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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하구를 둘러싼 고대국가들의 각축전 -윤명철" 중 "
2. 한강하구의 역사적 환경 검토" 내용만 가져왔습니다.
 
한강하구의 역사적 환경 검토
윤명철 2007 
 
한강은 우리나라 중부의 가장 중요한 하천으로서 길이가 481km이고, 유역면적이 압록강 다음으로 넓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양수리에서 합쳐진 후에 북서방향으로 틀어 도중에 왕숙천·한천·탄천·양재천·안양천·창릉천·곡릉천 등의 지류와 합류한다. 물론 한강 하류의 형태는 수없이 변화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하도(河道)는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변화되었을 것이다. 난지도나 능곡 하류의 하중도(河中島)도 매우 많이 변화하였다. 
  
한강의 자연환경은 고대국가가 발전하는데 결정적인 몇 가지 장점이 있다.  
  
첫째, 한강은 정치적으로 내륙 통합의 계기를 마련하는데 유리하다.
  
한반도의 서쪽은 지형이 낮기 때문에 강들이 서해안으로 흘러 들어가는 하계망(河系網)을 구성하고 있다. 평양을 중심으로 대동강이 있고, 특히 남쪽으로는 예성강·임진강·한강이 하계망을 구성하면서 서해 중부로 흘러 들어가 경기만을 구성한다. 한강은 거대한 경기만의 한가운데를 막고 있으며, 경기도의 서쪽 지역과 옛 경기도의 일부인 개성 남쪽의 풍덕과 옹진, 해주 등 황해도의 남부해안 일대가 마주치는 북부경기만의 입구를 꽉 채우고 있다. 따라서 한강 하류를 장악하면 중부해상권의 장악은 물론 그 주변, 하계망과 내륙수로를 통해 한강 유역·임진강 유역·예성강 유역·옹진반도(甕津半島)·장연군(長淵郡)의 장산곶(長山串) 등 내륙 통합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고,주변지역과 세력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다. 공동체 형성에 유리하다.  
  
둘째, 한강은 수륙교통과 해양교통을 발전시키기에 유리하다.
  
고대국가로 팽창하고, 줄기차게 대외전쟁을 벌이려면 재정수입을 확충하고, 경제력을 상승시키는 일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또한 고대도시는 문화의 집결지(集結地)와 개화지(開化地)의 기능을 수행하는 한편 지방에 대해서는 문화의 수원지, 보급지 역할을 해야 한다. 따라서 외국에서 문화를 수입할 필요가 있다. 또 국제적으로도 활발한 교섭이 필요하다. 삼국시대에는 정치적으로 외교의 주 대상은 화북 및 산동 강소지역에 위치한 중국세력이었다. 그런데 한강하구는 한반도 내부에서는 해양교통을 이용하기에 매우 좋은 조건을 지니고 있다. 
  
한강은 경기만을 통해 해양으로 진출하는 출구이며 동시에 바다에서 들어오는 입구이다. 경기만은 동아지중해에서 가장 의미 있는 역학관계의 핵(核)이고, 실제로 힘의 충돌과 각축전이 벌어진 곳이다. 동아지중해에서 일본열도를 출발하여 압록강 하구와 요동반도를 경유하여 산동(山東)까지 이어지는 남북 연근해항로(沿近海航路)의 중간기점이고, 동시에 한반도와 산동반도를 잇는 동서 횡단항로와 마주치는 해양교통의 결절점(結節点)이다. 
  
이중환(李重煥)은 『택리지(擇里志)』에서 용산·마포·토정·농암 등 강촌마을들은 모두 서해와 통한다는 이점으로 팔도의 배들이 모인다고 하였다. 실제로 조선시대의 조운(漕運)은 이 한강을 절대적으로 활용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그 이전 시대인 고려나 남북국시대, 삼국시대에도 거의 유사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강변에는 많은 나루[津]와 포구 등이 있었으며, 내륙에서 내려온 산물과 바다에서 거슬러 온 물산들을 모아 놓고 서로의 교환을 성사시키는 장소와 기구들이 설치되었다. 
  
셋째, 경제력을 향상시키고, 경제권을 형성하는데 유리하다. 
  
큰 강의 주변에는 평지가 발달하여 농경에 적합한 토지를 쉽게 확보할 수 있다. 특히 백제는 농업경제를 상당히 중요시하고 있었다. 또한 한강에서 활발한 어로활동을 벌였으며, 생산의 중요한 수단으로 삼았다. 한강 하류지역은 경작지가 넓고 수량이 풍부하며 바다와 연결되는 곳에 있으므로 일찍부터 인간이 거주하면서 역사를 발전시켜왔다. 상류인 전곡리유적 등의 구석기유적들은 일찍부터 사람들이 거주하였음을 알려준다. 미사리(渼沙里)·암사동(岩寺洞) 유적 같은 신석기시대의 유적지들은 한강 하류가 집단 취락지구였음을 알려준다. 벼농사 문제도 있다. 볍씨는 강화 우도(牛島)에서 장두형(長頭形)이 발견되었고, 최근에는 김포·고양·일산 등지에서도 벼농사의 유적들이 발견된다. 현재도 고양·파주·김포·강화 등 한강 하류지역은 대표적인 벼농사 지역이다. 또한 대동강유역, 한강유역을 비롯하여 서해안지역에는 청동기문화의 흔적들이 많이 발견된다. 
 

주석

1)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한강사', 1985, 28~29쪽.
2) 하계망(河系網)의 이론에 대해서는 권혁재(權赫在), '지형학', 법문사, 1991, 108~117쪽. 
3) 경기만의 가치, 한강과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다양한 관점과 분야에서 연구한 필자의 연구 성과물들이 다수 있다. 
4) 윤명철, 「장수왕(長壽王)의 남진정책과 동아지중해(東亞地中海)의 역학관계」, '고구려남진 경영사의 연구', 백산자료원, 1995, 509쪽.
5) 임효재(任孝在),「경기도 김포반도의 고고학적 조사연구」『서울대박물관 연보』 2, 1990, 13쪽에서 이는 양자강 하구에서 직접 바다를 건너 도달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하였다.
6)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한강사', 1985, 140쪽.
7) 1995.「한반도 서남해안의 해양력사적 환경에 대한 검토」, 전주박물관 죽막동유적 학술회의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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