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56529
북한은 절대로 붕괴하지 않는다, 허망하십니까?
[주장] 체제 붕괴에 기댄 통일전략은 무의미... 5·24 조치 해제하고 교류 재개해야
14.11.27 08:15 l 최종 업데이트 14.11.27 08:15 l 그레고리 토롤라야(knsi)
▲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완공된 마식령 스키장을 둘러보는 모습을 2013년 12월 31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 연합뉴스
남북관계가 오락가락하는 것은 계절이 바뀌는 것만큼이나 빈번한 일이었지만, 보수인사들이 청와대에 자리를 잡고 난 뒤 지난 6년간의 남북관계는 특히나 경색되었다. 최근까지만 해도 변화에 대한 기대는 크지 않았다. 많은 전문가들이 북한은 박근혜 정부에 대해 이미 "손을 놓았고", 박 대통령을 진지하게 상대하지 않을 것이라 추측했기 때문이다. 평양이 현 정부로부터 의미 있을 만한 교류를 기대하지 않는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널뛰는 남북관계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그들의 입장에서 사실상 그들의 유일한 협상도구인 핵무기를 포기하면서 항복하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 대가로 그들의 경제적, 정치적 체제를 바꿀 목적을 가진 "협력"을 받으라는 것이었다. 이는 남한 주도의 통일로 이어질 터였다.
북한에게 우선적 비핵화를 요구하는 것은 (핵 체제는 북한의 헌법에 명시되어 있으며 핵-경제병진노선은 현 지도자의 정책적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마치 이슬람교도와 어떠한 대화를 시작하기도 전에 그에게 세례부터 받으라고 강요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서울의 대화하려는 의지는 북한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의 관측자들에게도 의심스러워 보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멈춰 있던 남북 간 대화를 재개하기 위한 북한 지도층 '삼인방'의 10월 남한 방문은 모두에게 충격적이었다. 그 방문은 김정은의 건강 문제에 대한 소문들이 떠돈 직후에 이루어졌다. 이는 평양 정권의 붕괴 가능성과 남한이 유사시에 재빨리 대처할 수 있도록 대비할 필요성에 대한 논의를 다시 활성화 시켰다.
이러한 소문들은 김정은이 다시 등장하면서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붕괴론'과 '쿠데타'를 주장해온 세계의 '전문가'들을 다시 한 번 민망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남북 간 총격, 군사회담의 실패, 풍선과 대북전단 관련 사건들로 인해 타결 가능성은 다시 미궁 속으로 빠졌고 고위급 회담은 취소되었다. 남북 간 통일 의제에 대한 시각 차이는 이러한 단기적 사안들보다 훨씬 더 깊다. 기본적으로 관계 설정 모델 자체에 대한 의견부터가 다르다.
허망한 북한 붕괴론
한반도 통일에 대한 전제조건으로 북한의 '붕괴 임박'을 고려하는 시각이 지난 25년간 남한과 미국 정치계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 이 시기는 한반도 화합의 잃어버린 시대다.
심지어 진보적인 서울 정부가 내놓았던 보다 기민한 접근 전략들도 (1998~2008년의 햇볕정책) 사실상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시장의 힘과 진보적 사상을 소개함으로써 북한 내부에서부터 정치적, 경제적 구조를 희석시키고 체제가 천천히 와해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연착륙'이라고도 불리운다.
박근혜 정부가 이명박 정부 때보다 덜 강경한 노선을 택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서울의 권력층 내에서는 오직 단 하나의 가망성 있는 시나리오만이 우세해 보인다. 기회가 왔을 때 김씨 정권의 독재를 뿌리 뽑아 북한을 장악하고 흡수하는 것이다.
동시에, 역설적으로 대다수의 남한 사람들은 그 상황이 남한 경제에 엄청난 부담을 안겨주게 될 것이고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국제적 경쟁력을 잃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 이것이 최악의 시나리오인 것은 아니다. 하룻밤 새에 통일이 된다면, 직접적인 무력 충돌이 없을지라도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꽤 높다.
소수라 할지라도 북한 인구의 1/20 정도라고 여겨지는 대략 1백만 명의 고위 계층들 가운데 급진파들 무리가 싸우기로 결심한다면, 통일 대박을 정말 지저분한 상황으로 만들 수 있다. 게릴라전을 위한 모든 기반은 이미 북한에 다 준비되어 있다. 최선의 상황에서도 남한 정부는 스스로를 '질 낮은 사람들'이라고 느낄 북한 사람들을 재교육하고 보조하는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고, 이는 사람들의 불만을 장기화 시킬 것이다.
북한은 남한보다 중국을 선택
▲ 이야기 나누는 북한 고위대표단 10월 4일 인천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열린 2014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에서 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과 최룡해 노동당 비서가 얘기를 나누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강대국들의 반응 역시 고려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중국은 절대로 남한이 북한을 흡수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정말 긴급한 위기 상황에서 북한의 고위층들은 제대로 된 우대조치와 보장이 제공되지 않는 한 남한의 침공을 기다리기보다 중국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을 선호할 것이다.
그리고 친중 정부가 이전 지도자를 추방한 뒤 현재의 정부를 계승할 것이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새로운 지배층은 결국 똑같은 무리의 사람들 중에서 형성될 것이다. 한마디로 북한의 고위층을 교육 시키는 것 말고는 대안이 전혀 없다.
근본적인 문제는 북한 정치계급의 주요 이해관계와 속성에 대한 서울의 유감스러운 오해다. 그리고 이 계급의 이해관계를 고려하는 것 자체를 전면 거부하는 데서 오는 것으로 보인다. 서울은 '북한의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다방면으로 호소하는 것을 선호한다. 원조를 보내는 것부터 '찌라시'를 보내는 것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순종적인 '억압받는 대중'은 통일 공식에 전혀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부분이 강조되어야 한다. 권력자들이 그들을 성공적으로 세뇌 시켜서 자신들은 정말 전쟁 중에 있으며 반기를 드는 것은 애국적이지 못하고 혹독하게 처벌되어야 한다고 믿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북한의 정권과 국민을 분리시키는 전략의 한계
따라서 북한 정치계급이 국민들에게 지지받지 못한다는 전제하에 그들을 피해가거나 와해시키는 것에 초점을 맞춘 통일 계획들은 실패할 것이 자명하다. 북한 정치 체제는 사실 고립된 가족 독재가 아니라 유교 전통에 매우 유사하게 만들어져 이미 3대째 이어진 세습 귀족·관료정치인 것이다.
부분적으로 양보를 하도록 유인할 수도 없다. 구소련이나 다른 공산주의 국가들과는 달리 정치계급의 일원들이나 그들의 자식들이 새 체제 하에서 성공적인 자본주의자나 관료들이 될 가망이 없다.
당연하지만 서울의 시나리오대로 일이 흘러간다면, 남한 주도의 통일이 된 후 고위계층들은 처벌을 받거나 범법자 취급을 받으며 격하될 것이다. 심지어 '신이 내린' 지도자를 제거한다 해도 체제의 파괴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새로운 왕족 가문이 권력을 잡을 것이고 어쩌면 외부의 도움을 받을지도 모른다.
북한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통일은 남한의 방식을 뒤집은 것이지만 흡수통일이라는 점에서는 유사하다. 미군이 철수하고 난 뒤에 '허수아비 정부'를 몰아내는 것이다. 그러나 오직 소수의 강경파들만이 그런 이상을 꿈꾸고 있는 것 같다.
공식적인 '연합(confederation)' 방식 이제는 더 현실적으로 보인다. 이는 김정은의 새로 임명된 외무성 리수용의 첫 UN 연설에서도 강조되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외부의 권력들에게도, 적어도 중국, 러시아 그리고 일본에게는, 한반도에서 공존이 현 상태의 붕괴나 무력 충돌, 혼란보다 나은 선택지로 보인다.
물론 한국전쟁을 시작하고 동족을 고문한 자들이 그 죗값을 치러야 한다는 생각은 남한에 깊게 뿌리박혀 있다. 그러나 젊은 층은 중세시대적인 복수에 목을 매는 것 같지 않아 보인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과 우선순위에 더 신경을 쓴다.
같은 민족이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접점이 없는 사람들을 개화시키고 도와줘야 한다는 역사적 책무를 짊어지는 것은 그들의 우선순위에 들어 있지 않을 수도 있다. 심지어 언어조차 눈에 띄게 달라져 버렸다. 이제는 서울의 정치계가 21세기의 현실을 인식할 때도 되지 않았는가?
한반도 공존을 위한 첫단추
▲ 탈북자단체, 대북전단 20만장 살포 탈북자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대표 박상학) 회원들이 노동당 창건기념일이자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 4주기인 10월 10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오두산 통일전망대 부근 주차장에서 대북전단 20만장을 날려보냈다. ⓒ 권우성
어떤 종류의 정책이 남한의 국익에 가장 부합할 수 있을까? 그러면서도 강대국들의 이익에 반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남한이 운전대를 잡아야 한다. 나의 정책적 조언은 아주 간단하고 현대의 남한에서, 특히나 새로운 세대의 정치인들이 출현하고 있는 지금 충분히 실현 가능한 영역에 속한다.
2010년 이후 대부분의 남북 간 무역을 금지시킨 '5·24 조치'를 철폐하는 것을 시작으로 북한과의 협력이 재개되어야 한다. 금강산이나 러시아가 추진했던 삼자 프로젝트를 포함한 과거의 프로젝트, 그리고 새로운 경제 프로젝트들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인도적 지원은 북한 체제의 기반을 약화 시키려는 "숨겨진 의도"를 제외하고 행해져야 한다.
비핵화는 다자간(6자) 협상의 문제로 다루어야지 남북간 관계의 문제로 치부되어서는 안 된다. 향후 협력에 대한 전망과 통일의 개념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상호 존중을 기반으로 한 정치적 접촉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그간의 정상회담 합의 내용에 의거하여 진행하면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남한의 대통령이 북한의 영토, 혹은 제3국에 가야 할지라도 남북 간 정상회담으로 향하는 물꼬를 틀 수 있다. 진지한 공적 토론이 이루어지고 나면 흡수 통일을 의제에 포함시켜서는 안 되고, 대신 연합(confederation) 방안을 합법화해야 한다는 전략적 결정이 내려져야 한다. 공적 토론이 아니면 남한에서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에 따른 헌법 개정이 필요할 수도 있다.
북한의 기반을 약화시키려는 '숨겨진 의도'를 제외한 정책 지침이 채택되어야 한다. 통일부의 이름을 '민족 화합부(national reconciliation)'로 바꾸는 것도 괜찮다. 궁극적으로는 적어도 당분간 한반도에 두 개의 분리된 정치 체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내용의 법적 구속력이 있는 남북 간 기본 합의서가 준비되어야 한다.
이 합의서는 6자 회담의 참가국들 간 양자 조약을 체결할 때 그 일부분으로 포함되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강대국들의 책임 하에 한반도의 평화와 안보를 보장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 조항들 중 하나에는 한반도와 인접한 이웃 국가들의 비핵화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야 한다.
이는 민족 화합으로 향하는 작지만 꾸준한 한걸음 한걸음을 내딛을 수 있게 할 것이다. 북한에 대한 경제적 원조의 물꼬를 터 생산 기반을 재창조하고 북한 사람들을 현대 세계에 통합시킬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젊은이들을 교육하는 것부터 시작할 수도 있다.
두 개의 자주적인 정부에 속한 국민들과 고위층들이 통일된 정부에 그들의 권력을 위임하기로 결정함으로써 통일을 완성 시킬 수 있게 될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 이것은 희망사항에 불과했다. 하지만 절대 일어나지 않을 북한의 붕괴를 기다리며 또 다시 25년을 기다려야겠는가?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그레고리 토롤라야(Gregory Toloraya) 교수는 러시아 과학아카데미경제연구원 동아시아연구원장이고, 러시아 외교부에서 동아시아를 담당하는 국장을 역임했습니다.
* 이 글은 코리아연구원 홈페이지(knsi)에도 함께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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