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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구려대탐험] 4.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고구려 유적지" 에서 신성 부분만 옮겼습니다.

◇신성(新城)

[고구려대탐험] 4.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고구려 유적지
2008년 01월 10일 (목) | 고구려문화유적탐사단  webmaster@kgnews.co.kr

◇신성(新城)

요녕성 무순시(撫順市) 고이산에 있는 고구려 초기의 토성으로 고이산성(高爾山城)으로도 불린다. 몇 년 전만해도 고이산 입구에 남아있던 성문과 성벽의 흔적을 지금은 찾아 볼 수 없다.

산 정상에 오르니 무순시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앞으로는 텐산산맥을 따라 내려온 강과 도로가 끝없이 이어지고, 뒷편으로는 마을이 있어 한눈에 봐도 천연요새다. 

신성의 동쪽에는 혼하(渾河)의 지류인 무서하(撫西河)가 흐르고, 남쪽 2㎞에는 혼하가 흐른다. 산성의 남쪽에는 제3현도군의 소재지로 추정되는 평지토성인 노동공원고성(勞動公園古城)이 자리잡고 있다.

고이산의 최고봉인 장군봉에서 세줄기의 산능선이 남으로 뻗쳐 두 개의 천연적인 산간평지를 형성하고 있다. 신성은 그 산 능선에 토축 혹은 토석혼축의 성벽을 쌓아 동성(東城)과 서성(西城), 남성(南城)으로 구성됐으며, 동성이 중심 성이다. 남동·북서쪽은 위성(衛城)으로 축조됐다.

▲ 고구려의 흔적이 사라진 무순시 신성(新成). 산성이 있던 정상에는 원나라 대 지어진 탑이 있어 복(福)을 기원하는 중국인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동성에는 동·남·북쪽에 3개의 문이 있으며 남문에는 옹성(甕城)을 만들어 방비를 튼튼히 했다.

외부 성벽의 총 길이는 약 4㎞ 정도이며, 성벽의 축조방식은 산능선을 따라 먼저 자연석을 쌓고 그 위에 흙을 채워 덮은 방식이다. 이 때문에 산성의 흔적은 풍화작용으로 인해 거의 남아있지 않다.

성 안의 서쪽 비탈에서는 연꽃무늬기와막새, 수키와, 노끈무늬가 있는 암기와 등의 건축재료와 쇠활촉·쇠삽·쇠도리깨 등의 다양한 유물이 발굴돼 고구려 철제도구들의 발전수준을 알 수 있는 유적지이다.

신성은 요동에서 고구려로 들어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목으로 교통의 요지이자 전략적 요충지로 613년부터 6차례에 걸쳐 수와 당의 침략을 받았지만 다섯 번이나 물리쳤다. 667년 함락 전까지 가장 강력한 방어선으로 손꼽혔다.

신성의 초축시기를 명확히 알기는 어렵지만,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 294년(봉상왕 3) 신성에 태수가 파견됐고, 335년(고국원왕 5)에 신성 축조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볼 때 대략 4세기 초에 축조됐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547년(양원왕 3) 7월에 신성을 수리한 기록도 남아 있다.

현재 성벽의 흔적은 거의 찾아볼 수 없으며 동성 내에는 인공적으로 단을 지어 만든 넓은 대지가 있고, 남위성의 남쪽 능선 정상에는 요(遼)·금(金) 대의 백탑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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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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