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812156

겨울, 화성에 가면 '정조스타일'이 보인다
엄동설한, 병사를 생각했던 정조... 백성 사랑이란 이런 겁니다
12.12.10 16:41 l 최종 업데이트 12.12.10 16:41 l 하주성(tradition)


▲ 설경 제일교회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수원화성의 설경 ⓒ 하주성

사람들은 겨울이 되면 화성을 돌아보기를 그다지 반가워하지 않는다. 길이 미끄럽기도 하거니와 찬바람이 많이 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렇게 화성을 돌 때 딴 곳보다 더 춥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수원천과 방화수류정의 용연과 같은 물이 있기에 조금의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 하만 그보다 더한 이유는 바로 바람을 막아 줄 건물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은 옛날보다 겨울이 많이 춥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도 화성을 돌아보는 사람들을 보면, 봄부터 가을까지에 비해 현저히 줄어든 것을 볼 수 있다. 아마도 과거 장용영의 군사들이 화성을 지키기 위해 순례를 돌고, 초소 등에 머물고 있었을 당시는 지금보다 몇 갑절은 더 추웠을 것이다.

몸에 밴 정조대왕의 백성 사랑


▲ 봉돈의 설경 12월 6일 눈이 내린 다음 날 찾은 화성 봉돈의 외곽 설경 ⓒ 하주성

12월 19일은 대통령 선거일이다. 가끔 휴대전화에 모르는 번호가 뜬다. 그리고는 이번 대선에서 누굴 찍겠느냐고 물어온다. 또한 주변의 지인들과 자리를 함께하면, 으레 묻는 것이 이번에 누굴 찍을 것이냐는 것. 내 대답은 언제나 한결 같다. '정조 스타일'이 답이다. 정조와 같은 사람이 있다면 두말 않고 찍겠다고 한다.

사실 어려서 부친인 사도세자의 억울한 죽음을 봐야 했던 정조로서는, 역대 임금들 중에서도 가장 포악한 폭군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정조는 근본이 백성을 자식처럼 사랑한 임금이었다. 화성을 축성 할 때만 보더라도 임금을 꼬박꼬박 지불을 한 것은 물론, 수시로 상품을 지급하고 축성을 하는 백성들을 위해 잔치를 열어줬으며 더운 여름에는 몸을 보호하는 척서단과 제중단이란 약을 직접 조제해 내려주기까지 했다.

▲ 동장대 동북공심돈 위에서 내려다 본 동장대(연무대)의 설경 ⓒ 하주성

내가 항상 '정조 스타일'을 찍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이유는 그것만이 아니다. 정조는 막대한 국고를 소비하는 화성을 축성하면서도, 인건비가 미쳐 지급이 되지 않으면 공사를 중단하기도 했다. 그만큼 철저하게 백성을 사랑한 임금이다. 수원이 화성유수부로 승격되고 성을 쌓으려고 보니, 많은 민가들이 성 밖으로 밀려나게 됐다. 

축성의 책임자들이 어떻게 해야 할지 주저하고 있을 때, 정조는 그런 연유를 듣고 과감히 결정을 내린다. 바로 성을 세 번 구부렸다 폈다 해서라도 모두 수용하라는 것이었다. 기존의 성을 구부렸다 폈다를 반복하면 그만큼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하지만 정조는 국고가 더 들어가는 것보다 백성들의 불편함을 더 생각한 것이다.

겨울철 화성에서 만나는 정조의 마음


▲ 동북공심돈 소라각이라고도 칭하는 동북공심돈의 설경 ⓒ 하주성


▲ 온돌방 동북공심돈 문을 들어서면 우측에 있는 온돌방. 밑으로 아궁이가 보인다 ⓒ 하주성

12월 5일 수원에는 3시간여 만에 10cm가 넘는 눈이 쌓였다. 27년 만에 이렇게 눈이 많이 내렸다고 한다. 믈론 12월 초에 이렇게 왔다는 뜻이다. 다음날 일부러 화성을 걸었다. 눈이 온 다음날은 칼바람이 불었다. 옷깃으로 파고드는 바람으로 인해, 체감온도는 영하 10도 밑으로 내려갔다고 한다.

이렇게 추운 겨울, 눈이 내리고 난 뒤 일부러 화성을 돌아본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다. 바로 이 겨울에 화성에서 정조의 마음을 읽고 싶었기 때문. 겨울이라고 해서 화성에 무슨 정조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느냐고 사람들은 반문한다. 하지만 화성의 일부라도 돌아본다면, 그곳에서 정조의 마음을 충분히 알아낼 수 있다.

화성에는 많은 구조물들이 있다. 그 구조물 안에 바로 정조의 '애민정신(愛民精神)'을 만날 수가 있다. 소라각이라고 하는 동북공심돈 안으로 들어가면, 우측에 온돌방이 보인다. 밑에는 아궁이까지 있는 온돌방이다. 아무리 추워도 이곳을 들어가면 추위를 거뜬히 이겨낼 수 있다. 


▲ 봉돈 성 안에서 바라다 본 봉돈 ⓒ 하주성


▲ 온돌방 봉돈의 입구를 들어서면 우측에 마련되어 있는 온돌방 ⓒ 하주성

그곳에서 다시 걷기 시작한다. 창룡문을 지나 구조물들을 하나하나 돌아보면서 걷는다. 바람은 점점 세차게 불어온다. 하지만 정조의 따듯한 마음을 읽어서인가, 처음보다 한결 걸음도 가벼워지고 추위도 덜 느끼게 된다. 봉돈 안으로 들어서 본다. 좌측에는 무기고가 있고, 우측에는 역시 온돌방이 마련되어 있다.        
        
4만7000명 정도의 장용영 군사들이 화성에 주둔했다. 하지만 평상시에는 그들 모두가 성을 지킨 것은 아니다. 아마도 각 시설물마다 적은 인원들이 주야 교대로 성을 지켰을 것이다. 그들이 눈과 비바람을 피할 수 있도록, 곳곳에 그런 시설물들이 있다. 남수문 쪽으로 가다가 만나게 되는 동남각루, 그 아래에도 온돌방이 있다. 크지 않아 많은 사람들은 들어가지 못한다 하더라도, 겨울철 몇 명 정도의 군사들이 들어가 몸을 녹일 수 있는 공간이다.


▲ 동남각루 남수문의 동편 비탈 위에 서 있는 동남각루 ⓒ 하주성


▲ 온돌방 동남각루 아래편에 마련한 온돌방. 좌측으로 불을 떼는 아궁이가 보인다 ⓒ 하주성

이러한 온돌방이 화성의 구조물 곳곳에 마련돼 있다. 여름철이면 시원한 포루 등의 마루를 이용해 더위를 피할 수 있고, 겨울이면 온돌방을 이용해 몸을 녹일 수 있도록 마련한 화성. 그 하나만으로도 정조의 마음을 충분히 알 수가 있다. 백성을 사랑하는 정조의 마음, 바로 이런 점이 우리가 '정조 스타일'을 고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e수원뉴스와 다음 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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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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