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18172

"비상구 문 열어준 사람은 해경이 아니라 친구였다"
[단원고 생존 학생들, 입을 열다①] C학생의 법정 증언
14.07.28 23:20 l 최종 업데이트 14.07.29 02:21 l 이병한(han) 박소희(s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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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참사 증언한 단원고 생존학생들 28일 오후 세월호 침몰사고에서 생존한 단원고 학생들이 경기 수원지법 안산지원에서 사고 당시 상황을 증언한 뒤 귀가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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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생존 학생을 위한 증인지원실 28일 오전 세월호 침몰사고와 관련해 안산 단원고 생존학생들이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에서 법정 증언을 나선다. 재판부는 학생들이 미성년자이고 안산지역에 살고 있어 광주까지 장거리 이동에 어려움이 있다고 보고 안산에서 증인신문을 진행하기로 했다. 사진은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증인지원실.
ⓒ 사진공동취재단

세월호에 탑승했던 단원호 생존 학생들이 드디어 입을 열기 시작했다. 28일 학생 6명이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401호 법정 증인석에 앉았다. 다음날인 29일에도 무려 17명이 예정되어 있다. 당초 검찰은 생존학생 증언자로 23명을 신청하면서도 이중 상당수가 응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증언을 거부했던 학생들까지 마음을 바꾸면서 23명 전원이 증언대에 서게 됐다.

이 법정은 세월호 선원들의 공판을 심리하는 광주지방법원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임정엽)가 따로 마련한 기일이었다.

생존 학생들이 그날, 그 상황에 대해, 공개적으로 증언하는 것이 이번이 처음이다. <오마이뉴스>는 그 중요성을 감안해 좀 길더라도 학생들의 증언을 최대한 가감 없이 보도한다.

세 번째로 증언한 C학생(여, 기자 주 - 발언순서에 따라 알파벳순으로 명명)은 28일 나온 학생들 중 가장 상세하고 명확한 발언을 쏟아냈다. 그의 숙소는 4층 좌현 선미 쪽 다인실인 SP-1번방이었고, 사고 당시에도 그 방에 있었다. C학생은 방으로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을 때 "나랑 친구는 캐비닛이 뒤집어지면서 그 안에 갇혔다, 다행히도 그 안에 공기가 있어서 숨 쉬었다"고 말했다. 잠시 동안이지만 소위 에어포켓에서 숨을 쉰 것이다.

그는 4층 후미 비상구 쪽으로 탈출할 때 상황에 대해 "애들이 살겠다고 막 뛰쳐나온 게 아니라, 줄 서서 서로 울지말라고 하면서, 인원수 세면서 나왔다"면서 "우리끼리도 도와서 나갔는데, 어른들이 도와주면 (더 쉽게) 나갈 수 있지 않았겠는가"라고 말했다. 그는 "해경이 비상구 문을 열어준 것이 아니라, 친구가 문을 열었다"면서 그때야 해경이 '나왔다, 나왔다' 하며 도와줬다고 증언했다.

C학생은 자신이 비상구를 통해 마지막으로 나올 때 파도가 한 번 세게 쳤는데, "그때 (뒤에 있던 아이들이) 물에 휘말려 (다시 안으로) 들어간 것 같다"고 말했다.

다음은 그의 증언 전문이다. 앞부분은 검찰 측, 뒷부분은 변호인 측 신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끼리도 도와서 나갔는데, 어른들이 도와줬다면 더 쉽지 않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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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16일 오전 안산 단원고 수학여행 학생과 여행객 등을 태우고 제주도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 인근 해역에서 침몰하고 있다. ⓒ 해양경찰청 제공


[검찰 측 신문]

- 4월 16일 아침에 일어나서 사고가 날 때까지 뭘 하고 있었는가.
"아침 먹고 나서 너무 졸려서 방(4층 좌현 선미 쪽 다인실, SP-1번방)에 있는 애들하고 자고 있었다. 아침 먹을 때가 8시 정도였다."

- 배가 기운 시각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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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플로어룸. C학생이 증언한 내부와 유사한 방의 구조 모습. ⓒ 청해진해운

- 배가 기운 다음에 선실 상황은 어땠나.
"방안에 나무 캐비닛이 있었다. 그 옆에 캐리어가 놓여 있었고, 캐비닛 위 사물함에 각자 가방이랑 화장품을 넣어뒀는데, (배가) 기울어지자마자 캐리어랑 가방이랑 신발이랑 다 떨어졌다. (배가 왼쪽) 창문 쪽으로 기울었는데, 우리가 넘어질 때 짐들도 같이 떨어졌다. 창밖으로는 컨테이너 두 개랑 박스 두 개, 철근 같은 게 떠다녔다."

- 배가 갑자기 기울 때 쿵하거나 쇠가 긁히는 소리 같은 건 못 들었나. 
"자고 있을 때 배가 기울어서 그런 소리는 못 들었다."

- 사고가 난 다음에 배 안에서는 어떤 안내방송이 나왔는가.
"처음에는 위험할 수 있으니까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그 방송을 계속 하다가 '여자 아이를 찾는다'는 방송도 나왔다. 여자 아이가 없어졌으니까 있는 쪽에서 소리 질러 달라고. 그 다음에는 '해경이랑 헬기가 오고 있다'고 했고, 또 다시 '가만히 있으라'고. 그 뒤에는 '제발 단원고 학생들 가만히 있어달라'는 방송이 나왔다. 이걸 기억하는 이유는, 방안에 있는 친구가 '가만히 있는데 자꾸 가만히 있으라 한다'며 울었다. 그 다음에 방송이 한 번 끊겼고, 잠깐 정전이 됐다. 다시 불이 켜진 뒤에는 방송에서 '구명조끼 입을 수 있으면 입고, 주위에 잡을 것 있으면 잡으라'고 했다. 구명조끼를 입으라는 방송은 사고가 난 지 한참 후에 나왔다. 몇 분 뒤인지는 모르겠다."

- 안내방송 내용이 여러 가지 있었지만 결국 '가만히 있으라'는 것이었다. '지금 세월호가 침몰 중이다, 선원들이 어떤 조치를 취하고 있다'라는 방송은 없었나. 또 탈출할 때까지 배에서 대피하라거나 어디로 가서 탈출하라는 방송은 있었는가.
"그런 건 없었다. 움직이면 위험하다, 그런 얘기밖에 없었다."

- 다른 학생들 얘기를 들어보니까 배가 기울어지자마자 친구들에게 사물함에 들어있는 구명조끼를 입으라고 했다던데.
"네. 방송이 나오기 전에, 처음에 배가 기울었을 때 빨리 입으라고 했다. 무서우니까."

- 구명조끼라는 게 물에 빠졌을 때 살기 위한 도구다. 근데 배가 딱 기울어지자마자 무서워서 구명조끼를 입자고 했다는 건, 본인은 이 배가 바닷물 속에 빠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뜻인가. 
"네."

- 배가 몇 도 이상 기울면 침몰이다 이런 걸 공부한 적은 없는데, 당시 상황을 보고 추측했나.  
"그냥 무섭다는 생각밖에 안 들고, (배가) 기울어진 것이 창문 밖으로 보이는데, 다시 제자리로 돌릴 수 없을 것 같았다. 또 제가 지식이 없잖아요. 믿을 건 구명조끼밖에 없어서 (아이들에게) 입자고 했다."

- 그때 캐비닛 안에 들어가 있었나.
"처음에는 다 창문 쪽으로 쏠려 있었다. 그러다가 창문에 물이 닿았을 때에야 애들이 다 캐비닛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물이 더 많이 들어오면서부터는 수압 때문에 캐비닛이 다 부서졌다."

- 혹시 물이 막 들어올 때 캐비닛이 뒤집어지면서 그 안에 갇혀서 숨을 쉬었나. 어른들이 '에어포켓'이라고 하는 공간이 생겨서….
"네."

"캐비닛 뒤집혀 생긴 에어포켓에서 숨을 쉬었다"

- 그 상황에서 어떻게 빠져나왔는가.
"친구 두 명과 맨 안쪽 칸에, 창문 바로 앞에 있었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없어서 캐비닛 안에 들어가 있었는데 (방에) 물이 차면서 캐비닛이 부서질 때 한 명은 나간 것 같았다. 하지만 나랑 친구는 캐비닛이 뒤집어지면서 그 안에 갇혔다. 다행히도 그 안에 공기가 있어서 숨 쉬면서 친구랑 저랑 '그래도 살아서 다행이다, 둘이라 다행이다, 혼자면 무서울 텐데 울지 마라'면서 있었다.

계속 밖을 향해 애들 이름 부르면서 살려달라고도 했는데 안 되겠다 싶더라. 그래서 이걸(캐비닛) 들어올릴까 했는데, 해보니까 숨을 쉴 수 없었다. 발버둥밖에 안 쳐지고. 그래도 진짜 살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나도 모르게 한 손으로는 친구를 잡고 캐비닛을 (위로) 쳤다. 그렇게 빠져나오는데 구명조끼를 입었으니까 물에 떴다. 그때엔 (이미 배가) 90도로 기울어진 상태라 문이 우리 위에 있었다. 문까지 높이가 성인남자 키 정도였고, 손을 위로 쭉 뻗어야 간신히 닿을 정도였다. 내 힘만으로는 나올 순 없었다. 밖에 있던 친구가 끌어주고, 밑에 있던 친구는 엉덩이를 밀어줘서 나왔다."

- 같이 있던 친구도 그때 나온 건가.
"네. 방에서 나온 다음에는 복도에 줄을 서 있었다. 애들이 살겠다고 막 뛰쳐나온 게 아니라, 줄 서서 서로 울지 말라고 하면서. (선미 비상구 쪽으로) 해경이 보여서 애들이 안도하면서 더 울었다. 그래도 (서로 인원 수) 세면서 나왔다. 내가 (복도에서) 마지막으로 나올 때 파도가 한 번 쳤는데, 그게 많이 쎘다. 그때 (뒤에 있던 아이들이) 물에 휘말려 (다시 안으로) 들어간 것 같다."

- 복도에서 돌아다닐 때는 힘들지 않았나. 
"(배가) 90도로 기울어져서 (벽을 바닥처럼 짚으면 되는 상황이라) 나갈 때는 안 힘들었다."

- (검사, 한숨을 푹 내쉰 다음에) 지금 얘기를 들어보면, 당시에 같이 물 먹고 힘들어하던 친구 끌어줘서 (방에서) 같이 나오고, 또 복도에선 다른 친구들도 끌어줬다는데, 선원들처럼 사람들을 구조하기 위해 전문 교육을 받은 적이 있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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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16일 오전 안산 단원고 수학여행 학생과 여행객 등을 태우고 제주도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 인근 해역에서 침몰하는 가운데 긴급 출동한 해경이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 해양경찰청 제공

- 친구를 데리고 나올 때나 그 이후에 배에서 탈출할 때까지 선장이나 선원, 해경이 들어와서 도와준 적은?
"없었다. 해경은 밖에 비상구쪽에서 애들이 나오면 건져주긴 했는데 안으로 들어오진 않았다. 우리끼리 복도에서 '왜 들어오지 않느냐'고 얘기하기도 했다. 우리가 줄을 서 있을 때 앞에서 해경이 보였다. 복장은 모르겠고 검정색 보트가 보였다. 해경은 비상구 바로 앞에 있었다. (우리가) 비상구로 나가면 바로 잡아줬다."

- (재판장) 그런데 해경이 선내로 들어오진 않았던 것인가. 물의 높이는 비슷했는지. 
"네. 물의 높이는 비슷했다."

"파도에 휘말려 아이들이 다시 배 안으로 밀려들어갔다"

- (다시 검사) 사고가 나자마자 배가 침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구명조끼를 친구들에게 나눠주고 입으라는 말도 했는데, 그때 왜 바로 탈출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아무 지식이 없고, 그런 사람도 없고, 처음에 배에 탈 때 '이러면 어디로 나가라 어떻게 하라'는 교육마저 없던 상황에서 '기다리라'는 방송이 나왔다. 아무래도 승무원이나 선장이 우리보다 지식도 많고 하니까 믿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말 믿고 계속 기다렸다."

- 탈출하면서 다친 곳은? 
"그냥 (캐비닛) 나무가 부서지면서 거기에 잠깐 끼어서 상처난 정도다."

- 다른 피해자들은 당시 상황을 떠올리면 정신적으로 고통스럽다고 하던데.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 다른 피해자들은 선원들을 엄벌에 처해달라고도 했다. 같은 생각인가. 
"네, 당연히."

- 배에 탔을 때 교육 같은 것 하지 않냐. 비행기 타면 구명조끼 어떻게 입으라는 설명하는 것처럼. 세월호 탔을 때에 그런 교육을 받았나. 
"아예 없었다."

- 청해진해운 쪽에선 방송을 틀어줬다고 하던데.
"아뇨. 타자마자 바로 밥을 먹은 뒤 휴식시간이었다. 우리가 만약 그 방송을 봤다면 식당 안에 있는 텔레비전으로 봤을 텐데, 내가 계속 거기 서 있었고 3층을 돌아다녔는데 전혀 그런 것이 없었다. 다른 친구들도 아예 없었다고 한다."

- 가정적인 질문이긴 한데, 구명벌이 안 펴졌다. 바다를 보고 있는 상황이기도 했으니 만약 구명벌이 터져서 바다에 떠있었다면 그걸 보고 탈출했을 것 같은가.
"퍼져만 있었다면 우리는 몰랐겠죠? 그런데 (밖으로) 나가라는 방송과 (어른들의) 도움이 있었다면 정말 충분히 나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우리끼리도 도와서 나갔는데, 어른들이 도와주면 (더 쉽게) 나갈 수 있지 않았겠나."

"배를 탔을 때 안전교육 전혀 없었다"

[변호인 측 신문]

- (신아무개 1등 항해사·김아무개 2등 항해사의 변호인) 맨 처음에 배가 기울었을 때 몇 도 정도로 느꼈나.
"한 45도?"

- 선내에서 가만히 있으란 방송이 나왔다. 그 주변에서 다른 어른들 목소리는 안 들렸나. 
"안쪽 방이라 우리 목소리밖에 안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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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16일 오전 안산 단원고 수학여행 학생과 여행객 등을 태우고 제주도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 인근 해역에서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은 해양경찰청이 공개한 구조작업 모습이다. ⓒ 해양경찰청 제공

- (박아무개 기관장의 변호인) '10분 뒤에 해경이 도착한다, 5분 뒤에 해경이 도착한다' 이런 방송을 들었다고 했는데, 몇 번 정도 들었고 또 그 목소리는 모두 같았나. 
"두세 번쯤 들었다. 남자목소리이긴 한데 살짝 여자 쉰 목소리 같았다. 동영상 보면 나오는 그 목소리였다. 한 사람이 방송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 탈출 관련해서 묻겠다. 물이 차지 않았을 때엔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나갈 수 있었나. 
"캐비닛이 있었으니까(기자 주 - 캐비닛을 밟아서 올라가면 된다는 뜻) 나가라고 했으면 친구들끼리 도와서 복도까지는 나가긴 했을 거다."

- (손아무개 1등 기관사의 변호인) SP-1번방에서 빠져나왔을 때 복도에는 친구들이 몇 명 정도 있었나.
"아주 많이 있었다. 1개반 인원(30~40명) 정도?"

- 맞은 편 SP-2번방이 배가 넘어지면서 방향이 위쪽이 되었을 텐데, 그쪽에서도 친구들이 많이 탈출했나.
"아니요."

- 친구들이 선미로 나갔다고 했는데, 그쪽에서 빛이 들어오는 게 보여서 그랬던 것인가. 
"비상구(표시가) 보이니까…."

- 나가보니까 선미 쪽에, 손만 뻗으면 닿을 정도로 해경 구명보트가 근접했다고 했다. 보트에는 몇 명 정도 있었나.
"두 명 정도. 한 보트에 두 명씩 있었고, 두 대 정도 와 있었다. 해경이 비상구 문을 열어준 것이 아니라 먼저 (그쪽으로) 간 친구가 문을 열었더니 다른 사람을 구하러가던 해경이 '나왔다, 나왔다' 하면서 (우리를) 도와줬다. 근데 내가 마지막으로 나오면서 '저기 안에 애들 많아요'라고 말했는데 내게 '구명조끼 벗으라'고만 했다."

- (재판장) 증인, 이건 정말 괴로운 질문인데, 복도에 있던 친구들 가운데 얼마나 파도에 휩쓸려 갔나.
"절반 정도. 내가 나간 뒤부터 애들이 못 나왔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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