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newsview?newsid=20140913102503734
▲4대강 사업 전 공주시민들과 강변을 자주 걸었다. 지금은 사라진 공주시 검상동 보리밭. ⓒ 김종술
구더기 가득한 물고기들이.. 금강에 무슨 일이?
오마이뉴스 | 입력 2014.09.13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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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 이래 최대 국책사업, 위 사진은 이명박 정권이 금강의 뼈를 발라내던 날 찍은 것이다. 그 뒤 4대강 사업과 취재수첩을 든 나의 전쟁이 시작됐다.
▲4대강 사업이 시작되면서 비단강이라 불리던 금강의 금빛모래사장은 중장비의 소음으로 진동했다. 충남 공주시 공산성(사적 제12호) 앞 모래톱에 준설이 시작되면서 대형덤프 트럭들이 줄지어 들어서고 있다. ⓒ 김종술
사람이 죽은 것도 아닌데 물고기 몇 마리 죽었다고 웬 호들갑이냐고? 어떤 사람들은 민감하게 반응할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심지어 나에게 입에 담기 힘든 욕설까지 해댄다. 금강은 구석기 이전부터 사람이 살아가던 곳이다. 그 곳에서 인간의 삽질에 물고기 수십 만 마리가 죽었다. 고라니가 없어졌다. 이게 별 일이 아닌가? 난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화가 치민다. 뭇 생명들의 죽음 뒤에는 바로 우리, 인간이 서 있기 때문이다.
나는 금강에 반했다
난 친구들을 보려고 새벽녘 금강을 자주 찾았다. 어둠이 짙게 깔린 황량한 아스팔트를 5분여 동안 달리면 만날 수 있는 곰나루(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21호). 수십 년 동안 인간의 희로애락을 지켜보며 살아온 소나무 숲이다. 그 숲길을 지나면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드넓은 백사장이 나온다. 그 위를 고라니 녀석이 발도장 찍으며 여기저기 뛰어다니곤 했다. 멀리서 한참을 지켜보다가 그 녀석의 발자국을 따라 걷다보면 강에서 물고기가 튀어 올랐다.
첨벙~ 첨벙~ 첨벙~
그 때마다 적막한 새벽 강의 깊숙한 곳에서부터 꿈틀거리는 생명의 존재를 느꼈다. '나, 말고 너도 거기 살고 있구나!' 이렇게 한참을 걷다보면 머리칼에 이슬이 맺혔다. 온몸이 이슬에 흠뻑 젖은 뒤에 말 못하는 친구들과 작별하고 발길을 돌리곤 했다. 금강 주변에 사는 내 오랜 습관이었다.
▲4대강 사업 전 공주시민들과 강변을 자주 걸었다. 지금은 사라진 공주시 검상동 보리밭. ⓒ 김종술
연미산 자락은 공주의 상징이자 전설이 깃든 한 폭의 그림이다. 봄이면 여자들이 나물 뜯고, 소풍 온 아이들이 재잘거렸다. 고라니 녀석의 발자국은 인간의 발자국으로 흐트러졌고, 넓은 백사장은 그렇듯 짐승과 인간이 함께 공존하는 너른 품이었다. 이뿐인가. 거대한 습지는 야생동식물의 천국이요, 버드나무 군락지는 낚시꾼의 손맛 터로 늘 붐볐다.
하루를 마감하는 붉은 노을이 연미산 자락을 적실 때면 금강 줄기 한가운데에 자리한 버드나무 군락지에서는(공주대교 인근 하중도) 하얀 백로들이 무리 지어 춤사위를 펼쳤다. 내가 공주에 반한 이유는 바로 이런 금강 때문이었다.
"물고기가 떼죽음 당하고 있다."
2012년 10월 18일, 한 지인에게 제보를 받았다. 허겁지겁 취재도구를 챙겨 찾아간 곳은 백제보 상류 200m 지점이었다. 수자원공사 차량 적재함과 죽은 물고기를 수거한 하얀 자루가 놓여 있었다. 강물에서는 죽은 물고기가 둥둥 떠다녔다. 그 위에 수자원공사 보트가 떠 있었다.
환경부 소속 금강지킴이들은 바지 장화를 입고 비지땀을 흘리면서 죽은 물고기들을 건졌다. 평소 알고 지내던 한 직원은 "어떻게 알았어요?"라고 말하면서 도둑질하다 들킨 사람처럼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바닥의 자루를 열자 팔뚝만 한 숭어부터 누치, 모래무지 등 각종 물고기가 눈에 들어왔다.
무식하게 취재한 뒤, 차안에서 눈물
▲금강 물고기 떼죽음 규모에 대해 환경부는 6만여 마리, 충청남도는 약 30만 마리 정도로 추정했다. 하지만 금강 주변에 사는 나는 60만 마리 이상의 물고기가 죽었다고 본다. 충청남도에서 낸 금강 물고기 집단 폐사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수거 인원만 총 904명 동원됐다. ⓒ 김종술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허겁지겁 백제보 하류로 달려갔다. 그곳 상황도 비슷했다. 한쪽에서는 긴 장대로 물고기를 건지고, 강가에서는 공무원들이 삽으로 땅을 파서 무언가를 묻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물고기를 땅에 묻는 것으로 생각했다. "땅에 묻으면 또 다른 오염원이 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물고기를 묻은 적 없다"고 거짓말을 했다.
이들은 환경부의 요청을 받고 투입된 부여군 환경과 직원들이었다. 그렇다고 그냥 돌아갈 내가 아니었다. 그 자리에서 불룩하게 올라온 곳을 손으로 파헤쳤다. 죽은 물고기들이 튀어나왔다.
그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오마이뉴스>에 송고했다. <금강 백제보 부근 물고기 떼죽음... 수천 마리 떠올라>라는 제목의 첫 기사였다. 다음날부터 이틀간 중앙언론사부터 방송사까지 여러 언론사와 환경단체가 강으로 몰려왔다. 방송 기자들은 자루에 담긴 물고기를 바닥에 쏟고 긴 바지장화까지 입은 채 방송 멘트를 생각하느라 머리를 흔들었다. 단독기사를 쏘아 올렸다는 이유로 나에게 각 언론사의 인터뷰 요청이 밀려들어왔다. 어떤 환경단체는 "환경단체에서 해야 할 인터뷰까지 기자가 다 해먹는다"라고 볼멘소리를 내기도 했다.
현장 상황이 열악한 만큼 취재도 어려웠다. 언론이 집중 조명하자 환경부는 떼죽음 당한 물고기 숫자를 축소했다. 죽은 물고기를 수거한 마대조차 매일 장소를 옮기면서 감추었다. 금강에서 죽어나간 물고기의 규모를 알 길이 없었다. 난 '무식하게' 취재했다.
하지만 방법은 아주 단순했다. 공무원 출근 시간은 오전 9시, 난 새벽 5시에 집을 나섰다. 숨바꼭질을 하듯 곳곳에 숨겨 놓은 물고기 마대자루를 손가락으로 헤아리고 사진을 찍었다. 낮에는 공무원들의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녔다. 한 공무원은 나에게 "강아지 새끼도 아니고..."라는 말도 내뱉었다.
그 수모를 참아가면서 취재한 성과도 있었다. 그들의 뒤를 따라다면서 물고기 사체가 담긴 자루에서 침출수가 줄줄 흐르는 것을 목격했다. 2차 오염이 발생하고 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공무원들은 곧바로 자루 안에 비닐 쓰레기봉투를 넣어 이중으로 처리했다. 죽은 물고기를 실어 나르던 차량도 1톤 트럭에서 5톤 압축식 쓰레기 차량으로 바꿨다.
하지만 그 때뿐이었다. 언론 감시의 눈이 시들해지자 압축식 쓰레기 차량의 기사는 강변에 침출수를 방류했다. 내가 그 장면을 목격하던 순간 환경부 직원 10여 명도 그 모습을 아무렇지도 않게 지켜봤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던 길, 난 차 안에서 엉엉 소리를 내어 울었다. 그 난리를 치르고도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난 죽어가는 물고기를 한 마리라도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 했는데, 침출수 한 방울이라도 줄여보려고 차량도 바꾸고 비닐 봉투까지 사용하도록 만들었는데... 공무원들은 변하지 않았다. 그 사람들과 멱살을 잡고 싸워서라도 막았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죄책감이 밀려오면서 서러워 울고 또 울었다.
밀려드는 공포... 결국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한낮 상승한 기온으로 인해 강물은 젓갈 국물로 변하고 물고기 사체에선 구더기가 생겼다. 강변에서는 온통 악취가 진동했다. ⓒ 김종술
▲13일간 현장에서 취재를 하면서 받았던 충격으로 정신과 치료를 2주나 받았다. 지옥같은 그런 처참한 현장은 처음이었다. 두 번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인데, 이글을 쓰면서 두통이 다시 밀려온다. ⓒ 김종술
4대강 사업 취재의 후폭풍은 나에게도 몰아쳤다. 4~5일 동안 물고기 떼죽음을 취재하자 온몸에서 악취가 풍겼다. 두통에 시달려 잠을 잘 수 없었다.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 퇴근하면 공포감이 몰려왔다. 3~4차례 씻고 또 씻었지만, 온몸에서 풍기는 악취가 나를 괴롭혔다. 강변에 둥둥 떠다니는 죽은 물고기와 야생동물에 찢기고 떨어져 나간 사체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무서움에 떨며 몇날을 방 한 귀퉁이에 쪼그려 밤을 지새웠다.
한낮에도 차량의 실내등까지 켜고 다닐 정도로 무섭고 두려웠다. 잠이 들면 구더기로 가득찬 물고기가 떠올라 깜짝깜짝 놀라면서 다리를 떠는 버릇이 생겼다. 공주에 있는 한 정신과를 찾았더니 대전에 큰 병원으로 가라는 소견서를 써줬다. 이후 한 달간이나 약을 먹으면서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그때 주변에서 놀리듯 작명해서 내게 붙여준 별명이 '금강의 요정'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나뿐만 아니라 물고기 사체 수거에 나섰던 비정규직 직원 일부도 몸살과 쯔쯔가무시병, 정신과 치료 등을 받았다고 한다.
비단결같은 금강의 비극은 예견된 일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운하 사업을 포기하겠다고 하면서도 22조2000억 원의 천문학적인 예산이 투입되는 단군 이래 최대의 국책사업인 '4대강 정비사업'을 발표하면서부터였다. 불도저와 굴착기로 강을 짓밟고 파헤치기 시작했다.
2010년 1월 26일, 4대강 사업 공사를 위해 백제큰다리 밑 돌보를 트면서 공산성 앞 모래사장 웅덩이에서 물고기 수천 마리가 떼죽음을 당했다. 이를 시작으로 10여 차례 넓은 공사장 곳곳에서는 물고기 떼죽음과 물고기 구출작전이 펼쳐지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일부 주민들은 갇힌 물고기를 잡기 위해 뜰망, 훌치기 릴, 쪽대, 투망 등을 들고 달려들었다.
2011년 9월 30일 세종보에서 처음으로 녹조가 확인됐다. 그리고 공주보 인근에 조성된 소나무에 살충제를 뿌리는 장면이 목격되었다. 2012년 2월 29일 공주보 인근에 한겨울임에도 녹조가 발생했다. 같은 해 8월 2일 또다시 공주보 인근 소나무에 농약을 살포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 현장을 취재할 때, 관계자들은 내게 욕설을 하며 주먹을 휘둘기도 했다. 결국 소나무에 응애를 잡기 위해서 어독성 1급인 다니톨이라는 살충제를 뿌린 사실을 밝혀냈다.
'젓갈 국물'로 변한 금강, 내년엔?
▲금강 물고기 떼죽음 7일째 충남 부여군 장하리에서 발견된 길이 대형 메기 사체. 길이 136.5cm 무게 약 40kg으로 국내에서 발견된 가장 큰 대형 메기를 유진수 금강을지키는사람들 운영위원장이 들어 보이고 있다. ⓒ 김종술
그리고 당시 제보를 받고 달려가서 확인한 '금강의 주검'. 논산시 강경읍 황산대교까지 물고기 떼죽음이 확산되면서 강변은 썩은 냄새로 진동했다.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환경부, 부여군, 소방서, 수자원공사, 국토부직원까지 150여 명이 동원됐다. 여기저기서 헛구역질 소리가 났다. 물고기 사체를 담은 자루도 하루 50포대에서 100포대 정도로 늘었다. 어떤 날은 하루에 800~1000여 포대를 쌓기도 했다.
매일 정신없이 금강변에서 죽은 물고기들을 취재하다가 부여군 장하리 폐준설선 인근에서 136.5cm 달하는 대형 메기가 죽은 채 떠오른 것을 처음으로 목격했다. 무게만 약 40kg 정도로 국내에서 발견된 민물고기 중에서 가장 큰 것이다. 일부 주민들은 금강의 씨메기가 죽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물고기 떼죽음 뒤에 강물은 젓갈 국물처럼 변해갔다. 죽어서 떠오른 물고기 사체가 가라앉으면서 생긴 현상이다. 강변은 접근하기조차 어려웠다. 썩은 물고기에서 구더기와 파리가 생겼다. 방치된 자루에서도 썩은내가 진동했다.
그로부터 2년 뒤, 썩은 강에 '괴물'이 출몰했다. 큰빗이끼벌레였다. 나의 첫 보도 이후 두 달여 동안 거의 모든 언론이 달라붙어 큰빗이끼벌레를 보도했다. 떼죽음 당한 물고기를 수거해갔던 그 공무원들이 또 금강으로 와서 큰빗이끼벌레의 숫자를 헤아렸다. 수만, 수십만 마리였을 것이다. 지금 강변에는 큰빗이끼벌레가 없다. 물고기가 썩었던 그 자리에서 악취를 풍기며 썩어갔거나 떠내려갔다. 벌떼처럼 달려들었던 언론사의 발길도 사라졌다. 사람들의 관심도 줄어들었다. 그래서 또 잊을 것인가?
▲낙동강에 이어 금강에서도 녹조가 발생하면서 저수지에서나 생기는 큰빗이끼벌레(Pectinatella magnifica)와 같은 태형동물들이 4대강 전역에서 급격히 창궐했다. ⓒ 김종술
4대강 사업을 이후 녹조, 물고기 떼죽음, 큰빗이끼벌레 등이 출몰했다. 내년엔 또 무엇이 출몰할까? 주변 사람들이 종종 물어온다.
지금 금강 일부 구간에서는 더러운 개천 등에서 서식하는 3급수 오염지표종이 종종 눈에 띈다. 여울져 흐르던 금강에 콘크리트 보가 들어선 뒤 수질이 나빠진 증거로 보인다. 아마 내년이면 이놈들이 또다시 세상을 한바탕 떠들썩하게 만들지 않을까?
박근혜 대통령은 4대강 사업을 철저히 검증하고 평가하겠다고 했다. 강은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내버려 둘 때가 유지관리가 가장 쉽다고 한다. 4대강 사업으로 인공화된 강은 유지관리도 힘들고 비용도 많이 들어가는 만큼 재자연화를 서둘러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당장 보 수문을 열기 어렵다면 탄력적으로 수문 개방을 하는 건 어떨까? 농번기를 뺀 나머지 시간에는 수문을 열어서 강의 숨통을 터주자는 것이다. 강이 살아야 인간도 살 수 있다.
난, 오늘도 혼자 강변을 걷는다
▲아버지와 추억을 따라 걸었던 강변은 4대강 사업으로 녹조와 큰빗이끼벌레 가득한 현장으로 변했다. 비단처럼 아름다운 금강을 되살리기 위해 오늘도 강변을 걷는다. ⓒ 김종술
난, 오늘도 금강변을 혼자 걷는다. 항상 적막하다. 고라니가 뛰어놀던 모래사장은 사라졌다. 물안개 자욱한 새벽 강에서 뛰어오르던 생명의 소리도 들을 수 없다. 나물 캐는 아낙의 손길도, 재잘거리던 어린 아이들의 소풍도 볼 수 없다.
무분별한 살충제 사용으로 봄이 왔는데도 꽃이 피지 않고 새가 울지 않는 미래가 올 수 있다고 일깨워준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이 자꾸만 떠오른다. 하지만 난 그래도 걷는다. 죽어가는 금강의 현장을 지키는 것이 죽어가는 금강을 살리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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