등 작전분야 핵심직위를 거치면서 한국군의 부조리한 현상들을 수없이 보고 경험하며 더 나은 방법들을 고민하게 됐다.
 
22연대장, 28사단장, 6군단장 재직시절 DMZ 변화 상황, 북한군 실태, 실질적 군사능력을 살피면서 유사시 전쟁이 발발한다면 어떠한 일이 벌어질 것인가, 이를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문재인 정부 국가안보실 국가위기관리센터장으로 발탁돼 2년 동안 강릉·삼척 산불, 아프리카돼지열병, 코로나19 등 국가적 재난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어 국방개혁비서관으로 임용돼 전략미사일 사업, 전작권 전환, 장병 급식체계 개선, 주요 핵심무기 도입 사업 등에 관여했다. 육군 교육사령관 시절에는 육군 '미래혁신태스크포스 TF'를 이끌면서 육군 장군들에게 대한민국 육군이 나가야 할 정책 방향을 제시하기도 했다. 주요 저서로 <전술>을 비롯한 다수의 군사교범과 <무기와 전술>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