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33326

'망언' 시오노 나나미... 이 정도로 '꼴통'이었나?
[게릴라칼럼] "네덜란드 위안부 손 써야" 발언 논란... 부끄러움을 인정하라
14.09.16 14:00 l 최종 업데이트 14.09.16 14:00 l 김종성 (qqqkim2000)

'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로 유명한 일본 작가 시오노 나나미의 '일본군 위안부(일본군 성노예)' 발언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그는 일본의 보수성향 월간지인 <문예춘추> 10월호에 보낸 기고문에서 "네덜란드 여자들까지 위안부로 삼았다는 이야기가 퍼지면 큰일"이라며 "그 전에 급히 손을 쓸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급히 손을 써야 한다'는 말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사과와 배상을 서둘러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위안부를 강제 동원했다는 사실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시오노는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하는 기사를 내보낸 <아사히 신문> 관계자는 물론, 위안부 동원에 대한 일본의 국가적 개입을 인정한 1993년 고노 담화의 주역들을 상대로도 청문회를 통해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에서 드러나듯이, 네덜란드 위안부 문제가 확산되기 전에 서둘러 은폐해야 한다는 것이 시오노의 발상이다. 

시오노가 말한 네덜란드 위안부 문제는 '스마랑 사건'

▲  일본군 위안소의 풍경. ⓒ 위키피디아 백과사전

시오노가 말한 네덜란드 위안부 문제는 1944년 스마랑 사건을 가리킨다. 이 사건은 일본이 미국·영국 등을 상대로 동남아·태평양 지역에서 태평양전쟁(대동아전쟁, 1941~1945년)을 벌이는 중에 발생했다. 

일본군은 인도네시아에서 납치한 17~28세의 네덜란드 여성 35명을 위안부로 전락시킨 뒤, 인도네시아 자바섬에 있는 스마랑 근처의 위안소에서 이들을 강간했다. 일본은 이 행위를 매춘이라고 강변했지만, 강제로 끌려온 여성들이 과연 자유의사에 따라 매춘을 할 수 있었을까. 

16세기 이래로 네덜란드는 후추 무역을 목적으로 인도네시아를 포함한 동남아시아에서 착취 활동을 전개했다. 이 때문에 네덜란드 사람들이 인도네시아 등지에 진출하게 되었다. <하멜 표류기>의 주인공인 네덜란드인 하멜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본사가 있는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동아시아 무역 전담 기구)에 취직한 뒤, 1653년에 일본 나가사키로 가다가 폭풍을 만나 제주 해안에 표착했다. 

이처럼 16세기 이래로 네덜란드인들이 동남아에 거주했기 때문에, 태평양전쟁 중에 일본이 이곳에서 네덜란드 여성들을 강제 동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일본은 처음에는 동아시아 여성들을 인도네시아 위안소에 배치했다. 그러다가 다급해지자 네덜란드인들까지 강제 동원하게 된 것이다. 

1945년에 일본이 패전한 뒤에 스마랑 사건은 인도네시아 바타비아에서 열린 국제전범재판에 회부됐고, 일본군 장교 일곱 명과 군속 네 명이 1948년에 유죄판결을 받았다. 책임자인 오카다 게이지 육군 소좌(소령)는 사형을 받았다. 일본 정부는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세계 49개 나라와 일본 간의 제2차 세계대전 강화조약)에서 전범재판의 판결을 수용했다. 

이것은 일본 공권력이 위안부를 강제 동원했음을 공식적으로 시인한 것이었다. 또 여성들이 돈을 벌기 위해 자발적으로 위안부가 됐다는 일본측 주장이 거짓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고노 담화를 허물어뜨리려는 아베 신조 총리의 행보에 제동을 걸기에 충분한 것이다. 

일본사회가 무언가에 쫓기고 있다는 증거

시오노 나나미 같은 일본 우파 지식인들은 아시아 여성뿐 아니라 유럽 여성까지 일본군 위안부로 강제 동원됐다는 게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면, 반일 연대가 동아시아 차원이 아니라 세계적 차원으로 확대될지 모른다는 우려를 갖고 있다. 그래서 시오노 같은 지식인이 역사 작가의 자세를 스스로 허물면서까지 진실의 은폐를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이는 그만큼 일본 사회가 무언가에 쫓기고 있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또 동아시아들의 사과 및 배상 요구는 아랑곳 않으면서 서양 국가들 앞에서는 벌벌 기는 일본인들의 심리 구조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  종전 직후에 영국군 장교와 인터뷰하는 중국인 출신 위안부. ⓒ 위키피디아 백과사전

일본 정부는 스마랑 사건 외에는 위안부 강제동원의 사례가 없다고 강변하지만, 이것은 상식적으로 맞지 않는 말이다. 상대적으로 더 부담스러운 유럽 여성들은 강제로 동원하고, 덜 부담스러운 동아시아 여성들은 본인의 의사에 따라 동원했다는 게 말이 되는가. 일본의 점령 하에 있지 않은 네덜란드 여성들은 강제 동원하면서, 일본의 점령 하에 있는 한국·대만·인도네시아 등지의 여성들은 강제 동원하지 않았다는 게 과연 이치에 맞을까?

상식 수준의 문제점을 제시하지 않더라도, 일본의 국가권력이 개입했다는 점은 여기저기서 드러난다. 일례로, 2012년 일본 방위청 사료실에서 발견되어 국내에 소개된 1942년 6월 13일자 일본 육군성 비밀문서에는, 육군성이 대만 주둔 일본군의 요청에 따라 70명의 위안부를 보르네오 섬에 파견하는 내용이 나온다. 여성들을 선발하고 동원하고 수송하는 과정에 일본군이 조직적으로 개입했음을 이로부터 알 수 있다. 

일본은 여성들이 돈을 벌 목적으로 위안부 징발에 자발적으로 호응했다고 강변하지만, 그 자발성의 실상은 위안부 출신 여성들의 증언에서 잘 드러난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을 담아서 엮은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4: 기억으로 다시 쓰는 역사>에 실린 고 김영자 할머니(2005년 작고)의 증언을 들어보자. 이 증언에서 우리는 위안부로 강제 동원될 때의 상황을 엿볼 수 있다. 이해의 편의를 위해 김영자 할머니의 증언을 서울말로 바꾸고 어법에 맞게 수정했음을 밝힌다.  

"그날 우리 아버지를 순경이 막 때렸어. 내놓으라고 말이야. 난 숨었지. 안 가려고. 그랬더니 (나를) 내놓으라고 (아버지) 코에다가 주전자로 물 넣고. …… 일본 군인들, 순경들이 집집마다 다니면서 처녀들을 조사하고 간 거지. 돈 보내준다고 데리고 가서는 ……. 돈은 무슨 돈."

이 증언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돈 줄 테니 가자"면서 강제로 여성들을 끌고 가놓고는 "여성들이 돈을 벌 목적으로 자발적으로 지원했다"고 억지주장을 하는 것이 일본 정부의 태도다. 

국가 침공 전 위안부 설치 위해 사전 조사 나선 일본군

▲  위안소 입구의 광고 문구. 오른쪽에는 “성전 대업의 용사들 대환영”이라고 쓰여 있고, 왼쪽에는 “심신을 받들 일본 여성들의 서비스”라고 쓰여 있다. ⓒ 위키피디아 백과사전

이 같은 강제성만큼 주목을 끄는 것은, 일본이 전쟁 준비 못지않게 위안부 준비에까지 심혈을 기울였다는 점이다. 특정 국가를 침공하기 전에 그 나라에 위안부를 배치할 준비까지 사전에 마쳤다는 점이다. 

일례로, 일본 육군성 의사과에 근무했던 긴바라 세츠오의 일지인 <육군성 업무일지 적록>에 따르면, 일본은 일본군이 인도네시아에 들어가기도 전에 후카다 마스오 소좌를 비밀리에 파견해서 위안부 설치에 필요한 사전 조사를 하도록 했다. 인도네시아에서 돌아온 뒤인 1941년 7월 후카다 소좌는 현지 촌장들에게 위안부 징발을 할당하자고 육군성에 제안했다. 

태국에서도 동일한 사례가 발견된다. 일본군은 태평양 전쟁 발발 직후인 1942년 1월에 태국인 여성들을 모아 위안소를 설치했다. 이걸 보면 전쟁 발발 이전에 이미 상당한 준비를 해놓았음을 알 수 있다. 총알 확보 못지않게 위안부 확보에도 심혈을 기울였던 것이다. 

이처럼 일본은 전쟁 못지않게 위안부 동원에도 핏대를 세웠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일본은 태평양 전쟁과 더불어 여성들을 상대로 해서는 안될 짓까지 서슴지 않고 저질렀다. 이처럼 용서받기 힘든 부끄러운 일을 저질렀으니, 시오노 나나미 같은 일부 지식인들이 그것을 솔직히 인정하기보다는 차라리 숨기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한 게 아닐까. 

너무도 뻔한 잘못을 감추려 하는 일본 일부 지식인들의 태도를 보면서, 일본이라는 나라도 바닥을 향해 가고 있구나라는 느낌이 들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우박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 '로마인 이야기' 시오노 나나미 일본에서 1992년부터 출간된 로마제국 흥망사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69)가 15년 간 로마제국으로의 여정을 끝내고 2006년 12월 16일 도쿄 상공회의소 회의실에서 한국 기자들과 만났다. ⓒ 연합뉴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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