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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 총선 보수신문·보수정당 동맹이 실패한 이유

[비평] 박근혜 정부 지나며 3당합당 효과 사라져, 지역구도 버리고 새 가치 제시했어야…보수신문, 10년전과 같은 관점

장슬기 기자 wit@mediatoday.co.kr 승인 2020.04.21 10:09


어쩌다 맛이 조금 변했다고 단골식당을 바꾸지 않는다. 맛을 회복하지 못하고, 옆집에서 더 맛있는 반찬을 내놓을 때 새 식당을 찾는다. 정부수립 이래 국민들 단골식당은 미래통합당 계열의 권위주의 보수정당이었다. 


1987년 ‘독재타도’ 구호를 내건 민주화 성공으로 보수정당에 위기가 왔지만 1990년 1월 당시 여당인 민주정의당(TK)은 야당인 통일민주당(PK, YS), 신민주공화당(충청, JP)과 합당으로 강건해졌다. 보수정당은 이후에도 단독 집권이 가능하고 국회 과반도 가능한 한국정치의 ‘상수’였다. 


박근혜 정부 시기를 지나며 보수정당은 상수가 아닌 변수로 전락했다. ‘새누리vs반새누리’ 이후엔 그 구도를 보기 어렵다. 3당합당의 주역인 YS와 JP가 세상을 떠나며 물리적으로도 새 정치판을 시작해야 했다. 당시 조중동으로 불리는 보수신문에선 이를 예측했다. 


3당합당의 효력 끝나 


김영삼 전 대통령 사망 다음날인 2015년 11월23일 조선일보 1면 부제는 “민주화운동 30년을 온몸으로 헤쳐나오며 군정 종식시킨 정치인”, 3면 부제는 “민주화 투쟁의 상징 YS도 서거…여야 새로운 어젠다 제시해야”였다. YS를 3당합당이 이전 이력인 ‘민주화 투사’로 강조했다. 사설에선 “지역감정이라는 해묵은 숙제를 강물에 실어 떠나보내자”고 했다. 동아일보도 1면 “문민정부 연 ‘민주화 거목’”, 중앙일보도 1면 부제 “대한민국 민주화 이끈 ‘양김 시대’ 저물다”라고 했다. 


▲ 동아일보 2015년 11월23일 1면

▲ 동아일보 2015년 11월23일 1면


보수정당(당시 신한국당)에서 대통령을 지낸 인물이고, 사망 직후에 혹평하지 않는 정서 탓에 민주화 투사에 방점을 뒀을 가능성이 있다. 3당야합이라 비판받는 구태정치, 그 결과물인 지역구도에서 이젠 벗어나자는 당위론도 이런 평가가 나온 원인 중 하나다. 결과적으로 3당합당 이전의 YS로 기록됐다. 보수정당이 PK를 움켜쥔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김종필 전 총리 사망 다음날인 2018년 6월24일, 보수신문은 ‘3김정치’가 물리적 수명을 다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3김정치’는 당내 권위주의 상징이자 지역구도의 폐해를 만든 주범으로 비난받아왔다. JP가 3김정치의 한축이었지만 보수신문은 그의 유연성·합리성에 초점을 뒀다. 


중앙일보는 이날 사설에서 “이념과 진영논리보다는 실용과 민생이 중요하다는 JP의 실사구시가 진정한 보수의 가치”라며 “절체절명의 고사 위기에서도 내홍과 불통만 거듭하고 있는 보수정당”을 비판했다.


▲ 2018년 6월25일 중앙일보 1면 사진기사

▲ 2018년 6월25일 중앙일보 1면 사진기사


조선일보는 박정희와 JP, 김대중과 JP가 나란히 있는 사진을 두면에 나란히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1면에서 YS와 JP가 함께 웃는 사진을 내걸었다. 동아일보는 정치면에서 “YS-DJ 잇따라 대통령 만든 ‘킹메이커’”라고 JP를 평가했다. 


보수신문-보수정당의 카르텔은 이 당시 분석처럼 YS와 JP의 빈자리를 채울 새 메뉴를 제시해야 했다. 중앙일보 윤석만 기자가 쓴 ‘리라이트’를 보면 한국의 보수는 ‘보수의 외피를 걸친 권위주의’다. 이를 ‘안보보수’라 하자. ‘리라이트’에선 이제 이들이 자유주의의 가치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했다. 경제적 자유주의만 있을 뿐 다문화·젠더 등 사회영역에선 자유주의가 없다는 지적이다. ‘시장보수’만 있었다는 말이다. 


보수의 새 가치 제시하지 못한 보수신문


보수신문은 여전히 낡은 콘텐츠인 ‘안보보수’와 ‘시장보수’를 대체할 새로운 보수의 가치(ex, 사회보수)를 찾지 못했다. 민주당이 망하기만 바랐다. 코로나19가 정부여당을 도왔다는 평가에는 마치 코로나가 창궐하길 바랐다는 뉘앙스가 묻어났다. 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했지만 양극화와 경기침체를 해소할 대안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번 총선은 그 결과를 확인한 선거였다. 일부 매체에선 이번 선거에 지역주의가 부활했다는 엉성한 분석을 내놓았다. PK지역 선거 결과로만 넘겨짚은 분석이다. 접전지역이 늘었고 과거에 비하면 득표율이 늘었다. 40% 이상 득표한 민주당 후보도 20대 총선 당시 8명에서 이번엔 16명으로 두배 늘었다. 대전은 모두 민주당이 차지했고 충북과 충남 역시 여당이 이겼다. 호남에선 호남지역주의를 내건 민생당이 전멸했다. 


총선 직후 한 통합당 인사를 만났다. 그는 통합당이 패배할 수밖에 없던 이유를 이렇게 분석했다. “민주당은 지역+가치를 담았다. 그게 공정이든 인권이든 필요한 건 다 선점했다. 통합당은 지역만 가지고 선거에 뛰었다.” 어차피 될 지역(TK·강남)만 이겼다는 지적이다. ‘통합당에도 보수적 가치가 있지 않느냐’고 다시 물었다. “애국? 자유? 그런 게 지금 매력적일까?” 


문재인 정부는 ‘공정한 기회’란 시대정신을 선점했다. 지난해 ‘조국사태’ 이후 통합당은 이 이슈에서 우위를 보일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먼저 위성정당을 만들겠다며 꼼수를 부렸고, 명단까지 발표한 위성정당의 비례순번을 뒤바꾸기도 했다. 공천 과정에서 보인 모습은 ‘공정’이 아닌 ‘부당’과 ‘편법’이었다. 선거가 끝나자 황교안 전 통합당 대표에게 책임을 씌우는 모습은 통합당과 한배를 탔던 보수신문의 유체이탈 화법이다. 


바뀌지 않는 보수신문 프레임


보수정당이 이겼던 선거에서 보수신문은 제 역할을 했을까. 


19대 총선 전 보수신문이 가장 집중한 이슈는 ‘나꼼수 김용민’ 비판이었다. 네거티브 전략이다. 총선 직전인 2012년 4월7일 “무상보육·반값등록금 시행 땐 연소득 4000만원의 40대는 세금 22만~26만원 더 낸다”란 조선일보 기사는 ‘복지=세금낭비’ 주장이다. 21대 총선에서 정부여당의 실정만 강조하며 코로나19 지원자금을 비판했던 기사와 거의 똑같다. 


▲ 19대 총선을 앞둔 2012년 4월7일 조선일보 1면(위), 21대 총선을 앞둔 지난 6일 조선일보 1면. 전형적인 네거티브 보도들이다.

▲ 19대 총선을 앞둔 2012년 4월7일 조선일보 1면(위), 21대 총선을 앞둔 지난 6일 조선일보 1면. 전형적인 네거티브 보도들이다.


2010년대 들어 북풍이나 경제성장이 선거의 주된 의제가 된 적은 없다. 안보보수와 시장보수의 경쟁력은 거의 소멸했다. 무상교육(보편복지), 경제민주화(민생·불평등), 세월호 참사나 코로나19(안전) 등 사회이슈가 대신했다. 


이명박 정권 말기, 2012년 대선을 1년도 안 남긴 시점에서 박근혜는 여당 내 야당으로 대안역할을 했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민간인 불법사찰, 언론장악 등의 실정과 불통 이미지로 오염됐다.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졸속 협상에 대해 박근혜는 “국민들 불안을 이해한다”고 했고, 정부의 세종시 행정수도 이전 무효화에 반대하며 국토 균형발전을 주장했다. 단순히 친이계와 친박계의 갈등이 아닌, 박근혜가 대안을 제시해 얻은 총선승리였다. 


같은해 대선에서 박근혜는 보편복지를 공약해 당선됐고, 집권 초 이를 실행했다. 역설적으로 보수의 두 가지 유산인 ‘박정희’와 ‘북풍’의 유통기한은 박근혜 당선으로 끝났다.  


세상은 변했는데 보수신문은 2020년에도 같은 프레임으로 기사를 쓰고 있다. 아무리 소선거구·양당제라도 상대의 잘못 만으로 권력이 이동하진 않는다. 이 전략을 21대 총선에도 써먹은 걸 보면 보수신문은 보수정당보다 낡았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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