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823004
마의는 천한 신분? 정5품 승진도 했다
[사극으로 역사읽기] MBC 드라마 <마의>, 두 번째 이야기
13.01.09 18:42 l 최종 업데이트 13.01.09 18:42 l 김종성(qqqkim2000)
▲ 고난을 겪는 마의 백광현(조승우 분). ⓒ MBC
드라마 <마의>의 주인공 백광현이 한도 끝도 없는 고난의 연속에 시달리고 있다. 출생 직후부터 피살의 위기를 겪은 백광현은 어릴 때 양아버지와 함께 섬에 거주한 기간을 빼고는 단 한순간도 마음 편히 살아본 적이 없다.
백광현의 친아버지를 죽이고 재산을 탐내는 자들은 항상 그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 그래서 그는 항상 살해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한 고비를 넘겼다 싶으면 또 한 고비가 나타나는 식으로, 그의 시련은 도무지 끝날 줄을 모른다.
백광현이 시련을 겪는 것은 꼭 친아버지 때문만은 아니다. 한때 천한 마의였다는 사실도 그의 불행을 가중시키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천한 마의 출신이 넘봐서는 안 될 영역을 탐낸다는 이유로 백광현의 적들은 그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다.
백광현은 섬에서 나와 양아버지와 사별한 뒤, 말 목장으로 흘러 들어가면서부터 자연스레 마의의 길을 걸었다. 그런데 이 경력이 번번이 그의 발목을 붙들고 있다. 천한 마의 출신이라는 이유로 하마터면 의생 시험(의대 입시)에 응시조차 못할 뻔했다. 어렵사리 의생이 된 뒤에도 그의 실력을 시기하는 자들은 '마의 출신 주제에!'라며 어떻게든 그를 해하려 하고 있다.
마의가 '신분상의 천민'은 아냐... 양인도 있고 노비도 있어
하지만 위의 상황은 순전히 드라마 속 상상이다. 실제의 백광현은 드라마에서처럼 고초를 겪지 않았다. 조선 후기 영의정인 조현명의 문집인 <귀록집>에 수록된 '백지사 묘표' 즉 '백광현 묘비'에 따르면, 백광현은 왕궁에서 편하게 경호원 생활을 하다가 우연한 계기로 마의를 거쳐 의사가 되었다.
그럼, 실제의 백광현은 경호원 생활을 그만둔 뒤 마의 출신이라는 이유로 차별이나 고난을 받았을까? 드라마 속의 악당들처럼 조선시대 사람들은 마의 출신을 그렇게까지 천대했을까?
실록에는 마의를 천한 부류로 취급하는 문장이 종종 나온다. 하지만, 이런 기록을 보고 마의의 신분을 속단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사대부들이 마의를 천시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의가 신분상의 천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 마의가 드라마에서처럼 대단한 차별을 받은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 제주도 서귀포시 송악산에서 풀을 뜯고 있는 백마. ⓒ 김종성
마의 자체는 법적인 신분 개념과 무관했다. 그냥 직업이었을 뿐이다. 그래서 마의 중에는 양인도 있었고 노비도 있었다. 이 점은 뒷부분에서 자세히 설명할 것이다.
선조 25년 12월 5일자(1593년 1월 7일) <선조실록>에는 마의인 오치운과 김응수가 6품 관직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6품은 지금으로 치면 중앙 행정기관의 계장급이다. 일반 서민들은 쉽게 근접할 수 없는 지위였다. 이렇게 마의가 관직을 받았으니, 이들을 천한 부류로 취급한 기록을 액면 그대로 이해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천민이란 용어는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됐다. 국가나 타인에게 신분적으로 예속된 노비를 가리킬 때도 있었고, 승려·무당·수군·백정·광대처럼 기피 직종에 종사하는 양인(자유인)을 가리킬 때도 있었다. 법적인 개념의 천민은 노비뿐이었다. 승려·무당·수군 등은 남들이 기피하는 천한 직종이라는 의미에서 천민으로 불렸을 뿐이다.
17세기에 13년간 조선에 표류했던 헨드릭 하멜은 귀국 후에 작성한 <조선국에 관한 기술>에서 "(조선의) 승려들은 천한 일도 해야 하기 때문에 거의 노비나 다름없다"고 말한 뒤 "그러나 고위급의 승려는 높은 학식 때문에 존경을 받는다"고 기록했다. 참고로, 하멜이 작성한 <하멜 일지>와 <조선국에 관한 기술>은 편의상 <하멜 표류기>로 통칭된다.
하멜은 승려들이 천민처럼 취급되고 있지만 신분상으로는 일반 양인이라는 점을 간파했다. 그래서 "노비나 다름없다"고 말한 것이다. 또 그는 일부 승려들이 국가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큰 존경을 받는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승려에 대한 차별은 신분적 제약이 아니며 승려도 능력에 따라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있다는 점을 파악한 것이다.
이방인인 하멜도 조선의 신분구조를 이처럼 정확히 파악했는데, 오늘날의 한국 작가들이 이것을 전혀 엉뚱하게 파악한다는 것은 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하멜처럼 조선시대를 직접 살아보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인터넷에 산재한 적지 않은 역사 기록을 통해 마의의 신분을 파악할 수 있는데도 그렇게 하지 못한다는 것은 좀 의아한 일이다.
'마의는 천한 부류'라고 언급된 실록 기록이 적지 않다. 그런데 그런 언급 뒤에는 '어느 마의가 몇 품 관직을 받았다'는 기록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마의는 천한 부류'라는 부분만 읽지 말고 그 뒷부분의 의미도 함께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된다.
드라마는 작가가 마음껏 상상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하지만, 마의의 신분을 전혀 엉뚱하게 묘사한 것은 이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사전에 고증 작업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결과라고 밖에 할 수 없는 것이다.
마의가 '천한' 직업?... 정5품 이상으로 승진하기도
▲ 말을 관리하는 부서인 사복시가 있었던 사복시 터. 서울시 종로소방서 옆에 있다. 오른쪽에 교보빌딩이 보인다. ⓒ 김종성
마의가 천한 직업으로 분류된 것은 승려·무당·수군 등이 천민처럼 취급된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남들이 꺼리는 직종이라고 그렇게 분류됐던 것이다.
공자의 예법 사상을 담은 <예기>의 옥조 편에서는 "군자는 이유 없이 소를 죽이지 않고, 대부(大夫)는 이유 없이 양을 죽이지 않으며 사(士)는 이유 없이 개나 돼지를 죽이지 않는다"고 했다. 이런 사상의 영향 때문에 귀족들은 짐승 다루는 일을 기피했고, 이런 이유 때문에 마의가 백정 같은 천한 직업으로 분류된 것이다.
하지만, 마의가 받은 대우는 백정이 받은 대우와는 차원이 달랐다. 성종 3년 5월 29일자(1472년 7월 5일) <성종실록>에 따르면, 마의는 화원(화가)과 함께 잡직으로 분류됐고 최고 종6품까지 승진이 보장됐다.
1472년 당시에는 종6품이 마의의 최고 품계였지만, 이 규정은 그 뒤에 개정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연산군 12년 1월 14일자(1506년 2월 6일) <연산군일기>에 주치형이란 마의가 정5품을 받는 장면이 나오기 때문이다. 정5품은 오늘날의 중앙 행정기관 과장급이다.
이보다 233년 뒤의 일을 기록한 영조 15년 7월 13일자(1739년 8월 16일) <영조실록>를 보면, 중앙 행정기관인 이·호·예·병·형·공조의 요직이 마의 출신들에게 돌아간다고 개탄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것은 정5품 이상으로 승진하는 마의도 적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천한 직종이란 소리를 들으면서도 마의 출신들이 승승장구했던 것이다.
물론 고위직에 오른 뒤에도 마의 출신들은 여전히 차가운 시선을 느껴야 했다. 마의가 고위직에 임명될 때마다 사대부 출신 관료들이 이런 인사 조치를 비판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마의는 우리와 똑같은 부류가 아니라는 것이 사대부들의 항변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의의 승진을 차단할 수는 없었다. 말이 자동차나 비행기의 역할을 수행하던 시대에, 마의의 사기를 꺾으면 국가가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전국 곳곳을 연결하는 역참제도를 제대로 작동시키기 위해서라도 그들을 격려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국가는 선비 출신들의 반대에도 아랑곳없이 그들에게 관직을 내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모든 마의가 다 관직을 받은 것은 아니다. 세종 9년 9월 22일자(1427년 10월 12일) <세종실록>에 따르면, 마의 중에는 양인도 있었고 노비도 있었다. 양인 출신의 마의는 관직을 받을 수 있었지만, 노비 출신은 그렇지 않았다.
한편 마의를 확보하는 일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위의 <세종실록>에 따르면, 마의 기술이 있는 죄인들을 국영 목장에 배치하는 일이 많았다. 마의를 확보할 목적으로 마의 출신 범죄자들을 감옥 대신 국영 목장에 보내는 일이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마의는 관직 진출이 가능했지만, 선비들이 기피하는 직종이었다는 의미에서 천한 부류로 취급됐다. 마의는 절대로 법적 개념의 천민이 아니었다. 남들이 싫어하는 직종이란 의미에서 그렇게 불렸을 뿐이다. 위에서 설명한 대로 그들 중에는 법적인 개념의 양인도 있었고 노비도 있었다.
그러므로 드라마 <마의>에서 마의 출신이라는 이유로 백광현에게 가해지는 시련과 차별은 마의의 실상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것이다. 사대부들이 마의를 폄하한 것은 사실이지만, 거기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마의들이 기분이 상해서 파업이라도 하는 날에는, 관료들의 발이 꽁꽁 묶이고 국가 운영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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