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k-heritage.tv/hp/hpContents/vod/view.do?contentsSeq=7816&categoryType=7 
         http://www.youtube.com/watch?v=vGS3zZMg0xg


남한산성 2부 남한산성 복원, 유네스코 등재를 꿈꾸다



내용

1998년부터 10년에 걸쳐 이뤄진 남한산성 발굴은 그동안 이 산성이 감추고 있었던 역사성을 세상에 드러낸 놀라운 계기가 됐다. 통일신라시대 유구와 유물의 출토로 주장성이 확인되고 발굴결과를 바탕으로 성벽은 옛 모습 가까이 복원됐다. 

그러나 무엇보다 남한산성 복원의 중심은 초석만 남아있던 행궁을 다시 세우는 것이었다. 단순한 복원이 아니었다. 그동안 남한산성에 덮혀져 있는 유원지의 이미지를 한 번에 벗겨낼 수 있기를 바랬던 복원팀은 남한산성의 세계 문화유산등재를 목표로 삼은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가치 있는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해서 만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여러 개의 까다로운 등재 조건중에서 공통된 조건은 그 유산이 갖고 있는 진정성이다.그 진정성을 잡기 위한 복원팀의 노력과 성과를 들여다 보자


남한산성 방문정보

위치: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 일원 (광주, 하남, 성남)
문의 안내:남한산성도립공원 031-743-6610
남한산성문화관광사업단 031-777-7500
주변 볼거리: 망월사, 장경사
관련 홈페이지: http://www.ggnhss.or.kr/


동영상 대본정보

수도한양을 방어하는 최후의 보루이자, 요충지! 10년에 걸친 땀과 노력의 결실로 복원된 남한산성은  특별한 손님을 맞았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심사단이 도착한 것이다. 

# 노현균 INT 
  남한산성의 가치가 분명히 있다. 이러한 가치들은 충분히 세계 유산의 가능성이 보인다. 

대한민국의 유산에서 인류의 유산으로! 남한산성의 새로운 도전이 시작됐다.

1998년부터 10년에 걸쳐 이뤄진 남한산성 발굴은 그동안 이 산성이 감추고 있었던 역사성을 세상에 드러낸 놀라운 계기가 됐다. 통일신라시대 유구와 유물의 출토로 주장성이 확인되고- 발굴결과를 바탕으로 성벽은 옛 모습 가까이 복원됐다. 

그러나 무엇보다 남한산성 복원의 중심은 초석만 남아있던 행궁을 다시 세우는 것이었다.  임금의 임시거처인 행궁은 특히 전란이 일어났을 때, 임금의 피난처 역할을 했다. 임금이 기거하던 침실과 업무 공간 외에 종묘의 위패를 보관하는 좌전과 나라의 상징인 사직을 옮길 수 있는 우실- 행궁은 말 그대로 임시수도였던 것이다.어떤 혼란속에서도 나라를 지키고 국권을 사수하려 했던 절실한 마음 남한산성과 행궁의 의미는 바로 그것이었다. 어떻게 하면 그 역사성 을 복원시키고 세상에 알릴까,

노현균 INT
그 전에 남한산성에 덮혀져 있는 유원지의 이미지를 한 번에 벗겨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계기가 세계유산 등재라고 생각했어요. 

전 세계적으로 가치 있는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해서 만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여러 개의 까다로운 등재 조건중에서 공통된 조건은 그 유산이 갖고 있는 진정성이다. 
노현균 INT 
그 세계유산 등재과 관련해서 고려되는 것은 옛 부재를 원위치에 많이 쓰는 것이 행궁에 어떤 진정성이랄까. 이게 진짜냐.. 했을 때, 아 이건 분명히 진짜다.. 그거에 근거가 되는 거죠. 그래서 이게 굉장히 중요한 것이라고.. 

행궁 복원을 위해서 우선 폐허가 되면서 흩어진 부재를 원 위치를 찾아 복원하기로 했다. ‘남한지’ 같은 옛 자료와 옛사진들을 철저히 고증하고,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된 위치와 규모를 바탕으로 복원이 시작됐다.

옛 부재를 찾기 위해 마을 전체를 샅샅이 뒤졌는데 그 중 인근에서 발견된 두 개의초석. 행궁의 입구인 한남루의 장주초석으로 확인됐다. 또 다시 부재 찾기에 나서는데 이번에는 백년의 역사를 가진 남한산 초등학교에서 두 개의 장주초석이 더 발견됐다. 행궁 대신 초등학교를 지키고 있었던 것. 급하게 동문회가 소집됐다. 

노현균 팀장 INT 
원래 있던 것을 선뜻 내 주기가 쉽지 않죠. 다 모인 자리에서 다 이런 것들이 남한산성의 옛 모습을 찾는데 도움이 된다.. 이런 여러 가지 얘기를 하면서 하나 둘씩 원래의 자리로 올 수 있게 되었죠. 

그렇게 백년동안 초등학교를 지키던 한남루의 장주초석은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왔고 초등학교 정문은 새로이 지어졌다. 그 후로도 옛 부재를 찾는 작업은 계속됐지만 더 이상의 부재는 발견되지 않았다. 나머진 새로운 부재로 채석이 불가피했다. 최대한 옛 것과 가까운 재질의  돌을 찾고- 

19세기 프랑스인이 찍은 사진 한 장을 모태로, 한남루 복원에 들어갔다. 외관은 물론 그 곳에 깃든 조상들의 정신까지 되살리고자 한 복원팀. 한남루를 받치고 있는 열 두 개의 장주초석에 4개의 옛 부재와 새 부재를 같이 사용했기로 했는데. 여기엔 원칙이 있었다. 옛 돌은 낡은 형태 그대로, 새 돌은 새 부재임을 알 수 있도록 명확히 구분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노현균 INT 
국제적인 기준이 그럼 옛 돌과 새로 온 돌들이 부재가 같이 사용이 되어야 되는데 그게 또 어느 것이 새것인지 옛 것인지 구분이 안 됩니다. 우리의 감정하고는 다르죠. 우리는 같이 조화가 되어서 같이 가는 것이 중요하지만, 서구적인 관점에선 조화보단 명확성. 어느 시대의 돌이고 어느 시대 부재인지 명확하게 가야 합니다. 우리의 조화와 서구의 명확성이 같이 가기 위해서 석재 고르는 작업이 신중해요. 

그렇게 고심 끝에 선택된 새 부재와 원래의 자리를 찾은 옛 부재들로 조금씩 윤곽이 드러나는 행궁. 복원팀이 세운 또 하나의 원칙은,  옛 부재엔 최대한 인위적인 손길을 가하지 말자, 였다.  
행궁안으로 들어가면 보이는 외행전의 기단. 이것도 옛 부재와 새 부재가 어울려 석축이 되었는데 이 석축을 쌓는데도 그 원칙이 적용됐다.
노현균 팀장 
 가장 편하게 쌓는 것은.. 요새나 장비나 이런 것을 사용하면 아주 세밀하게 쌓을 수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이걸 쌓을 때 원칙을 세운 것은 옛 부재는 원래 도구를 하지 말아라. 원형 그대로 써라.. 

그렇게 다듬지 않은 옛 부재위에 새 부재를 쌓다보니 두 부재 사이에 틈이 벌어지기 마련! 그 공간은 쪽돌을 끼워 균형을 맞춘 것이다. 

#노현균 INT 
옛날 돌을 사용하고 옛 돌을 사용한 후 새로 나온 보충석을 끼워놓고 쪽돌을 끼워 맞추기로 했죠. 무늬만 쪽돌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힘을 받는 쪽들이어야 해요. 그 쪽돌이 빠지면 다시 쌓아야 되는 거죠. 쪽돌이 빠진거죠.  그래서 시범석축을 쌓는 것을 세 번 정도 한 적도 있어요.  지금도 일하시는 분들이 보면 이해를 하시겠지만, 그래서 지금 보면 굉장히 잘 쌓다는 얘기를.. 제 입으로 하긴 좀 쑥스럽긴 하지만.. 

틈이 생긴 공간에 꼭 맞으면서도 무너지지 않는 쪽 돌을 찾아 쌓는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시범석축만 세 번, 그런 각고의 노력 끝에 안전하게 행궁의 토대가 완성됐다.

이제 행궁을 올릴 차례! 252칸의 행궁 중, 임금이 생활하는 상궐이 스타트를 끊었다. 그리고 행궁 내 관아시설 전각인 일장각 복원에 들어갔다. 일장각으로 들어가는 담장에  사주문까지 완성된 상태,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행궁복원에 바탕이 된 설계도.  당초 설계도상에는 외행전과 일장각의 사주문이 마주 보이게 돼 있었다. 그렇게 완성을 하고, 세부 작업을 위해 다시 근경사진을 살피는데-  외행전과 마주보고 있어야 할 사주문이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닌가. 
 
알고보니, 외행전과 마주보고 있었던 건 문이 아니라, 담장이었던 것. 그리고 문은 담장 옆으로 돌아서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미 완성된 담장과 문을 어떻게 할 것인가 허물고 새로 짓기엔 이미 너무 많이 완성된 상태였다. 

노현균 INT 
다 지어놓은 건물은 드잡이란 형태로 옮기는 것이 가능합니다. 굉장히 힘든 공법인데 그렇게 하면서 다 하고 난 다음에 그래도 그나마 지금이라도 발견해서 다시 선다.. 그 때가 다시 기억에 남습니다.  

커다란 시행착오 끝에 외행전에서 일장각으로 가는 담장과 사주문은 옛 모습으로 다시 세워졌다. 그리고 임금의 업무 공간이었던 하궐까지 마무리되면서 10년간의 남한산성 복원이 끝났다 그리고 유원지의 이미지를 벗고 남한산성의 역사를 되찾기 위해 시작된- 세계문화유산 등재의 도전도 시작됐다. 
노현균INT 
임의대로 복원한 것이 아니냐, 하는 강한 견제가 있었습니다. 옛날 사진자료, 고증자료 같은 것을 보여주면서 특히 옛 사진이 남아있다는 것에 굉장히 큰, 아 이것은 근거가 있다라고 인정을 해 주셨습니다. 동양의 성곽의 이해와 특수성. 그런 것을 이해를 해 주셨기 때문에 굉장히 희망적으로 보고 있구요. 
 
400년 왕조의 숨결이 깃든 행궁의  부활로 비로소 완성된 남한산성.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거듭나기 위한 남한산성의 화려한 비상이 시작됐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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