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38542
문재인도 칭찬한 이 영화, 거장이 만들었습니다
[BIFF] 13년 만에 내 놓은 정지영 감독 신작 <부러진 화살>
11.10.11 16:22 ㅣ최종 업데이트 11.10.11 20:43 성하훈 (doomeh)
▲ 9일 영화 상영이 마치자 관객들이 정지영 감독과 출연한 배우들을 향해 뜨거운 박수를 뵤내고 있다 ⓒ 부산국제영화제
▲ 영화 상영 후 관객들과 대화 시간을 갖고 있는 <부러진 화살> 감독과 배우들. 왼쪽부터 배우 안성기, 정지영 감독, 배우 김지호, 박원상, 문성근 ⓒ 부산국제영화제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800여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가 극장 안에 가득했다. 마지막 자막이 올라가는 순간까지 끊어지지 않던 박수는 극장에 불이 들어오자 더 커졌고, 환호가 터져 나왔다. 객석에 앉아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첫 상영을 지켜본 배우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잇따라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와 함께 관객들은 감독과 배우들에게 박수와 함성으로 경의를 표하고 있었다.
9일 저녁 월드프리미어로 모습을 드러낸 정지영 감독이 신작 <부러진 화살>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크게 주목받고 있다. '거장의 귀환', '사회성 짙은 주제를 통한 화려한 복귀', '제2의 <도가니>가 나왔다' 등등 영화가 상영된 이후 관객들의 찬사가 넘쳐났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거장들의 작품을 선보이는 갈라프레젠테이션에 출품된 <부러진 화살>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은 유례가 없을 정도였다. 상영을 마친 후 5분 넘게 박수가 이어지는 것은 부산영화제에서 드문 사례. 관객들의 환호 속에 배우들과 함께 객석 앞으로 나가는 감독의 얼굴은 상기돼 있었다.
<부러진 화살>은 13년 만에 작품을 들고 귀환한 거장 감독의 뚝심이 담겨 있었다. 문제의식이 투철한 정지영 감독의 영화 인생에 걸맞게 영화라는 무기로 부조리한 세상을 향해 화살을 날리고 있는 작품이었다.
13년 만에 귀환한 거장, 부조리한 세상을 향해 활을 쏘다
▲ 영화 <부러진 화살>의 한 장면 ⓒ 부산국제영화제
영화는 2007년 법원의 판결에 불만을 품고 석궁으로 판사를 쏜 김명호 교수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사회적 이슈가 됐던 사건을 영화로 만들었다지만 실질적으로는 영화를 통한 사건의 재구성이다. 이른바 석궁테러 사건이 벌어진 이후 진행된 재판 과정을 세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진실이나 정의를 외면하는 사법 권력의 비양심적 행태를 통렬하게 고발한다. 제대로 된 진실에 접근하고자 하는 것이 이 영화의 목적임이 분명히 드러난다.
마지막에 자막으로 밝히듯 영화의 핵심인 재판 과정은 재판기록과 자료를 토대로 재구성했다. 따라서 영화를 통해 당시 재판이 얼마나 비상직적으로 형편없이 진행됐는지를 아는 것은 어렵지 않다.
영화 속 김경호 교수는 교수 재임용 탈락 처분이 부당해 소송을 낸 재판에서 패소하고 항의하는 차원에서 석궁을 들고 판사를 찾아간다. 실랑이를 벌이던 과정에서 석궁이 발사돼 판사에게 상처를 입힌 혐의로 기소된다.
그러난 재판이 진행되기도 전에 이미 유죄는 확정된 것이었다. 판사들은 회의를 통해 사법 권력에 도전으로 간주해 엄중 대처하겠다는 입장을 언론에 밝히고, 진실을 밝혀야 하는 법정은 마치 정해진 시나리오에 따른 듯 흘러간다. 거기서 형평성과 공정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법대로를 외치지만 영화 속에서 법은 법관들에게 철저히 기만당한다. 판사 마음대로만 있을 뿐이다. 피의자에게 유리한 증거나 정황은 일방적으로 무시되고, 어정쩡한 설명으로 일관하는 검사의 주장만 증거로 채택된다. 그렇지만 너무나 허점이 많아 검찰 스스로가 허둥거리고 이를 밝혀야만 하는 판사는 팔짱만 낀 채 일방적인 한 쪽 주장을 받아들일 뿐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은 없어 보인다.
너무나 편파적인 재판에 법조문에 나와있는 내용을 토대로 엉터리 재판을 비판하면서 판사를 몰아치는 피의자의 항의는 이 영화가 안겨주는 아주 쏠쏠한 재미다. 논리적인 항의에 할 말 없는 판사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재판에서 물러나는 것, 그 과정이 통쾌함을 주지만 그렇다고 공고하게 구축된 사법 권력의 오만함이 꺾이지는 않는다. 괘씸죄가 추가되는 것이고 벽은 더 높아만 간다.
사법 권력을 향한 날선 비판,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
▲ 영화 <부러진 화살>의 한 장면 ⓒ 부산국제영화제
영화는 법전에 나와 있는 법이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는 현실을 보여 준다. 판사의 말과 생각이 곧 법이요 진리일 뿐이다. 거기에 도전하는 것은 어느 누구도 용납하지 않는다. 진실을 밝힐 의무가 있으면서, 도리어 진실을 회피하려는 태도에 분노가 솟구치게 된다.
더구나 그 영향력이 언론과 수형 생활 중인 교도소에까지 미치는 것을 보면, 어이없음을 넘어 독재정권의 폭압적 인권유린을 연상케 한다. 그런 거대 권력에 맞서 온몸을 던져 싸워나가는 교수의 투쟁이 눈물겹다.
드레퓌스 사건을 이야기하면 법관의 양심을 촉구하는 변호사의 외침도 소귀에 경 읽기에 불과하다. 이미 처음부터 결론이 나 있는 상황에서 어떤 항의도 무의미하다. 사실을 외면하는 눈감은 판결에 계란 세례가 쏟아지고 야유가 터져 나오는 장면에서 약간 속이 시원해지기도 하지만 뉘우침 없이 씩씩거리기만 하는 사법 권력의 태도는 씁쓸한 기분마저 안긴다.
<부러진 화살> 속 판사들을 보면 올바른 양심과 진실을 찾으려는 의지가 있는지 의문스러울 정도다. 불합리와 부조리를 없애야 하는 것이 법원의 모습이련만 이건 완전 딴판이다. 그래서 거대 사법 권력을 향해 맞서는 한 개인의 처절한 싸움은 영화가 주는 충격이면서 보는 사람들을 격분하게 만드는 요소다. 바로 그 부분이 영화가 사법 권력을 향해 날리는 날카로운 화살이다.
단순한 영화 속 이야기일 뿐이라 생각하고 싶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 실제로 있었던 일이고 대한민국 사법 권력의 모습이다. 영화가 끝난 후 관객들의 보인 열광적인 환호는 그런 공감의 표현이었다.
"영화가 어려움에 처하면 관객들이 도와달라"
▲ <부러진 화살>을 연출한 정지영 감독 ⓒ 민원기
정지영 감독은 10일 갈라프레젠테이션 기자회견에서 "사법부가 잘못한 부분을 지적하는 것이기 때문에 민감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감독 역시 작품을 쉽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 내용을 비롯해 제작되고 있다는 사실이나 '부러진 화살'이란 표현 등이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SNS(사회적 관계망 서비스) 등에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 제작을 도왔던 한 관계자는 "'영화 상영이 어려울 수도 있지 않겠냐'는 스태프들의 의견에 감독님이 '국민배우(안성기)가 출연하는 작품인데, 설마 개봉을 못하는 경우가 생기겠냐'고 답하더라"고 전했다. 정지영 감독은 9일 첫 상영을 마친 직후 가진 관객들과의 대화에서 "만일 사법부가 긴장해 영화가 어려움에 처하면 관객들이 도와 달라"고 요청했다.
영화는 주인공 김경호 교수를 연기한 배우 안성기의 중후한 연기가 돋보이는 작품인데, 문성근 박원상 김지호 등 연기력 있는 배우들의 열연도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4억 원의 저예산으로 만들어졌기에 배우들이 노개런티로 출연했고, 촬영장소도 지역 영상위원회 관계자들이 자신들의 집을 제공하는 등 거장 감독이 13년 만에 만드는 영화에 헌신적 지원을 펼쳤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한 지역 영상위원회 관계자는 "영화 속 변호사 집으로 나오는 장소가 필요해 아파트를 제공했는데, 커다란 조명세트가 설치돼 이웃들한테 미안했다"며 "영화가 잘 되면 출연료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웃으면서 말했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우리나라 사법현실 잘 그렸다"
▲ 영화 <부러진 화살> 상영에 앞서 정지영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문재인 노무현 재단 이사장 ⓒ 성하훈
영화에는 카메오로 사회운동을 하고 있는 인사들이 대거 출연해 흥미를 더하고 있다.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을 비롯해 성공회대 교수로 있는 김민웅 목사. 이춘연 씨네2000대표, 양기환 스크린쿼터 문화연대 이사장 등이 배우로 나섰다. 정지영 감독은 주변 지인들로부터 한 컷이라도 출연하게 해 달라는 요청이 많아 엄선해서 추렸다고 밝혔다.
<부러진 화살>은 석궁테러 사건의 판결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공론화 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개봉될 경우 사회적 파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도가니>의 열풍이 사회에 몰아치고 있는 현실에서 제2의 도가니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영화를 본 관객들의 시각이었다.
<부러진 화살>을 관람한 문재인 노무현 재단 이사장은 "변호사로서 볼 때 우리나라 사법현실과 재판제도의 문제점을 잘 그려낸 영화"라고 평했다.
9일 첫 상영을 마친 <부러진 화살>은 11일 오전에 이어 13일에도 한 번 더 상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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