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news.v.daum.net/v/20180916203713849?s=tvnews


위안부는 지어낸 이야기?.."일본인인 우리가 기억"

손령 입력 2018.09.16 20:37 

 

[뉴스데스크] ◀ 앵커 ▶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는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전쟁 당시 벌어진 성범죄의 참상을 목격한 일본인들이 많습니다.


피해자 추모비를 자발적으로 세우고 매년 한 차례 모여 그 날의 기억을 되새기는 일본인들을 손령 기자가 만났습니다.


◀ 리포트 ▶


일본 오키나와 본섬에서 남서쪽으로 약 290km 떨어진 미야코섬.


70여 년 전 태평양 전쟁의 상처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열도의 최남단입니다.


이국의 외딴 섬에 울려 퍼지는 구슬픈 가락.


[이라부 미요/86세] "자연스럽게 알게 돼서 어떻게 외우게 됐는지도 기억 안 나요."


끔찍한 전쟁 성범죄의 지울 수 없는 흔적인 '아리랑'은 섬 주민들에게도 이미 친숙합니다.


[나가자토 키미/84세] "저는 맨날 위안소로 가서 '언니, 나 왔어요'라고 하면서 아리랑 노래하면서 같이 놀았어요."


태평양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5년.


오키나와 인근 섬에만 위안소 130곳이 들어섰고, 끌려온 일본군 '위안부'는 7백여 명으로 추산됩니다.


군인들과 함께 온 낯선 소녀들의 모습을 주민들은 생생하게 떠올립니다.


[요나하 히로토시/86세] "여기가 위안소였는데 일요일이면 수십 미터정도 줄 서 있어요. 우리가 다 봤어요. 살아 있는 군인들도 있을 텐데 용기를 내서 증언을 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일본 당국은 군부대 작전지도 같은 증거 대부분을 없애는 데 바빴고 당시 이 지역에서 군홧발에 짓밟힌 할머니들마저 모두 세상을 떠났습니다.


'증거를 내놓으라'며 버티는 일본 정부를 대신해, 섬 주민들은 1년에 한 번씩 모여 그 시절의 참상을 되새기고 있습니다.


"잊지 않겠다"며 자발적으로 '아리랑비'를 세운 지도 어느덧 10년입니다.


'여성들에게'라는 제목의 추모의 비석을 만들기도 했는데, 위안부 피해를 입은 11개 국가의 언어와 베트남어로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요나하 히로토시/86세] "나는 살 날이 얼마 안 남았지만, 기록으로 남기면 이야기를 계속 전해주잖아요."


[홍윤신/일본 와세다대학교 박사] "피해자 여성들의 증언만으로는 굉장히 의심을 받는다거나 (하지만) 그 목격을 증언하는 분들의 증언이야 말로 가장 확실한 증거이고…"


하지만 당시 주민 대부분 세상을 떠났고 생존한 고령자들도 건강이 좋지 않은 상황.


미야코섬 주민들은 기억의 대물림으로 전쟁과 착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약속합니다.


[우에사토 키요미/미야코섬 주민] "이야기를 대대로 전해 주는 게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우리의 책임이고요."


양심과 인륜을 앞세운 일본인들의 국경을 넘은 반성과 추모가 위안부 할머니들의 70년 한을 달래는 진혼곡으로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일본 오키나와 미야코지마에서 MBC뉴스 손령입니다.


손령 기자 (right@m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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