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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 대신들, 이순신·원균 평가 놓고 논란
호남정신의 뿌리를 찾아서 3부 - 정유재란과 호남 사람들 4
선조, 원균을 경상우수사로 임명하다
입력시간 : 2012. 12.12. 00:00

아산 현충사의 충무공이순신 기념관
 
상당수 대신들 수군통제권 양분에 우려 표명
윤두수 등 서인, 원균을 경상도통제사로 제청

1월27일 오후에 선조는 별전에서 또 한 번의 어전 회의를 연다. 참석한 대신들은 영돈녕부사 이산해, 영의정 유성룡, 판중추부사 윤두수, 좌의정 김응남, 지중추부사 정탁, 경림군 김명원, 호조판서 김수, 병조판서 이덕형, 병조참판 유영경, 이조참판 이정형, 상호군 노직, 좌승지 이덕열 등이었다. 이 회의에서 이순신과 관련된 부분을 살펴보자.

윤두수 : “지난번에 비변사에서 이순신의 죄상을 이미 아뢰었으므로 상께서도 이미 통촉하시겠지만 이번 일은 온 나라의 인심이 모두 분노해 하고 있으니, 고니시가 지휘하더라도 역시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위급할 때에 장수를 바꾸는 것이 비록 어려운 일이지만, 이순신을 체직시켜야 할 듯합니다.”

정탁 : “이순신은 사실 죄가 있습니다만 위급할 때에 장수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오후 회의에서 윤두수는 이순신을 체직시키자고 발언을 한다. 윤두수는 아침에는 이순신을 전라·충청 통제사로 원균을 경상 통제사로 임명하여 통제권을 양분하자고 하였는데 이번에는 이순신을 아예 체직시키자고 말 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정탁은 비록 이순신이 죄가 있기는 하나 전시에는 장수를 바꾸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선조: “나는 이순신의 사람됨을 자세히 모르지만 성품이 지혜가 적은 듯하다. 임진년 이후에 한 번도 거사를 하지 않았고, 이번 일도 하늘이 준 기회를 이용하지 않았으니 법을 범한 사람을 어찌 매번 용서할 것인가. 원균으로 대신해야 하겠다. 이순신은 비록 가토의 목을 베어 오더라도 용서할 수가 없다.”

선조는 이순신을 용서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이순신을 처벌할 뜻을 분명히 하고 원균에게 통수권을 맡길 생각을 굳히고 있다. 

이산해: “임진년에 원균의 공로가 많았다고 합니다.”

선조 : “공이 없었다고 할 수 없다. 앞장서서 나아가는 것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사졸들이 보고 본받기 때문이다.”

이산해는 원균을 옹호하고 있다. 선조도 이산해의 의견에 동조한다. 원균의 용감성에 대하여 치하하고 있다.

유성룡: “거제에 들어가 지켰다면 영등포·김해의 적이 반드시 두려워하였을 것인데 오랫동안 한산도에 머물면서 별로 하는 일이 없었고 이번 바닷길도 역시 출격하지 않았으니 어찌 죄가 없다고 하겠습니까. 다만 교체하는 동안에 사세가 어려울 것 같기 때문에 전일에 그렇게 건의하였던 것입니다. 비변사로서 어찌 이순신 하나를 비호하겠습니까.”

선조: “이순신은 조금도 용서할 수가 없다. 무신이 조정을 가볍게 여기는 습성은 다스리지 않을 수 없다.” 

유성룡은 자세를 낮추면서 이순신에 대한 변명을 조심스럽게 한다. 이순신을 교체하여서는 안 된다고 완곡하게 말한다. 그러나 선조는 이순신을 용서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한다. 

이조참판 이정형: “이순신이 말하기를 ‘거제도에 들어가 지키면 좋은 줄은 알지만, 한산도는 선박을 감출 수 있는데다가 적들이 깊은 실정을 알 수 없고, 거제도는 그 속이 비록 넓기는 하나 선박을 감출 곳이 없을 뿐더러 또 건너편 안골포의 적과 상대하고 있어 들어가 지키기에는 어렵다.’고 하였으니, 그 말이 합당한 듯합니다.”

선조 : “들어가 지키는 것이 어렵다고 했는데, 경의 생각은 어떤가?” 

이정형: “신 역시 자세히 알 수가 없습니다. 그 사람의 말이 그렇습니다. 원균은 사변이 일어난 처음에 강개(慷慨)하여 공을 세웠는데, 다만 군졸을 돌보지 않아 민심을 잃었습니다.” 

이조참판 이정형은 이순신을 가장 적극적으로 옹호한다. 그는 이순신의 전략이 타당하다고 말하면서 원균은 민심을 잃어 장수로서 자격이 없다고 폄하한다. 원균의 성품에 대하여 선조가 다시 묻는다.


이순신 장군 건천동 생가터 - 명보사거리 

선조: “성품이 그처럼 포악한가?” 

이정형: “경상도가 파괴된 것은 모두 원균에게서 말미암은 것입니다.” 

선조: “우의정(이원익)이 내려갈 때 원균은 적과 싸울 때에나 쓸 만한 사람이라 하였으니, 여기에서 짐작할 수 있다.” 

김응남 : “인심을 잃었다는 말은 지금은 덮어두고, 수군에 기용하여야 합니다.” 

이정형은 원균이 포악하여 인심을 잃었다고 말한다. 선조도 원균의 포악성을 인정한다. 그런데 김응남은 원균의 단점은 덮어두고 그를 수군 장수로 기용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선조: “이억기는 내가 전에 본 적이 있는데 쓸 만한 사람이다.” 

이정형 : “원균만은 못합니다.” 

선조: “원균은 자기 소견대로만 하고 고칠 줄을 모른다. 체찰사가 비록 논리적으로 깨우쳐 주어도 고치지 않는다고 한다.” 

유성룡 : “대개 나라를 위하는 데는 성심이 있습니다. 상당산성(上黨山城)을 쌓을 때 움막을 만들고 자면서 역사를 감독해 수축하였습니다.” 

이산해 : “상당산성을 수축할 때에 위력으로 역사를 감독했기 때문에 원망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이정형: “상당산성의 공사를 완공하기는 하였지만 비가 와서 곧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선조 : “체찰사가 이순신과 원균에게 명령하면, 비록 온당하지 못하더라도 이순신은 그런대로 복종을 하지만 원균은 성을 내며 듣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그가 공을 빼앗겨서인가? 원균을 좌도 수장에 임명하고, 또 누군가를 시켜서 두 사람을 진압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이정형: “이순신과 원균은 서로 어울릴 수 없는 형세입니다.”

김수 : “원균은 매양 이순신이 공을 빼앗았다고 신에게 말하였습니다.” 

이덕열: “이순신이 원균의 공을 빼앗아 권준의 공으로 삼으면서 원균과 상의하지도 않고 먼저 장계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원균의 약점이 여실하게 드러난다. 원균이 강압적이고 고집스러우며 상사와 화합하지 못하고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단점이 부각된다. 이 점은 선조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대신들은 이순신과 원균 두 사람은 서로 어울릴 수 없다는 점을 염려하고 있다. 

윤두수 : “이순신과 원균을 모두 통제사로 삼아, 서로 힘을 합치도록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럼에도 윤두수는 이순신의 지위를 일부 빼앗아 원균에게 주도록 하는 수군통제권 양분론을 주장한다. 윤두수는 이순신을 체직시키자고 한 종래의 주장에서 한 발짝 물러선다. 일단 이순신의 통제권을 약화시키는 것이 긴요하다는 입장이다. 

선조 : “비록 두 사람을 나누어 통제사로 삼더라도 반드시 화해시키고 견제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 원균이 앞장서서 싸움에 나가는데 이순신이 물러나 구하지 않는다면 형편이 어려울 것이다.” 

김응남 : “그렇게 한다면 이순신을 중죄에 처해야 합니다.”

선조 : “반드시 문관으로 하여금 두 사람을 조절하게 하여 그들이 어렵게 여기는 데가 있게 해야 한다.” 

선조: “원균에게 수군을 나누어 통제하게 하는 일을 판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병조판서 이덕형 : “그 사람이 하고자 하면 신의 생각에도 좋다고 봅니다. 그런데 서로 제지하고 방해하는 폐단이 있을까 싶으니, 중국 제도에서 참장(參將)이 싸우는 경우 싸움을 감독하는 사람이 있는 것과 같이 해야 합니다.”

윤두수 : “종사관으로 하여금 싸움을 감독하게 하면 됩니다.” 

선조 : “반드시 전적으로 조절할 사람을 보내야 한다.”

유성룡 : “한효순(부체찰사)에게 독전하게 하면 됩니다.” 

선조 : “할 수 있는 일은 빨리 해야 한다. 원균은 오늘 임명할 수 있는가?”

이정형: “원균을 통제사로 하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싶으니, 경솔히 하지 말고 자세히 살펴서 해야 합니다.”

여러 대신들은 수군 통수권을 양분하는 것에 우려를 표시한다. 폐단이 많을 것이라고 걱정한다. 그럼에도 선조는 병조판서에게 원균을 경상우수사로 빨리 임명하라고 채근한다. 

이산해 : “요시라와 고니시는 후대(厚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뒤에도 기대하는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선조실록 1597년 1월 27일 3번 째 기사) 

이런 망발이 어디에 있는가? 영의정까지 하였던 사람이 왜군 장수와 첩자를 조정에서 포상 할 것을 선조에게 건의하다니. 정말 국가관, 안보관에 문제가 있다. 

이 회의 내용을 보면 이정형 등 일부 대신들은 원균의 기용에 대하여 깊은 우려를 표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두수 등 서인들은 이순신을 폄하하고 원균을 수군 장수로 기용할 것을 주장하며 수군 통제권을 이순신과 원균에게 양분하자고 선조에게 건의한다. 선조 또한 윤두수의 의견을 수용하여 이 날 전라병사 원균을 경상우수사로 임명한다. 

다음날인 1월28일에 선조는 좌부승지 유영순에게 비망기를 적어주며 원균에게 전달하라고 한다. 여기에는 원균을 경상도 수군통제사의 임무를 부여하니 이전의 유감을 깨끗이 씻고 이순신과 합심하여 왜적을 다 섬멸하여 충성을 보이라고 적혀 있었다.

김세곤 (역사인물기행작가, 한국폴리텍대학 강릉캠퍼스 학장)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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