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36322
로비 승객 30여명, 해경은 봤지만 구하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3주기 ④] 9시42분 승객들 가리키는 영상과 진술 나와 “이쪽이라고 했는데 안들어와”
문형구 기자 mmt@mediatoday.co.kr 2017년 04월 20일 목요일
해경이 세월호 선내의 승객들을 구조할 기회는 적지 않았다. 그러나 511호 헬기가 처음 현장에 도착한 9시27분부터 항공구조사들은 한 차례도 선내에 진입하지 않았고, 123정은 9시34분 이후 선내 방송 장비 내지는 대공방송을 이용한 퇴선 유도를 단 한번도 하지 않았다. 또한 123정의 고무단정이 3층 로비 정면에 수차례 접안했을 때 해경들은 퇴선하라고 소리치지도 않았다.
고무단정에 승선했던 세 명의 해경은 3층 로비의 승객들을 못봤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해경 고무단정이 9시 44분경 세번째 세월호에 접안했을 당시에 주목했다. 이 때 경사 이○○는, 바로 앞 양쪽으로 활짝 열려진 3층 로비 문을 놔두고 곧바로 4층을 거쳐 5층으로 올라갔다.
해경 이○○는 ‘접안시 승객이 보이지 않았는지’를 묻는 질문에 “못 봤다”고 했다. 검찰은 해경이 세월호에 450명이 타고 있다는 정보를 사전에 알고 있었고 밖엔 승객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승객을 찾을 생각을 못했는지’를 묻자 이씨는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검찰은 이들 해경이 실제 선내의 승객을 못봤는지 혹은 보고도 무시했는지를 밝혀내지 못했다.
<미디어오늘>은 관련 연구자들의 도움을 받아 당시 상황을 입체적으로 분석했다.
해경 고무단정이 세월호에 처음 접안한 것은 9시38분경, 이때 해경은 기관부 선원 5인을 데리고 나온다. 해경은 두번째 접안에서, 헤엄치고 있던 기관부 선원 박○○를 건져낸 뒤 세월호 4층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승객 김○○씨 부부와 조○○(8세)군을 태운다. 기관부 선원 김○○도 이 때 함께 승선했다.
김씨 부부가 세월호를 탈출한 것은 9시 42분경. 이 때 김 씨 부부가 해경 고무단정을 타고 세월호에서 멀어지며 선내의 승객들을 향해 크게 손짓을 하는 모습이 채증영상(20140416_094215)에 고스란히 찍혀있다. 이 때 해경 이○○는 3층 로비로 열려진 문을 한참동안 응시한다. 이로부터 2분 후, 고무단정이 세번째 접안을 해서 3층 로비를 지나쳐 5층으로 올라간 이가 바로 해경 이○○다.
▲ 9시42분경 김씨 부부가 해경에게 손짓을 하며 승객들이 선내에 있음을 말하는 장면(좌)과 해경 이 모 경사가 로비문을 응시하는 장면(우) 사진=해경123정 채증영상 20140416_094215
세월호가 처음 기울었을 때부터 3층 로비문은 바깥으로 활짝 열려있었고 승객들은 문쪽으로 모여들어 여기저기 기댄채 대기하고 있었다. 고무단정으로 도착한 해경이 나오라고 소리만 치면 얼마든지 그 소리를 듣고 빠져나올 수 있는 거리였다.
승객 김○○씨는 지난해 4월 특조위에 출석해 전후상황을 상세히 진술했다. 아래 진술은 김씨 부부가 손짓을 하고 해경이 로비문을 응시하기 전인, 고무단정의 두번째 접안 당시다.
“고무단정에 있던 해경이 제가 있던 난간의 문을 열으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난간의 문을 열었습니다. 그래서 ○○(조 군, 8세)이 넘겨주고 와이프 내려가고 제가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제가 고무단정에 탄 해경들에게 문이 열렸으니까 이쪽으로 들어오면 된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해경들은 안 들어왔습니다.”
김씨 부부가 세월호 선내의 승객들을 향해 손짓을 하고 동시에 해경이 로비문을 응시하기 이전에, 김씨 부부가 배에서 탈출할 당시에 이미 ‘난간이 열렸으니 들어가서 구조하라’고 요구했다는 얘기다.
김씨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손짓을 할 때)보트에 타서 해경들이 있는데 안에 사람이 많다는 얘기를 한 것”이라며 “그냥 말로 했다. 저기 사람 무지하게 많다. 빨리 구하라고. 왜 안들어가냐고”라고 당시 상황을 진술했다. 이에 해경이 ‘알았다’ ‘(123정에)실어다놓고 다시 올 거다’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 고무단정이 3층 로비 바로 앞에 접안했을 당시 로비 안쪽의 모습.
해경은 김씨 부부 등을 123정에 내리고 난 직후 김씨가 지목한 3층 로비문 앞에 배를 댔다. 그러나 승객들에게 밖으로 나오라는 신호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해경 이○○가 3층과 4층을 지나쳐 5층으로 곧바로 올라간다. 그리고, 같은시각 123정 본선의 해경들이 선장과 선원들을 데리고 나가는 바로 옆 세월호의 구명정 쪽으로 이동한다.
승객 김씨는 특조위에서 당시 채증영상을 보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특조위 조사관 “방금 시청한 영상에서 보면 진술인이 임의로 표시한 부분으로 해경이 세월호에 승선하는데, 이 때 세월호로 승선하는 해경은 승선하는 부분에서 3층 로비를 볼 수 있는 상황이었나요?”
승객 김 씨 “눈을 감고 있지 않았다면 당연히 볼 수 있습니다.”
양쪽으로 활짝 열린 로비문 안에는 승객 30여명이 해경의 퇴선지시를 기다리며 대기중이었다.
이들 해경이 선내의 승객들을 목격했다는 사실은 이들의 검찰 진술을 분석해봐도 확인된다. 3층을 지나쳐간 경사 이○○와 경사 박○○은 “못 봤다” “기억이 없다”고 부인했다. 반면 경장 김○○의 경우 세번째 접안 당시 승객 30명 정도를 보았는데, 이는 3층이 아니라 4층이었다고 진술했다. 그리고 이 ‘4층’의 승객 30명 정도에게 나오라고 소리를 쳐서 구조했다는 것이다.
김 경장은 “고무단정이 세월호에 2차 접안하여 승객을 구조하고 123정에 인계하고 나서 어떻게 하였는가요”라는 검찰의 질문에 “세월호 좌현 중앙쪽 4층에 승객이 30명 정도 있는게 보여서 그쪽으로 단정을 이동시켰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형래를 세월호에 올려보내고 나서 구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라고 하였다.
세월호 4층의 경우 3층과는 구조가 완전히 달라서 문을 통해 안쪽을 들여다볼 수가 없다. 문의 방향도 구명정에서 볼 수 없는 각도일 뿐 아니라, 선체 외벽 안으로 문이 들어가 있는 구조다. 세번째 접안 당시에도, 또 그 이후에도 30명 정도의 승객을 볼 수 있는 곳은 3층 로비 뿐이다. 김 경장이 목격한 것은 3층 로비의 승객들인 것이다. 물론 여러 채증영상과 생존자 증언에서 드러났듯이, 해경은 나오라고 소리를 치지도 않았다.
▲ 검찰이 집계한 123정과 고무단정의 구조현황. 2014고합436 변호인 변론요지서에 대한 의견에서 발췌.
실제 이 3차 접안 이후 고무단정을 탄 승객은 스스로 갑판으로 빠져나온 12명 뿐이었다.
이들 해경 경장의 진술과 당시의 채증영상, 승객 김씨의 진술을 종합해보면 고무단정에 승선했던 해경 3인은 적어도 9시44분의 3차 접안 당시 3층 로비에 모여있던 승객 30여명을 목격했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그리고 세월호 좌현이 완전히 물에 잠길 때까지 해경으로부터의 퇴선명령은 없었다.
(기사에 도움주신 분:‘304 목요포럼’)
로비 승객 30여명, 해경은 봤지만 구하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3주기 ④] 9시42분 승객들 가리키는 영상과 진술 나와 “이쪽이라고 했는데 안들어와”
문형구 기자 mmt@mediatoday.co.kr 2017년 04월 20일 목요일
해경이 세월호 선내의 승객들을 구조할 기회는 적지 않았다. 그러나 511호 헬기가 처음 현장에 도착한 9시27분부터 항공구조사들은 한 차례도 선내에 진입하지 않았고, 123정은 9시34분 이후 선내 방송 장비 내지는 대공방송을 이용한 퇴선 유도를 단 한번도 하지 않았다. 또한 123정의 고무단정이 3층 로비 정면에 수차례 접안했을 때 해경들은 퇴선하라고 소리치지도 않았다.
고무단정에 승선했던 세 명의 해경은 3층 로비의 승객들을 못봤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해경 고무단정이 9시 44분경 세번째 세월호에 접안했을 당시에 주목했다. 이 때 경사 이○○는, 바로 앞 양쪽으로 활짝 열려진 3층 로비 문을 놔두고 곧바로 4층을 거쳐 5층으로 올라갔다.
해경 이○○는 ‘접안시 승객이 보이지 않았는지’를 묻는 질문에 “못 봤다”고 했다. 검찰은 해경이 세월호에 450명이 타고 있다는 정보를 사전에 알고 있었고 밖엔 승객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승객을 찾을 생각을 못했는지’를 묻자 이씨는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검찰은 이들 해경이 실제 선내의 승객을 못봤는지 혹은 보고도 무시했는지를 밝혀내지 못했다.
<미디어오늘>은 관련 연구자들의 도움을 받아 당시 상황을 입체적으로 분석했다.
해경 고무단정이 세월호에 처음 접안한 것은 9시38분경, 이때 해경은 기관부 선원 5인을 데리고 나온다. 해경은 두번째 접안에서, 헤엄치고 있던 기관부 선원 박○○를 건져낸 뒤 세월호 4층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승객 김○○씨 부부와 조○○(8세)군을 태운다. 기관부 선원 김○○도 이 때 함께 승선했다.
김씨 부부가 세월호를 탈출한 것은 9시 42분경. 이 때 김 씨 부부가 해경 고무단정을 타고 세월호에서 멀어지며 선내의 승객들을 향해 크게 손짓을 하는 모습이 채증영상(20140416_094215)에 고스란히 찍혀있다. 이 때 해경 이○○는 3층 로비로 열려진 문을 한참동안 응시한다. 이로부터 2분 후, 고무단정이 세번째 접안을 해서 3층 로비를 지나쳐 5층으로 올라간 이가 바로 해경 이○○다.
▲ 9시42분경 김씨 부부가 해경에게 손짓을 하며 승객들이 선내에 있음을 말하는 장면(좌)과 해경 이 모 경사가 로비문을 응시하는 장면(우) 사진=해경123정 채증영상 20140416_094215
세월호가 처음 기울었을 때부터 3층 로비문은 바깥으로 활짝 열려있었고 승객들은 문쪽으로 모여들어 여기저기 기댄채 대기하고 있었다. 고무단정으로 도착한 해경이 나오라고 소리만 치면 얼마든지 그 소리를 듣고 빠져나올 수 있는 거리였다.
승객 김○○씨는 지난해 4월 특조위에 출석해 전후상황을 상세히 진술했다. 아래 진술은 김씨 부부가 손짓을 하고 해경이 로비문을 응시하기 전인, 고무단정의 두번째 접안 당시다.
“고무단정에 있던 해경이 제가 있던 난간의 문을 열으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난간의 문을 열었습니다. 그래서 ○○(조 군, 8세)이 넘겨주고 와이프 내려가고 제가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제가 고무단정에 탄 해경들에게 문이 열렸으니까 이쪽으로 들어오면 된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해경들은 안 들어왔습니다.”
김씨 부부가 세월호 선내의 승객들을 향해 손짓을 하고 동시에 해경이 로비문을 응시하기 이전에, 김씨 부부가 배에서 탈출할 당시에 이미 ‘난간이 열렸으니 들어가서 구조하라’고 요구했다는 얘기다.
김씨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손짓을 할 때)보트에 타서 해경들이 있는데 안에 사람이 많다는 얘기를 한 것”이라며 “그냥 말로 했다. 저기 사람 무지하게 많다. 빨리 구하라고. 왜 안들어가냐고”라고 당시 상황을 진술했다. 이에 해경이 ‘알았다’ ‘(123정에)실어다놓고 다시 올 거다’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 고무단정이 3층 로비 바로 앞에 접안했을 당시 로비 안쪽의 모습.
해경은 김씨 부부 등을 123정에 내리고 난 직후 김씨가 지목한 3층 로비문 앞에 배를 댔다. 그러나 승객들에게 밖으로 나오라는 신호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해경 이○○가 3층과 4층을 지나쳐 5층으로 곧바로 올라간다. 그리고, 같은시각 123정 본선의 해경들이 선장과 선원들을 데리고 나가는 바로 옆 세월호의 구명정 쪽으로 이동한다.
승객 김씨는 특조위에서 당시 채증영상을 보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특조위 조사관 “방금 시청한 영상에서 보면 진술인이 임의로 표시한 부분으로 해경이 세월호에 승선하는데, 이 때 세월호로 승선하는 해경은 승선하는 부분에서 3층 로비를 볼 수 있는 상황이었나요?”
승객 김 씨 “눈을 감고 있지 않았다면 당연히 볼 수 있습니다.”
양쪽으로 활짝 열린 로비문 안에는 승객 30여명이 해경의 퇴선지시를 기다리며 대기중이었다.
이들 해경이 선내의 승객들을 목격했다는 사실은 이들의 검찰 진술을 분석해봐도 확인된다. 3층을 지나쳐간 경사 이○○와 경사 박○○은 “못 봤다” “기억이 없다”고 부인했다. 반면 경장 김○○의 경우 세번째 접안 당시 승객 30명 정도를 보았는데, 이는 3층이 아니라 4층이었다고 진술했다. 그리고 이 ‘4층’의 승객 30명 정도에게 나오라고 소리를 쳐서 구조했다는 것이다.
김 경장은 “고무단정이 세월호에 2차 접안하여 승객을 구조하고 123정에 인계하고 나서 어떻게 하였는가요”라는 검찰의 질문에 “세월호 좌현 중앙쪽 4층에 승객이 30명 정도 있는게 보여서 그쪽으로 단정을 이동시켰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형래를 세월호에 올려보내고 나서 구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라고 하였다.
세월호 4층의 경우 3층과는 구조가 완전히 달라서 문을 통해 안쪽을 들여다볼 수가 없다. 문의 방향도 구명정에서 볼 수 없는 각도일 뿐 아니라, 선체 외벽 안으로 문이 들어가 있는 구조다. 세번째 접안 당시에도, 또 그 이후에도 30명 정도의 승객을 볼 수 있는 곳은 3층 로비 뿐이다. 김 경장이 목격한 것은 3층 로비의 승객들인 것이다. 물론 여러 채증영상과 생존자 증언에서 드러났듯이, 해경은 나오라고 소리를 치지도 않았다.
▲ 검찰이 집계한 123정과 고무단정의 구조현황. 2014고합436 변호인 변론요지서에 대한 의견에서 발췌.
실제 이 3차 접안 이후 고무단정을 탄 승객은 스스로 갑판으로 빠져나온 12명 뿐이었다.
이들 해경 경장의 진술과 당시의 채증영상, 승객 김씨의 진술을 종합해보면 고무단정에 승선했던 해경 3인은 적어도 9시44분의 3차 접안 당시 3층 로비에 모여있던 승객 30여명을 목격했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그리고 세월호 좌현이 완전히 물에 잠길 때까지 해경으로부터의 퇴선명령은 없었다.
(기사에 도움주신 분:‘304 목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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