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곡성 (水谷城)


출처 :  http://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757181 

협계현[俠溪縣]

황해도 신계군에 있던 고려 때의 행정구역.
고구려 때에는 수곡성(水谷城:買且忽)이라 하다가, 통일신라 때 단계현(檀溪縣)으로 고쳤다. 고려 초에 다시 협계현으로 개칭하였고, 조선에 들어와 1397년(태조 5) 신은현(新恩縣)에 폐합되었다.


출처 :  http://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711155 



출처 : http://koreandb.nate.com/history/namebon/detail?sn=187 

협계(俠溪)

협계(俠溪)는 황해도 신계군(新溪郡) 일원의 옛 지명으로 백제 때에는 매차홀현(買且忽縣), 수곡성(水谷城)이라 불렀다. 375년(고구려 소수림왕 5)에는 수곡성현(水谷城縣)이라 하다가 758년(신라 경덕왕 17)에 단계현(檀溪縣)으로 바꾸어 영풍군(永豊郡: 平山)의 관할로 두었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협계(俠溪: 峽溪)로 고쳐 1018년(현종 9)에는 곡주(谷州: 谷山)에 예속되기는 하였다. 1396년(태조 5) 신은현(新恩縣)에 합속되었다가 1445년(세종 27)에 신계현(新溪縣)으로 통합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신계군으로 개편되었다. 2005년 황해북도 신계군 다미면 지역이다.



출처 :  http://battle.culturecontent.com/content/battle_stories/view.asp?epi_idx=60 

근구수(近仇首)태자의 말발굽자리

지역 : 황해도 배천 치양성, 신계 수곡성
관련유적 : 수곡성의 말발굽자리

치양전투에서 승리하여 수곡성까지 북진한 근구수태자의 기념비적인 자리에 얽힌 이야기. 

치양전투는 고구려 고국원왕이 369년 9월 백제의 치양성(현 황해도 배천)을 공격한 전투로 백제의 대승리로 끝났다. 치양성은 중원 지역을 차지하기 위해 중요한 수로(水路)가 지나는 지리적인 요충지이다.

(중략) 고구려군 포로 5천 여명을 사로잡는 등 큰 승리를 이끌어내고 예성강 상류인 수곡성(현 황해도 신계)까지 쫒아갔다. 

사기가 충전된 근구수태자는 고구려 국경 너머까지 계속 북진하려 하였다. 하지만 장군 막고해는 “만족할 줄 알면 욕되지 않고,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는 『도덕경』의 구절을 인용하여 말린다. 이때 태자는 장군의 말을 새겨 더 이상 진격하는 것을 포기하였다. 

그는 수곡성에 이른 기념으로 이곳에 돌을 쌓아 표를 만들고는 그 위에 올라가서 좌우를 둘러보며 “나중에 누가 다시 여기에 이를 수 있을까?”라고 말했다고 한다. 『삼국사기』를 편찬하던 고려 중엽까지에도 이 자리가 남아 있었다고 전하며, 마침 이곳에 말발굽처럼 갈라진 돌이 있어 이곳을 ‘태자의 말발굽자리’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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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ko.wikipedia.org/wiki/%EC%86%8C%EC%88%98%EB%A6%BC%EC%99%95 

소수림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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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외 관계에 있어서는 백제와 충돌이 계속되었는데, 375년에는 백제의 수곡성(水谷城)을 빼앗았으며 377년에는 3만 대군의 백제군 침공을 물리치고 백제의 북변(北邊)을 역습하였다. 378년에는 극심한 가뭄이 든 상태에서 거란의 침략을 받아 8개의 부락을 빼앗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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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mamstar.com.ne.kr/samgugsagi/dl/101.htm 

삼국사기 백제본기 중 아신왕 3년

三年春二月(삼년춘이월) 立元子腆支爲太子(입원자전지위태자)大赦(대사) 拜庶弟洪爲內臣佐平(배서제홍위내신좌평) : 3년 봄 2월 왕의 맏아들 전지를 태자로 삼고, 죄수들을 크게 사면하였다. 왕의 이복동생 홍을 내신 좌평으로 임명하였다.

秋七月(추칠월) 與高句麗戰於水谷城下(여고구려전어수곡성하) 敗績(패적) : 가을 7월, 고구려와 수곡성 아래에서 싸워 패배하였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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