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7568


진보단체 일감 몰아주기 중앙일보 보도 ‘엉터리’

‘정의연 논란 프레임’ 기생해 정상 활동까지 ‘회계 비리’ ‘일감 몰기’, “기자가 사회운동 뭔지도 몰라” 힐난

손가영 기자 ya@mediatoday.co.kr 승인 2020.06.11 13:25


‘진보진영 단체’들이 서로 일감을 몰아줘 몸집을 불려왔다고 비판한 중앙일보 기획보도에 대해 시민단체들이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중앙일보 보도는 단체의 정상 활동조차 ‘회계 비리’처럼 몰았고 진보 성향 거래처와의 계약 자체를 부정행위로 그렸다. 보도에 낙인 찍힌 시민단체 쪽에선 “색깔론”이라는 지적부터 “근거 없이 주장만 선명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논란이 되고 있는 보도는 지난 10일 중앙일보 1면의 “[견제 없는 권력, 시민단체 <상>] 후원금·일감 주고받는 그들만의 경제 공동체” 기획 기사와 대동소이한 내용의 “‘정의연은 운동권 물주’…재벌 뺨치는 그들만의 일감 몰아주기” 온라인 기사다. 시민단체들이 “‘일감 연대’를 이뤄 ‘경제 공동체’ 몸집을 키웠다”는 게 요지다. 중앙일보는 이를 재벌 대기업의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에 비유했다.


▲10일 중앙일보 1면

▲10일 중앙일보 1면


기사 논리는 부실했다. 먼저 ‘전태일재단’ 사례다. 중앙은 시민단체들이 주로 진보진영 단체·업체에 기부금을 쓴다며 전태일재단 국세청 공시자료를 근거로 댔다. 월별 기부금 지출 명세서에 진보적 단체들이 대표 지급처로 적힌 기록을 보고 ‘일감 몰아주기’라고 규정했다. 


기사는 지난해 △6월 명필름(외 39건)에 9047만원을 썼고 △7월 ‘노동자 지원 명목’으로 이주노동희망센터(외 40건)에 4124만원을 지급했으며 △11월 부산 지하철 노조(외 43건)에 4085만원을 지출했다고 강조했다. 명필름 경우 회사 대표가 박근혜 정부 때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등 진보 색채가 강한 영화사라고 설명했다. 


전태일재단은 “1970년 11월13일, 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을 바꿔내고자 자신의 몸을 불사른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정신을 기리고 실천하는” 단체다. 노동 교육 활동부터 투쟁 현장 연대, 전태일·이소선 열사 추모사업 등 활동 범위도 넓다. 중앙이 비판한 사례 모두 이 목적에 따른 활동이다. 


▲10일 중앙일보 관련 보도 근거가 된 '전태일재단' 기부금 지출 공시자료. 이 자료는 전태일재단 홈페이지에도 게시돼있다. 붉은색 표시는 '일감 몰아주기' 예로 중앙일보가 거론한 내용이다. 사진=전태일재단 홈페이지

▲10일 중앙일보 관련 보도 근거가 된 '전태일재단' 기부금 지출 공시자료. 이 자료는 전태일재단 홈페이지에도 게시돼있다. 붉은색 표시는 '일감 몰아주기' 예로 중앙일보가 거론한 내용이다. 사진=전태일재단 홈페이지


지난해 6월 명필름 7200만원 지급 건은 영화 ‘태일이’ 제작비 모금 전달이다. 태일이는 전태일 열사의 생을 그린 애니메이션으로 열사의 50주기인 올해 개봉이 목표다. 재단은 제작비를 후원금으로 모금했고, 지난해 6월 모금된 금액을 제작사 명필름에 줬다. 


지난해 7월 이주노동희망센터에는 ‘네팔여성노동자쉼터 지원’ 명목으로 120만원을 후원했다. 같은 해 11월 부산지하철노조는 전태일재단이 주최하는 ‘제27회 전태일노동상’을 받았다. 이 상금이 500만원이고 대표 지급처로 등재됐다. 부산지하철노조 조합원들은 지난해 임금을 반납해 그 반납분으로 일자리 540개를 만들어 노동계 지지를 받았다. 

▲6월 전태일재단 기부금 지출 세부 내역. '진보 진영 일감 몰기'라고 칭한 단체 간 지출을 보면 1~10만원 선이고, 횟수도 전체 39건 중 일부다. 사진=전태일재단 홈페이지

▲6월 전태일재단 기부금 지출 세부 내역. '진보 진영 일감 몰기'라고 칭한 단체 간 지출을 보면 1~10만원 선이고, 횟수도 전체 39건 중 일부다. 사진=전태일재단 홈페이지


전체 지급 내역도 대부분 이와 비슷하다. 6월 내역에 활동가 인건비(1500여만원)나 식대를 빼면 청년유니온 연대비(1만원), 민주열사추모단체 연대비(10만원),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대비(2만원), 진보네트워크센터 연대비(1만원) 매일노동뉴스 등 구독비(8만3000원) 등의 지출이 대부분이다. 7월, 11월도 마찬가지였다. “진영 내 자본 재유입의 흔적”이라는 중앙일보 표현에 비해 규모가 턱없이 적다. 


다른 사례인 ‘정치하는 엄마들’에서도 같은 문제가 발견된다. 중앙일보는 이 단체가 지난해 10월 58개 지급처에 570만6712원을 썼다며 “진보시민단체 기부금, 진보진영으로 재유입”이라는 제목의 자료 사진에 내용을 넣었다. 이 수치는 지급처 1개당 9만8000원이다. 

▲중앙일보가 10일 관련 보도에 삽입한 “진보시민단체 기부금, 진보진영으로 재유입” 제목의 자료 사진. 사진=중앙일보 홈페이지 갈무리

▲중앙일보가 10일 관련 보도에 삽입한 “진보시민단체 기부금, 진보진영으로 재유입” 제목의 자료 사진. 사진=중앙일보 홈페이지 갈무리


진보 성향 업체에 한달 35만원 썼다고 ‘일감 몰아주기’


중앙일보는 단체들이 직접 기부하지 않고 ‘소비’한 건이 “(자본 유입의) 우회적 형태”라며 정치하는 엄마들과 ‘연대와 전진’이라는 업체의 거래를 문제 삼았다. 중앙일보는 업체를 “시위용품 전문 판매 업체”라며 “수익금 전액을 장기투쟁사업장 노조 조합원들의 생계비로 지원한다”고 전했다. 


▲중앙일보가 10일 보도에 '일감 몰기' 비판 근거로 삼은 정치하는 엄마들 2019년 기부금 지출 공시 자료.

▲중앙일보가 10일 보도에 '일감 몰기' 비판 근거로 삼은 정치하는 엄마들 2019년 기부금 지출 공시 자료.


정치하는 엄마들은 10월 동안 연대와 전진에 현수막 2개, 포스터 300장 제작 등 총 3건을 의뢰해 약 35만원을 줬다. 장하나 활동가는 “연대와 전진은 시중 업체의 80% 가격으로 현수막을 공급해주고, 급하게 주문해도 양해해준다. 이유는 이 단체가 비영리 공익활동을 하고 재정도 열악하기 때문에 지원해 주는 것”이라며 “우리 입장에서도 수익금을 해고노동자들이나 사회적 약자를 위해 쓰는 회사를 선호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라 물었다. 


이들 단체는 ‘대표 지급처’ 기재 자체를 회계 비리로 모는 것도 지나치다고 밝혔다. 국세청 공인법인 공시 서식 작성란을 보면 대표 지급처만 적게 돼 있다. 작성 사이트엔 ‘100만원 이상의 지급처는 별도 기재하라’는 공지도 없고, NGO 활동가들은 별도 교육도 받지 않아 오랫동안 대표 지급처만 작성란에 등록해왔다. 이 관행이 개선돼야 한다는 공감대는 있지만 기록을 전부 소급해 고의 ‘은폐’로 모는 건 과장이라는 지적이다.


▲기부금단체가 기부금 사용 내역 등을 공시할 때 사용하는 국세청 작성 포맷.

▲기부금단체가 기부금 사용 내역 등을 공시할 때 사용하는 국세청 작성 포맷.


‘일감 몰아주기’ 비유가 가능한지도 논란이다. 일감 몰아주기는 보통 대기업 총수 일가가 자회사에 수의계약 등으로 일감을 몰아줘 사주의 이익을 챙기는 불공정거래를 칭한다. 중앙 보도는 진보 성향의 단체가 다른 진보 성향의 단체를 후원하거나 관련 업체에 돈을 쓴 것을 동일선 상에서 다뤘다. 그 비율과 규모에 대한 취재내용도 없다. 한 예로 전태일재단은 지난해 7월 17개 NGO 등에 218만원을 지급했다. 총 지출의 5%다. 


장 활동가는 “중앙일보 기사 제목부터 ’재벌 뺨치는 그들만의 일감 몰아주기‘다. 비영리공익단체를 재벌에 비유하는 기자의 악의적 의도에 치가 떨린다”고 말했다. 또 “2019년 10월 기부금 지출 내역 58건(약 570만원)이 전부 진보 진영에 유입된 것처럼 기사를 썼다”며 “그러나 연대와 전진과 거래한 내역은 3건(약 35만원)에 불과하다. 비영리단체 회계규칙 상 매월 대표 지급처만 적게 돼 있는데 이 점을 의도적으로 악용했다”고 덧붙였다. 


“사실관계 엄정히 확인했느냐” 반문


중앙일보는 같은 논리로 정의기억연대가 “운동권 물주”고 “재벌 뺨치게 일감을 몰아준다”고 비판했다.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로 있는 ‘김복동의 희망’이 지난해 지출한 1억3204만원 중 상당액을 진보적 단체나 관련 인사들에게 지출했다는 게 핵심 이유다. 정의연이 지난해 내부 소식지 디자인을 윤 의원 배우자 회사인 수원시민신문에 발주한 것도 덧붙였다. 


김복동의 희망은 지난 2월에는 11개 시민사회단체에 200만원씩 2200만원을, 4월엔 여성·인권·평화·노동 등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자녀 25명에게 200만원씩 총 5000만원을 장학금으로 후원했다. 고 김복동 할머니의 장례위원회는 논의를 거쳐 장례 후 남은 조의금 1억여원을 ‘김복동 유지 계승활동비’로 남겼다. 그리고 이를 심의위원회 논의를 거쳐 후원금과 장학금으로 배분했다. 당시 언론 보도로 이미 공개됐던 사실이다. 

▲2019년 2월 중앙일보 홈페이지에 실린 제휴사 뉴시스 기사. 보도는 장례추진위 조의금 중 2000만원을 '햇살사회복지센터', '미투시민행동', '강정사람들', '소성리사드철회성주주민대책위원회'와 '사드배치반대김천대책회의' 등 10여개 시민단체의 활발한 활동을 위해 내놓는다고 전했다. 보도는 또 장례추진위가 2차 나눔 기부 일환으로 여성·인권·평화·노동·통일 단체 등 시민사회단체 활동가의 대학생 자녀들을 장학생으로 선정해 장학금을 지급한다고 전했다. 사진=중앙일보 홈페이지 갈무리.

▲2019년 2월 중앙일보 홈페이지에 실린 제휴사 뉴시스 기사. 보도는 장례추진위 조의금 중 2000만원을 '햇살사회복지센터', '미투시민행동', '강정사람들', '소성리사드철회성주주민대책위원회'와 '사드배치반대김천대책회의' 등 10여개 시민단체의 활발한 활동을 위해 내놓는다고 전했다. 보도는 또 장례추진위가 2차 나눔 기부 일환으로 여성·인권·평화·노동·통일 단체 등 시민사회단체 활동가의 대학생 자녀들을 장학생으로 선정해 장학금을 지급한다고 전했다. 사진=중앙일보 홈페이지 갈무리.


정의연은 “매해 한 번 활동 보고를 위해 소식지를 발행한다. 지난해 디자인 업체를 선정하기 위해 4개 업체에 견적을 의뢰했고, 최저금액을 제시한 수원시민신문에 신문 편집·디자인을 맡겼다. 이때 370여만원을 지불했다. 2019년 정의연 총 사업비의 0.26%”라고 해명했다. 


전태일재단 관계자는 “중앙일보가 사실관계를 엄정히 확인하고 기사를 낸 건지 궁금하다”며 “기자분이 기부금 내역을 질문하겠다며 재단으로 전화한 게 9일 오후 5시경이고 담당자가 없어 답변을 하지 못했는데, 취재 전화는 그걸로 끝이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후원회원과 단체에서 보내온 후원금은 지금까지 그랬듯 전태일이라는 글자가 부끄럽지 않도록 연대와 나눔이 필요한 현장에 소중히 쓰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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