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16184&code=116
러시아 부리야트공화국 울란우데 부근 부교도 마을의 민속 공연. 왼쪽에서 두 번째가 필자.
[특별기획]‘이나바의 하얀 토끼’ 고향은 고구려
2007.12.04ㅣ뉴스메이커 752호
코리안루트 1만㎞ 대장정
언어학적으로 토끼와 관련된 고구려 언어가 사할린·홋카이도 지역에 영향
고대 한국어의 어근을 추적하면 고구려의 영향력이 동해를 지중해 삼아 훗카이도, 사할린의 고아시아족에까지 미쳤음을 알 수 있다.
한 종족 집단의 문화적 유산은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 속에 보존돼 있다. 유전학에서 DNA의 역할은 언어학에서 단어의 어근과 비슷하다. 내가 한국인의 기원을 추적하는 24일간의 답사 여행에 참가한 목적은 이른바 ‘코리안 루트’ 주변에 남아 있는 한국어의 ‘언어 유전자’를 찾는 것이었다. 역사적 유물과 유적은 사라질 수도 있지만 단어 어근은 그 언어를 여전히 사용하는 한 계속 살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토끼와 거북이’ 세계 곳곳서 내려와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는 '토끼 이야기'에서 토끼는 트릭스터이자 메신저다. '이나바의 하얀 토끼'도 동해를 건너 고구려 제국의 문화와 문명을 일본 열도에 알린 메신저였다.
고대 한국어의 어근들을 포함한 알타이어 어근들의 목록을 완전하게 작성하는 일은 쉽지 않다. 중국에 있는 만주-퉁구스들은 더는 자신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빠른 속도로 중국에 동화해가고 있다. 그보다는 덜하지만 내몽골인들 역시 중국에 동화해가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고대 한국어의 어근을 찾는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인류의 아프리카 기원설을 믿는다면, 언어도 인류가 수만 년 동안 이동하고 교류하면서 분화한 결과일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아프리카처럼 먼 곳의 언어 속에서도 우리 동아시아와 연결되는 언어 코드가 숨어 있을 수 있다. 한국어의 유전자를 찾는 일을 여기서부터 시작해보자.
‘토끼와 거북이’의 이야기는 세계 곳곳에 잘 알려져 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서부 아프리카의 깊숙한 내륙에 위치한 북부 나이지리아의 여러 마을에서도 채집할 수 있었다. 아프리카 오지에까지 퍼진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는 고대 그리스의 이솝 우화가 사하라 사막을 거쳐 내려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나는 그 반대의 경로가 더 그럴듯해 보인다. 즉 원래의 아프리카 이야기가 사하라 사막을 타고 올라가 지중해 세계로 전해져서 그리스의 이솝이 기록으로 남긴 것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아프리카에서 토끼는 하나의 트릭스터(trickster, 속임수나 장난으로 질서를 어지럽히는 신화적 형상)다. 토끼는 상대방을 터무니없는 상황으로 몰아넣어 놀리고 조롱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결국 토끼의 이런 시도는 실패로 돌아가고 도리어 자기 자신을 어리석은 상황에 빠지게 한다. 토끼는 경기 상대인 거북이를 조롱하지만, 도중에 잠을 너무 많이 자 결국 거북이에게 지고 만다. 이솝은 분명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무시하지 말라는, 혹은 자신의 능력에 자만하지 말라는 도덕적 가르침을 주고 싶었던 것이다.
이런 토끼의 트릭스터 성격은 ‘이나바의 하얀 토끼(因幡の白うさぎ)’라는 일본 이야기에도 똑같이 나타난다. 이 이야기는 신화 범주에 속한다. 왜냐하면 이즈모타이샤(出雲大社)에 모신 오오쿠니누시노카미(大 神)와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나바(因幡), 혹은 인슈(因州)는 사닌도(山陰道)의 고대 지방 8개 중 하나이며, 돗토리 현(鳥取縣) 동부 지방의 옛 지명이다.
‘이나바의 하얀 토끼’는 바다를 건너가고 싶어했다. 자기의 고향 땅 고구려를 방문하기 위해 고구려의 동지중해(동해)를 건너서 말이다. 그래서 그는 와니자메(鰐鮫)라고 불리는 무서운 상어들을 모아놓고 그 등을 건너 뛰어 가려고 한줄로 늘어 놓으려는 꾀를 부렸다. 그러나 상어들이 그 꾀를 알아채고 토끼를 잡아 털과 가죽을 모두 벗겨버리고 만다.
바닷가에 발가벗겨진(赤裸, あかはだか, aka-hadaka, 발가벗다, 알몸뚱이) 채 있는 토끼를 발견한 오오쿠니누시노카미가 토끼를 도와주었다. 오오쿠니누시노카미는 기키 신화(記紀神話, 서기 712년 백제 귀족인 오오노야수아마로(大野安麻呂)가 편집한 ‘코지키(古事記)’ ‘キ’와 720년 쓰여진 ‘니혼쇼키(日本書紀)’)에 나오는 주요 신 중 하나다.
아무르강 길략족 언어서도 발견
오오쿠니누시노카미는 고구려 출신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그 신은 아시하라 노 나카투쿠니(葦原あしはらの中つ )라는 나라를 세웠고, 나중에 왕위를 물려주고 이즈모타이샤로 은퇴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러시아 부리야트공화국 울란우데 부근 부교도 마을의 민속 공연. 왼쪽에서 두 번째가 필자.
미키 마우스나 도널드 덕 같은 동물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영어를 알건 모르건 이 단어들에 포함돼 있는 ‘마우스(mouse)’와 ‘덕(duck)’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강력한 나라의 문화를 표현하는 단어들이 먼 지역에까지 급속히 퍼져가는 것이다.
동아프리카 스와힐리어(Swahili)로 ‘책(book)’은 ‘키타부(kitabu)’인데, 서아프리카 하우사어(Hausa)로는 ‘리타피(littaafi)’이다. 이것들은 원래 아랍어 ‘kitaabu(-n)’나 아랍어 정관사 ‘al-(the)’을 갖고 있는 ‘al-kitaab’에서 온 것이다. 물론 ‘책(The Book)’이란 모슬렘에게는 성서인 코란(the holy book, al-Qur’an)을 뜻하는 것이다. ‘al-kitaab’는 모로코 아랍어(Moroccan Arabic)로 ‘ilktaab’인데, 서부 아프리카에서 ‘*liktaaf’로 바뀌었으며, 그것들은 오늘날의 현대 하우사어(Modern Hausa)와 많은 다른 북부 나이지리아의 언어에서 ‘littaafi’로 남아 있다.
우리의 불쌍한 ‘이나바의 하얀 토끼’는 일본어로 ‘이나바노 시로 우사기’다. ‘토끼(hare, rabbit)’란 단어는 고대 및 현대 일본어로 ‘兎· うさぎ?おさぎ usag-i < osag-i’다. 고구려어로 ‘토끼’는 ‘烏斯含 *osag-am’이다. 한국어 ‘토끼<톳기 thoski’에서 ‘-oski’부분은 고구려어 및 일본어와 유사하지만, 중국어 ‘[ 토]tho-’가 그 앞에 붙어 있어서 중국어-한국어 합성어(Chinese-Korean compound)가 만들어졌다.
규슈 대학의 이타바시(板橋義三) 교수에 따르면, 토끼와 관련한 이 고구려어 단어는 니브흐어(Nivh)에서도 발견된다고 한다. 이 니브흐어는 아무르 강 하류에 사는 길략족(Gilyak) 사람들의 언어인데, 이들은 토끼를 ‘오스크(osk)’라고 하며, 그로부터 사할린과 홋카이도에 사는 아이누족(Ainu) 사람들의 언어로 ‘오스케(oske, 兎)’라는 단어가 나왔다는 것이다. 이것은 고구려의 영향력이 고구려의 지중해를 건너 남쪽의 이즈모(出雲)로부터 북쪽의 사할린에까지 미쳤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윤명철 교수가 보여준 통일신라와 발해(서기 698년~926년) 지도(우리 역사지도, 2006년)는 이런 상황을 매우 잘 형상화하고 있다.
일본에는 ‘이나바의 하얀 토끼’와 ‘토끼와 달’에 관한 어린이 동요가 있다. 그 노래는 다음과 같다.
兎, 兎, 何見て跳ねる?
十五夜お月樣見て跳ねる.
(토끼야, 토끼야, 무얼 보고 높이 뛰니?
둥근 보름달 보고 높이 뛰지.)
프랑스에도 ‘Au clair de la lune, mon ami piero’(달빛 아래 나의 친구 피에로)란 동요가 있다. 영어의 ‘lunatic(머리가 좀 돈)’은 프랑스어 ‘la lune(달)’에서 기원한 것이다. 한낮의 더운 날씨가 지나고 보름날 밤의 시원한 달빛 아래 인간은 모두 낭만적으로 바뀐 것이다. 토끼가 뛰어오르면, 아이들은 춤추기 시작한다. 젊은 연인들은 들떠서 서로 꼭 껴안는다. 피에로(어릿광대)의 성격은 ‘우스운(comic)’ 것이기도 하고 또 ‘슬픈(sad)’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토끼의 트릭스터적 성격은 피에로의 성격과 다소 유사하기도 하다.
城에 해당하는 일본어 한국어에 기원
대보름 십오야(十五夜)는 한국인들에게 특별하다. 하지만 왜 달에서 토끼가 떡방아를 찧고 있는 것일까. 언어학적으로 그 해답을 풀어보기로 하자. 일본어로 ‘떡방아 찧기’와 ‘보름달’은 발음이 거의 똑같다. 즉 ‘모치 투키(餠搗もちつき, 떡을 침)’와 ‘모치 두키(望月もちづき, 보름달)’다. 보름달 ‘모치 두키’ 안에 토끼의 형상이 있다고 상상해보면, 그 모습은 마치 떡방아 찧는 ‘모치 투키’의 모습인 것이다.
한국어로 ‘보름(달)’은 일본어로 ‘모치(두키)’다. 그래서 ‘떡은 ‘모치(餠, もち)’다. 이 두 한국어 단어의 어두자음 ‘p-’는 고조선어(Old Chosun)에서 기원한 것이며, 그 고조선어는 고구려어에서 ‘m-’으로 바뀌었다가 앞에서 말한 2개의 일본어 단어 형태로 남은 것이다.
일본에는 한국식으로 지은 성과 요새들이 남아 있다. 내가 예전에 산책을 다니던 후쿠오카 현(福岡縣)에 있는 오오노조우 성(大野城)은 전형적인 조선식 산성이다. ‘성(castle)’이나 ‘요새(fort)’에 해당하는 일본어는 3개가 있는데, 이들은 모두 한국어에서 기원한 것이다. 그중 하나가 고대 일본어 サシ(sas-i <*cas-i, ‘니혼쇼키’ 神功紀 五年 등)다. 이것의 한국어 형태는 자시라(cas-ira, ‘月印釋譜’ 第一六)와 잣(cas, ‘訓蒙字會’ 八)이다. 이렇게 볼 때 아이누어(Ainu) 형태인 チャシ(cas-i)는 일본어를 거쳐 온 것이 아니라 한국어에서 직접 차용해온 것임에 틀림없다.
아프리카에서 토끼는 트릭스터이기도 하지만 또한 누가 오는지, 그리고 무슨 일이 닥쳐오는지를 빨리 달려가서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전달자(messenger), 혹은 예고자(harbinger)로 알려져 있다. 토끼는 고구려의 지중해를 건너서 다가오는 고구려 제국의 문화와 문명을 일본 열도에 살고 있는 조몽시대 사람들과 아이누족 사람들에게 알려준 것이다.
고구려 사람들이 지중해를 건너가면서 한국식 성과 요새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성은 새로운 지배자가 진출해 세운 중요한 기지로, 새로운 문명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고구려 제국이 사라지고 1000년 이상이 지난 후에도 고구려어에서 기원한 이야기와 단어들은 옛 영토와 그 영향권 아래 있던 지역들에 여전히 남아 있으면서 우리들에게 고구려 제국의 영광을 말해주고 있다.
※ 본문 내용 ‘떡은 ‘모치(餠, もち)’ 다.에서 떡은 뒤 ‘모치(餠, もち)’ 앞에 아래그림이 들어간다 .
<시미즈 키요시 순천향대 초빙교수, 극동대 겸임교수·언어학>
<후원 : 대순진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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