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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왕조산성

1) 학술조사

1962년 4월 길림성박물관 집안고고대(吉林城博物館 集安考古隊)가 길림사범대학(吉林師範大學), 길림성 철학사회과학연구소(吉林城 哲學社會科學硏究所), 집안현문물관리소(集安縣文物管理所) 등과 합동으로 조사와 측량을 실시하였다. 그 뒤 길림성 중점문물보호단위(吉林城 重點文物保護單位)로 지정되었고, 1986년 5월 30일에는 집안현문물조사대(集安縣文物調査隊)가 재조사하였다.

2) 위치와 환경

집안시 재원향 패왕조촌(集安市 財源鄕 覇王朝村) 동북 산 위에 위치하며, 집안시(集安市)에서 북쪽으로 97km거리이다. 서남 30km 거리에 환인 오녀산성(桓仁 五女山城)이 있으며, 혼강(渾江)이 북쪽에서 흘러들어와 산성의 서쪽을 지난 뒤, 패왕조촌(覇王朝村) 앞에서 신개하(新開河)와 합류해 서쪽으로 흘러간다. 산성은 험준한 산봉우리들 사이에 자리잡고 있으며, 산봉우리들이 경사진 산비탈을 감싸쥔 형국이다. 산성은 산으로 겹겹이 둘러싸여 있는데, 다만 산세는 산성이 위치한 산보다 낮다. 

혼강 우안(渾江 右岸) 일대는 대부분 가파른 절벽이지만, 천안구(泉眼溝)와 북둔촌(北屯村) 일대는 평탄한 편이다. 산성은 이 일대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여 혼강(渾江) 연안을 한눈에 관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신개하(新開河) 연안 교통로를 공제할 수 있는 요충지이다.

3) 유적의 현황과 성곽의 구조

산성은 산등성이의 자연지세를 잘 이용하여 축조하였다. 산등성이의 낭떠러지와 절벽을 자연성벽으로 삼고, 산세가 낮은 곳이나 남쪽의 협곡에는 돌로 인공성벽을 쌓았는데, 지세가 아주 낮은 곳에는 성벽을 높이 축조하여 성벽이 일정한 높이로 연결되고 하였다. 

산성은 북쪽이 높고 남쪽이 낮아 키(箕)와 비슷한 모양으로, 산성의 서북 모서리는 바깥쪽으로 뻗어나갔고, 남벽은 활처럼 안쪽으로 조금 휘었다. 

성돌은 화가암을 장방형(長方形)으로 다듬은 것으로 길이 20~51cm, 너비 29~42cm, 두께 13~26cm이다. 성벽의 높낮이와 폭은 일정하지 않은데, 가장 높은 곳은 21층으로 5.2m이며, 폭은 1~4m이다.

4) 역사적 성격

《집안향토지(輯安鄕土志)》에는 “산성 부근 강 연안에도 石城이 있는데, 홍수로 매몰되어 큰 돌만 몇 개 보인다”라고 기재되어 있다. 옛날에는 석성(石城) 유적이 북둔촌(北屯村) 서쪽의 혼강(渾江) 강변에 있었는데, 1960년대 조사 당시에는 볼 수 없었다고 한다. 또한 산성에서 4km 정도 떨어진 천안구촌(天安溝村) 일대에는 고구려 시기 고분군이 3곳 있으며, 모두 70여기 정도 된다고 한다. 

패왕조산성에서 신개하를 따라 40km 정도 거슬러 올라가면 망파령관애(望波嶺關隘)가 나온다. 망파령관애(望波嶺關隘)도 입지조건으로 보아 신개하(新開河)를 거슬러 올라오던 적군을 방어하던 군사시설로 추정된다. 패왕조산성은 망파령관애와 함께 신개하(新開河) 일대에서 도성 외곽의 호형방어선을 구성하였던 것이다. 특히 집안 산성자산성, 환인 고검지산성, 신빈 흑구산성 등에 있는 성가퀴 안쪽의 돌구멍이 이 산성에서도 발견된다는 점에서 패왕조산성은 이들과 함께 압록강 중류일대의 입체적 군사방어체계를 구성한 것으로 파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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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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