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79336

'자유인' 광해, 화장실 이용 방법도 달랐다
[역사 파고들기 7편]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12.09.17 20:17 l 최종 업데이트 12.09.17 20:17 l 김종성(qqqkim2000)

▲  <광해, 왕이 된 남자> 팸플릿. ⓒ 리얼라이즈 픽처스

광해군에 관한 영화처럼 보인다. 하지만, 아니다. 광해군과 관계없는 것은 아니지만, 광해군에 관한 영화는 아니다. 지난 주 개봉된 <광해, 왕이 된 남자>(이하 <광해>)를 두고 하는 말이다. 

<광해>는 항상 독살 위협을 느끼던 조선 제15대 광해군이 갑자기 건강이 위독해지자, 자신과 꼭 닮은 대역에게 보름간 왕 노릇을 맡긴다는 상상에서 비롯된 영화다. 비밀리에 광해군의 대역으로 뽑힌 인물은 한양 유흥가에서 임금을 흉내 내며 돈을 벌던 광대다. 

진짜 광해군이 자리를 비운 사이, 가짜가 왕 노릇을 하면서 빚어내는 각종 에피소드를 다룬 것이 <광해>란 영화다. 배우 이병헌이 진짜와 가짜를 맡아 1인 2역을 하고 있다. 

궁중 법도를 배웠을 리 없는 광대가 왕을 흉내 내고자 용을 쓰니, 행동 하나하나가 웃기고 어색하지 않을 수 없다. 특별히 웃기는 영화는 아니지만, 이런 장면 하나하나가 작은 웃음을 주는 영화다. 

가짜 광해군이 애를 먹는 대목은 왕처럼 기품 있게 말을 해야 한다는 점, 음식을 기품 있게 먹어야 한다는 점, 궁녀가 보는 데서 용변을 봐야 한다는 점 등이다. 까다로운 법도를 자연스럽게 소화해내야 하는 것이 그에게는 엄청난 스트레스다. 

중전 류씨(한효주 분)를 상대해야 한다는 것도 무척 골치 아픈 일이다. 가짜 광해군이 아무리 진짜를 닮았다 해도, 광해군과 부부생활을 한 중전까지 속이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가짜는 그래서 중전을 회피하면서도 한편으론 야릇한 감정을 품고 '접근'해보기도 한다.  

만약 <광해>와 같은 상황이 실제 있었다면, 어땠을까? 궁중 법도를 전혀 모르는 광대가 왕 노릇을 해야 했다면, 그런 상황이 얼마든지 벌어졌을 수 있다. 가짜는 엄격한 법도를 소화해내느라 진땀을 흘렸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광해군 때라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만약 다른 시대를 배경으로 했다면, 영화 속 상황들이 충분히 그럴싸했을 것이다. 하지만, 광해군 시대였기에 상황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지 않으면 안 된다. 

광해군은 연산군과 더불어, 법도란 것들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임금이다. 그는 궁중 법도는 물론이요 세상 법도로부터도 비교적 자유로웠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 광해군 대역이 있었다면, 그 대역은 그런 '비교적 자유로운' 임금을 연기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다.

광해군이 개방적 가치관의 소유자였음을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증거는 명나라에 대한 태도였다. 그의 시대는 명나라를 하늘처럼 떠받들던 시대였다. 그런 시대에 그는 국익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명나라와의 동맹을 재고하고 실리 외교를 지향했다. 

사대주의보다는 자주외교에 좀더 가까웠던 한국의 대통령들도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훼손하지는 못했다. 광해군은 그렇게 했다. 그런 중에도 명나라와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경제적·외교적 이익을 뽑아냈다. 매우 실용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광해군이 인목대비를 유폐시킨 이유 

광해군이 법도로부터 자유로웠다는 점은 아홉 살 연하의 새엄마인 인목대비를 서궁(덕수궁)에 유폐시킨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인륜이라는 잣대로 보면 광해군의 행동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지만, 이 일은 그가 당시의 가치관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인물이었음을 보여준다. 


▲  서궁(덕수궁) 정문인 대한문. 서울시청 앞. ⓒ 김종성

일반적으로 우리 시대는 개인의 능력을 먼저 본 다음에 인간성을 본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는 인간성을 먼저 본 다음에 능력을 봤다. 조선시대에 인간성을 평가하는 바로미터는 효심이었다. 이 점은 조선시대의 아동 교재인 <소학>에서도 나타난다. 

<소학> 명륜 편에는 "어버이를 사랑하는 사람은 감히 남을 미워하지 않고, 어버이를 공경하는 사람은 감히 남에게 거만하게 굴지 않는다"(A)는 문장과 "효성으로 주군을 섬기면 충성이 된다"(B)는 문장이 있다. 효심이 대인관계로 연결되고(A) 충심으로 연결된다(B)는 이 내용은, 효심을 인격의 바로미터로 인식했던 당시의 분위기를 보여준다. 

이 글에서 중요한 것은, 광해군이 효자냐 아니냐가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인격의 바로미터로 간주되는 효도란 가치에 구속되지 않을 만큼 광해군이 독특한 가치관을 소유했다는 점이다. 그는 궁중법도나 세상법도로부터 자유로운 인물이었다. 

광해군이 새어머니를 서궁에 유폐한 행위는 옳지 않지만, 그가 이렇게까지 된 데는 각박한 환경의 탓도 컸다. 출중한 능력과 공로(임진왜란 지휘)에도 불구하고 서자라는 이유로 아버지의 인정을 받지 못한 점, 기득권층의 주류로부터 항상 견제를 받은 점, 임금이 된 뒤에도 명나라가 자격 시비를 건 점, 새어머니가 광해군의 정적들과 연계된 데서 알 수 있듯이, 그는 기존의 법도를 다 따르고서는 도저히 왕 노릇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광해군이 새어머니를 유폐시킨 점만 놓고 그의 인격을 평가하는 것은 성급한 일이다. 중요한 것은, 그가 필요할 때는 세상 법도를 과감히 거부했다는 점이다.  

특이한 그의 용변 습관 

광해군이 법도에서 해방된 남자였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또 있다. 그것은 영화 <광해>에도 묘사된 용변 습관에서 드러난다. 

<광해>에서 가짜 광해군은 진짜를 흉내 내기 위해, 궁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볼일을 봤다. 방안에 매우틀이란 나무 변기를 놓고 일을 치른 것이다. 매우틀은 매우 즉 매화(梅花)를 담는 그릇이란 뜻이다. 왕의 배설물을 매화에 빗대어 고상하게 표현했던 것이다. 임금이 평소와 달리 쾌변을 본다고 생각한 궁녀들은 "경하 드리옵니다!"를 외쳤고, 가짜는 "뭐 이런 것 가지고!"라며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조선의 왕들은 집무를 보다가 배가 아프면 용변 담당인 복이나인을 불렀다. 그러면, 왕은 복이나인이 갖고 온 매우틀 위에 쪼그리고 앉았다. 일이 끝나면, 복이나인은 그것을 들고 내의원으로 갔다. 내의원 의사들이 건강 체크를 위해 맛을 봐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용변을 보는 것은 왕의 특권이 아니라 왕에 대한 제약이었다. 왕의 건강을 보호하고자 이렇게 한다고 했지만, 반드시 그런 목적만은 아니었다. 의사들이 맛을 봐야 한다고 해서, 꼭 궁녀가 보는 데서 공개적으로 볼일을 치를 필요는 없었다. 

이것은 왕의 몸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왕의 일상을 구속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왕을 복잡하고 엄격한 궁중법도 안에 가둬둠으로써 왕권을 제약하기 위한 의도도 담겨 있었던 것이다. 

광해군은 이런 법도로부터도 자유로웠다. 그는 여느 왕들과 달리 일반 화장실에서 볼일을 봤다. 인목대비 쪽의 회고록인 <계축일기>에 나타난 광해군의 용변 습관에서 그 점을 알 수 있다. 


▲  화성행궁에 전시된 전통 화장실.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소재. ⓒ 김종성

<계축일기>에는 광해군 재위 당시 세자의 유모인 덕환이란 궁녀가 인목대비와 나눈 뒷담화가 나온다. 덕환은 광해군을 두고 이렇게 흉을 봤다. 

"겨울에 똥을 누실 때는 아침부터 뒷간에 가서는 정오 때까지 계속 누시고, (웃어른께) 문안을 드려야 할 때는 유난히 (뒷간을) 자주 드나들며 똥을 두세 번씩 누시니 그렇게 애가 타는 노릇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에 따르면, 광해군은 집무실이 아닌 화장실에서 볼일을 봤고, 귀찮은 일이 생길 때면 화장실에 들어가서 몇 시간씩 시간을 때우곤 했다. 

어떤 사람들은 광해군의 적인 인목대비 쪽에서 기록한 회고록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고 말하지만, 그렇게 치면 이 세상에 그 어느 회고록도 믿을 수 없을 것이다. 모든 회고록은 어느 정도는 주관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사소한 내용까지 모두 다 거짓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화장실에서 시간을 끄는 광해군 때문에 짜증이 난다고 궁녀 덕환이 뒷담화를 한 것으로 보아, 광해군이 화장실을 이용한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로 보인다. 

물론 항상 화장실만 이용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광해군이 여느 왕들과 달리 화장실도 이용한 것만큼은 확실하다. 사소한 일 같지만, 이것은 그가 궁중법도에 그다지 얽매이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만약 이런 사실을 알았다면, <광해>의 가짜 광해군은 배가 아플 때마다 얼른 화장실로 뛰어갔을 것이다. 창피를 무릅쓰고 궁녀들 앞에서 바지를 벗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위의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광해군은 온갖 형태의 법도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임금이었다. 법도를 알고 법도를 지키되 필요할 때면 법도에서 스스로 해방될 수 있는 임금이었다. 그런 자유로움이 있었기에 실리외교와 개혁정치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왕의 대역을 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임금을 흉내 내는 것이 오히려 더 힘들 것이다. 법도를 엄격히 준수하는 임금을 흉내 내는 편이 훨씬 더 수월할지도 모른다. 법도를 알고 법도를 지키되 크게 얽매이지 않는 임금을 연기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영화 속 가짜 광해군이 진짜의 그런 특성을 알았다면, 아예 처음부터 대역으로 나설 엄두도 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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