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55212.html?_fr=mt2

‘치맥파티’ 열어 ‘일베’ 초대한, 자유청년연합 그들의 실체는…
등록 : 2014.09.15 15:17수정 : 2014.09.15 15:47 

지난 9월 11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일보 사옥 앞에서 자유청년연합 등 보수단체들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 반대 서명운동을 하고 있다. 탁기형 선임기자
 
자유청년연합의 청년을 만나고 싶었다 
광화문광장에서 ‘치맥파티’ 열겠다며 일베를 초대하는 그들… 
정작 청년은 없고, ‘동원’된 ‘자원봉사’ 아저씨들만
“세월호 특별법 정치적 국면을 맞이하면서 
극우·보수와 결합해 광장으로 나올 수 있었던 것”

지난 9월6일 저녁, 한가위를 앞두고 서울 광화문광장이 오랜만에 인파로 북적였다. 대부분 젊은 남성으로 구성된 이들이 광장에 주저앉아 피자와 치킨을 ‘욱여넣는’ 모습을 외국인 관광객을 비롯한 시민들이 멈춰서서 지켜보았다. 이날의 만찬은 정상 범주에서의 식사가 아니라 작정한 ‘폭식’이므로, 분명 이는 ‘먹는’ 풍경이 아니라 ‘욱여넣는’ 풍경이었다. 피자를 나눠먹은 이들은 다 같이 애국가를 부르기도 했다. 광장 내 세월호 농성장에서는 그들의 평범한 이웃들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국민단식을 이어가고 있었다.
 
보수단체들의 총집결장으로
 
이 기괴한 행사를 도시락 나들이라 부르건, 폭식투쟁이라 부르건, 이를 주도한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회원들은 이날의 경험을 ‘서울 수복’이라고 기념한다. 인터넷상에서 일베가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눈길을 끈 뒤 ‘시간의 문제일 뿐 행동하는 일베가 곧 거리로 나올 것’이란 전망이 없었던 것도 아니지만, 그 시기가 생각보다 이르다. ‘일게이’(일베 이용자들이 스스로를 일컫는 표현)들은 왜 하필 지금 모니터 밖으로 걸어나왔을까. “기존 일베의 방식이 유희적인 흐름 속에 있었다면, 세월호 특별법 논란이라는 정치적 국면을 맞이하면서 극우·보수와 결합해 광장으로 나올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권경우 문화평론가의 설명이다.

일베가 광화문광장으로 나오기 전 세종로는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을 폄훼하는 보수단체의 총집결장이 된 터다. 이미 일베를 위한 생태계가 조성돼 있었다는 얘기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 반대 서명운동을 위한 천막을 설치한 동아일보 사옥 앞에선 대한민국어버이연합이 “세월호 선동세력 지옥으로”를 외치며 특별법 제정 반대 집회를 열고 있다. 보수 대학생 단체인 자유대학생연합(자대련)은 주말마다 특별법 제정 반대 서명을 받고 있으며, 일베보다 앞서 지난 8월28일 ‘폭식투쟁’을 선언했다. 지난해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건의 진상 규명을 촉구하며 연세대 총학생회가 시국선언을 발표하자 이에 반대하며 연세대 재학생이 만든 단체로, 현재 4800여 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정작 이 단체는 폭식투쟁에 참여하지 않았다. 김상훈 자대련 대표는 “단식 중이던 김영오씨가 단식을 끝냈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것도 실행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피자나 치킨을 먹는 것으로 현실을 바꿀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거리로 나선 일베의 유희적 행동들이 정치·사회 국면에 실질적 영향을 끼칠 수 있느냐에 있을 테다. 한기호 새누리당 의원은 “9·6은 현대 정치운동사에 한 획을 긋는 날로 기억될 것”이라고 추어올렸다. “젊은 청년들이 나라를 걱정하여 광장에 나타났다는 것은 야권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집회를 젊은 청년들이 역선택한 대전략의 변화”라는 것이다. 미래세력 없는 우파의 구원투수가 될 것이라는 꿈같은 희망이 섞여 있다. 일베식 대전략의 변화가 민심의 변화까지 실어왔을까.

떠들썩한 시간이 지나고 지난 9월11일 서울 세종로 동아일보사 앞 세월호 특별법 반대를 위한 농성장을 찾았다. 일베와 함께 폭식투쟁을 진행했고, 9월13일 다시 광화문광장에서 ‘치맥파티’를 열겠다며 일베를 초대하고 있는 자유청년연합의 청년들을 만나고 싶었다. 변희재 한국인터넷미디어협회 대표와 대여섯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지키고 있었다. 과연 나라를 걱정하는 청년도 2명 눈에 띄었다. “주관단체 회원이시냐”고 묻자 “우리는 순수한 자원봉사자”라고 손사래를 쳤다. <한겨레21> 기자라고 소개하자 그들은 말을 더 잇지 않았다.
 
“자유청년연합 회원은 그냥 아저씨들”
 
2011년 결성된 자유청년연합은 ‘보수를 지향하는 청년단체’라고 스스로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단체의 성격을 보면 청년단체라고도, 보수단체라고도 말하긴 어려워 보인다. 대표를 맡고 있는 장기정(40)씨는 10년 전인 2004년 결성된 자유개척청년단 부대표를 맡아 광화문에서 인공기 화형식을 주도하는 등 이미 10여 년을 보수단체에서 활동해왔다. 18대 대선 당시엔 야권 유력 후보로 거론되던 당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을 “북한의 요청에 따라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을 정부의 승인 없이 제공했다”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고, 지난해엔 전북 군산 수송동성당에서 ‘연평도 포격’ 관련 발언을 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박창신 신부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이 단체가 주력해온 사업 중 하나는 (공산주의) 독립유공자 서훈 박탈 요구 및 법률 개정 촉구 서명운동이다. 다른 보수단체의 회원은 “자유청년연합엔 청년이 없다. 그냥 아저씨들이다. 대표는 보수라기보단 극우 성향에 가깝다”고 말했다.

대신 30여 분을 기다리자 한 젊은 여성이 멈춰서서 서명에 참여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젊은 분들이 참여하신다”며 ‘자원봉사자’들이 반색한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한민국 망한다”며 특별법 반대 서명을 위해 멈춰서는 이들은 주로 50~60대로 보였다. 특별법 제정에 반대하는 이유를 묻자 대학생 정아영(24·가명)씨가 말했다. “(세월호 특별법 관련 소식이) 국민을 계속 우울하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잖아요. 광화문광장을 시민들이 쓰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것도 답답하고요.” 특별법의 내용에 대해 그는 잘 알지 못하는 듯했다. 그저 ‘피곤하니 얼른 잊자’는 말과 다름없었다.

서명을 받던 중년의 ‘자원봉사자’가 정씨에게 한마디를 거들어 알려준다. “세월호 농성장에 가면 유가족은 한 명도 없답니다. 내가 가보지는 않았는데 듣자니 그렇답니다.” 그는 서명을 권유하며 그 말이 비기라도 되는 듯 거듭했다. 농성장에서 경기도 안산 단원고 2학년 웅기군의 아버지 김학일씨를 조금 전에 확인하고 온 터였다. 그가 덧붙였다. “세월호 사고는 교통사고나 같은데 (희생자 가족들이) 세모그룹에 가서 항의시위 한 번 안 했잖습니까. 그 책임을 왜 박근혜 대통령에게 묻습니까. 이 나라가 언제까지 고통 속에 살아야 합니까.”
 
‘동원’과 ‘자원봉사’ 경계에서
 
봉사자가 내민 명함엔 ‘대통령소속 국민대통합위원회 자문위원’이라는 직함이 적혀 있었다. 현대 정치운동사에 한 획을 그을 ‘청년 우파’를 찾아나선 광화문에서 만난 이는 ‘동원’과 ‘자원봉사’의 경계를 부지런히 오가는 중년의 보수단체 간부였다. 다가오는 주말 “두 번째 치맥파티에 나갈 것이냐 말 것이냐”를 두고 일베에선 “두 번 하면 재미없다”는 반대 의견이 나오는 가운데, 세종로 동아일보사 앞에선 ‘김일성 개새끼 못하면 종북’ 푯말을 붙이고 쿵작거리는 뽕짝 리듬 속에 중년의 아스팔트 우파들이 하염없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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