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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명을 일으킨 고구려의 여걸 ´부여태후´ - 김용만" 에서 차대왕 부분만 가져왔습니다.
차대왕
‘인물로 보는 고구려사’(김용만, 도서출판 창해)
* "혁명을 일으킨 고구려의 여걸 ´부여태후´ - 김용만" 에서 차대왕 부분만 가져왔습니다.
차대왕
아우 수성의 욕심
태조대왕은 7세의 나이로 왕이 되어서 무려 94년간이나 왕위에 있었다. 그에게는 수성과 백고 두 아우가 있었다. 그 가운데 수성은 후한을 물리치는 데 큰 공을 세웠고 따르는 무리들이 많았다. 수성은 좌보 목도루, 우보 고복장과 함께 연로한 태조대왕을 대신하여 정치대사를 좌우하는 중요한 인물이기도 했다. 막강한 권한을 가진 수성은 차츰 자신이 왕이 되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혔다.
태조대왕 80년, 수성은 왜산에서 사냥하며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과 더불어 술과 음식을 차려놓고 연회를 베풀었다. 사냥 후의 연회는 귀족들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자 정치의 한마당이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관나부 우태 미유, 환나부 우태 어지류, 비류나부 조의 양신 등이 수성에게 은밀히 말을 건넸다.
“과거의 사례를 볼 때 대왕이 연로하시면 왕위를 왕제(왕의 동생)에게 물려주시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지금 대왕께서는 그러한 마음을 안 갖고 계시니 왕제께서는 차차 내일을 준비하시는 것이 어떠시겠습니까?”
“대왕이 연로하지만 그 아들이 있으니 어찌 감히 내가 왕위를 엿보겠느냐.”
“아니옵니다. 왕위는 현명한 자에게 돌아가야 하니 왕제께서 왕이 되시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수성은 도와줄 무리들이 많음을 알고 은근히 자부심을 가졌다. 실력으로 친다면 수성은 누구보다 왕위에 오를 충분한 자격이 있었다. 하지만 태조대왕에게는 막근과 막덕 두 아들이 있었고, 다음 왕은 막근이 되는 것이 옳다고 믿는 사람들도 많았다.
좌보 목도루가 그러한 인물의 하나였다. 하지만 목도루는 수성에게 대항하여 막근을 왕위에 올릴 실력이 없음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수성의 야심이 점차 드러나자, 수성이 반란을 일으켜 왕위를 찬탈한다면 가장 먼저 자신에게 해가 올 것임을 예측하고 그것이 두려워 병을 핑계로 벼슬에서 물러나 버렸다.
수성은 형에게 직접 칼을 들이댈 수는 없었기에 왕이 될 야심을 가진 채로 기다렸다. 태조대왕보다 24살이 적은 그는 언젠가는 자신의 시대가 오리라고 믿었다. 기다림의 시간이 길어지자 수성은 정치보다는 사냥을 즐기며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거나 오락에 정신을 팔았다. 그러자 수성에게 동생인 백고가 간언을 하였다.
“형님께서는 대왕님의 친동생으로 모든 신하들의 으뜸이 되어 지위와 공훈이 이미 지극함에 이르렀습니다. 형님께서는 마땅히 사욕을 버리시고 위로는 대왕님의 덕과 같이하고 아래로는 민심을 얻은 후에야 부귀가 몸에서 떠나지 않고 재앙이 이르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이러한 일에 신경쓰지 않으시고 오락을 탐하시고 근심을 잊으려고만 한다면 그것은 매우 위태로운 일입니다.”
“사람의 마음이야 누가 부귀환락을 원치 않겠느냐만은 그것을 얻는 자는 만 명에 하나도 없다. 지금 내가 환락을 즐길 만한 자리에 있어도 능히 맘대로 하지 못한다면 장차 무엇에 쓰겠느냐.”
수성은 왕의 자질을 다듬기보다는 태조대왕이 빨리 죽기만을 기다렸고 자신을 위한 충언을 듣지 않았다. 그러나 태조대왕은 오래오래 살아 100세를 넘기고 말았다. 태조대왕 94년이 되자, 수성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인지 좌우의 부하들을 불러모아 지시를 했다.
“대왕이 늙어도 죽지 않고 내 나이도 많아졌으니 기다릴 수 없구나. 너희들이 내가 왕이 될 수 있도록 일을 꾸며 주기 바란다.”
그런데 이때 한 사람이 나와 그의 명령에 제동을 걸었다.
“지금 왕제께서 상서롭지 못한 말을 하셨는데도 주변에서 명령만을 따르겠다고 했으니 이는 아첨입니다. 제가 직언을 하겠습니다.”
“그대가 직언을 한다면 내가 들어 주겠다.”
“지금 현명한 왕이 계십니다. 왕제께서 대왕을 몰아내시려 한다면 이것은 재앙을 불러오는 것입니다. 왕제께서 더욱 공손히 대왕을 모시고 착하게 사신다면 대왕도 왕위를 물려줄 생각을 가지실 것입니다.”
하지만 수성은 너무나 오래 왕이 되기를 기다렸기에 그 말이 달갑게 들리지 않았다. 좌우의 신하들은 즉시 눈치를 채고 수성에게 은밀히 말했다.
“저놈을 살려 두면 지금 모의하고 있는 계획이 발각될지 모릅니다. 저희들에게 저놈을 맡기시면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수성은 마침내 직언한 사람을 죽이고 말았다.
이렇게 되자 수성이 왕위에 오르는 것에 가장 강력히 반대해 오던 우보 고복장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태조대왕에게 수성의 야심을 말해버렸다.
“대왕이시여, 수성이 장차 반란을 일으키려 하니 먼저 그를 잡아서 죽이십시오.”
태조대왕이라고 해서 수성의 욕심을 모를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이미 많은 신하들이 수성을 따르고 있었고, 자기 동생인 까닭에 이렇게 대답해 버렸다.
“내가 늙었고 수성이 나라에 공을 세웠으니, 그에게 왕위를 넘겨주겠노라.”
고복장은 안타까운 마음에 다시 한 번 태조대왕에게 건의했다.
“수성은 잔인하고 어질지 못합니다. 만약 수성이 왕이 되면 대왕의 자손들마저 해칠 것입니다. 아우만을 생각하지 마시고 자식 생각도 하셔야 합니다.”
하지만 태조대왕은 고복장의 말을 듣지 않고 왕위를 수성에게 넘겨주고 별궁으로 물러나 버렸다. 태조대왕은 고구려의 체제를 안정시키고, 만주와 한반도의 지배자로 고구려의 위상을 강화시켰지만 부여와 사이가 벌어져 더 큰 발전을 이루는 데 실패했다. 또한 한때 장악했던 요서 지역을 확보하는 데도 실패했다. 그러나 태조대왕은 책성 지역을 개척하고, 주변의 여러 소국 통합을 마무리하는 큰 공을 남겼다. 그리고 조용히 역사의 뒷무대로 사라졌다.
차대왕의 측근정치
태조대왕이 왕위에서 물러나자 수성이 고구려 7대 왕으로 즉위하니 곧 차대왕이다. 차대왕은 자신을 따르던 무리들에게 높은 벼슬을 주고 이들을 중심으로 정치를 했다. 차대왕이 왕이 되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던 미유, 어지류, 양신은 특히 높은 벼슬을 받았다.
관나부 우태 미유는 그간 패자의 관등으로 올라 있었지만, 차대왕이 등극한 이후에는 최고의 관직인 좌보에 임명되었다. 환나부 우태 어지류는 좌보 직위와 함께 대주부가 되어 국가의 재정을 책임졌고, 비류나부 양신은 중외대부가 되었고, 조의라는 낮은 관등에서 우태 관등으로 올랐다.
반면 고복장은 수성이 왕으로 즉위한 지 2개월도 안 되어 잡혀 죽었다.
“원통하다. 내가 앞서 태조대왕의 측근 신하가 되어 어찌 반란을 일으킬 인물을 보고도 잠자코 말을 하지 아니하였더냐. 태조대왕이 나의 말을 듣지 아니하여 이 지경에 이른 것을 한스럽게 여긴다. 지금 그대가 대왕의 자리에 올라 마땅히 정치를 새롭게 하여 백성에게 보여야 하거늘 의롭지 못하게도 한 충신을 죽이려고 하니 내가 도가 없는 시대에 살진대 차라리 속히 죽는 것만 같지 못하도다.”
고복장은 이렇게 통분을 하며 죽었다. 차대왕은 고복장을 죽이고 난 후 자신의 왕위를 위협할 첫 번째 인물로 태조대왕의 첫째아들인 막근을 지목했다.
“조카녀석이 내가 자기를 제치고 왕이 된 것에 불만을 갖고 있으렷다. 나를 반대하는 놈들은 막근을 내세워 그를 왕으로 세우려는 음모를 꾸밀지도 모른다. 녀석을 죽이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이야.”
차대왕은 사람을 시켜 막근을 찾아서 죽여 버렸다. 그러자 막근의 동생인 막덕은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다. 고복장의 말이 옳았던 것이다.
태조대왕을 위협하여 왕위에 오른 절차가 문제 되었던 차대왕은 자신의 왕위를 지키기 위해 조카마저 죽일 수밖에 없었고, 그 일로 결국 많은 이들을 의심하게 되었고 따라서 정치는 자신들의 측근을 중심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고구려의 왕실인 계루부와 함께 차대왕을 도운 환나부, 관나부, 비류나부는 이제 고구려를 구성하는 중요한 세력이 되었다.
차대왕은 의심이 많았고, 자신에게 아부하는 사람을 등용했다. 당연히 백성들의 원망이 심해졌다. 한편 고구려를 구성하는 중요한 부(部)이면서도 권력에서 소외된 연나부는 소리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차대왕 20년인 서기 165년 3월에 상왕인 태조대왕이 무려 118세의 나이로 죽었다. 그는 동생에게 대왕의 자리를 넘겨주는 바람에 자신의 아들이 죽는 슬픔을 맛보아야 했다. 그는 살아서 왕위를 물려준 첫 번째 왕이었지만, 말년은 너무나도 쓸쓸했다.
태조대왕이 죽은 그해 10월 은밀히 세력을 키우던 연나부의 조의인 명림답부는 백성들이 견디지 못함을 이유로 내세워 차대왕을 시해하고 태조대왕의 또 다른 동생인 백고를 왕으로 모셨다.
‘인물로 보는 고구려사’(김용만, 도서출판 창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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