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nocutnews.co.kr/news/4672940
故백남기 쓰러뜨린 물대포, 사람에 쏴선 안되는 것이었다
2016-10-23 10:18 CBS노컷뉴스 이진욱 기자
'그것이 알고 싶다' 실험서 철판도 못 버텨…"살 찢어져 나갈 정도"
(사진=SBS 제공)
민들레꽃처럼 살아야 한다/ 내가슴에 새긴 불타는 투혼/ 무수한 발길에 짓밟힌데도/ 민들레처럼// 모질고 모진 이 생존의 땅에/ 내가 가야 할 저 투쟁의 길에/ 온몸 부딪히며 살아야 한다/ 민들레처럼// 특별하지 않을지라도/ 결코 빛나지 않을지라도/ 흔하고 너른 들풀과 어우러져/ 거침없이 피어나는 민들레// 아아 민들레 뜨거운 가슴/ 수천수백의 꽃씨가 되어/ 아아 해방의 봄을 부른다/ 민들레의 투혼으로 - 꽃다지 '민들레처럼'
지난 22일 방송된, 고 백남기 농민의 사인을 다룬 '그것이 알고 싶다' 말미에 흐른 위 노래는 생전 고인이 지녔던 삶의 자세, 우리에게 남기고 간 미완의 꿈이 오롯이 담겨 있다.
지난해 11월 14일, 쌀값 인상을 요구하며 민중총궐기에 참가했던 농민 백남기 씨가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고 쓰러졌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정신을 잃은 그를 들어 옮기는 동안에도 살수는 이어졌다. 당시 백남기 농민을 향해 물대포를 발사한 살수차 '충남 9호'를 운용했던 대원들은 특정 개인을 조준해 직사살수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은 분명히 백남기 농민을 표적으로 직사살수가 계속됐다고 말한다. 실제로 이날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전파를 탄 여러 영상과 증언에서도 경찰의 직사살수는 사실인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9호차 물대포는 백남기 어르신만 쏴대기 시작했지요. 오로지 타깃을 향해 슈팅게임 하듯이…." - 김상호 기자 인터뷰 중
당시 경찰 차벽에 막혀 행진 할 수 없게 되자, 집회 참가자들이 경찰 버스에 줄을 묶어 잡아당기고 있었다. 뒤편에 사람들이 집중돼 있었는데, 그때 앞쪽에 홀로 있던 백남기 농민의 머리를 향해 물대포가 정확히 직사살수 된 것이다.
살수차 운용지침에 의하면, 살수차와 시위대 사이 거리에 따라 물살의 세기를 조절, 안전하게 사용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살수차 내부에는 거리를 측정하는 장치는 없었다. 직사살수의 경우 더욱 위험하기 때문에 가슴 이하 부위를 겨냥해야 한다. 하지만 차벽 뒤에 있는 살수차는 시야가 가려서, 내부 모니터를 보고 시위대를 조준할 수는 있어도 정확한 부위를 식별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제대로 된 규정, 장치 없이 살수차가 운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은 경찰이 살수차 사용의 안전성에 대한 증거로 제출한 물대포 안전성 테스트 보고서(2008년)를 입수했다. 보고서에 기록된 대로 거리와 물살세기를 따져보면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를 맞은 거리와 물대포의 세기는 '별다른 충격이 없는' 정도였다.
제작진은 사건 당일 살수차 9호의 물대포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실험을 통해 알아보기로 했다. 3D 입체 영상 분석을 통해 당시 물대포와 백남기 농민 간의 거리와 각도를 정확히 재현하고 이를 바탕으로 현장에서 사용됐던 살수차와 같은 크기의 노즐, 같은 수압으로 실제 물대포의 강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확인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경찰의 보고서에서는, 백남기 농민을 향한 15바 세기의 물줄기에도 3mm와 5mm 두께의 유리는 깨지지 않았다고 나왔다. 하지만 제작진의 실험에서는 물줄기가 15바에 도달하기 훨씬 이전에 유리가 깨졌고, 강화유리마저 산산조각낼 정도로 강력했다. 1.5㎝ 두께 나무판자는 물론 철판도 이 수압에서는 버티지 못했다.
이날 실험에 참여한 살수차 직원은 "(수압 15바에) 사람이 제대로 맞으면 살이 다 찢어져 나간다"라고 전했다.
◇ "의학적으로는 뇌간사망 상태 환자 연명 치료한 것"
(사진=SBS 제공)
고 백남기 농민은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고 쓰러진 지 317일만에 세상을 떠났다. 지난해 11월 15일 수술 직후 그의 의식은 단 한 차례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고인은 지난 9월 25일 사망했다. 그런데 사망진단서의 사인은 '외인사'가 아닌 '병사'로 기록됐다.
백남기 농민의 주치의였던 서울대병원 백선하 교수는 "6일전부터 시작된 급성신부전에 대한 적절한 치료가 되지 않아 급성 심폐정지가 사망의 직접원인이 됐다"며 병사를 주장했다.
하지만 이날 '그것이 알고 싶다'에 출연한 전문의들의 의견은 크게 달랐다.
윤일규 신경외과 전문의는 "단순 골절 정도면 어쩌다가 미끄러져서 넘어졌다 할 수 있겠지만 이건(백남기 농민의 상태) 아니다. 두개골이 박살이 났다"며 "의학적으로는 이미 뇌간사망 상태의 환자를 연명 치료한 것이 아니냐"고 지적했다.
전북대 법의학 이호 교수 역시 "사망의 종류에서 병사는 두드러진 누군가의 개입이 없을 때, 자연 발생적일 때 해당한다. 노화나 암처럼"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은 물대포에 의한 머리손상이 백남기 농민의 직접적인 사인인지 밝히려면 부검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주치의가 판단한 사인이 외인사가 아닌 병사이고 따라서 정확한 사인을 밝히기 위해서는 부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경찰은 유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두 번에 걸친 영장 청구 끝에 부검 영장을 발부 받았다.
이에 대해 윤일규 신경외과 전문의는 "(물대포를 맞고 뜨러진 백남기 농민의) 두개골 골절이 머리 중심부까지 생겼다"며 "이는 충격이 굉장히 강했다는 것으로 추락, 그러니까 높은데서 떨어져 얼굴을 부딪혔다든가, 달리는 차에 부딪힌 정도다"라며 부검의 필요성을 일축했다.
백남기 농민이 민중총궐기대회에 참여할 당시 쌀값은 17만 원에서 13만 원대로 떨어졌다. 집회 당일 시위대는 670여 대의 경찰차벽에 가로막혔고, 살수차는 끊임없이 물을 뿌려댔다. "같이 살자"는 국민들의 목소리는 그렇게 묵살된 것이다.
이날 방송에서 MC 김상중은 "대한민국 헌법 제21조 1항에는 '모든 국민은 언론 출판의 자유, 집회 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명시돼 있다. 10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광화문광장에 모이고자 했던 이유는 정부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전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라며 "민주주의 사회에서 집회의 자유는 보장돼야 하며 경찰은 그 집회가 안전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노력할 의무가 있다. 그 과정에서 공권력에 의한 희생이 있었다면 그 죽음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 이 지극히 기본적인 것이 이뤄지지 않은 채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고, 너무 먼 길을 돌아왔다"고 강조했다.
故백남기 쓰러뜨린 물대포, 사람에 쏴선 안되는 것이었다
2016-10-23 10:18 CBS노컷뉴스 이진욱 기자
'그것이 알고 싶다' 실험서 철판도 못 버텨…"살 찢어져 나갈 정도"
(사진=SBS 제공)
민들레꽃처럼 살아야 한다/ 내가슴에 새긴 불타는 투혼/ 무수한 발길에 짓밟힌데도/ 민들레처럼// 모질고 모진 이 생존의 땅에/ 내가 가야 할 저 투쟁의 길에/ 온몸 부딪히며 살아야 한다/ 민들레처럼// 특별하지 않을지라도/ 결코 빛나지 않을지라도/ 흔하고 너른 들풀과 어우러져/ 거침없이 피어나는 민들레// 아아 민들레 뜨거운 가슴/ 수천수백의 꽃씨가 되어/ 아아 해방의 봄을 부른다/ 민들레의 투혼으로 - 꽃다지 '민들레처럼'
지난 22일 방송된, 고 백남기 농민의 사인을 다룬 '그것이 알고 싶다' 말미에 흐른 위 노래는 생전 고인이 지녔던 삶의 자세, 우리에게 남기고 간 미완의 꿈이 오롯이 담겨 있다.
지난해 11월 14일, 쌀값 인상을 요구하며 민중총궐기에 참가했던 농민 백남기 씨가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고 쓰러졌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정신을 잃은 그를 들어 옮기는 동안에도 살수는 이어졌다. 당시 백남기 농민을 향해 물대포를 발사한 살수차 '충남 9호'를 운용했던 대원들은 특정 개인을 조준해 직사살수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은 분명히 백남기 농민을 표적으로 직사살수가 계속됐다고 말한다. 실제로 이날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전파를 탄 여러 영상과 증언에서도 경찰의 직사살수는 사실인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9호차 물대포는 백남기 어르신만 쏴대기 시작했지요. 오로지 타깃을 향해 슈팅게임 하듯이…." - 김상호 기자 인터뷰 중
당시 경찰 차벽에 막혀 행진 할 수 없게 되자, 집회 참가자들이 경찰 버스에 줄을 묶어 잡아당기고 있었다. 뒤편에 사람들이 집중돼 있었는데, 그때 앞쪽에 홀로 있던 백남기 농민의 머리를 향해 물대포가 정확히 직사살수 된 것이다.
살수차 운용지침에 의하면, 살수차와 시위대 사이 거리에 따라 물살의 세기를 조절, 안전하게 사용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살수차 내부에는 거리를 측정하는 장치는 없었다. 직사살수의 경우 더욱 위험하기 때문에 가슴 이하 부위를 겨냥해야 한다. 하지만 차벽 뒤에 있는 살수차는 시야가 가려서, 내부 모니터를 보고 시위대를 조준할 수는 있어도 정확한 부위를 식별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제대로 된 규정, 장치 없이 살수차가 운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은 경찰이 살수차 사용의 안전성에 대한 증거로 제출한 물대포 안전성 테스트 보고서(2008년)를 입수했다. 보고서에 기록된 대로 거리와 물살세기를 따져보면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를 맞은 거리와 물대포의 세기는 '별다른 충격이 없는' 정도였다.
제작진은 사건 당일 살수차 9호의 물대포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실험을 통해 알아보기로 했다. 3D 입체 영상 분석을 통해 당시 물대포와 백남기 농민 간의 거리와 각도를 정확히 재현하고 이를 바탕으로 현장에서 사용됐던 살수차와 같은 크기의 노즐, 같은 수압으로 실제 물대포의 강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확인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경찰의 보고서에서는, 백남기 농민을 향한 15바 세기의 물줄기에도 3mm와 5mm 두께의 유리는 깨지지 않았다고 나왔다. 하지만 제작진의 실험에서는 물줄기가 15바에 도달하기 훨씬 이전에 유리가 깨졌고, 강화유리마저 산산조각낼 정도로 강력했다. 1.5㎝ 두께 나무판자는 물론 철판도 이 수압에서는 버티지 못했다.
이날 실험에 참여한 살수차 직원은 "(수압 15바에) 사람이 제대로 맞으면 살이 다 찢어져 나간다"라고 전했다.
◇ "의학적으로는 뇌간사망 상태 환자 연명 치료한 것"
(사진=SBS 제공)
고 백남기 농민은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고 쓰러진 지 317일만에 세상을 떠났다. 지난해 11월 15일 수술 직후 그의 의식은 단 한 차례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고인은 지난 9월 25일 사망했다. 그런데 사망진단서의 사인은 '외인사'가 아닌 '병사'로 기록됐다.
백남기 농민의 주치의였던 서울대병원 백선하 교수는 "6일전부터 시작된 급성신부전에 대한 적절한 치료가 되지 않아 급성 심폐정지가 사망의 직접원인이 됐다"며 병사를 주장했다.
하지만 이날 '그것이 알고 싶다'에 출연한 전문의들의 의견은 크게 달랐다.
윤일규 신경외과 전문의는 "단순 골절 정도면 어쩌다가 미끄러져서 넘어졌다 할 수 있겠지만 이건(백남기 농민의 상태) 아니다. 두개골이 박살이 났다"며 "의학적으로는 이미 뇌간사망 상태의 환자를 연명 치료한 것이 아니냐"고 지적했다.
전북대 법의학 이호 교수 역시 "사망의 종류에서 병사는 두드러진 누군가의 개입이 없을 때, 자연 발생적일 때 해당한다. 노화나 암처럼"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은 물대포에 의한 머리손상이 백남기 농민의 직접적인 사인인지 밝히려면 부검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주치의가 판단한 사인이 외인사가 아닌 병사이고 따라서 정확한 사인을 밝히기 위해서는 부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경찰은 유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두 번에 걸친 영장 청구 끝에 부검 영장을 발부 받았다.
이에 대해 윤일규 신경외과 전문의는 "(물대포를 맞고 뜨러진 백남기 농민의) 두개골 골절이 머리 중심부까지 생겼다"며 "이는 충격이 굉장히 강했다는 것으로 추락, 그러니까 높은데서 떨어져 얼굴을 부딪혔다든가, 달리는 차에 부딪힌 정도다"라며 부검의 필요성을 일축했다.
백남기 농민이 민중총궐기대회에 참여할 당시 쌀값은 17만 원에서 13만 원대로 떨어졌다. 집회 당일 시위대는 670여 대의 경찰차벽에 가로막혔고, 살수차는 끊임없이 물을 뿌려댔다. "같이 살자"는 국민들의 목소리는 그렇게 묵살된 것이다.
이날 방송에서 MC 김상중은 "대한민국 헌법 제21조 1항에는 '모든 국민은 언론 출판의 자유, 집회 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명시돼 있다. 10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광화문광장에 모이고자 했던 이유는 정부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전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라며 "민주주의 사회에서 집회의 자유는 보장돼야 하며 경찰은 그 집회가 안전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노력할 의무가 있다. 그 과정에서 공권력에 의한 희생이 있었다면 그 죽음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 이 지극히 기본적인 것이 이뤄지지 않은 채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고, 너무 먼 길을 돌아왔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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