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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청와대 출입기자를 춘추관에만 가둬놨다”
[인터뷰] 최장수 청와대 출입기자 송국건 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장 “대통령 기사, 쓰지 않겠다는 압박도 고민해야”
김도연 기자 riverskim@mediatoday.co.kr 2017년 01월 09일 월요일

청와대 출입기자단에 대한 비난 여론이 심상치 않다. 박근혜 정부의 신년 기자회견 때마다 기자들의 사전 질문지가 유출되며 각본 논란에 휩싸이곤 했지만, 올해는 그 분위기가 다르다. 

지난 1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탄핵소추안 가결로 직무정지 상태인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기자들을 동원해 탄핵사유를 전면 부인한 건 위헌이라는 지적이다. 대통령의 위법 행위에 청와대 기자들이 들러리를 섰다는 점에서 시선이 곱지 않은 것이다.  

청와대 기자들은 이날 노트북과 휴대 전화, 녹음기 등 자신들의 ‘무기’를 빼앗긴 채 취재에 나서야 했다. “병풍을 자처한 청와대 기자단을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언론계에서 제기됐다. 

송국건 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장은 지난 5일 서울 프레스센터 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 사무실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지금 청와대 기자들은 ‘청와대 출입기자’가 아닌 ‘춘추관 출입기자’들”이라고 평가했다. 1시간 동안 진행된 인터뷰에서 송 본부장은 박 대통령의 언론 정책과 언론관을 이전의 정권과 비교하며 비판했다. 그는 국내 최장수 청와대 출입기자였다.  


▲ 송국건 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장이 지난 5일 서울 프레스센터 내 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 사무실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그는 청와대 기자들이 순치됐다는 지적에 동의하면서도 “기자들이 질문해 돌아올 답변이나 새로운 정보가 있다면 격식을 파괴해서라도 질문을 하겠지만, 박 대통령이 여태 보여준 모습에 비춰보면 그러한 시도를 할 가치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더 큰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노태우 정부 때부터 청와대에 취재 지원을 나갔던 송 본부장은 김영삼 정부 말기부터 노무현 정부 후반기까지 9년6개월여를 청와대 출입기자로 활동했다. 노무현 정권 때인 2007년에는 “도대체 청와대에선 무슨 일이?”라는 책도 집필했다. 그에게 청와대 출입기자단에 대해 들어봤다. 

- 9년 이상 청와대에 출입하는 건 드문 일인데? 
“중앙일간지 같은 경우는 계속 바뀐다. 오래 해봐야 5년이다. 정권이 바뀌면 출입기자들도 바뀐다. 지방지 기자들은 붙박이로 (서울에 있다보니) 아무래도 오래 출입할 수 있다.”  

- 평균 몇 년 정도로 청와대 기자들이 바뀌나? 
“대통령 임기 5년 동안 한두 번 바뀐다. 평균 2년 정도 출입하는 것 같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청와대 표준어가 바뀐다’는 말이 있다. 경상도 정권이 들어서면 언론사에서 경상도 출신을 청와대에 보낸다. DJ 때는 호남 출신 기자들을 보냈다. 대통령이 누구냐에 따라 기자실 내 말투가 결정되는 것이다. DJ가 정권을 잡자 한 언론사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호남 출신을 제대로 키워놓지 못한 거다. 그래서 5년차에 불과했던 호남 출신 기자를 보냈다. 언론사들이 대통령과 참모들의 학맥과 인맥을 고민해 출입 기자를 결정했다.” 

-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 기자간담회 어떻게 봤나? 
“일종의 변칙 같았다. 직무정지 상태에서 공식 기자회견을 열면 논란을 피하기 어려우니 신년 인사회 형식으로 변칙을 썼던 것이다. 대통령이 기자들하곤 만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기자간담회에서 했던 발언들은 기존 대국민담화 내용을 뒤집는 것들이었다. 세월호 7시간 의혹에 대해 근 2년 반 동안 침묵하다가 탄핵사유가 되니 ‘정상업무’라고 말했다. 헌재 심리와 진행되고 있는 재판, 특검 등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거다.” 


▲ 청와대 기자들이 지난 1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의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박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 노무현 전 대통령도 직무정지 상태에서 기자들을 만나지 않았나?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 직무정지가 되고 나서 기자들이 먼저 요청했다. ‘대통령의 모습을 보여달라’는 요구에 직무정지 상태이던 노 대통령이 ‘카메라와 사진 기자만 하자’고 해 사진만 찍었다. 그 다음 2004년 3월 기자들과 산행을 하면서도 정치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았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봄이 왔지만 봄 같지 않다)’이라며 자기가 느끼는 감정만 이야기했을 뿐이다.”  

-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당시 관저에서 집무를 봤다며 정상근무라고 주장하는 데 어떻게 생각하나? 
“대통령이 앉을 책상에 컴퓨터만 놓으면 집무실 아닌가.(웃음) 이전의 모 대통령은 임기 후반 건강이 좋지 못해 본관에 오래 나오지 못했다. 관저에서 생활한 것인데 그건 어디까지 건강 문제 때문이었다. 박 대통령은 오후 6시 ‘땡’하면 관저로 올라갔다. 줄곧 ‘관저 정치’를 한 것이다. 세월호와 같은 위급 상황에선 본관에 가서 진두지휘했어야 했다. 적절하지 못한 해명이다.” 

- 대통령 미용 시술과 관련해 ‘보안손님’들이 논란이 됐다. 출입증 없이 자유롭게 드나들었던 인사들이 최순실과 그의 측근들이었는데? 
“보안손님이라는 개념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이전에는 보안손님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어느 정부 때나 비선은 있었다. 문제는 이들이 어느 선까지 역할을 하느냐다. 지금은 비선이 박 대통령을 조종했음이 드러났다. 대통령이 ‘최 선생께 컨펌 받았나요’라고 묻질 않나…. 과거 비선은 경륜이 있거나 정치권에서 활동했던 인사들이었다. 조언할 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자격 미달인 자연인이 국정을 좌지우지한 지금과는 다르다.” 

- 박 대통령은 임기 내내 언론을 대하는 방식이 ‘불통’이었다.
“기자들을 춘추관에만 가둬놓고 있다. 청와대 출입기자가 아니라 춘추관 출입기자다. MB정부 때까지만 해도 비서실장부터 500여 명의 직원들과 연락할 수 있는 내부 조직도가 있었다. 대외비라곤 했지만 기자들은 조직도를 복사해서 가지고 다녔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그것마저도 없어졌다. 청와대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기자들은 알 수가 없다. 청와대 조리장도 아는 이야기를 기자들은 모른다. 최순실 국정농단이 여기까지 이르게 된 이유는 언론과의 ‘불통’에 있다. 언론과의 불통은 국민과의 불통이다.” 


▲ 이명박 정부 당시 청와대 조직도. MB정부 때까진 조직도에 공개된 연락망을 통해 궁금한 것이 있으면 상시적으로 청와대 직원들과 통화를 할 수 있었다. 사진=송국건

- 이전 대통령들은 언론과 어떻게 소통했나?
“YS, DJ 시절에는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오전과 오후 두 차례 비서동에 들어가 한 시간씩 머물며 취재했다. ‘이발소 간다’고 말하면 들여보내줄 정도로 열려 있었다. 들어가면 비서실장, 정무수석, 민정수석 등과 티타임을 가졌다. 거기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청와대도 기자들을 통해 민심을 파악할 수 있었다. 반면, 노무현 대통령은 ‘비서동 출입’을 막았다. 기자들의 잦은 방문이 업무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였다. 참모들이 노트북을 펴놓고 일을 하다가도 기자들이 오면 덮어야 했으니까.”

- 노 전 대통령의 경우 언론, 특히 조선일보와 불편한 관계 아니었나?
“노무현 대통령은 언론과의 건강한 긴장관계를 추구했다. 조선일보와 몇 차례 충돌하기도 했다. 그때도 기자들의 의견을 참고했다. 노 대통령이 조선일보와 싸울 때 기자들이 ‘언론하고 너무 척을 지면 안 된다’며 문희상 비서실장에게 이야기를 많이 전달했다. 언론과 지나치게 대결 구도로 가면 안 된다는 우려였다. 그래서 나온 말이 ‘건강한 긴장관계’였다.” 

- 언론과의 관계가 악화한 계기는 ‘기자실 폐쇄’ 등의 정책이었다.
“언론을 자유롭게 내버려두면, 조선·중앙·동아 등 메이저 언론으로 정보가 흐른다. 인사 시기가 되면 참모들도 메이저 언론을 통해 여론을 떠보려 했으니까. 권언유착과 관련된 문제이기도 했다. 그런 시스템이 노무현 정부에 와서는 사라졌다. 대신 참모들이 춘추관을 자주 방문했다. 문재인 비서실장도 춘추관 앞마당에 앉아서 기자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노 대통령도 현안이 생기면 오전에 연락하고 오후에 춘추관을 들러 이야기를 했다.” 

- 노무현 정부 때는 청와대 출입 문턱이 낮아지지 않았나? 
“청와대 비서동 출입을 제한하면서 대신 문턱을 많이 낮췄다. 이전에는 청와대에 출입하려면 언론사가 한국기자협회나 신문협회 소속이어야 했다. 이를 등록제로 바꾸며 기자 수가 80여 명에서 300명 이상이 됐다. 청와대가 여러 언론에 문호를 개방한 것은 평가할 수 있지만 권력을 감시하는 기능이 결과적으로 후퇴했다고 생각한다. 조중동과 다른 언론을 평준화시키겠다고 했지만 하향 평준화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청와대 비서동 출입 제한은 계속됐다. 권력 입장에선 그게 편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 비서동 출입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인가?
“대통령 본인이 직접 나서지 않는다면, 참모들을 통한 소통을 활용해야 한다. 정통 정치인인 YS와 DJ는 언론 플레이를 잘한 이들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기자 관리를 참모에게 맡겼다. DJ 정부의 박지원 비서실장(현 국민의당 의원)은 명절이 되면 비서실장 공관을 개방했다. 지금 출입기자들은 비서실장 공관이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다. 비서동 구조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가 없으니까. 그땐 서로 식사도 하고 고스톱도 치고 그랬다. 청와대 권력과 언론의 유착 관계를 비판할 수도 있지만, 지금과 비교하면 이런 식의 소통이라도 있는 게 낫지 싶다. 그랬다면 최순실 사태로 국가가 망가지진 않았을 테니까.” 


▲ 송국건 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장이 지난 5일 서울 프레스센터 내 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 사무실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대통령을 비판하는 기사를 쓸 수 있나?
“역대 정권마다 비슷한 패턴인 것 같다. 집권 전반기에는 항상 용비어천가를 외친다. 후반기 힘이 떨어지면 비판 기사를 쏟아낸다. 힘이 있을 땐, 회사에 불이익이 갈까 쓰질 못하는 거다. 정보보고만 하는 거지.” 

- 기자회견장에서 돌발 질문을 던지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건가? 
“기자들이 순치된 건 분명하다. 그러나 과거에도 기자회견은 정형화돼 있었다. 그 외의 질문을 한다는 건 관습적으로 생각하지 못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1차, 2차 담화 이후 청와대 기자실 안에서 ‘우리가 들러리냐. 올라가지 말자’는 목소리가 있었고 실제 일부 언론사는 올라가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3차 담화 때는 서울신문 기자가 손을 들고 돌발 질문을 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다음에 이야기하겠다며 질문을 받지 않았다. 기자들이 질문해 돌아올 답변이나 새로운 정보가 있다면 격식을 파괴해서라도 질문을 하겠지만, 박 대통령이 여태 보여준 모습에 비춰보면 그러한 시도도 가치가 없는 것 같다.” 

- 청와대 기자들이 자사 이익을 위해 로비스트 역할을 한다는 지적이 있다.
“과거 한 홍보수석이 비리 사건이 터지자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들 중 내게 그만한 부탁을 안 할 사람 손들어보라.’ 과거엔 지금보다 청와대와 기자들의 유착이 견고했다. 또 청와대 출입기자 정도면 사내 연차가 고참 차장이거나 부장급이다. 회사 현안을 무시할 수 없는 직책이다. 청와대를 출입하면 주위에서 권력이랑 무조건 통하는 줄 아니까, 회사 차원의 민원뿐 아니라 개인 민원을 전달하는 경우도 있었다.”

- 박근혜 정부 홍보수석과 대변인들은 앵무새에 가까웠다는 평가다. 이전 정부와 비교하면 어떠했다고 보나? 
“같은 홍보수석이라도 누가 맡느냐에 따라 역할이 다르다. 박근혜 정부에서 이정현 전 홍보수석과 현 배성례 홍보수석 역할은 다를 수 있다. DJ정부의 박지원 홍보수석은 달랐다. 실권을 쥔 홍보수석이라면 홍보는 물론 정무라인까지 건드릴 수 있었다. YS정부 때는 이원종 정무수석이 막강했다. 언론사 인사에까지 개입했다. 조윤선, 박준우 등 박근혜 정부 정무수석은 존재감이 없었다. 홍보수석이 분기에 한 번씩 박 대통령의 정례 브리핑이 열릴 수 있도록 진언했다면 어땠을까. 언론을 통해 국민과의 거리감을 좁히는 데 홍보수석이 역할을 했어야 했다. 그 공백을 파고든 것이 최순실 아닌가.”


▲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사진=포커스뉴스

야권의 대선 후보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해 12월 차기 대통령이 되면 대통령 집무실을 광화문 정부종합청사로 옮기고 “출퇴근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밝혔다. 청와대를 시민들에게 개방해 ‘열린 공간’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 대선에서도 “‘청와대 대통령 시대’를 끝내고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다”고 공약을 내건 바 있다.
- 청와대를 시민에게 개방해야 한다는 견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바람직하다고 본다. 문 전 대표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미국에선 백악관 담장 옆으로 많은 사람들이 걸어 다닌다. 담장이 높지도 않다. 우리나라는 특수한 상황이라 경호상 일반인 출입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대통령이 청와대 밖으로 나오면 참모들도 함께 나올 것 아닌가. 참모들이 훨씬 더 언론에 노출될 것이고 국민과의 거리는 가까워질 것이다. 청와대가 저기에 있는 게 비행기 폭격이 안 되는 자리이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던데(웃음), 아무리 풍수지리가 좋으면 뭐하나. 저기 있다가 나오면 감옥으로 자리를 옮기거나 비극적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있는데….”

- 청와대에서 기자들에게 제공하는 편의에는 어떤 것이 있나?
“춘추관 생활을 하면 얻게 되는 세 가지 즐거움을 일컬어 ‘춘추삼락’이라 부르곤 했다. 첫 번째는 2층 식당 음식이다. 내가 출입할 때 2500원 정도였다. 지금은 4000원 정도 할 것이다. 복날이 되면 삼계탕이 나오고 평소에도 싸다.(웃음) ‘2락’은 지하에 사우나와 간단한 헬스기구가 있다. 마감하고 운동하고 사우나를 즐길 수 있었다. ‘3락’은 비서동을 드나들면서 녹지원(청와대 정원)의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3락은 즐기지 못할 것이다.” 


▲ 송국건 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장이 지난 5일 서울 프레스센터 내 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 사무실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차기 권력은 청와대 출입기자와의 소통에 어떻게 임해야 할까?
“하루 두 차례 기자들이 청와대 비서동에 들어가는 것이 어렵다면, 각 수석들이 비서관들과 함께 나와 기자들과 이야기를 해야 한다. 대통령도 분기마다 한 번씩 직접 춘추관에 오든지 해서 브리핑을 정례화해야 한다. 장소를 춘추관으로 국한할 필욘 없다. 기자들이 비서동으로 가서 소통하게 만드는 게 더 좋다.” 

- 청와대 후배 출입기자들에게 한말씀 전한다면?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스스로 ‘춘추관 출입기자’라고 칭했다. 춘추관을 ‘춘추사’(절), ‘춘추옥’(감옥)이라고 부르곤 했다. 오래 출입하는 기자들은 ‘장기수’라고 했다. 대변인이 온다고 하면 쪼르륵 달려가는 모습을 모이를 찾아가는 닭에 빗대며 자조하기도 했다. 취재나 기자회견의 관행들은 위에서부터 오랫동안 내려온 것이다. 선배들에게 책임이 있다. 사전에 기자회견 질문지를 제출하라고 했을 때 ‘정해진 틀대로 하지 않겠다’, ‘자유 질문하겠다’라며 저항하고 바꿔놨다면 지금과 같진 않을 것이다. 다음 정권이 들어오면 강력하게 요구해야 한다. 기자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대통령 기사를 쓰지 않겠다는 등의 압박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최순실 게이트 이후 청와대 기자들은 권력을 감시하는 새로운 틀을 고민해야 한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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