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옷에서 나는 이상한 냄새, 세상을 덮었죠"
[6월 민주항쟁 30주년] 1987년 6월 첫 번째 이야기
17.06.09 18:06 l 최종 업데이트 17.06.09 18:06 l 오마이뉴스(news)
올해로 1987년 6월 항쟁 30주년을 맞았습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오마이뉴스>가 공동기획으로 '6.10 민주항쟁 30주년 기념, 1987 우리들의 이야기' 특별 온라인 전시회를 열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전시회 내용 가운데, 가상 시민 인터뷰와 시대적 풍경이 기록된 사진 등을 갈무리해 독자 여러분께 전해드립니다. - 편집자 말
남대문 상가에서 장사하는 30대 여성 상인
▲ 1987년 6월 남대문 시장 한 가운데로 날아온 최루탄을 피해 흩어지는 시민들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 1987년 6월 13일 점심시간을 이용해 시위에 참가한 명동 주변의 회사원들을 향해 경찰이 최루탄을 발사하자 급히 자리를 피하는 모습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 1987년 6월 18일 "군부독재 종식을 위한 살인적 최루탄 추방대회", 서울지역 대학생대표자 협의회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젠 최루탄 냄새가 시장 한가운데까지 날아오고 있어요. 이게 벌써 며칠째인지 모르겠어요.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아요. 신경질적인 재채기 소리가 시장 안을 떠돌아다니고 있네요. 그만큼 상인들의 불만도 높아져 가고 있고요. 하루 이틀도 아니고 허구헌 날 최루탄을 쏴대니 숨쉬기도 힘이 들 정도예요. 그나마 우리 가게는 큰길에서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좀 덜한 편이긴 해요.
시위하는 사람들이 전경들을 뒤에 달고 시장 안으로 도망쳐 왔어요. 순식간에 험한 분위기가 연출됐지요. 겁먹은 전경들이 최루탄 몇 개를 던져놓고 시장 입구 쪽으로 도망치 듯 사라졌고요. 한낮의 후끈한 바람을 따라 매운 냄새가 순식간에 퍼져 나갔어요. 버려진 석회가루 같은 하얀 상처가 시장 골목 여기저기에 희미하게 남아있네요.
땀과 최루탄을 뒤집어쓴 사람들의 모습이 이제는 낯설지 않아요. 시장 안에 가득 찬 최루탄가루를 물로 쓸어냈어요. 더위와 냄새에 지친 사람들의 갈증을 달래 주는 수돗물이 싸구려 파란 고무호스를 따라 뿜어져 나왔어요. 밤늦게 귀가하는 남편의 옷에서도 이상한 냄새가 풍기기 시작했어요. 요즘 세상을 가득 덮은 그 매운 냄새 말이에요.
시내버스를 운전하는 30대 버스 기사
▲ 1987년 6월 버스에서 구호를 외치는 학생들과 이를 지켜보며 박수치는 시민들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 1987년 6월 10일 '6. 10 국민대회' 경적시위에 참여한 자동차를 향해 손을 흔들며 환호하는 시민들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어제는 한 청년이 버스 안으로 종이 무더기를 던져 놓고 사라졌어요. 오후 6시 경적 시위에 참여해 달라는 유인물이었어요.
머리에 최루탄을 맞은 대학생이 중태에 빠졌다는 긴급 뉴스가 라디오에서 한창 나올 때였어요. 하루하루가 불안하기만 한 요즘이에요.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죽어야 이런 상황이 끝날지 가슴이 먹먹하기만 해요. 6월이 되면서 시내 도로가 점점 더 답답해졌네요. 어디서부터 막히는지도 모른 채 무작정 길 위에 서 있기 일수예요.
유월의 뜨거운 해가 중천을 지나고 있지만 마음은 이미 6시를 향해가고 있었어요. 오늘따라 운전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네요. "사람들이 자동차 경적을 울려줄까", "혹시 경적을 울리면 경찰이 잡으러 오지나 않을까", "사람들한테 욕이나 먹지 않을까". 생각만 많아지는 요즘이에요. 아내가 몸조심하라고 했는데...
갑자기 앞 차에서 울린 경적 소리가 들렸어요. 시계를 보니 아직 6시가 되진 않았는데 말이에요. 그때 마주 오던 승용차 운전자가 비상 라이트를 깜빡이면서 차창 밖으로 손을 흔들더라고요. 이 차 저 차에서 경적 소리가 시끄럽게 울려대기 시작했어요. 길가의 놀란 눈길들이 자연스럽게 도로 안으로 모여들었어요. 손뼉을 치는 사람, 구호를 외치는 사람, 휘파람을 부는 사람. 자동차 경적으로 연주하는 6월의 행진곡 같이 들리더라고요.
* 사진 출처 : 박용수, 경향신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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