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46366.html


양승태 법원행정처, ‘긴급조치 배상’ 판사 불이익 검토

등록 :2018-05-26 22:36


“긴급조치는 고도의 정치적 행위 손배 대상 아냐” 대법원 판결 뒤 1심서 국가 손배 인정 선고하자 

상고법원 위해 청와대 협력 필요해, 재판장에 불이익 방안 검토 지시


양승태 대법원장이 지난해 9월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퇴임식에 참석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양승태 대법원장이 지난해 9월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퇴임식에 참석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양승태 대법원장 때 법원행정처가 박정희 대통령의 긴급조치 피해자들에게 국가 손해배상을 인정한 판사에게 ‘불이익’을 주려고 시도한 사실이 드러났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단장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은 “재판의 독립을 침해할 수 있는 사법행정권 남용”으로 평가했다.


특조단이 25일 공개한 조사보고서를 보면, 2015년 9월 서울중앙지법 김아무개 부장판사가 대법 판결과 달리 “국가가 긴급조치 피해자들에게 손해를 배상하라”고 판결하자 임종헌 당시 행정처 차장은 윤리감사관실에 ‘잘못된 판결에 대한 직무감독’ 검토를 지시했다. 이에 최두호 당시 행정처 윤리감사관(현 광주지법 순천지원 부장판사)는 “잘못된 재판 결과는 사법부 신뢰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사항이므로 직무감독을 행할 필요는 있음. 다만, 재판의 독립이라는 사법의 대원칙에 비추어 재판에 대한 직무감독의 가부 및 그 범위에 관하여 심도 있는 검토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문건을 작성했다.


김민수 당시 행정처 기획제1심의관(현 창원지법 마산지원 부장판사)도 같은 해 9월 임 차장의 지시로 ‘대법원 판례를 정면으로 위반한 하급심 판결에 대한 대책’ 문건을 작성했다. 문건에는 “대법원 판례를 정면으로 위반하였다는 사정만으로 ‘위법’하다고 평가하기는 어려움”이라면서도 김 부장판사가 ① 대법원 판결에 명백하게 불합리한 부분(단순한 의견 차이만으로는 부족)이 존재하지 않고, ② 대법원 판례 선고 후 새로운 사정 변경이 발생하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③ 해당 사건을 대법원 판례의 적용 범위에서 배제할만한 특별한 사정을 찾기 위한 노력도 하지 아니한 채, 단순히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위 대법원 판결 선고 후 6개월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대법원 판례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판결을 선고한 것은 “매우 부적절한 행동으로서 직무윤리 위반의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적혀있다. 김 부장판사는 대응방안으로 “대법원 판례를 정면으로 위반한 하급심 판결에 대한 징계→소극. 대법원 판례를 따를 수 없어 직업적 양심을 우선시키기 어려운 경우→회피 및 재배당 이용 가능. 법관 연수강화→법관들에게 판례의 구속력에 대한 경각심 고취”를 제시했다.


‘대법원 판례를 정면으로 위반한 하급심 판결에 대한 대책’

‘대법원 판례를 정면으로 위반한 하급심 판결에 대한 대책’


임종헌 차장은 당시 왜 긴급조치 피해자의 손해배상을 인정한 하급심 판결에 민감했을까. 대법원 3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2015년 3월 “긴급조치 9호는 위헌이지만 고도의 정치적 행위로 국가가 배상할 필요 없다”고 판단했다.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처벌을 받았지만 재심 무죄를 선고받아도 국가의 잘못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판결로 비판을 받았다. 더구나 2010년과 2013년 긴급조치를 위헌·무효라고 선고했던 대법원이 스스로 판단을 뒤집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실제 2015년 9월 김 부장판사를 시작으로 대법원 판례에 정면으로 맞서는 하급심이 이어지면서 법원 내부에서도 반발이 나왔다.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하는 법관이 반드시 대법 판결을 따라야 할 의무는 없다. 또 모든 법관이 대법 판결만 따라야 한다면 시대가 변해도 판례는 영원히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임 차장이 징계를 검토한 이유는 ‘상고법원 입법추진을 위한 BH설득방안’ 문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상고법원 입법의 청와대 동의를 얻으려 “정부 운영에 대한 사법부의 구체적 협력 사례 제시”를 설득 방안으로 삼으며 그중 하나로 대법원의 긴급조치 판결을 든 것이다. 이 문건은 시진국 행정처 기획2심의관(현 창원지법 통영지원 부장판사)은 2015년 7월 당시 임종헌 기조실장의 지시를 받아 다른 심의관과 협업으로 작성했다. 특조단은 “시 심의관은 임종헌 기조실장에게 긴급조치에 관한 대법 판결을 청와대에 대한 사법부의 구체적 협력 사례로서 상고법원 입법을 위한 설득 방안으로 활용할 것을 제안해 수긍됐다”고 밝혔다.


‘상고법원 입법추진을 위한 BH설득방안’

‘상고법원 입법추진을 위한 BH설득방안’


특히 조사보고서는 각주에서 “김 부장판사의 판결은 행정처가 2015년 8월6일에 있었던 대통령과 대법원장의 오찬회동을 통해 상고법원 입법안의 새로운 추진 동력을 얻었다고 판단하고 있었던 때로부터 불과 1달 정도 후에 선고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상고법원을 위해 청와대 협조가 필요했던 행정처가 박 전 대통령이 불편해할 수 있는 긴급조치 손해배상 인정 판결을 급하게 수습하려 했던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Posted by civ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