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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에도 국립대학 태학(太學) 있었다"
2013/10/03 11:26 송고 김태식 기자 taeshik@yna.co.kr
진법자 묘지명 덮개돌
백제유민 진법자(陳法子) 묘지명 중국 시안서 발견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고구려와 신라에는 국립대학에 해당하는 태학(太學)이 있었다는 사실이 기록으로 확인되지만 유독 백제만은 그러지 못했다.
하지만 백제 역시 태학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백제 유민의 묘지명(墓誌銘)이 중국 당나라 때 수도 시안(西安)에서 발견됐다.
백제 부흥운동사 전공인 김영관 제주대 사학과 교수는 오는 5일 충남 공주시 공주대 본관 대회의실에서 이 대학이 '7~8세기 백제 유민의 발자취'를 주제로 개최하는 제6회 백제문화 국제심포지엄에서 시안에서 최근 발견된 백제 유민 진법자(陳法子) 묘지명을 공개한다.
김 교수는 현재 시안시에 있는 대당서시박물관(大唐西市博物館)이 소장한 이 묘지명을 분석한 결과 백제에도 태학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3일 말했다.
이 묘지명은 재료가 검푸른 빛을 띠는 청석(靑石)으로 제목을 적은 덮개돌인 개석(蓋石)과 무덤 주인공의 행적을 적은 지석(誌石)을 모두 갖추었다.
가로 44.0cm, 세로 44.0cm, 두께 11cm인 개석에는 '대주고진부군묘지명'(大周故陳府君墓誌銘)이라는 9글자를 세 글자씩 나누어 3행으로 적었다. 지석은 가로 44.8cm, 세로 45.0cm, 두께 8.7~9.6cm인 방형으로 각 행당 최대 25글자로 24행에 걸쳐 594자를 새겼다.
제목에 들어간 대주(大周)는 당 황실을 찬탈한 여성군주 무즉천이 세운 왕조 이름이다.
김 교수는 묘지명 분석 결과 진법사는 웅진도독부 서부 출신으로 615년, 백제 무왕 16년에 태어나 기모군(旣母郡)의 좌관(佐官)으로 관직에 진출한 이래 품달군(稟達郡)의 군장(郡將)이 되고, 사군(司軍)으로 자리를 옮기고 관위 또한 2등인 은솔(恩率)로 진급했다.
그러다가 660년 5월, 나당 연합군에 백제가 협공을 받자 시세를 살펴 당군에 투항하고 당나라로 들어가 여러 관직을 거쳐 재초(載初) 원년(690) 2월에 76세로 세상을 떠나고, 1년 남짓 지난 천수(天授) 2년(691) 3월에는 시안에서 장례를 치렀다.
이 묘지명 또한 여타 당나라 묘지명과 달리 묘주(墓主)의 가계를 증조부터 기록했다. 이에 따르면 증조는 진춘(陳春)으로 본방(本邦), 즉 백제에서 태학(太學)의 정(正)을 지냈으며 관등은 은솔(恩率)로 나온다.
김 교수는 이로 보아 "백제에 태학이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정(正)은 그 최고 책임자로 추정된다"면서 "한 세대를 대략 30년으로 본다면 진법자의 증조 진춘이 태학정으로 일한 시기는 위덕왕(재위 554-598) 무렵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진법자 묘지명 본문
김 교수는 일본서기 등을 보면 백제가 왜에 오경박사(五經博史)를 파견하는가 하면, 고구려와 신라에도 태학이 있었음을 볼 때 백제 또한 태학이 있어야 하지만 워낙 백제사 자료가 영성한 까닭에 그것을 증명할 수 없다가 이번에 비로소 그런 사실을 확인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이 묘지명에는 진법자의 조부는 진덕지(陳德止)이며 마련대군장(麻連大郡將)을 역임하고 최고 관위는 달솔(達率)이라고 하며, 아버지 진미지(陳微之)는 마도군(馬徒郡) 참사군(參司軍)을 지내고 덕솔(德率)까지 올랐다고 적었다.
김 교수는 이처럼 진법자 묘지명은 기존 백제 유민 묘지명과는 달리 묘주의 선대 계보와 그들의 경력을 자세히 적었다는 점에서 자료적인 가치가 특히 더 크다고 설명했다.
이는 아마도 다른 유민 묘지명은 중국 사람들이 기록한 까닭에 중국에서의 행적 기술에 치중한 반면, 진법자 묘지명은 표현으로 보아 같은 백제 유민이 썼을 가능성이 큰 데서 비롯된 차이로 풀이된다. 묘지명 글을 쓴 사람으로 김 교수는 묘지명에 보이는 진법자의 아들 진용영(陳龍英)일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진씨의 유래에 대해 묘지명은 먼 조상이 한나라 말기에 바다를 건너 웅포(공주)에 정착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진법자 조부인 진덕지가 역임한 마련대군장(麻連大郡將)과 부친 진덕지가 오른 마도군참사군(馬徒郡)의 마련(麻連)과 마도(馬徒)는 백제의 행정구역일 수밖에 없다면서 그 구체적인 위치에 대해서는 마련의 경우, 삼국사기 지리지에 임실의 옛 명칭이 마돌(馬突)임을 고려할 때 이곳으로 생각되지만 마련은 알기 힘들다고 말했다.
진법자 본인이 군장으로 부임한 품달군(稟達郡) 또한 문헌에 보이지 않아 어디인 줄 알기는 어렵지만 같은 백제 유민인 흑치상지가 군장으로 있던 풍달군(風達郡)과 동일한 곳으로 생각된다고 김 교수는 덧붙였다.
taeshi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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