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vadada.tistory.com/354
가야가 살아온다 <4> 가야의 금관 · 금동관
고대의 관(冠)은 지배자의 상징이다. 역사학자들은 관을 통해 절대왕권의 형성문제와 집권(集權)국가 이행 여부를 파악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출토된 가야지역의 관(冠)은 8점 정도다. 국내에는 호암미술관 소장 금관을 비롯, 부산 복천동, 경북 성주 가암동, 합천 옥전고분의 금동관, 함안에서 나온 은관 등 5점이 있고, 일본 동경박물관 오쿠라 컬렉션에 3점이 있다.
국보 제 138호인 호암미술관 소장 가야금관은 얇은 금판으로 머리띠와 풀 모양의 세움장식을 만들고 금이파리를 달았다. 크기는 높이 11.5㎝, 지름 17.4㎝.
도굴품이어서 원래 모습 그대로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제작기법이나 형식미로 보아 출토지는 대가야의 도읍지인 고령이 거의 확실하다.
지난 78년 고령 지산동 32호분에서 처음 발굴된 대가야 금동관은 가야지역 금동관 연구의 지평을 넓힌 유물이다. 이 금동관은 서기 5세기 중엽 가야연맹의 주도세력인 대가야의 실체에 다가서게 하면서 무덤 주인공과 순장자의 관계 등에 대한 다양한 해석의 계기를 제공했다. 정교한 물결무늬와 꽃봉우리형 금동막대가 장식돼 있다. 크기는 길이 14.8㎝, 높이 6.5㎝.
일본 동경박물관 오쿠라 컬렉션에 소장된 금(동)관 3점은 출토지가 확실하지 않지만 학계 일각에서는 가야시대 것으로 보고 있다.
오쿠라(小倉·1870~1964)는 일제시대때 대구 남선전기 사장으로 있으면서 재력을 바탕으로 불법 도굴품들을 집중 수집, 일본으로 교묘히 밀반출한 인물. 그가 가지고 간 유물 1천1백여점은 지난 1981년 동경박물관에 기증돼 오쿠라 컬렉션에 전시돼 있다.
가야지역 관의 특징에 대해 국립중앙박물관 함순섭 학예연구사는 “모양에 있어 초화형, 즉 풀이나 꽃을 모티브로 삼아 소박한 인상을 준다“면서 “신라에는 5세기 전반에 금관이 등장하지만 가야는 5세기 후반~6세기초에야 금관이 나와 집권(集權)국가 이행이 늦은 사실을 반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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