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bit.ly/1kQQyKZ

<6>이순신의 전쟁 준비
거북선 창제하고 해전전술을 혁신하다
2012. 02. 13   00:00 입력 | 2013. 01. 05   07:40 수정

1591년 2월 전라 좌수사로 부임한 이순신은 곧바로 전쟁 준비에 착수했다. 무너진 성을 보수하고 무기고를 점검해 관리에 소홀한 책임자에 대해서는 일벌백계했다. 이순신의 전쟁 준비의 백미는 거북선 건조다. 임진왜란 발발 하루 전인 임진년(1592년) 4월 12일 거북선에 지자·현자총통을 싣고 나가 사격훈련을 마치고 전력화가 종료되는 것을 보면 이순신은 부임하자마자 거북선 건조에 착수했던 것 같다. 거북선 건조에 소요된 시간은 1년 2개월을 넘지 않는다. 


조선 후기 전라좌수영 거북선.


조선 후기 통제영 거북선.



복원된 2층 거북선.(해사)



새로 복원 중인 3층 거북선.(통영)
 
그렇다면 조선 수군의 주력함선인 판옥선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순신은 왜 거북선을 만들었을까. 판옥선의 주요 무기는 대형 화약 무기인 총통과 개인 휴대무기인 활이다. 대형 화약 무기인 총통은 천자·지자·현자·황자 등의 총통 경우 사정거리가 대략 1000m 전후다. 그러나 총통은 발사 각도를 조정해 목표물을 조준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유효사정거리는 이에 훨씬 못 미친다. 따라서 판옥선의 가장 큰 문제점은 명중률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총통을 사용해 전투할 경우 대개 200보 정도 근접했을 때부터 전투가 시작됐다고 하는데 200보는 대략 240m다. 그러나 당시 총통의 조준 방식으로는 240m에서 목표물을 명중시키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따라서 가능하면 100m 이내 또는 할 수만 있다면 조총의 유효사정거리인 50~60m 정도까지 접근해 사격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그러나 판옥선에 장착된 총통의 명중률을 높이기 위해 가까이 접근하게 되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일본 수군의 장기인 등선백병전에 당할 수 있는 위험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근접해 총통사격을 함으로써 명중률을 획기적으로 높이면서 동시에 일본 수군의 등선백병전으로부터조선 수군 병사를 보호하는 방법은 없을까. 이런 고민하에 만들어진 함선이 새롭게 창제된 거북선이다. 

거북선의 해전에서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확인해 본다. “그중 한 대선 위에는 높이가 3~4장이나 될 것 같은 높은 층루(層樓)가 우뚝 솟았고, 밖으로는 붉은 비단 휘장을 두르고…(중략)… 그 속에 왜장이 있는데, 앞에는 붉은 일산을 세우고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지라, 먼저 거북선으로 하여금 층루선(層樓船) 밑으로 곧바로 치고 들어가 용의 입으로 현자 철환을 치쏘게 하고 또 천자·지자총통과 대장군전을 쏘아 그 배를 쳐부수자, 뒤따르고 있던 여러 전선도 철환과 화살을 번갈아 쏘았는데, 중위장 권준이 돌진해 왜장이라는 놈을 쏘아 맞히자, 활을 당기는 소리에 따라서 거꾸로 떨어지므로 사도첨사 김완과 군관 흥양 보인 진무성이 그 왜장의 머리를 베었습니다.” 

이 글은 임진년 제2차 출동 중에 있었던 당포해전을 묘사한 장계인데 거북선이 해전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자료다. 거북선은 해전이 벌어지면 가장 먼저 적의 지휘선이나 주력함을 향해 돌진한다. 거의 30m 또는 20m 이내까지 근접해 거북선 선수의 용의 입에 설치된 현자총통으로 철환을 발사한다. 이때 현자총통의 조준 목표는 적의 지휘관이 위치한 천수각 주변이다. 현자총통으로 철환을 발사해 상부 구조물과 지휘관 및 그 주변의 일본 병사들을 공격한 거북선은 그 다음 선수를 돌려 빠져나오면서 현 측에 있는 6개의 총통구멍을 통해 천자·지자총통을 쏘아 상부 구조물을 격파한다. 이때 사용된 피사체는 대장군전·장군전·철환 등이다. 이 정도 상황이 되면 일본 지휘선의 상부 구조물이 상당 부분 파괴돼 몸을 숨길 수 없는 상황이 되기 때문에 일본 병사들은 우왕좌왕하게 된다.
 
이때 뒤따르던 판옥선에서 소형 총통이나 활을 사용해 일제히 적장과 병사들을 사살하는데 특히 화살을 맞고 바다로 떨어진 적장은 건져내어 목을 베고 효시한다. 그리고 무력화한 지휘선은 질려포나 대발화 등의 화약 무기로 불태운다. 해전 초기에 지휘선이 격파되고 지휘관이 전사한 일본 함대는 지휘체계가 마비되고 병사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때 일제히 판옥선이 진격해 함포포격전에 의한 격파, 활에 의한 사살, 마지막 화공에 의한 분멸(焚滅)이라는 일정한 공격 패턴으로 일본 함선들을 격파한다. 이렇게 볼 때 이순신에 의해 새로 정립된 해전전술은 제1단계 거북선의 돌격과 판옥선의 협공에 의한 지휘선의 무력화, 제2단계 판옥선의 총통 공격에 의한 격파, 제3단계 활을 이용한 사살, 제4단계 화공에 의한 분멸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 

그렇다면 거북선은 왜 거북 등 모양의 덮개를 갖게 됐을까. 돌격선 용도로 만들어진 거북선이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총통의 명중률을 가장 높일 수 있는 거리까지 접근해야 한다. 그런데 가까이 접근한다는 것은 등선백병전을 장기로 하는 일본 수군이 바라는 바이기 때문에 매우 위험한 상황이 전개된다. 돌격선에 거북 등 모양의 덮개를 씌운 것은 바로 일본 수군의 등선백병전으로부터 돌격선에 타고 있는 조선 병사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거북선에 대한 이순신의 설명을 직접 확인해 본다. “신(臣)이 일찍이 왜적들의 침입이 있을 것을 염려해 별도로 거북선을 만들었는데, 앞에는 용머리를 붙여 그 입으로 대포를 쏘게 하고, 등에는 쇠못을 꽂았으며 안에서는 능히 밖을 내다볼 수 있어도 밖에서는 안을 들여다 볼 수 없게 하여 비록 전선 수백 척 속에라도 쉽게 돌입해 포를 쏘게 돼 있으므로 이번 출전 때에 돌격장이 그것을 타고 나왔습니다.” 임진년 2차 출동 후 보낸 장계에 포함된 내용이다. 거북선은 근접 함포 포격을 위한 용도로 만들어진 돌격선이었던 것이다.

이제까지 조선 수군의 해전전술의 하나로 소개되곤 했던 당파(撞破) 전술은 거북선이나 판옥선이 일본 함선을 들이받아 깨뜨리는 충돌 전술(Ramming tactics)이 아니라 대장군전이나 장군전 또는 철환 같은 피사체를 발사해 쳐부수는 함포포격전술이다. 당파는 총통을 쏘아 쳐부순다는 의미이지 거북선이나 판옥선이 일본 함선과 충돌해 쳐부순다는 의미가 아니다. 충돌 전술에 이은 등선백병전은 조선 수군이 가장 피하고자 했던 해전 양상이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은 이미 그런 재래식 해전전술 개념을 넘어선 혁신된 수군이었다. 바로잡아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임원빈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장  전 해사 교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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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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