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명복 칼럼] 콜롬비아가 뭐라고
중앙일보 | 배명복 | 입력 2015.04.14 00:06 | 수정 2015.04.14 05:58

콜롬비아는 축복받은 땅이다. 남미 국가 중 유일하게 태평양과 카리브해를 동시에 끼고 있다. 해안 지대와 아마존 지역, 사바나 지대과 안데스 산악 지대로 이뤄진 콜롬비아는 생태계의 보고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콜롬비아의 동식물 종(種)은 북중미의 동식물 종을 합한 것보다 많다. 적도가 지나고 있지만 고도에 따라 사계절이 공존한다. 고도 4000m가 넘는 산악 지대는 만년설에 덮여 있다. 해발 2600m에 위치한 수도 보고타는 1년 내내 한국의 초가을 날씨다.

↑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박근혜 대통령이 16일 콜롬비아를 시작으로 페루, 칠레, 브라질을 도는 9박12일의 남미 순방길에 오른다. 취임 후 제일 긴 여정이다. 하필 세월호 참사 꼭 1주기가 되는 16일 출발하는 데 대해 뒷말이 많다. 당일 오전 추모행사에 참석하고 오후에 출발할 계획이라지만 유가족은 말할 것도 없고, 일반인들도 선뜻 납득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후안 마누엘 산토스 콜롬비아 대통령의 일정과 맞추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됐다는 게 청와대 측의 해명이다. 콜롬비아가 당초 제시한 일정은 15~17일이었지만 세월호 참사 1주기를 고려해 그나마 최대한 늦춘 것이 16일 오후 출발이라고 한다.

주철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이번 순방은 정상외교의 지평을 지구 반대편까지 확대하는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정상외교의 지평을 넓힌다는 말은 대통령의 해외 순방 때마다 귀 따갑게 들은 표현이다. 진짜로 지평을 확대하려면 전임자들이 안 가본 곳에 가는 것이 맞다. 콜롬비아는 2012년 이명박 대통령(MB)이 수교 50주년을 맞아 국빈방문을 했던 곳이다. 그 전 해엔 산토스 대통령이 국빈으로 한국에 오기도 했다. 전임자가 다녀간 곳을 3년 만에 다시 찾으면서 외교 지평 확대 운운하는 건 난센스다. 정상끼리 해결해야 할 급박한 현안이 있는 게 아니라면 양해를 구하고 안 갈 수도 있는 문제다. 다른 것도 아니고 세월호 참사라는 국가적 비극 때문이라는데 이해 못할 나라가 어디 있을까. 세월호 참사 1주기에 맞춰 굳이 콜롬비아로 떠나는 그 속내를 알 수가 없다.

남미 순방까지 마치면 박 대통령은 취임 2년2개월 만에 아프리카를 제외하고 5대양 6대주를 대충 한 바퀴 도는 셈이 된다. '1라운드 세계일주'의 완성을 위해 지금쯤 누군가 열심히 아프리카 순방 계획을 짜고 있다 해도 놀랄 일은 아니다. 임기 3년차까지 1라운드 완료! 전에도 들었던 얘기다.

지난달 중동 4개국 순방 때는 '제2의 중동특수' 개척을 표방했지만 이번 남미 순방에서는 그런 시도조차 안 보인다. 외교 지평 확대란 상투적 수사(修辭) 외에 "우리의 경제 영역을 남미까지 넓힌다"는 해괴한 주장이 고작이다. 지금까지 남미는 한국의 경제 영역에서 벗어나 있었단 소린가.

한국의 위상은 과거와 다르다. 한국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으면 안 되는 다자간 정상회의 무대가 크게 늘었다. 한국의 상대적 비중이 커짐에 따라 정상 간 교류 또한 빈번해질 수밖에 없다. 갈수록 대통령의 해외 순방이 잦아지는 건 당연하다. 김영삼 대통령은 5년 임기 동안 14회의 해외 순방을 통해 28개국을 방문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37개국(23회)을 찾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55개국(27회)을 방문했다. MB는 대기록을 세웠다. 49회에 걸쳐 84개국을 방문했다. 평균 1.2개월마다 대통령 전용기를 탄 셈이다.

정상외교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대통령이 외국에 자주 나가는 것은 박수칠 일이지 시비 걸 일이 아니다. 문제는 명분이고 실적이다. 뚜렷한 명분도 없이 부은 곗돈 찾아먹듯이 악착같이 나가는 느낌을 주는 것은 곤란하다. 숫자놀음으로 성과를 과대포장해서도 안 된다. 정형화된 순방 코스를 따라가며 대통령의 특권을 알뜰하게 챙긴다는 느낌은 안 주는 게 좋다.

박 대통령의 해외 순방이 너무 잦은 게 아니냐고 하지만 전임자인 MB에 비하면 아직 어림도 없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말 있었던 싱가포르 조문 외교까지 포함해 취임 후 총 14회에 걸쳐 28개국을 방문했다. 이런 추세라면 MB의 순방 기록은 깨기 어렵다.

공교롭게도 박 대통령이 이번에 만나게 되는 남미 4개국 정상 모두 국내정치적으로 코너에 몰려 있다.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에서 미첼 바첼레트 칠레 대통령, 오얀타 우말라 페루 대통령에서 산토스 대통령까지 한결같이 부패 스캔들에 휘말려 지지율이 추락 중이다. 한국도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정치권이 요동치고 있다. 세월호 참사 1주기가 되는 날, 콜롬비아로 떠나는 박 대통령의 발걸음이 무거울 것 같다. 9박12일은 긴 시간이다.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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