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442185


MB와 맞짱 뜬 한식당 주인, 왜 선거에 나섰나

[인터뷰] 6.13 지방선거에 뛰어든 '4대강 저항자', 이항진 더불어민주당 여주시장 후보

18.06.07 15:30 l 최종 업데이트 18.06.07 15:30 l 글: 정대희(kaos80) 편집: 김지현(diediedie)


 '4대강 저항자'로 6.13 전국동시 지방선거에 출마한 이항진 여주시장 후보

▲  '4대강 저항자'로 6.13 전국동시 지방선거에 출마한 이항진 여주시장 후보 ⓒ 정대희


그는 4대강 저항자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 맞서 'MB 4대강'에 죽어가는 강을 온몸으로 기록했다. 지난해 오마이뉴스 10만인리포트 '적폐청산 1호, 이명박 4대강 탄핵하자' 때도 그랬다. 그는 양복바지를 입고 그대로 물속으로 들어가 강바닥에 숨어있던 시커먼 거짓을 끄집어냈다. 2300만 명의 수도권 시민들의 상수원에 쌓인 검은 펄이었다. 그속에는 충격적인 생명체도 살고 있었다. 시궁창이나 하수구에 사는 붉은 깔다구와 실지렁이였다. 


여기서 '그'는 이항진(52)씨다. 사람들은 그를 '한강 지킴이'라고 부른다. 4대강 사업에 죽어가는 강을 기록하고 장밋빛 전망의 참혹한 진실을 고발해서다. 한때는 '상황실장'이었다. 이명박 정부가 불도저식으로 4대강을 파헤칠 때다. 이 시절, 그는 4대강 범국민대책위원회의 '전국상황실장'을 맡았다. 이런 그가 요즘은 "후보" 소리를 듣는다고 해 찾아갔다. 


그가 이번엔 가슴에 띠를 둘렀다. 4대강이 흐르는 지역의 기초단체장에 도전한다. 오는 6.13 전국동시 지방선거에 '더불어민주당 여주시장 후보'로 출마했다.


지난 5월 29일 그를 만나봤다. '4대강 저항자'의 길을 걷다가 정치에 발을 내디딘 이유가 궁금해서다. 경기도 여주시에 있는 후보사무실로 찾아갔다. 인터뷰가 시작되자 그는 4대강 사업에 얽힌 자신의 삶부터 꺼냈다. 


[#장면①] 800평 한옥과 월세 20만원 마을회관


 3일 오후 경기도 여주시 금사면 남한강 이포보 하류에서 삽으로 퍼낸 강바닥 뻘에서 붉은깔따구, 실지렁이 등 4급수 지표종이 발견되었다.

▲  지난해 6월 3일 오후 경기도 여주시 금사면 남한강 이포보 하류에서 삽으로 퍼낸 강바닥 뻘에서 붉은깔따구, 실지렁이 등 4급수 지표종이 발견되었다. ⓒ 권우성


"800평 한옥에 살다가 지금은 월세 20만 원 마을회관에 삽니다.(하하)"


그는 극적인 삶을 이 한 줄로 요약했다. 웃음은 덤이었다. 여기에 토를 달았다. "왜 망했냐"고. 그는 망한 게 아니라 "문 닫게 했다"라고 말했다. 사연은 이랬다.


'800평 한옥'은 한식당이었단다. 남한강에 이웃해 있는 '대궐 같은 집'이었다. 몇 발자국만 움직이면 모래와 자갈이 "끝내주는" 강에 닿는 그런 집이었다. 여기서 그는 한가할 때면 정원을 가꾸고, 시간이 남으면 자신의 반려견을 데리고 강을 산책했다. 


그는 이게 다 남한강 덕분이라고 했다. 그가 스물아홉 살이었을 때다. 처가에 왔다가 남한강에 반했다. 드넓은 백사장에 버드나무가 휘날리고, 새들이 날아다녔다. 강에선 물소리가 세찼다. 이때부터 여주에 눌러앉게 됐다. 강가에 레스토랑을 열고 장사를 했다. 요즘 말로 "대박"이 났다. 그때까진 그랬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한반도 대운하를 추진하기 전까진.


그가 '800평 한옥'에서 한식당을 할 때였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강을 파헤치고 국토를 둘로 나누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른바 '한반도 대운하'. 여기서 나온 모래와 자갈은 내다 팔아 경제 부양 효과를 이끌고, 일자리도 34만 개 창출될 거라는 공언을 했다. 장밋빛 전망만 전파를 탔다.


4대강 부역자는 이런 주장에 힘을 보탰다. 그들은 버드나무가 뿌리째 뽑히고, 새들의 쉴 공간이 파괴되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숫자를 내세워 '한반도 대운하'를 찬성하기에 급급했다.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상식에 벗어나는 일이라고 여겼다. 계산기를 두드려 봐도 답이 없는 사업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사랑하는 강을 죽이는 것이었다. 


그래서다. 그는 머리에 띠를 둘렀다. 6개월간 장사는 아내에게 맡기고 '한반도 대운하 반대 운동'에 뛰어들었단다. 여기저기서 그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들고일어났다. 국민 여론이 뜨거워졌다. 끝내, 이명박 전 대통령은 '한반도 대운하' 계획을 철회했다. 없던 일이 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이게 또 다른 싸움으로 이어지게 될 줄은. 가까운 미래 '4대강 저항자'로 살아가게 되는 결정적 순간이 오게 될 줄은.


"한반도 대운하가 4대강 사업이 됐다. 이명박 정부는 이름만 바꾼 똑같은 짓을 계획하고 발표했다. 아내에게 다시 부탁했다. 6개월 싸워서 (한반도) 대운하 사업이 무산됐으니, 이번에도 6개월만 싸우면 4대강 사업을 막을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보기 좋게 예상은 빗나갔다. 박근혜 정부 인수위 시절까지 꼬박 6년을 싸웠다. 결국 4대강 사업은 이명박 정부의 뜻대로 됐다."


그가 상상하지 못한 건, 또 있다. 이명박 정부에 맞선 대가다. 그가 운영하는 '800평 한옥'에서 밥을 먹는 손님은 자동차 바퀴에 "빵꾸"가 나는 경험을 해야 했단다. 주차장에서 하루가 멀다고 나사못이 발견됐다.


동네에 이런 소문도 돌았다. "4대강 반대하는 식당"이란 뒷말. 집을 "불사르겠다"란 협박 전화도 걸려왔다. 이렇게 공무원들의 발길이 끊어졌다. 손님이 하나둘, 줄어들었다. 버틸 때까지 버티다가 마침내 손을 놓게 됐다. 


그는 잘 나가던 한식당 '사장님'에서 빈털터리가 됐단다. 그는 '800평 한옥'을 남의 손에 넘겼다. 살림살이가 빠듯해졌다. 가세가 기우면서 살던 집도 달라졌다. 지금 사는 월세 20만 원의 마을회관으로 세간을 옮겼다.


그가 몸담고 있던 여주환경운동연합도 마찬가지 신세가 됐다. 회원이 빠져나가고 사회보조단체금은 삭감됐다. 4대강 사업에 죽어가는 강을 기록하기 위해선 "돈이 필요"한데, "돈 나올 구멍"은 없었다. 몸으로 때우면서, 'MB 4대강'의 민낯을 추적하고 기록했다.


"가게(한식당)가 잘됐다. 김영란법이 통과되기 전, 공무원들이 손님 대접하기 딱 좋은 식당이었다. 그래서 남부럽지 않을 정도로 살았다. 4대강 사업 반대 운동을 하기 전까진 그랬다. 우선, 공무원들부터 식당에 오질 않았다. 우리 식당을 감시하는 눈이 있었다. 뒷조사 당하니 누가 오겠나. 


아내에게 미안했다. 4대강 반대 운동을 접을까도 생각했다. 이때 용기를 준 건, 아내다. 계속 싸우라고 하더라. 지금은 월세 20만 원에 마을 회관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전혀 불편하지 않고 너무 만족하며 지내고 있다. 재산 거덜 났으나 4대강 사업 반대 운동한 거 후회하지 않는다. (하하)"


[#장면②] 폭력의 현장, 4대강 공사판


 지난 2010년 4대강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남한강 모습. 사진은 4대강 사업저지 및 생명의 강 살리기 범국민대책위원회 제공

▲  지난 2010년 4대강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남한강 모습. 사진은 4대강 사업저지 및 생명의 강 살리기 범국민대책위원회 제공 ⓒ 정대희


그곳은, 흉악한 현장이었다. 4대강 사업 공사가 진행되는 구간엔 폭력이 난무했다. 강바닥이 파헤치는 현장을 조사 갔을 때다. 갑자기 여기저기서 중장비가 나타나 땅을 팠다. 그가 타고 있는 자동차가 지나가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그는 항의했다. 4대강 공사 작업복을 입고 있는 사람과 실랑이가 붙었다. 주먹이 날아왔다. 곁에 있던 동료가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입에 담기 힘든 폭언이 쏟아지고 폭행을 당했다. 여성 활동가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때만 그런 게 아니다. 이포보 공사가 진행될 때다.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부모와 아이가 공사현장에 갔다가 폭행을 당했다. 4대강 공사판엔 이렇게 폭력이 빈번했다. 강을 벗어나서도 마찬가지였다.


"한번은 4대강 설명회가 열려서 갔는데, 동네 조폭들이 총출동했더라. 이들이 나를 협박하고 위협을 가하는데, 경찰은 가만히 두고 보고만 있었다. 잘 아는 경찰이 전화가 와서는 '위원장님 거기 위험하니까 이쪽으로 오세요'라고 하는데 기가 막혔다. 폭력현장을 중재하고 차단해야 하는 경찰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 4대강 사업 이렇게 아주 폭력적으로 진행됐다."


'MB 4대강'은 그의 삶만 바꾼 게 아니다. 살아있던 강에 죽음의 그림자가 뒤덮였다.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했다. 사체엔 파리가 들끓고 썩은 내가 진동했다. 이런 걸, 감추려고 4대강 건설업체는 중장비를 동원해 강바닥이나 강변에 묻었다. 그는 삽을 들고 죽음의 흔적을, 4대강 사업의 민낯을 파헤쳤다.


"어머니 품 같은 강이었다. 아이들이 즐겁게 뛰어놀고 재잘대던 강이었다. 이런 강이 4대강 삽질에 물고기가 떼죽음 당하고 죽어 갔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와 건설업체는 진실을 땅에 묻고, 사람들의 눈을 가리기만 했다. 그렇게 건설된 콘크리트 장벽, 보에서 사람이 죽었다. 


이포보에서 (지난) 2010년 장병 두 명이 사망했다.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는데도 참사가 일어났다. 4대강 사업의 영향으로 물길이 예측 가능한 영역을 벗어난 결과였다. 4대강 사업 후 남한강은 사람의 접근을 차단하고, 구명조끼 없이는 위험한 강이 됐다. 이젠, 이런 강은 그대로 놔둬서는 안 된다. 재자연화 해야 한다."


[#장면③] '4대강 저항자'가 선거판에 뛰어든 이유


 6.13 전국동시 지방선거에 출마한 이항진 여주시장 후보

▲  6.13 전국동시 지방선거에 출마한 이항진 여주시장 후보 ⓒ 이항진


- 4대강 재자연화가 필요한 이유는?

"남한강은 2300만 명의 수도권 시민들에게 물을 공급하는 곳이다. 이런 강에 녹조가 생기고, 시커먼 펄이 쌓이고, 하수구나 시궁창에 사는 붉은 깔따구와 실지렁이가 발견됐다. (한국) 수자원공사는 고도정수처리를 해서 괜찮다고 하지만 원수가 나쁘면, 아무리 노력해도 깨끗한 물이 될 수 없다."


- 4대강 사업으로 가뭄과 홍수가 예방됐다는 의견도 있다.

"거짓이다. (지난) 2010년 수도권에 집중 호우로 여주 연양천의 신진교가 무너졌다. 대규모 준설로 지류에서 홍수 피해가 난 거다. 4대강 공사가 끝난 뒤에는 반대로 가뭄 피해를 보고 있다. 지난해 강천보 상류 지역의 강바닥이 드러났다. 재자연화를 한다면, 현재 정수처리비용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도 줄일 수 있다."


- 파낸 모래를 다시 강에 투입해야 한다는 것인가?

"지금까지 파낸 모래를 관리하기 위해 정부는 300억 원 상당의 비용을 들였다. 세계적인 하천 전문가 독일 베른하르트 교수가 4대강 현장을 찾았을 때 그랬다. 공사가 끝나고 5년 후엔, 다시 강에 모래를 투입하는 날이 올 거라고. 그런데 2년 만에 이런 상황이 됐다.


이 문제를 논의할 때가 됐다고 본다. 모래를 다시 투입한다면, 어떻게 할지 시민들이 의견을 나눠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명박 정부 시절처럼 폭압적인 방식으로 결정할 사항은 아니라고 본다."


- 6.13 지방선거에 출마했는데, 4대강과 관련해 어떤 일을 하겠다는 건가?

"언젠가 수경 스님이 그랬다. 우리가 삶에서 아름다운 것들을 쉽게 잊고 지내지만, 그 아름다운 것들이 사라지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지옥 같은지 알게 된다고. 이런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일을 하겠다.


첫째, 4대강 사업에 대한 인식 개선 운동이 필요하다. 진실을 알려야 한다. 두 번째, 4대강 사업의 처음과 끝까지를 기록해 후대에 잘못을 고백해야 한다. 그래야 이런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는다."


인터뷰를 마치고 그와 남한강을 찾았다. 여기서 물었다. '4대강 저항자'의 길을 걷다가 정치에 발을 내디딘 이유를.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정치를 왜 하냐면. 정치가 망친 4대강을 정치로 복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명박 정권이 만든 4대강의 폐해, 바로 정치로 새롭게 입증하고 복원해야 할 의무가 저에게 있다라고 생각됩니다. 이번 6.13 지방선거를 통하여 그런 심판의 날이 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 <오마이뉴스>는 여주시장 선거에 출마한 이충우 자유한국당 후보, 신철희 무소속 후보, 원경희 무소속 후보에게 4대강 사업에 관련한 입장을 듣고자 서면 질의를 보냈다. 마감 시한인 7일 오후 1시까지 이충우 한국당 후보만 답변을 보내와 답변 내용을 공개한다. 답변 내용은 아래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충우 후보 답변] "4대강은 잘 된 사업, 가뭄·홍수 대비에 도움"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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