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14394
바다에 가라앉은 150억, '너구리' 탓만은 아니다
[주장] 제주해군기지, 태풍 때마다 피해... 입지타당성 전면 재검토해야
14.07.17 14:04 l 최종 업데이트 14.07.17 14:04 l 윤상훈(dodari)
▲ 태풍 너구리로 파손된 케이슨 태풍 너구리의 영향으로 제주해군기지 남방파제 끝쪽의 1만800톤 대형 케이슨 3기가 훼손되었다. ⓒ 강정마을회
▲ 훼손된 3기의 방파제 케이슨 제일 우측의 케이슨은 거의 수장되었고 두번째는 내부격자가 상당 부분 손상되었고 세번째 케이슨은 외벽이 비틀어졌다. ⓒ 강정마을회
지난 9일, 태풍 너구리로 인해 제주해군기지 남방파제 끝부분의 케이슨 3기가 자리를 이탈하거나 훼손됐습니다. 2012년 태풍 볼라벤으로 케이슨 6기가 완전히 파괴된 이후 2년 만의 케이슨 훼손 사고입니다. 2013년에는 제주도 서귀포 강정마을에 직접적인 태풍의 영향이 없어 별다른 피해가 없었습니다. 이 점을 고려한다면 태풍이 강정마을을 지날 때마다 이런 사고가 발생하고 있는 겁니다.
2급 태풍에도 훼손된 제주해군기지... 앞으로가 큰일
해군의 설명에 따르면, 제주해군기지의 방파제는 50년 빈도의 태풍을 견디도록 설계됐습니다. 그런데 태풍 너구리는 2012년 태풍 볼라벤에 비해 1/2에도 못 미치는 위력이며, 순간최대풍속은 19.5m/sec에 불과했습니다.
왜 이런 2급 태풍에도 제주해군기지 방파제는 속수무책이었을까요. 해군은 케이슨의 속채움 공사가 끝나지 않아 사고가 발생했다고 해명했습니다. 이번에 훼손된 케이슨은 무게가 1기당 1만800톤이나 나가고 여기에 모래를 가득 채우면 1기당 4만 톤이 넘습니다. 해군은 케이슨의 속채움 공사가 40%밖에 진행되지 않아 발생한 자연재해라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속이 빈 케이슨이 파도에 휩쓸렸다는 것입니다.
제주도 남단, 특히 강정마을과 법환마을 그리고 범섬을 잇는 삼각지대는 한반도를 지나는 태풍의 첫 관문입니다. 제주도에서 태풍의 영향을 가장 직접적으로 받는 곳입니다. 태풍이 오면 제주도의 모든 언론의 방송 카메라는 범섬을 배경으로 법환포구를 삼키는 태풍을 촬영합니다. 강정마을과 법환마을은 만(灣)이 아닌 곶(串)의 지형이기에 거센 태풍을 촬영하기는 최적의 장소입니다.
그런데 해상에 고스란히 노출된 지역에 제주해군기지가 들어섭니다. 은폐, 엄폐가 불가능하고 태풍을 정면으로 맞이하는 입지조건입니다. 이곳에 서남방파제 총 1496.2미터(서방파제 420미터, 남방파제 1076.2미터), 동방파제 총 652.1미터 등 2킬로미터가 넘는 방파제가 놓입니다. 앞으로 이 방파제들은 군사기지를 태풍으로부터 무사히 지킬 수 있을까요. 왜 지형적으로 불리한 강정마을이 군사기지로 선정되었을까요.
제주도의 8개 후보지를 대상으로 한 2009년 제주해군기지 입지타당성 평가에서 강정마을이 대안지로 선정된 것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당시 자료를 살펴보겠습니다. 해군은 2009년 2월 <기본계획보고서>에 제주해군기지 후보지별 입지타당성 평가를 공개합니다. 이 내용은 2009년 8월 <제주해군기지(민군복합형관광미항) 건설사업 환경영향평가서(보완)>에도 실려 있습니다.
▲ 후보지별 입지타당성 평가결과 제주도 남단 8곳 후보지별 입지타당성 평가에서 강정이 최우수점수로 최종 후보지로 결정되었다.
화순, 위미, 토산, 강정 등 8개 후보지를 대상으로 항만입지, 배후지 여건, 문화재 현황, 어업권 현황 등 4가지 항목을 평가한 결과 강정 9점, 화순·위미·토산·월평 8점으로 강정마을이 최종 후보지로 확정되었습니다. 강정마을은 각 항목별 3점 만점 기준으로 항만입지 3점 만점, 배후지 여건 3점 만점, 문화재 현황 1점, 어업권 현황 2점을 받았습니다. 해군은 8개의 후보군 중 우선순위 후보군에 대한 심층 재검토도 없이 단지 자신들이 정한 기준에서 1점 앞선다는 이유로 강정마을을 최종 후보지로 선정했습니다.
하지만 항만입지, 배후지 여건에 3점 만점을 주면서 강정마을을 최종 후보지로 선정한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해군이 강정마을을 선정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다소 직선형 해안"이 형성되어 있지만 "전면해상에 범섬이 위치하여 연안으로 내습하는 파랑 일부 차폐가능"하고 "수심조건 고려 시 매립에 의한 부지확보 용이"하며 "태풍 내습 시 월파 등에 의한 강정항 피해저감"도 예상된다고 항만 입지여건을 설명합니다. 배후지 여건은 "배후 도로·교통여건 다소 불리"하지만 "매입지내에 민가가 거의 없음"으로 "부지매입 용이 및 주민과의 마찰최소"가 장점이라고 밝힙니다.(<환경영향평가서(보완)>, 1423쪽.)
하지만 해군이 밝힌 강정마을의 입지타당성 결과는 거짓말이거나 심각하게 사실을 왜곡했다고 보여집니다. 제주해군기지가 건설될 강정마을 구럼비 해안은 해상에 그대로 노출된 지형입니다. 이 부분은 해군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해군은 전면해상에 위치한 범섬이 태풍의 일부를 막을 수 있기 때문에 그리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합니다. 지금까지 강정과 법환마을의 태풍 피해를 봤을 때, 허무맹랑한 이야기입니다.
심지어 제주해군기지 방파제가 바로 옆에 위치한 강정항을 보호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제주해군기지의 1만800톤 초대형 케이슨도 2급 태풍에 속수무책인데, 어떻게 거센 파도와 태풍으로부터 강정항을 지킬 수 있겠습니까. 또한 앝은 수심을 고려하면 매립에 의한 부지확보가 용이하다고 했는데, 반대로 방파제 안쪽의 선회장은 수심 17.4미터를 맞추기 위해서 과도한 해상 준설이 필요합니다.
강정마을을 갈라놓은 제주해군기지
▲ 휘어진 방파제 공사용 철근 태풍 너구리는 2012년 볼라벤의 1/2 정도의 위력에 불과한 2급 태풍이다. 공사용 철근이 모두 휘었다. ⓒ 강정마을회
배후지 여건의 설명은 더더욱 해군의 입맛에 맞게 조작됐습니다. 해군은 매입지내에 민가가 거의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강정마을에는 1000여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으며 매입지와 해상 매립지는 강정 주민들의 생활 터전입니다. '공권력'이 생활 터전을 강제 매입해 공사를 강행하니 분쟁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주민과의 마찰도 거의 없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던 해군은 지금까지 강정 주민들과 성직자 등 '강정 지킴이'에게 3억 원이라는 벌금 폭탄과 감옥행을 내렸습니다. 정리하자면, 강정마을이 위미, 화순, 월평, 토산보다 1점 앞선다는 항만입지, 배후지 여건의 장점은 해군의 작위적인 판단이었습니다.
해군이 강정마을을 제주해군기지 최종 대상지로 결정한 것은 사실, 다른 이유 때문입니다. 해군은 "남방해역에 입지되어야 함으로 화순, 위미, 강정지역을 우선 대상후보지로 고려되어 화순, 위미지역을 대상으로 입지검토 수행 중 화순, 위미 주민의 반대로 인하여 사업 추진 지연 중에 '07년 5월 서귀포시 대천동 강정마을에서 해군기지 유치신청을 하여 최종 후보지로 결정"하였다고 밝혔습니다.(<기본계획보고서>, 14쪽., <환경영향평가서(보완)>, 1427쪽.) 화순, 위미 주민들은 제주해군기지 유치를 반대했지만, 강정 주민들은 찬성했다는 것이 최종 대안지로 선정된 결정적인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강정 주민들이 찬성을 결의하고 유치를 신청했다는 2007년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과연 민주적이고 적법한 절차에 따라 주민총회와 유치신청이 이뤄졌을까요.
2007년 4월 26일, 강정마을회는 '해군기지 관련의 건'을 안건으로 공고하면서 긴급임시총회를 소집합니다. 강정 해녀 40여 명을 포함해서 87명의 주민들이 모였고, 당시 윤태정 전 강정마을회장은 장밋빛 전망으로 해군기지 유치를 설명합니다. 참석한 주민들은 공고된 안건인 '해군기지 관련의 건'과 달리 '강정해군기지 유치의 건'을 만장일치 박수로 통과시킵니다. 1000여 명의 주민 중 87명이 모여 마을 향약에서 정한 공고일과 수시 방송의무를 위반하면서 속전속결로 안건을 처리합니다. 그 당시 참석한 해녀들은 이미 해군으로부터 어업보상을 받은 상황이었습니다.
같은 해 8월 10일, 강정 주민 436명이 참가한 마을임시총회에서 제주해군기지 유치 결의를 주도한 윤태정 강정마을회장이 해임됩니다. 8월 20일에는 강정마을 전체 주민투표가 열렸고, 만 19세 이상 주민 725명이 투표에 참가해 반대 680명, 찬성 36명, 무효 9표로 제주해군기지 유치 반대 입장을 결정합니다. 이 과정을 겪으면서 강정마을 공동체는 갈등의 골이 깊어갔습니다.
강정마을은 애초 제주해군기지 후보군에도 없던 곳입니다. 해군은 2002년에 화순항을 제주해군기지 최적지로 선정하지만 화순 주민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힙니다. 해군은 2005년 9월에 제주해군기지 예정지로 화순을 포기하고 위미를 선택합니다. 이 역시 위미 주민들의 반대로 난항을 겪습니다. 몇 년에 걸친 시행착오 끝에 해군은 강정 해녀와 해군기지 찬성파 강정마을회장과 접촉하면서 강정마을 구럼비 해안을 최종 후보지로 결정합니다.
태풍에 맞서는 군사기지, 전 세계에도 없다
▲ 실타래처럼 풀어진 철근 제주해군기지 입지타당성을 전면 재검토해야한다. ⓒ 강정마을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대한민국 해군 함대가 위치한 동해, 부산, 평택 등은 모두 은폐와 엄폐가 가능하고 태풍의 직접 영향에서 벗어난 만(灣)의 지형에 건설되었습니다. 태풍과 정면으로 맞서서 건설된 군사기지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렵습니다.
2012년 태풍 볼라벤과 2014년 태풍 너구리에 의한 케이슨 파괴는 자연재앙이 아닌 예고된 인재입니다. 해군은 제주해군기지 최종 후보지로 강정마을을 결정한 후에 입지타당성 분석을 끼워 맞췄습니다. 예비타당성 조사도 하지 않고 입지를 선정하였습니다. '거짓'과 '부실' 작성이고 불법입니다. 그 과정에서 태풍의 영향은 검토되지 않았거나, 미미한 것으로 처리되었습니다. 이제, 해군의 꼼수가 불러온 태풍의 재앙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예고된 인재의 책임자로서 해군은 파괴된 케이슨의 제작비용과 복구비용을 부담해야 합니다. 1만 톤급 이상의 방파제 케이슨은 1기 제작비용으로 50억 원이 들어갑니다. 2012년에 350억 원, 올해도 150억 원이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습니다.
이 비용은 국민의 세금으로 보험 처리할 것이 아니라, 해군을 상대로 국민이 직접 구상권을 청구해야 할 것입니다. 더불어 제주해군기지의 입지타당성을 전면 재검토해 잘못된 것이 있다면 바로 잡아야 합니다. 심각한 위험이 예측된다면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건설을 폐기해야 합니다. 지금 돌리지 못하면 더 큰 재앙이 닥칠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윤상훈 시민기자는 녹색연합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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