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navy.ac.kr/common/file/chungmugong1_01.pdf
이순신 장군 목록 http://tadream.tistory.com/11513
16. 이순신의 리더십 (4) 리더에게 역사의식이 필요한 이유
리더의 삶은 어떤 방식으로든 리더가 속한 사회에 영향을 준다. 따라서 리더는 역사에 관통하는 보편적 가치에 대한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자신이 이끄는 조직과 사회에 대해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국가의 존망(存亡)과 부하들의 생사(生死)를 좌우할 수 있는 군의 리더인 경우 더더욱 그렇다. 전쟁도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구현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명한 명분이 있을 때라야 그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 이순신이 멋있는 리더, 위대한 리더로 추앙받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가 지닌 역사의식 때문이다.
필자는 역사의식을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대한 인식과 실천에의 의지’라고 정의한다. 진정한 역사의식은 단순한 앎의 차원을 넘어 어떤 방식으로든 실천과 연결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다. 아래에서는 리더의 역사의식과 관련된 몇 가지 사례 그리고 이순신이 견지했던 역사의식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2차 세계 대전 때에 프랑스 파리 주둔 독일군 사령관 콜티즈 장군은 ‘파리를 사수하라’, 그것이 불가능할 경우 ‘파리를 불태우라’는 히틀러의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성공한 연합군의 진격을 저지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에서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파리를 불태우는 것 뿐이었다. 콜티즈는 고민에 빠졌다. 세계 문화 유산이 즐비한 파리는 프랑스만의 파리가 아니라 전 인류의 파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연합군의 진격 속도를 조금 늦추기 위해 과연 파리를 불태워야 하나..... 파리 사수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지한 히틀러는 전문을 통해 콜티즈를 몰아붙였다.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 콜티즈는 대답하였다. ‘예, 파리는 불타고 있습니다’. 허위보고를 한 것이다. 그러나 그 덕분에 인류적 가치를 지닌 파리는 보전될 수 있었던 것이다. ‘군사적 필요성’과 ‘인류적 가치의 보존’ 사이에서 고민한 콜티즈는 목숨을 걸고 후자를 택했던 것이다.
『삼국지』를 읽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병법의 대가, 정치가로서의 제갈공명을 존경한다. 유비를 도와 촉나라의 중흥을 꾀하고 때로는 위나라의 조조를 위기에 몰아넣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삼국통일의 위업에 실패했는데도 말이다. 그렇다면 제갈공명이 존경받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그 당시 유비의 촉나라는 조조의 위나라나 손권의 오나라에 비해 형편없이 약했으며 삼국을 통일할 가능성이 가장 낮은 나라였다. 그런 상황에서 제갈공명이 유비의 삼고초려(三顧草廬)에 응하여 그와 의기투합한 이유는 유비의 촉나라가 한나라 황실을 계승한 정통성을 지니고 있었으며 촉나라가 삼국을 통일하는 일이야말로 역사의 정기를 바로 세우는 일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의리(義理)가 승리해야 한다는 제갈공명의 역사의식! 그것이 후대 사람들이 그를 존경하는 이유일 것이다.
유학의 나라 조선에서 태어난 이순신은 의리지향적(義理指向的) 역사의식의 소유자였다. 공자가 『논어』에서 “군자는 의(義)에 밝고, 소인은 리(利)에 밝다”라고 한데서 드러나듯이 유학에서 제시하는 보편적 가치는 의리(義理)이다. 따라서 유학적 세계관으로 의식화된 조선의 리더들은 의리에 죽고 의리에 사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었으며, 이것이 임진왜란 때 의병(義兵)이 활약하게 되는 사상사적 근거이다.
임진왜란을 당하여 임금이 한양을 버리고 피신을 하고, 죄 없는 수많은 백성들이 일본군들의 총칼 앞에 스러져가는 참상에 직면한 이순신! 과거 수천년 동안 조선의 은혜를 받아 온 일본인들의 패륜적 침략행위에 분개한 이순신! 그는 이 전쟁의 목적은 바로 반인륜적(反人倫的), 패륜적(悖倫的)침략행위를 자행한 일본인들을 철저히 응징하여 “역천(逆天)과 순천(順天)의 도리가 무엇인지를 가르치는 것”이라고 간주하였다. 한 마디로 이 땅에 하늘의 이치 이른바 천리(天理)가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지키고 아울러 역사의 정기를 바로 세우는 일이라고 그는 생각하였던 것이다. 아울러 이순신은 이와 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단 한명의 일본병사, 단 한척의 일본 함선도 제나라로 돌려보내지 않는다’는 구체적인 실천 방법까지를 제시하였다.
노량해전 직전 순천에서 해상봉쇄를 당하고 있던 소서행장이 뇌물을 보내 진린 도독을 회유하려고 하였다. 마음이 흔들린 진린이 소서행장 부대를 놓아주려하자 이순신은 그를 다그친다. “이 적들은 우리나라에 있어서는 이미 한 하늘 밑에서 살 수 없는 원수요, 또 명나라에 있어서도 역시 죽여야 할 죄를 지었는데 도독은 도리어 뇌물을 받고 화의를 하려 하오”. 이순신의 논리정연한 질책에 결국 진린도 뜻을 함께하고자 하였다. 진린은 뇌물을 받고 소서행장과 싸움을 회피하고 있는 육지 쪽의 중국 장수 유정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나는 차라리 순천의 귀신이 될망정 의리상(義理上) 적을 놓아 보낼 수 없다.” 이순신에 동조하여, 의리(義理)를 위해,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일본군을 응징하는데 끝까지 최선을 다한 중국 장수 진린 또한 훌륭한 리더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반인륜적이고, 패륜적인 침략행위에 대해서는 철저히 응징해야 한다. 그래서 정의(正義)가 승리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어야 한다. 만약 그렇기 못할 경우에는 일본인들은 역사의 대의(大義)를 저버리는 침략행위를 또 다시 되풀이 할 것이다(실제로 300여년 후 일본은 또 다시 동아시아의 평화를 유린하였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단 한 척도, 단 한 놈도 돌려보내선 안 된다’”. 이것이 마지막 노량해전에서 이순신이 소서행장의 부대를 끝까지 봉쇄하고 나아가 이들을 구원하러 출동한 일본 수군을 끝까지 격파하고자 했던 이유이다. 일본군에 대한 이순신의 상상을 초월하는 적개심의 배후에 그가 지녔던 유학적 역사의식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전쟁에서의 단순한 승리를 넘어 역사에 관통하는 보편적 가치를 지키고자 했던 이순신의 역사의식! 그에게 임진왜란은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한, 역사의 정기(精氣)를 바로 세우기 위한 정의(正義)의 전쟁이었던 것이다. 위대한 리더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새겨 보아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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