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erc.khu.ac.kr/kor/bbs/bbs_download.php?idx=1914&file_no=1 (문서파일)
"동해의 거친 풍랑을 무릅쓴 발해와 일본의 교류 - 구난희"에서 문화관련 부분만 가져왔습니다.

동해를 건너 간 발해의 교역품은 어떤 것일까?
 
발해는 고구려보다 훨씬 넓은 지역을 영위한 국가로 다양한 특산물을 보유하고 있었다. 신당서 발해전에는 백두산의 토끼, 남해부의 다시마, 책성부의 된장, 부여부의 사슴, 막힐부의 돼지, 솔빈부의 말, 현주의 마포, 옥주의 면포, 용주의 명주, 위성현의 철, 노성의 벼, 미타호의 붕어, 환도현의 오얏, 약유현의 배 등이 유명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일본이 발해와의 교류에서 가장 관심을 가진 것은 발해사신이 가져 온 진귀한 산물이었고 특히 발해로부터 가져 온 모피는 일본 귀족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최초로 일본을 방문한 발해사신 고제덕(高齊德)이 전한 물품에는 담비가죽 300장이 포함되어 있다. 이후 발해사신이 일본을 방문하여 교류한 물품에는 반드시 모피가 포함되었고 교류 물품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모피의 종류 또한 다양하여 담비가죽, 곰 가죽, 호랑이 가죽 등이 있었다. 
 
교류 초기에는 모피가 직접적인 판매품이 아니라 답례품으로 서로 주고받았겠지만 이렇게 전달된 모피가 점차 일본 사회에 알려지게 되면서 귀족들의 모피 구매 욕구를 엄청나게 부추겼던 것 같다. 
비록 어느 정도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는가에 대하여 정확히 기록된 바는 없지만 모피와 관련된 규정이 발표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를 간접적으로 시사해 주고 있다. 
 
연희식(延喜式 : 10세기에 편찬된 법령집)에 보면 ‘담비 가죽은 참의(參議) 이상만 착용하도록한다.’는 기록이 등장한다. 헤이안(平安)시대의 참의는 정4위하(正4位下)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태정관(太政官)의 고위관직에 속한다. 따라서 이 규정은 담비가죽을 일본 사회의 최고위층에 한해 착용할 수 있도록 제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좀 더 생각을 확대해 보면 이러한 제한 규정이 명시된다는 것은 당시 많은 귀족들이 모피를 즐겨 착용하였으며 이로 인해 사회문제가 유발되고 있었음을 반증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모피를 둘러싸고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도 전하고 있다. 920년 발해사를 환영하는 연회가 풍락원에서 열렸다. 때는 장마철이라 후덥찌근한 날씨였다. 당시 파견되었던 발해사신은 배류(裵璆)였는데 그는 모피 수출국 사신이라는 체면에 걸맞게 담비가죽으로 만든 갑옷을 입고 연회에 참가했다. 그러나 그의 이런 차림은 시게아키라(重明)친왕의 복장 앞에선 그만 손을 들고 말았다. 당시 연회에 참가한 시게아키라 친왕은 가장 고가품에 해당하는 검은 담비 가죽 옷을 8벌이나 겹쳐 있고 참석하였기 때문이다. 무더운 장마철에 모피 8장이라니 상상조차 힘든 일이 아닌가? 모피 구매와 착용을 과시하는 이러한 사례를 볼 때 당시 모피가 얼마나 유행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이토록 구매욕구가 높은 고가 상품을 제공한 만큼 발해사절단은 그 반대급부로 많은 물품을 차지하였다. 당시 모피가 어느 정도의 부가 수익을 올렸을까 하는 것을 가늠해 내기란 그리 쉽지 않다. 다만 발해사신 사도몽 개인에게 전달된 물품은 명주 70필, 비단 70필, 명주실 200구, 무명 500둔에다 황금 100냥, 수은 100냥, 금구슬, 수정염주 등이었다고 알려진다. 이를 통해 추산해 보면 모피가 상당한 부가가치를 낳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로 인해 823년 고정태(高貞泰), 826년 고승조(高承祖)가 방문했을 당시 후지와라오쯔구(藤原緖嗣)는 발해 사신이란 장사치(商施)에 불과하므로 잦은 내왕을 억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발해사의 방문 횟수를 줄이고자 교섭을 시도한 적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적 의견도 귀족들의 구매욕구를 막을 순 없었다. 사신들이 가져 온 물건은 황실이 직접 구매하였을 뿐만 아니라 귀족들도 직접 사신들과 물품을 거래하였다는 기록이 다수 남아 있다. 이렇듯 모피를 비롯하여 발해로부터 온 산물은 일본귀족들에게 대단한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발해사신이 가져 온 산물은 모피 이외에도 각종 해산물, 인삼, 꿀 등 다양한 산물이 교류되었다는 사실이 기록에 나타나고 있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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