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2500&key=20090213.22032200223


강인욱의 북방 역사 기행 <45> 옥저인들도 아편을 즐겼을까?

중국 파멸시킨 독약, 동이족에겐 지혜의 유물

옥저문화 유적지 연해주 불로치카

제1호 주거지서 양귀비 씨앗 대량 발견

여섯빛깔 문화이야기

국제신문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입력 : 2009-02-12 20:03:24 |  본지 32면


옥저문화의 유적지인 러시아 연해주 불로치카에서 2000년 전의 양귀비 씨앗이 탄화된 채 발견됐다.


2003년 여름 국립문화재연구소와 노보시비르스크 고고민족학연구소는 연해주의 굽이쳐 흐르는 파르티잔 강가의 한 언덕에서 발굴조사를 하고 있었다. 그들이 발굴하는 유적은 불로치카, 러시아어로 식빵이라는 뜻으로 언덕이 마치 빵처럼 볼록 솟아올랐기 때문이다. 불로치카 유적의 크로우노프카문화(옥저문화)의 제1호 주거지에서 약 2000년 전의 곡물 씨앗이 탄화된 채 발견되었다. 분석해보니 놀랍게도 바로 아편의 재료인 양귀비의 씨앗으로 밝혀졌다.


우리나라 고대의 주민을 이야기할 때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옥저와 읍루이지만, 그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는 거의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에 러시아의 연해주에서 고고학 공동조사가 활발해지면서 연해주의 기원전 4~서기 1세기에 옥저문화가 존재했음이 드러나고 있다. 또 그들은 놀랍게도 한반도 중부지방의 동예 또는 예맥의 문화와 유사해서 그 기원으로 추정된다. 이제 갓 밝혀지기 시작한 옥저인들의 집자리에서 양귀비 씨앗이 대량으로 나왔다니, 옥저인들이 아편이라도 피웠을까? 아마 옥저인들은 양귀비를 식용으로 하고 염료로 썼던 것 같다. 왜냐하면 양귀비 씨앗은 식용유가 50%정도 포함되어 있어서 염료를 만들 때 유용하다. 즉, 양귀비 씨앗과 색깔 나는 염료를 같이 으깨서 바르는 것이다. 열매에서 짜낸 즙은 배탈 날 때에 유용하게 쓰이니 비상약이었을 것이다.


20여 년 전에 돌아가신 필자의 할머니도 앵속(양귀비) 얘기를 해주셨다. 당신이 어렸을 때 집 마당에 양귀비를 키웠는데, 그렇게 꽃이 예뻤단다. 열매에 흠집을 내서 나오는 즙을 굳혀서 막대같이 만들어서, 집에서 어린 자식들이 배가 아프다고 칭얼대면 손톱보다도 작게 떼서 주었는데, 그걸 먹으면 아픈 배도 가라 앉더란다.


양귀비는 이미 유럽의 신석기시대 여러 유적에서 발견되었다. 특히 스페인의 'Cueva de los Murcielagos'(박쥐의 동굴이라는 뜻)에서 발굴된 무덤에는 양귀비 씨앗 뭉치가 대량으로 발견되었으며, 그 연대가 기원전 4200년 전이라고 한다. 이집트에서 기원전 1500년의 '에버스의 파피루스 문서'에 아이들이 울 때는 양귀비 즙을 먹이라고 되어 있다. 우리 할머니의 지혜가 이집트에서도 있었던 것이다. 그 뒤에 아편은 서아시아에서만 쓰였다가 서기 8~9세기에 이라크를 거쳐 인도와 중국으로 유입되었는데, 물론 마약용이 아니라 아름다운 꽃을 감상하거나 약품으로 쓰였다. 중국에서 양귀비가 아편으로 쓰인 것은 명나라 때부터이고 청나라 때에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퍼졌으니, 1840년에 영국과 중국의 아편전쟁으로 이어졌다.


중국은 8~9세기에 전파되었지만, 불로치카의 옥저 주거지는 기원전 1세기 중반대의 것이다. 옥저의 양귀비는 현재까지 동아시아에서 알려진 것 중 제일 빠른 것이다. 물론 앞으로 다른 자료가 나올지도 모르겠지만, 단순히 양귀비가 서아시아에서 중국으로 전파되었다고 생각할 수만은 없다. 중국과는 별도로 초원지역을 따라서 이 지역으로 전래되었던 것 같다.


아편은 약뿐 아니라 독약으로도 쓰였다. 독초의 대표격인 독당근(poison hemlock, 소크라테스가 죽을 때 먹어서 더 유명하다)과 같이 먹으면 고통없이 죽게 된다고 믿었다고 한다. 하긴 아편은 한 사람이 아니라 중국이라는 거대한 국가를 파멸시켰으니 독약 중의 독약인 셈이다.


불로치카 언덕의 양귀비 씨앗은 19세기 중반 나라를 말아먹었던 중국의 아편이 아니었다. 추운 연해주에서 농사를 하고 마을을 만들어 살았던 옥저인들의 삶을 도와주던 약초였고 음식이었다. 씨앗을 짠 기름으로 토기를 칠하고 식용유로 만들어 먹었을 것이다. 또 아이들이 배탈이라도 나면 아편즙으로 약을 썼을 것이다. 당시 강가의 넓은 평야에서 조와 수수를 키우던 옥저인들은 한 켠에는 양귀비를 키웠을 것이다. 불로치카의 양귀비 씨앗은 추운 연해주의 차디찬 들판에 옥저라는 거대한 세력을 만든 동이족의 지혜가 녹아있는 유물이다.


독초학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16세기 오스트리아의 연금술사 파라셀루스(Paracelsus)의 격언을 떠올리게 된다. "모든 물질은 독이니, 독이 아닌 것은 없다. 적정량을 지킬 때만 독이 안 된다."


부경대 사학과 교수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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