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68988.html
지지율 1%…‘헬조선’ 청춘들은 왜 박대통령에게 등 돌렸나
등록 :2016-11-06 15:30수정 :2016-11-06 20:45
‘국정농단’ 이것이 민심이다
대선때 2030 득표율 30%→‘최순실 게이트’에 지지율 ‘제로’
절망적 사회 겪어온 청년들이 말하는 ‘박 대통령 하야’ 민심
박근혜 대통령이 4일 오전 청와대 기자회견장에서 “최순실씨 관련 사건으로 이루 말할 수 없는 큰 실망과 염려를 끼쳐드린 점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새벽 5시, 서울 관악구의 한 편의점에 신문 묶음 더미가 배달된다. 아르바이트생 엄아무개(25)씨의 손이 분주해진다. 모든 신문을 제호가 잘 보이도록 거치대에 꽂는다. 엄씨가 그동안 눈길도 잘 주지 않던 신문 기사들을 본격적으로 읽게 된 건, 두어 달 전쯤부터 신문 찾는 손님이 늘었기 때문이다. 엄씨는 “‘최순실·박근혜 게이트’ 때문에 평소와 달리 신문이 불티나게 팔리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뭔 일인가 싶어서 1면에 실린 기사를 읽게 됐죠”라고 말했다.
평일 자정부터 아침 8시까지 편의점에서 일하는 그는 취업 공부에 바빠 정치·사회 문제에 무관심했다. 하지만 ‘국정농단’의 주범인 박 대통령과 최씨 관련 보도를 찾아보면서 충격을 넘어 허탈감에 빠졌다고 했다. 엄씨는 “출근하는 손님 중 편의점에 허겁지겁 들어와 삼각 김밥이나, 조금이라도 돈을 아끼려고 2+1 상품을 사는 손님들이 많다. 그런데 최씨는 불공정한 과정으로 재산을 수십억 불린 걸 보니,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는 국민이 측은하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헬조선’이라 불리는 절망적인 사회를 살아온 청년들이 박근혜 대통령에게서 무섭게 등을 돌리고 있다. 지난 4일 여론 조사 전문 기관인 한국갤럽이 발표한 대통령 지지율은 역대 대통령 가운데 최저치인 5%까지 내려갔다. 이중 20·30세대의 지지율은 1%였다. 사실상 ‘제로’라는 뜻이다. 2012년 대선 때 20·30세대 박근혜 후보 득표율은 약 30%였다. 지난 5일 전국 99개 대학의 대학생들은 ‘박근혜 정권 퇴진! 전국 대학생 시국회의’ 깃발 아래 모여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했고, 전국적 시위의 선두에 서 있다.
엄씨가 퇴근을 하는 아침 8시면, 경기도 수원시에 거주하는 이지연(29)씨가 경기도 화성시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탄다. 이씨는 고등학교 졸업 뒤 가정 형편에 보탬이 되려고 일찍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지금은 중소기업에서 사무직으로 일한다. 국정농단 사태는 이씨와 동료들이 점심시간에 나누는 대화 소재를 바꿨다. 이씨는 “사회가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최순실씨 한 사람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씨가 바라보기엔 미르·케이스포츠재단 출연금 모금에 참여한 기업들도 한통속 같다. 그는 최씨에게 푼돈을 쥐여주고, 정부의 특혜를 얻으려고 했던 기업들에 쓴소리를 내뱉었다. 이씨는 “당장 한두 사람 처벌하고 한다고 해서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이런 사달을 만든 건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고, 박 대통령을 뽑은 국민이다.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5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린 서울지역 대학생들의 ‘박근혜 정권 퇴진! 전국 대학생 시국회의’에는 1000여명의 대학생들이 참석했다. 박수진 기자
2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57개 대학 학생회 소속 학생들이 ‘박근혜 정권 퇴진 전국 대학생 시국회의’ 구성을 선포하고 있다. 김경호선임 기자 jijae@hani.co.kr
박 대통령이 지난 4일 두 번째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면서 ‘검찰 수사도 받겠다’고 밝혔지만, 로스쿨생 육이은(34)씨는 등 돌린 청년들의 마음을 되돌리기엔 부족하다고 평했다. 육씨는 “법을 공부하는 입장에서 법보다 탈법이 앞서고, 사적 권력이 현실을 좌지우지했던 현실을 보게 되니 ‘법을 공부해서 뭐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육씨는 “더 늦기 전에 여러 의혹이 세상에 알려져 개선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라면서도 “검찰에 대한 불신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나라 검찰은 마치 정치권에 일정 지분을 가진 것처럼 정치인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그동안 일부 정치 세력과 검찰이 최순실씨의 편의를 봐준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번 사태는 체육인을 꿈꾸는 수험생들에게도 깊은 상처를 남겼다. 3년째 체육대학 입시생을 가르치고 있는 박수현(32)씨는 늦은 오후, 피곤한 얼굴로 체육관 문을 열고 들어오는 고교 3학년인 입시생들을 맞는다. 오는 17일, 수능 시험을 앞둔 학생들은 낮에는 수능 공부, 밤에는 운동, 이렇게 병행하고 있다. 박씨는 “시험을 앞둔 학생들이 예민해 깊은 얘기는 못 나눴지만,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가 공정하지 않은 방법으로 이화여대에 입학했다는 걸 학생들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박씨도 체대 입시를 준비했던 경험이 있어, 입시생들이 느끼는 허탈감을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 입시와 병역 문제는 건드려서는 안 될 선이다. 학생들이 ‘공부하면 뭐 하나. 운동하면 뭐하나’ 우스갯소리로 물어볼 때마다 어떻게 대답해줘야 할지 고민이다”고 말했다. 학생들을 지도하는 일과는 별개로 박씨에게 이번 사태는 아이엠에프(IMF) 경제 위기 때만큼 충격적이었다. 그는 “부모 세대들이 피와 땀으로 일궈 놓은 민주주의가 한순간에 무너졌고, 같이 무너진 박 대통령을 보니까 이대로 괜찮은 건가 싶다”면서 “이 지경까지 왔는데 야당 국회의원들도 뾰족한 수가 없는 것 같다. 국민이 목소리를 내서 국회가 움직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박수진 기자 jjin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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