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bit.ly/1tdGqAF (문서파일)
* "연변 지역 고구려 유적의 현황과 과제 - 양시은" 중 "Ⅲ. 연변 지역의 주요 고구려 유적 - 9_ 東興古城과 주변 유적" 부분에서 "주변 유적"내용 부분만 가져왔습니다.
유적이 대부분 훼손된 관계로 자세한 논의는 어렵지만, 적석묘의 성격에 대해서는 학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정영진은 계단식 적석총 계통의 적석묘는 안도 동청 고분군(3기)에서도 발견된 적이 있음을 지적하면서, 동청고분군의 경우 형태적으로는 고구려의 계단식 석광적석총과 유사하지만 발해 초기에 해당하는 매우 드문 묘제로 파악하고 있다. 동청고분군에서 출토되는 토기의 경우 심발류가 대다수를 차지한다는 점과, 그동안 고구려 동북부 지역에서 전형적인 적석총이 발견된 사례가 없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동청고분군은 고구려보다는 발해 시기에 속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 "연변 지역 고구려 유적의 현황과 과제 - 양시은" 중 "Ⅲ. 연변 지역의 주요 고구려 유적 - 9_ 東興古城과 주변 유적" 부분에서 "주변 유적"내용 부분만 가져왔습니다.
동흥유적(東興古城) 주변 유적
<그림 15> 용정 일대 유적 분포도
한편, 동흥고성에서 해란하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면 수칠구절터(水南 水七溝寺址)가 있다. 서울대학교 박물관에는 절터에서 수습된 고구려 계통의 기와편과 토기편이 소장되어 있다. 6엽형 연화문 와당과 승석문이 일부 남아 있는 유단식 적색 수키와편, 그리고 승문과 거치문 등이 시문된 적갈색 암키와편 등이 있는데, 암키와편 중에서는 내면에 5cm 너비의 모골흔이 관찰되는 예도 있다. 이 밖에도 수량은 많지 않으나 화염문과 지두문이 시문된 암키와편도 확인된다.
<그림 16> 수남 수칠구절터 출토 기와
<그림 15> 용정 일대 유적 분포도
한편, 동흥고성에서 해란하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면 수칠구절터(水南 水七溝寺址)가 있다. 서울대학교 박물관에는 절터에서 수습된 고구려 계통의 기와편과 토기편이 소장되어 있다. 6엽형 연화문 와당과 승석문이 일부 남아 있는 유단식 적색 수키와편, 그리고 승문과 거치문 등이 시문된 적갈색 암키와편 등이 있는데, 암키와편 중에서는 내면에 5cm 너비의 모골흔이 관찰되는 예도 있다. 이 밖에도 수량은 많지 않으나 화염문과 지두문이 시문된 암키와편도 확인된다.
<그림 16> 수남 수칠구절터 출토 기와
①은 직경 14cm인 연화문 와당으로, 주연을 포함한 와당의 두께는 2.6cm다. 나무 와범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두 번 이상 눌러 찍은 관계로 구획선의 문양이 일부 겹쳐 있다. 동일범 와당이 1점 더 있다. ④는 유물 대장에는 훈춘 고려성(비우성)에서 출토된 것으로 되어 있으나 『間島省古迹調査報告』 도판 17-1에 게재된 유물로 수남 수칠구절터에서 출토된 것으로 판단된다. 유사한 유물이 1점 더 있다. 화염문은 평양 시기의 고구려 기와에서도 확인되는 문양인데, 유사한 사례로는 일본 帝塚山大學 附屬博物館의 소장품을 들 수 있다. 동북아역사재단 편, 2009, 『일본 소재 고구려 유물』Ⅱ, 409쪽
한편 『간도성고적조사보고』에는 동흥고성의 동남쪽에 대규모의 水南古墳群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보고서에 따르면, 도리이 류조[鳥居龍藏]가 1911년에 조사할 당시에는 백여 기 이상의 고분이 분포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후 제방공사에 석축분의 돌들을 가져다 사용하여, 1937년 도리야마 기이치가 조사할 때는 고분군 대부분이 파괴되거나 도굴되어 그 흔적만 남아 있었다고 한다. 고분의 형식은 크게 封土墳과 石墓로 구분되는데, 봉토분은 횡구식 장방형석실에 흙을 덮은 것이며, 적석묘는 고구려 계통이기는 하나 고구려의 전형적인 계단식 적석총과는 달리 평면형태가 방형보다는 장방형이 많다는 점에서 일부 차이를 보인다고 하였다.
<그림 17> 수남고분군(『間島省古迹調査報告』)과 안도 동청8호분(정영진, 2006: 그림19)
<그림 17> 수남고분군(『間島省古迹調査報告』)과 안도 동청8호분(정영진, 2006: 그림19)
유적이 대부분 훼손된 관계로 자세한 논의는 어렵지만, 적석묘의 성격에 대해서는 학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정영진은 계단식 적석총 계통의 적석묘는 안도 동청 고분군(3기)에서도 발견된 적이 있음을 지적하면서, 동청고분군의 경우 형태적으로는 고구려의 계단식 석광적석총과 유사하지만 발해 초기에 해당하는 매우 드문 묘제로 파악하고 있다. 동청고분군에서 출토되는 토기의 경우 심발류가 대다수를 차지한다는 점과, 그동안 고구려 동북부 지역에서 전형적인 적석총이 발견된 사례가 없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동청고분군은 고구려보다는 발해 시기에 속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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