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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내란] 비상계엄 사태에서 가장 폭력적이고 위험했던 이 작전 [내란의 공간② 판교 정보사] - 시사인

civ2 2025. 5. 13. 15:42
 
비상계엄 사태에서 가장 폭력적이고 위험했던 이 작전 [내란의 공간② 판교 정보사]
문상현·이은기 기자 2025. 5. 13. 08:23
 
윤석열은 계엄 선포를 앞두고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그가 만들려고 했던 ‘제대로 된 나라’는 폭력과 피로 얼룩진 나라였다.
 
2024년 12월3일 선관위 직원 체포조가 준비한 송곳, 안대, 포승줄, 케이블타이, 야구 방망이, 망치 등 도구.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 제공
2024년 12월3일 선관위 직원 체포조가 준비한 송곳, 안대, 포승줄, 케이블타이, 야구 방망이, 망치 등 도구.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 제공
 
12·3 비상계엄의 ‘공간’을 다시 밟는다. 그곳의 조각을 모아 진실의 퍼즐을 맞춘다. 〈시사IN〉은 12·3 비상계엄 사태 피의자 및 참고인 60여 명의 진술조서 등, A4 용지 4000쪽 분량의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 및 경찰 국가수사본부 비상계엄 특별수사단 수사 기록을 확인했다. 계엄 해제 직후 나온 각 공간 속 관계자들의 생생한 진술과 수사 기록을 종합해 비상계엄의 실체적 진실을 추적했다. 두 번째 공간, 비선 기획자의 그림자가 짙게 깔린 경기도 성남시 판교 정보사 회의실로 들어간다. 그곳에 아직 꺼지지 않은 불씨가 있다.
 
날카로운 쇳소리가 들린다. 조명 아래 번뜩이는 알루미늄 야구 방망이가 바닥을 친다. 한 남자가 케이블타이를 손에 묶어본다. “이거 묶이지도 않고 잘 끊어지는데.” 옆에서 신발주머니를 머리에 써보던 다른 남자가 말한다. “그 사람들이 우리 얼굴을 볼 텐데 어떻게 합니까?” “우리는 마스크를 쓰고, 명단에 있는 인원들에게는 안대를 씌운다.” 벽면 화이트보드에는 굵은 매직으로 숫자 ‘35’와 2명 1개조로 나뉜 명단이 적혀 있다. 아래에는 ‘05:30 출발, 06:30 도착’이라는 메모가 남겨져 있다.
 
2024년 12월 3일  밤 11시께, 경기도 성남시 판교 정보사 100여단 3층 회의실. 이곳에 모여 있는 남성들은 정보사령부(정보사) 소속 특수요원들이다. 과거 ‘HID(북파공작원 부대)’로 불렸던, 북한의 주요 건물과 시설 파괴, 요인 암살 등 오직 공격작전에만 투입되는 정예 요원이자 ‘인간 병기’다. 그러나 이날 요원들에게 부여된 공격 임무 대상은 북한이 아니었다. 목표는 경기도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였다.
 
30분 전이었다. 윤석열이 대국민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곧바로 문상호 정보사령관(이하 당시 직책을 쓴다)이 1층 대회의실에 요원들을 소집했다. 그는 “방송을 다 봤을 것이다. 장관님 지시로 우리는 중앙선관위에 간다. 장관님 명령이니 군인으로서 따라야 한다”라고 말했다.
 
 
문 사령관이 ‘교육’을 마치자 요원 30명은 정보사 정성욱·김봉규 대령팀 두 개로 쪼개졌다. 정 대령은 자신의 팀원들을 3층 회의실로 데리고 간 뒤 선관위 직원 35명의 이름을 하나씩 불렀다. 처음엔 전산 직원 5명, 정보보호 관련 직원 2명, 여론조사심의위원회 23명 등 30명이었다. 이후 문 사령관이 정성욱 대령을 따로 호출해 5명을 더 추가했다. 1층 대회의실에 남았던 김봉규 대령 역시 함께 있던 팀원들에게 같은 명단을 공유했다.
 
특수요원들의 정확한 작전 목표는 선관위 직원들이었다. 정성욱 대령팀이 12월4일 오전 6시30분부터 출근하는 선관위 직원들을 순차적으로 체포하면, 김봉규 대령팀이 이들을 신문한다는 계획이었다. 선관위 청사에서 먼저 신문한 뒤 수도방위사령부 B1 벙커로 이송해 추가 신문을 하는 등 세부 계획도 세워졌다. 앞서 특수요원들이 손에 묶어보고 머리에 써본 케이블타이와 신발주머니, 알루미늄 야구 방망이는 이 임무 수행을 위해 준비됐다. 준비 물품에는 드라이버, 니퍼, 송곳, 망치도 포함되어 있었다.
 
특수요원 전원은 이날 오후 5시께 “임무가 있으니, 2주치 짐을 챙겨오라”는 연락을 받고 판교 사무실에 모였다. 일부는 속초, 대전에서 급히 판교 사무실로 올라왔다. 체포와 신문, 수사 등은 특수요원들이 수행해온 임무나 훈련받은 일이 아니었다. 계엄 선포 후 계엄사령부에 합동수사본부가 구성되어도 정보사는 포함되지도 않는다. 특수요원들의 검찰 진술을 종합하면, 이들은 이날 판교 100여단에 집합한 이후에야 임무를 접했다. 불분명한 법적 근거와 모호한 지시 탓에 당시 판교 회의실 현장에서도 “법적으로 문제없는 것이냐” “무슨 일 때문에 이 사람들을 체포해야 하는가” “이 임무는 할 수 없다고 이야기해야 한다”라는 질문과 성토가 쏟아졌다.
 
그러나 〈시사IN〉이 확인한 검찰 특별수사본부 진술조서와 수사 기록 등을 종합하면, 당시 선관위 직원 체포 작전은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최소 두 달 전부터 치밀하고 정밀하게 기획됐다. 작전은 계엄을 전제로 구성되었으며, 윤석열의 대국민 담화를 통한 계엄 선포가 곧 작전 개시의 ‘신호’였다. 계엄 선포와 함께 갑작스럽게 단순 상황 대비용으로 시작된 게 아니었다는 뜻이다.
 
결과적으로 실행은 불발됐지만 이 작전은 단순 모의에 그치지 않는다. 계엄 선포 직후 시뮬레이션을 마쳤고, 요원들이 타고 이동할 차량 배치가 완료되는 등 실행 직전 단계까지 준비되었다.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안이 의결되지 않았거나 더 지체됐다면 특수요원들의 출동은 확정적이었다. 계엄이 절차적 정당성을 갖추고 합법적으로 이뤄졌다 가정하더라도, 이 작전은 법적 범위에서 결코 허용될 수 없는 명백한 불법 군사행동이었다.
 
윤석열은 그동안 12·3 비상계엄에 대해 ‘2시간짜리 경고성 계엄’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이 선관위 직원 체포 작전은 비상계엄이 단순 경고성이 아니라 ‘부정선거 의혹을 구실로 삼아 거대 야당, 나아가 국회를 해산하기 위한 목적’으로 선포된 사실을 입증하는 명백한 증거다. 이번 비상계엄 사태에서 가장 폭력적이고 위험했던 이 작전의 실체를 알기 위해선 2024년 10월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시작은 불명예 퇴역한 예비역 장군, 민간인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으로부터였다.
 
■ 2024년 10월, 부정선거 ‘정신교육’
 
“특수요원 5명, 우회 공작 인원 15명 추려둬라. 북한 고위급 탈북 첩보다. 극비다(노상원→김봉규).”
 
“사업(공작) 잘하는 인원 15명 정도를 선발해봐라. 극도로 민감한 사안이니 절대 보안 유지하라(노상원→정성욱).”
 
선관위 직원 체포를 위한 판교 특수요원팀은 정보사 소속 김봉규·정성욱 대령 두 축으로 나뉘었다. 요원 선발은 민간인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지시했다. 김 대령이 15명, 정 대령이 15명씩 각각 선별해 정보사 정예 요원 총 30명을 모았다.
 
노상원 전 사령관과 김봉규 대령, 정성욱 대령은 근무 인연이 있다. 노 전 사령관은 2018년 성 비위 등으로 불명예 전역했지만, 군을 떠난 이후에도 김 대령과 정 대령에게 자주 연락했다. 정보사에 문제가 생기거나, 인사 발령 시기에 전화를 걸어 내부 소식을 물어보곤 했다.
 
2024년 12월24일 비상계엄 비선 기획자로 의심받는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검찰에 송치되고 있다. ⓒ연합뉴스
2024년 12월24일 비상계엄 비선 기획자로 의심받는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검찰에 송치되고 있다. ⓒ연합뉴스
 
2024년 10월 초부터 노 전 사령관의 ‘안부 연락’ 내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는 김봉규 대령과 정성욱 대령에게 보안 메신저인 텔레그램과 시그널을 통해 며칠에 걸쳐 반복적으로 부정선거 관련 단행본 정보와 유튜브 동영상 링크를 보냈다. 그러면서 노 전 사령관은 “강의를 다니는 데 사용할 자료다. 요약을 부탁한다”라고 말했다.
 
단순 강의자료 도움 요청이 아니었다. ‘이상한 부탁’이 따라붙었다. 노 전 사령관은 자료를 정리하면서 부정선거 업무를 맡았을 법한 선관위 담당 부서와 직원도 함께 알아봐달라고 했다. 김봉규 대령은 검찰 조사에서 이 ‘부탁’에 대해 “책과 유튜브, 선관위 홈페이지를 참고해 ‘내가 부정선거를 기획한다면 이 부서를 활용했을 것이다’ 생각하며 명단을 정리했다”라고 회상했다. 선관위원장, 전산시스템 운영 관련 직원, 전산 운영 실무자 등 목록이 이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추후 이 목록 일부가 비상계엄 선포 이후 확보 및 체포해야 할 선관위 부서, 직원 명단에 포함됐다.
 
꾸준히 부정선거 자료를 보내고 의혹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던 노상원 전 사령관은 10월 중순부터 본격적인 ‘지시’를 하기 시작했다. 정성욱 대령에겐 ‘사업(공작) 잘하고 똘똘한 놈들’ 15명을 선발해보라 했고, 김봉규 대령에게도 ‘특수부대 쪽에서 특수무술 잘하는 인원으로, 빠릿빠릿한 애들’ 15명을 뽑아보라고 했다. 그러면서 두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전라도 출신 인원은 빼라’고 지시했다.
 
김봉규 대령과 정성욱 대령은 노상원 지시를 소극적으로 이행했다. 정보사 임무와 부정선거는 어떠한 연관도 없고, 인원 선발 권한 자체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10월 말, 문상호 정보사령관이 김봉규 대령과 정성욱 대령을 사령관실로 호출했다. 두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문 사령관은 낯익은 지시를 했다. ‘사업(공작) 잘하는 인원 15명 정도 선발해서 보고하라’는 것이었다. 지시 내용도, 사유도 앞서 노 전 사령관이 말한 것과 똑같았다.
 
‘낯익은 지시’는 우연이 아니었다. 문상호 사령관도 2024년 10월 들어 노상원 전 사령관과 연락을 주고받는 횟수가 부쩍 늘고 있었다. 노 전 사령관이 먼저 전화를 걸어 부정선거 의혹과 특수요원 선발 이야기를 꺼냈다. 문 사령관 역시 당시에는 노 전 사령관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냈다고 한다. 민간인이 현직 사령관에게 지시하는 것도, 그 내용도 이상했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문상호 사령관에게 노상원 전 사령관이 화를 내며 이렇게 말했다(2024년 10월14일). “너 나 못 믿냐? 장관이 곧 전화할 거야. 받아봐.” 10분 뒤, 김용현 국방부 장관이 문상호 사령관에게 비화폰으로 전화를 걸어왔다. 김 장관은 “인원 선발 잘 되어가고 있냐”라고 물으면서 “노상원 말 잘 들어라”고 당부했다. 검찰 수사에 따르면, 비상계엄 선포 전 이뤄진 김용현 장관과 문상호 사령관의 전화 통화는 당시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문 사령관은 검찰 조사에서 “이날 이후로 노 전 사령관의 말을 장관 지시로 이해했다”라고 진술했다.
 
■ 2024년 11월, 요원 선발 및 장비 준비
 
“언론에 평상시에 나지 않는 특별한 보도가 나올 거야. 그러면 우리가 부정선거 관련해서 공부한 내용을 바탕으로 중앙선관위에 가서 부정선거와 관련한 책에 나오는 사람들을 확인해야 한다(노상원→문상호·김봉규).”
 
11월 초, 경기도 안산 상록수역 인근 투썸플레이스에서 노상원 전 사령관과 문상호 사령관, 김봉규 대령이 대면했다. 노 전 사령관이 자리를 만들었다. 그는 문상호 사령관과 김봉규 대령에게 인원 선발 준비 여부를 물어보면서 “북한이 오물 풍선 날리면 원점 타격하고 지원 세력 타격할 수도 있어서 임무 수행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2024년 12월1일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과 문상호 정보사령관, 정성욱·김봉규 정보사 대령 등이 사전 모의를 한 장소로 알려진 경기도 안산 상록수역 인근 롯데리아 매장. ⓒ연합뉴스
2024년 12월1일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과 문상호 정보사령관, 정성욱·김봉규 정보사 대령 등이 사전 모의를 한 장소로 알려진 경기도 안산 상록수역 인근 롯데리아 매장. ⓒ연합뉴스
 
노상원 전 사령관의 말이 길어지며 내용은 더 구체화되고, 거칠어졌다. 문상호 사령관이 “대북 상황에 왜 정보사가 들어가느냐”라고 묻자 노 전 사령관이 ‘특별한 보도’와 ‘중앙선관위’를 언급하며 “선관위에 가서 사람들을 잡아와야 한다”라고 말했다. 노 전 사령관은 “군인이 왜 그런 사람들을 잡아와야 하느냐”는 질문이 나오자 “계엄 같은 상황이 있을 수 있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계엄 상황이 되면 너희가 준비한 인원들을 데리고 김봉규팀, 정성욱팀으로 나눠 선관위에 가서 부정선거 관련 자료를 찾아야 하고 사람들을 잡아와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선발한 요원들을 데리고 ‘선관위에 들어간다’는 말과 ‘계엄’이라는 단어가 나온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이 자리에서 노상원 전 사령관은 김봉규 대령에게 서류 뭉치를 넘겨줬다. 정성욱 대령에게도 똑같이 전달하라는 말과 함께였다. 노 전 사령관은 날짜는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고 “조만간 상황이 생길 것이다”라고 당부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노상원 전 사령관이 김 대령에게 건넨 서류는 A4 용지 10장 분량의 문서였다. 6~7장이 부정선거와 관련된 이야기였고, 선관위 직원 30명의 명단과 각 부서가 적혀 있었다. 나머지 3~4장에는 김봉규 대령과 정성욱 대령이 수행해야 할 임무가 담겼다. ‘계엄 선포 시 할 일’이라는 문구와 함께였다. 세부적인 특수요원팀 편성 계획, 당일 작전 동선, 그리고 야구 방망이와 케이블타이 등 준비해야 할 물품 등도 상세히 적혀 있었다.
 
김봉규 대령과 정성욱 대령이 전달받은 임무 내용을 보면, 12월3일 계엄의 밤에 대한 모든 계획이 치밀하고 정밀하게 세워져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이미 11월 초에 작전 계획이 완성돼 있었다는 뜻이다. 김 대령과 정 대령이 받은 임무는 크게 4가지였다(가로 안 내용은 설명).
 
① 소집된 특수요원과 차량이 수방사에 출입할 수 있도록 조치할 것(수방사에 체포한 선관위 직원들을 수용하고 신문도 해야 하기 때문에 사전에 수방사에 공간을 확인하라는 지시였다).
 
② 수방사 시설 확인 인원을 제외한 요원 전원은 계엄 선포 후 오전 6시30분까지 선관위로 가서 선관위 전체 직원 명단을 정확하게 파악할 것. 체포 대상 30명에게 부정선거에 대해 물어볼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할 것(정성욱 대령팀이 체포를, 김봉규 대령팀이 신문과 이송을 맡았다. 수방사로 체포한 직원들을 옮기기 전, 선관위 청사에서 1차 조사를 하기 위해 공간을 확보해둬야 한다는 계획이었다).
 
③ 선관위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곳에 가서 ‘부정선거에 대해 아는 사항이 있으면 양심 고백을 하라’는 내용의 문구를 올리고, 사령부 내 일반전화를 설치해 부정선거 신고 콜센터를 설치·운영 할 것(체포 대상 직원들 외에도 선관위 내외부에서 부정선거 ‘자백’을 받겠다는 취지였다).
 
④ 선관위 방송실에 가서 선관위 내부 방송을 통해 계엄 상황을 고지하고 ‘계엄 상황이니 우리(정보사 요원 또는 계엄군)의 지시에 따를 것과 따르지 않으면 체포 등의 조치가 있을 수 있음’을 경고할 것(선관위 체포 작전과 동시에 본격적인 기관 통제 계획이었다).
 
2024년 12월21일 김봉규 대령이 검찰 조사 과정에서 제출한 노 전 사령관의 지시 복기 메모.
2024년 12월21일 김봉규 대령이 검찰 조사 과정에서 제출한 노 전 사령관의 지시 복기 메모.
 
11월 말께, 특수요원 구성이 마무리됐다. 요원 명단이 문상호 사령관과 노상원 전 사령관에게 보고됐다. 이 단계에 이르기까지 노상원 전 사령관은 김봉규 대령과 정성욱 대령에게 계속해서 연락해 인원 편성과 물품 준비를 채근하고 재촉했다. 안산시 상록수역 인근 롯데리아에서 회동도 이뤄졌는데, 실질적인 작전 준비는 ‘롯데리아 회동’ 이전에 완료됐다.
 
■ 12월3일, 계엄의 밤
 
“노태악(선관위원장)이는 내가 확인하면 된다. 야구 방망이는 내 사무실에 갖다 놔라. 제대로 이야기 안 하는 놈은 위협하면 다 분다(노상원→김봉규·정성욱).”
 
“오늘 중요한 임무가 있을 수 있으니 (선발한) 요원들에게 전화해서 판교 100여단으로 소집해라(문상호→김봉규·정성욱).”
 
비상계엄 선포 이틀 전인 12월1일, 노상원 전 사령관·문상호 사령관·김봉규 대령·정성욱 대령이 상록수역 인근 롯데리아에서 만났다. 특수요원 선발이 앞서 완벽하게 끝났다. 준비를 마쳤다고 판단한 이 자리에서 노 전 사령관은 계엄 선포 후 선관위 체포팀의 동선을 상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명단에 있는) 선관위 직원 30명 출근하는 거 확인해서 (김봉규 대령이 신문을 위해 미리 확보해둬야 할) 선관위 회의실에 데리고 오기만 하면 된다. 저항하는 놈들이 있으면 케이블타이로 묶어놔. 선관위 인사과 가서 직원 명단 가져오고, 홈페이지 관리자 그런 놈들 찾아서 부정선거 자수하는 글 올려라.”
 
김봉규 대령과 정성욱 대령은 당시에도 의구심을 품었다. “설마 정말로 계엄을 선포하겠냐”라며 서로를 안심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이를 눈치 챈 문상호 사령관이 김 대령과 정 대령을 따로 불러서 이렇게 설득했다고 한다. “(김용현) 장관님의 지시다. 명령이 있으면 군인이니까 해야 하지 않겠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지만, 만일 계엄이라는 것이 선포되면 장관님 명령을 수행해야 된다. 이왕에 할 거면 잘해야 한다.”
 
12월3일 오전 10시, 문상호 사령관은 노상원 전 사령관에게 ‘작전 개시’가 임박했음을 전해 들었다. 문상호 사령관이 고동희 정보사 대령을 호출해 인원을 선발하라고 지시했다. 계엄 선포 10분 만에 선관위 과천 청사에 진입해 서버실을 장악하고 사진 촬영을 한 10명의 ‘정보사 선발대’가 이 지시로 구성됐다. 선발대 임무의 핵심은 사진 촬영이 아니라, 판교 특수요원팀이 오기 전 선관위 전산실과 소속 직원 5명을 ‘확보(체포)’ 후 ‘통제’해두는 것이었다.
 
비상계엄 선포 약 6시간 전인 오후 4시30분, 문상호 사령관이 김봉규 대령과 정성욱 대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계엄 선포가 확정된 상황이었다. 문 사령관의 전화를 받은 김 대령과 정 대령은 곧바로 요원들을 소집했다. 각지에 흩어져 있던 특수요원들이 오후 7시30분부터 하나둘씩 판교 100여단 대회의실에 모이기 시작했다. 오후 9시30분 요원들이 전부 모이자 문상호 사령관은 “오후 10시에 중대 보도가 있으니 각자 방송을 보고 다시 집합하라”고 지시했다. 이후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했고, 특수요원팀은 준비한 케이블타이를 손에 묶어보고 신발주머니를 머리에 써보면서 체포 작전 준비에 착수했다.
 
■ ‘민간인’이 장악하고 지시한 작전
 
12월4일 새벽,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안이 의결됐지만 선관위 체포팀은 해산하지 않았다. 윤석열이 2차 계엄을 준비한 정황이 여기서도 드러난다. 문상호 사령관, 김봉규 대령, 정성욱 대령의 검찰 진술을 종합하면 국회 의결 이후에도 선관위 체포팀은 목표를 바꿔서 선관위 관악청사 진입 등을 논의했다. 뒤늦게 계엄이 해제되자 특수요원팀은 작전 준비 과정에서 공유한 문서와 작성했던 메모를 한곳에 모아 파기하기 시작했다. 이후 문상호 사령관은 요원들에게 해산을 지시하면서 “오늘 있었던 일은 기밀이다. 함구하라”고 당부했다.
 
비상계엄 사태를 수사하는 검찰은 이 작전과 윤석열의 연결성을 확인하는 데 집중했다. 작전에 관계된 인물들로부터 윤석열에게 직접 지시를 받았다는 진술은 확보하지 못했지만, 치밀하고 정밀한 대규모 군사작전이었던 만큼 대통령의 재가 없이는 기획부터 불가능한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났기 때문이다.
 
2024년 12월10일 문상호 정보사령관이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2024년 12월10일 문상호 정보사령관이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선관위 체포를 위해 구성된 특수요원팀은 민간인(노상원 전 사령관) 지시로 소집된, 실체 없는 ‘유령’이 아니었다. 계엄 후 구성될 합동수사본부에 정식으로 편성된 정식 조직이었다. 검찰이 입수한 계엄 선포 과정에서 김용현 장관이 작성해둔 ‘국방부 인사명령(초안)’을 보면, 판교 100여단에 모였던 특수요원 전원의 이름이 적혀 있다. 이들은 김봉규·정성욱 대령이 계엄 선포 전 구성한 팀 그대로,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 산하 ‘제2수사단’에 편성됐다.
 
노상원 전 사령관이 문상호 사령관과 김봉규·정성욱 대령에게 접근하고, 상록수역 인근으로 호출한 시점들(2024년 10~12월)은 공교롭게도 윤석열 또는 김용현 장관이 군사령관들을 국방부 장관 공관으로 부른 시점과 일치한다.
 
검찰은 2024년 10월1일 국군의날 행사 이후부터 윤석열과 김용현 장관이 본격적인 계엄 선포 준비에 착수했다고 판단한다. 대통령 관저, 장관 공관 모임에 빠짐없이 참석했던 여인형 방첩사령관은 검찰 조사에서 “당시(2024년 10월) 김용현 장관이 전화를 걸어 갑자기 ‘(계엄 선포 후 구성되는) 합동수사본부 구금 시설이 어디 있냐’고 물어봤다. 방첩사에는 없다고 대답하니 ‘수방사 쪽을 구금 시설로 활용해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라고 진술했다. 이 시점은 노 전 사령관이 김봉규·정성욱 대령에게 부정선거 자료를 보내면서 ‘선관위 직원 체포를 위한 특수요원을 선발’하라고 처음으로 지시를 하기 시작한 때다.
 
11월9일 군사령관들은 윤석열이 참석한 국방부 장관 공관 모임에서 소고기를 곁들여 소주와 맥주를 마셨다. 이날 윤석열은 “APEC에 다녀올 것이다. 비상대권이라도 써서 나라를 정상화시키면, 주요 우방국들도 지지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모임 직후, 노 전 사령관은 김봉규·정성욱 대령을 불러 요원 선발과 물품 등 ‘임무 준비’ 여부를 점검했다.
 
11월30일, 김용현 장관은 자신의 공관에서 앞서 군사령관들로부터 현안 보고를 받으며 이렇게 말했다. “조만간 계엄을 하는 것으로 대통령이 결정하실 거다. 더 이상 이 난국을 두고 볼 수 없다. 국회를 계엄군이 통제하고, 계엄사가 선관위와 여론조사 꽃 등의 부정선거와 여론조작의 증거를 밝혀내면 국민들도 찬성할 것이다.” 이날은 문상호 사령관이 ‘임무’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던 김 대령과 정 대령을 따로 불러 “장관님 지시다. 이왕에 할 거면 잘해야 한다”라고 설득한 날이었다.
 
12월3일 밤 9시30분께, 정보사 소속 요원들에게 계엄 선포 시간이 밤 ‘10시’로 공지됐지만 실제로는 20여 분가량 늦춰졌다. 국무위원들이 반대하고 막아서면서 윤석열의 계엄 선포가 늦어진 것이었다. 계엄 선포가 ‘20분가량 지연될 것이다’라는 공지는 실시간으로 정보사 선발대와 판교 특수요원들에게 전파됐다. ‘민간인’ 노상원 전 사령관이 문상호 사령관에게 계엄 선포가 지연된다고 알렸기 때문이다.
 
그 밖에 노상원 전 사령관은 작전 지시를 하면서, 방첩사와 수방사의 공조를 계속 언급했다. 실제로 방첩사도 계엄 선포 직후 선관위 서버 탈취와 포렌식을 위한 팀을 구성해 출동했고, 정보사와 별개로 수방사에 방문해 B1 벙커 수용 가능 여부를 직접 확인했다. 이 과정에서 방첩사는 선관위 서버실 탈취와 포렌식을 위해 현장팀 출동을 준비하며 노 전 사령관과 수차례 연락을 주고받았다. 방첩사 선관위 출동팀을 총괄한 정성우 방첩사 1처장은 검찰 조사에서 “노 전 사령관이 전화로 ‘현장지휘관(정보사 선발대 10명)이 있어서 너네(방첩사)가 오면 인수인계해줄 거야. 아직도 출발 못했어? 너네가 다 할 수 있다는데? 와서 이거 빨리 받아’라고 말했다”라고 진술했다. 민간인이 자기가 근무했던 부대뿐만 아니라 소속이 다른 부대 참모진과 작전 내용을 두고 지시를 내렸다는 것이다.
 
2024년 10월1일 국군의날 행사에 참석한 윤석열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연합뉴스
2024년 10월1일 국군의날 행사에 참석한 윤석열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연합뉴스
 
노 전 사령관은 비상계엄 당일까지도 김용현 장관 공관을 방문해 오랜 시간 머물렀던 사실도 확인됐다. 민간인이, 계엄 선포 상황이 실시간으로 전파되고 소속이 다른 복수의 군에 작전을 지휘했던 정황 등은 김용현과 윤석열이 이 작전에 깊숙이 개입됐을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윤석열 검찰 공소장을 보면, 그는 2024년 11월24일 대통령 관저에서 김용현 장관 등에게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라며 비상계엄 관련 작업 준비를 지시했다. 이후 노상원-문상호-김봉규-정성욱이 주축이 된 선관위 직원 체포 특수요원팀이 본격 가동됐고, 비상계엄 선포 직후 작전 실행 직전 단계에 이르렀다. 작전 준비 과정과 목표, 그 내용을 모두 종합하면 계엄이 성공했을 경우 윤석열이 언급한 ‘미래 세대에 넘길 제대로 된 나라’는 폭력과 피로 얼룩졌을 공산이 크다.
 
문상현·이은기 기자 moon@sisa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