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8041640001
박찬주 대장 공관병 직접 증언 "부인이 썩은 과일을 사람한테 던졌다"
최미랑 기자 rang@kyunghyang.com 입력 : 2017.08.04 16:40:00 수정 : 2017.08.04 18:29:54
박찬주 대장의 공관병으로 근무했던 한 전역 병사가 4일 모처에서 기자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증언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육군 제2작전사령관 박찬주 대장(57·육사 37기)의 공관에서 근무한 한 전역병사가 언론사 기자들과 만나 박 대장 부인의 ‘갑질’에 대해 직접 증언했다.
군인권센터는 이날 오전 모처에서 박 대장 공관에 근무한 전역병사 ㄱ씨와 언론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근무기간은 신상 노출을 피하기 위해 공개하지 않았다.
ㄱ씨는 그동안 언론에 보도된 박 대장 부인의 갑질 의혹은 “80~90% 이상이 제가 겪은 것이거나 아는 것”이라며 “장군 부인 사모가 병사들을 하인 쓰듯 하는 게 제일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박 대장 부인이 “기본적인 집안일에서부터 모든 일을 하루 종일 시키면서 트집을 잡고 조금만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인격 모독적인 폭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ㄱ씨는 박 대장 공관병은 “팔찌같은 벨을 24시간 차고 있어야 했다”며 “벨을 못 들었을 때 ‘뭐하는 거냐’라며 ‘이런 식으로 팔찌 안 차고 있고 하면 너네 내가 영창 보낼 수도 있다”고 협박한 적도 있다고 주장했다. ㄱ씨는 “사모가 쓰는 속옷 빼고는 모든 것을 저희가 빨래했다”고 했다.
공관병들에게는 휴식이나 휴가도 보장되지 않았다고 ㄱ씨는 증언했다. 그는 “좁은 공관에 갇혀 기본적인 휴식시간도 가지지 못하고 대기시간에 쉬는데도 1층의 조그만 주방에서 대기하라고 해서 피곤해도 주방에서 쪽잠을 자면서 서로 망을 봐 줬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도 공관병이 문제제기를 할 통로는 없었다고 ㄱ씨는 주장했다. ㄱ씨는 “일반 부대라면 소원수리를 하면 되는데, 그 사람이 괴롭힌다고 말할 데가 없었다. 다 그 사람보다 밑이니까 어디다 말해도 소용없을 것 같았다”고 했다.
ㄱ씨는 박 대장 부인의 갑질에 스트레스를 받아 한 공관병이 자살을 시도한 사실에 대해서도 들었다고 증언했다. 박 대장이 사모의 이같은 전횡을 알면서도 이를 견디지 못하는 병사들을 오히려 전방으로 보냈다고 ㄱ씨는 주장했다. 다음은 전역 병사 ㄱ씨와의 일문일답이다.
-부당한 일을 당했나.
“너무 많아서 정리해서 말을 못 하겠는데, (언론 보도로) 나온 것은 80~90% 이상 제가 겪었거나 아는 것으로 다 맞다. 기본적으로 가장 힘든 것은 장군 부인인 사모가 병사들을 개인 하인 쓰듯 한 것이었다. 기본적인 집안일에서부터 모든 일을 (부인은)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하루 종일 시키면서 트집을 잡고 조금만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인격모독적인 말을 엄청 많이 했다.”
-어떤 폭언을 했나.
“기사에 나온 것처럼 예를 들면 조리병한테는 ‘너희 엄마한테 이렇게 배웠냐’라는 등 부모님 얘기까지 꺼내면서 ‘이것밖에 못 하냐’고 큰소리를 치면서 칼로 탕탕 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옆에서 간섭을 엄청나게 많이 하고, 물건을 집어 던지면서 폭언한 적도 있다. 사람한테 (물건을) 직접 던진 적도 몇 번 있어서, 이에 맞은 적도 있고 맞는 것을 본 적도 있다. 선물받은 과일이 많았는데 다 소비를 못하니 상하곤 했다. 그러면 ‘관리 못하냐’라면서 썩은 과일을 사람한테 던졌다. 맞아서 그 곰팡이가 파랗게 터지는 걸 제가 봤다. 보도에 나온 것처럼 전이 담긴 비닐봉지를 던져서 얼굴에 맞은 경우도 있다.”
-전자팔찌를 채워 호출했다는데.
“말 그대로 팔찌같은 벨이 있는데 24시간 차고 있어야 한다. 아무때나 (부인이) 필요할 때, 눌러서 바로 그리로 뛰어오지 않으면 이제 난리가 나는 거다. ‘왜 이렇게 늦게오냐’며 누르는 벨을 집어 던진 적도 있고…. ‘굼벵이 새끼도 아니고 빨리 안 뛰어오냐’ 하면서 ‘내려갔다가 다시 와라’ 이런 식으로 시키기도 했다. 심지어 2층 안방에 벌레가 나오기라도 하면 수시로 벨을 눌러서 ‘이거 처리 해라’ 그런 용도로 썼다. 눌러서 ‘물 가져와라’ ‘(과일) 깎아와라’ 이런 주로 잔심부름 시키기 용으로 계속 썼다. 벨이 울리면 우리는 바로바로 반응을 해야했고, 팔찌를 매일 충전해서 써야 하는데 팔찌가 방전돼 꺼졌다든가 화장실에 가느라 풀어놓아 소리를 못 들으면 전화를 해서 ‘벨 눌렀는데 뭐하는 거냐’고 하면서 ‘이런식으로 팔찌 안 차고 있고 하면 너네 내가 영창 보낼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협박한 적도 있다.”
-이외에도 어떤 일을 했나.
“같이 쓰는 공간이 아니라 자기의 사적인 공간들, 화장실 변기와 거울까지 다 깨끗이 관리를 해야하고 올라가서 환기하고 빨래를 해야 했다. 사모가 쓰는 자기 속옷 빼고, 장군님 속옷은 당연히 해야 했고 아들이 오면 아들 빨래부터 해서 저희가 빨고 널고 했다. 공간에 비치된 식물을 관리하는건 (공관병) 임무일 수 있는데, (부인이) 취미로 기르는 작은 식물 80여개도 다 관리해야 했다. 식물을 안 길러본 사람은 식물 특성이 다 다르고 물 주는것도 다르고 난도 기르기 어려운데 대충 설명해주고, 몇달 거쳐서 하다가 식물이 죽으면 난리가 났다. 특히 다육식물의 경우 여름이나 겨울에는 물을 줄 때마다 다 옮겨서 화장실로 가져가야 했다. 그냥 주면 물이 얼어서. 물이 빠지면 다시 갖다 놓고. 여름에도 (식물이) 탄다고 꺼냈다 들여놨다 해야하는데, 수많은 화분을 옮기다보면 실수로 떨어뜨릴수 있는데 깨진다든가 하면 난리가 난다.”
-폭언을 하거나 화분을 집어 던진 적 있나?
“한번은 발코니에다 (화분을) 늘어 놓았는데, 날이 추울 때였다. 물을 주고 베란다에 내어 놓았다가 얼어서 잎 색이 좀 변하고 그런 화분이 많이 생겼다. 그러니까 ‘이렇게 추운 날씨에 걔들이 당연히 추위를 타고 얼어 죽지 멀쩡하겠냐, 너도 발가벗겨서 물 뿌려서 밖에 내놓으면 얼어죽지 않겠냐, 이렇게 할까’ 이런 식으로 말을 했다. 그 때 (한 공관병이 발코니에서) 식물 하나 하나 (처치를) 하고 있는데 ‘거기서 다 하고 나오지 마’ 하면서 문을 잠궜던 것 같다. 집어 던진 물건에 누가 맞는 것은 봤다. 음식을 엄청 차린 상황에서 다 치우고 할일이 많은 날 폭언을 당했다가 사모가 물건을 집어던지자 충격을 받아 쓰러진 사람도 있었다. 아들에게 반찬을 제대로 챙겨주지 않아서 그랬다고 들었다.”
-이런 전횡에 장군은 어떻게 대처했나.
“평소에는 집에서 (부인이) 한 일을 알면서도 방치하듯이 했다. 그러다가 무슨 일이 있었을 때, 예를 들어 조리병이 (사모가) 옆에서 너무 괴롭히니까 ‘못 하겠다’고 한 다음에 자기 지갑이랑 물건을 들고 뛰쳐나간 적이 있다. 탈영까지는 아니고 공관에서 나간 것 뿐인데 간부들이 데려오니 (박 대장이) ‘그런식으로 일 생겼을 때 반항하냐. 사모 말도 잘 들어야지. 이 사람도 이정도 급이다’ 말하면서 세워놓고 일장 혼냈다. 그때 ‘군기 빠졌다’며 (해당 조리병을) 전방으로 보낸 거다. ‘고생을 해 봐야지 편한 걸 알고 불만이 안 나온다’고 ‘집에 있으면서 이렇게 하는게 어떻게 보면 편한 것일 수 있다. GOP(일반전초) 이런 데 가면 얼마나 힘든지 알 거다’ 하면서 GOP 최전방 부대로 애들을 일주일씩 보냈다. 부릴 병사가 없으면 안 되니까 교대로 보낸 거다. 연대장에게 연락해서 ‘2교대로 돌리라’고 해서 똑같이 하고. 제가 듣기로는 ‘거기 갔을 때가 훨씬 편했다’ 하더라. 정신적으로 스트레스가 없고 몸만 힘드니까. 자유시간도 그만큼 보장이 되니까. 고생한만큼 한 달에 휴가도 나오고.”
-공관에서는 휴식시간이 보장되지 않았나.
“공관에서는 고생한다 해서 절대로 휴가를 준다거나 포상도 없고 외출도 없고, 기본 외출·외박도 일반 병사보다 제한을 당했다. 주말에 부모님이 오시거나 누가 와도 한번 나간다 하기가 힘들었다. 원래 권리인데도 처음에는 말도 못 했다. 몇 개월 지나서야 얘기해서 나갔지, 처음에는 너무 뭐라고 하고 눈치를 주고 ‘자꾸 나가려고 하냐’고 하니까 못 나갔다. 부모님이 오셨다고 해도 (사모가) 기분 안 좋게 얘기했다. 부대 생활에서도 훈련 할 때는 하고 쉴 때는 쉬는데 저희는 그런 게 없었다. 좁은 공관에 갇혀서 기본적인 휴식도 못하고 대기시간에 쉬는 건데 1층의 조그만한 주방에서 대기하라고 하니까 피곤해도 주방에서 쪽잠을 자고 서로 망 봐주고 그랬다. 병사들도 일과 후에 운동을 하거나 PX에 가고 사지방(사이버지식정보방)도 가고 인터넷도 하고 전화도 하는데 그런 게 다 없었다. 운동도 못하지 전화기도 없지, 그러니까 아예 갇혀서 완전히 단절된 채로 지낸 거다. 일반 군인도 (외부와) 단절되면 힘든데 공관은 사령관을 위한 것이라 따로 병사들을 위한 시설도 없다. 그 상황에서 (휴식을) 조금이라도 보장해주면 좋겠는데 있던 컴퓨터를 막아버린 적도 있다. 인터넷을 하면 딴짓 할 수 있다면서. 전화를 하고 싶으면 부관의 휴대전화를 빌려서 하라는데 간부한테 빌리기 쉽지 않으니까 통화도 못하고 갇혀 있는 느낌이었다. 사모가 잠들기 전까지는 계속 긴장된 상태로 대기하는 느낌이었다.”
-문제제기를 할 수 없었나.
“일반부대였으면 소원수리를 하면 되는데 그게 아니라서 ‘그 사람이 괴롭힌다’고 말할 데가 없었다. 다 그사람보다 밑이니까 어디에다 말해도 소용없을 것 같았다. 신고는 못 하고 그냥 소대장이나 행보관, 같이 있던 수석 부관들 장교들한테도 너무 힘드니까 다 얘기했다. ‘못 하겠다’ 이런 말을 많이 했는데, 그 분들에게도 너무 한참 높은 사람이니까. (소대장 등은) 저희 편을 들어주지만 ‘힘들겠다’, ‘고생이 많다’하고 그것 뿐이었다. ‘좀만 더 버티자’하면서 달래어 주기만 하고 위안을 주려고 했지만 근본적으로 도움이 안 됐다.”
-왜 신고를 못 했나.
“육군에서 가장 높은 직급이니까 신고를 못하지. 부조리가 표면적으로 군대에서 거의 없어진 것은 신고 시스템이 잘 돼 있어서인데, 거기서는 더 폐쇄된 공간었으니까. 대통령한테 얘기하지 않는 이상 더 높은 사람이 없으니까. 병사 입장에서 전자기기도 아무것도 쓰지 못하는 입장에서 당한 것은 말 뿐이니까 ‘말한다고 소용이 있을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할 수만 있으면 녹음하거나 찍고 싶었는데 외부와 소통이 안 돼 그럴 방법이 없었다.”
-제보하게 된 계기가 있나.
“원래는 전역을 하고나서 신고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런 부조리는 고쳐야한다 생각해서 전역하고 나서는 언론에 알려야하지 않을까 많이 했고 친구들과 많이 얘기했지만, 정확히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다.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이슈화가 되면서 나도 추가적으로 제보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처음에 (갑질 의혹을) 부인하지 않았나. 내가 아는 게 있고 당한 게 다 있는데 부인하니까 그런 것에 대해서 ‘어떻게 저렇게 뻔뻔하게 자기가 했던 일을 아닌 척하지’라는 생각이 들어 용기를 냈다. 그사람들이 아니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더 정확한 사실을 알리고 싶어서.”
-공관병 제도는 어떻게 돼야 한다고 보나.
“폐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식으로 폐쇄된 공간에 있으니까 거기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잘모르니까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굉장히 많다.”
-자살 시도 사건에 대해 들었나.
“제가 듣기로는 그때 당시에 이사를 오면서 짐이 엄청 많았는데 그중에 하나를 그거를 못찾으니까 조리병에게 ‘너가 다 짐을 쌌는데 왜 못찾냐’ 하면서 뭐라고 했다. 창고가 2~3개 있는데 하나하나 다 풀어헤쳐서 짐을 다 뒤졌지만 결국 못찾았다. 와서 엄청 깨지고 찾아 내라 하고선 또 갔는데 못찾고. 아침에 교회에 가면서 ‘스트레스 너무 많이 받아서 다 때려부수고 나가고 싶다’ 그랬다고 했다. 그런 상황에서 없는 걸 찾아내라고 하니까 창고를 뒤지려면 몇시간 걸리니, 못 버틴거야. 제가 알기로는 자살 시도를 했다. 의미심장한 연락을 하고 그동안 감사했다 이런식으로 해서 주변에서 알게 된 거다. 당시 사모는 다른 사람 탓만 하고 자기 잘못이라고는 하나도 생각 안 하는 반응을 보였다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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