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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답사기 4 - 서풍 성자산성
김용만 2017년 8월 9일 오후 4:37 

답사 첫날은 심양 석대자산성, 무순 고이산성, 철령 최진보산성까지 3곳을 둘러보고 개원시까지 가야 하기 때문에, 매우 바쁜 하루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답사 2째 날은 답사지가 단 1곳입니다. 호텔 조식 후인 7시 40~50분 경에 출발해서 2시간 이동해서 서풍현 양천진에 있는 서풍 성자산성에 도착하게 됩니다.

성자산성이 있는 곳은 중국에서 국가AAA급 관광지인 성자산풍경구입니다. 성자산은 장백산맥의 지맥인 길림합달령의 여맥에서 뻗어 나온 요북(遼北) 지역에서 2번째로 높은 산입니다. 또한 요북지역 4대 명산 가운데 하나로, 기이한 소나무, 괴석, 숲의 바다, 고적 등 4가지가 뛰어난 곳이라고 합니다. 고적은 곧 성자산성으로, 고구려 성 가운데 보존상태가 좋은 성에 속합니다. 고구려 성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이곳을 충분히 시간을 갖고서 답사를 하고자 합니다. 대략 오후 1시~2시 사이에 답사를 마치고, 점심을 먹고, 약 4시간 정도 차로 이동해 길림시로 가고자 합니다. 이때에 차량 밖을 보면 넒은 요동대평원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성자산성은 둘레가 4,393m(천연성벽 323m 포함), 남북 너비 875m, 동서 길이 1,500m로 성 안에 적어도 1만의 군사가 주둔할 정도의 대형 산성에 해당됩니다. 전형적인 포곡식 성으로, 서쪽으로 골짜기를 품고 있는 형태라 주 출입구는 서문이며 동쪽에도 문이 있습니다. 형태는 건안성, 최진보산성과 많이 유사한 편입니다.

서풍 성자산성을 천리장성의 시작인 부여성으로 보려는 견해가 있는데, 부여에서 먼저 쌓고 고구려가 뒷날 차지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여국의 2대 도성으로 이곳을 보기도 합니다. 중국의 손진기는 대략 성 건설에 13년이 걸렸다고 봅니다. 부여의 도성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부여의 한 중심지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성자산성은 고구려가 당나라와 전쟁을 할 때 요동방어망의 한 축이었던 것만큼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내려오는 전설에는 성자산성 주둔군의 수령을 연개소문의 여동생인 천개소화(泉盖苏花) 였다고 합니다. (장하 성산산성의 주둔군 사령관이 연개수영이라는 전설과 관련지어 생각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곳에서는 또 고구려인이 철수할 때 금은보화를 산 속에 묻어두었다는 전설이 전해져와, 1980년대에 많은 사람들이 금속탐지기를 들고 산성 안을 뒤졌다고 합니다.)

성자산성에는 마도, 점장대, 요망대, 토갱, 저수지, 옛무덤, 우물, 흙담, 연자방아 등 10여곳에 유지가 남아있습니다. 성벽은 대개 석축으로 성벽 안팎의 성돌은 쐐기형으로 쌓아올렸고, 내부는 잡석을 끼워 넣어 채웠습니다. 특히 서벽 남쪽 구간과 남벽 구간이 잘 남아있으며, 성벽위에 모가 난 구멍 7개가 확인되고 있습니다. 성벽은 안쪽이 낮고 바깥쪽이 높아 방어에 편리하게 되어 있으며, 현재 남은 성벽 가운데 최고 높이는 약 5m에 달합니다.


주출입구인 서문은 너비가 5.2m이며, 문터에서 오른편 성벽은 오래전에 허물어진 상태지만, 왼편 성벽은 높이 4~5m, 뚜께 2.5m로 남아있습니다. 서문에서 북쪽 수문까지는 거리는 87m이며, 물막이 기능을 한 제방에서 수문까지는 109m 떨어져 있습니다. 성안에는 샘, 직경 37m의 타원형 형태의 저수지가 있습니다. 샘은 현지들이 황주관(黃酒館)이라 부르는데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다고 합니다. 성 내에서는 여러 건물지가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5호 건물지는 14단 돌로 기단부를 쌓고 호석이 둘러진 망대 건축물로 여겨지는데, 기단은 길이 9.3m, 높이 2.2m에 달합니다. 또 144개의 원형 흙구덩이가 발견되었는데 큰 것은 직경 10m, 깊이 1.75m, 작은 것은 직경 2m 폭 0.5m 크기로, 군사들의 반지하식 집자리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최진보산성의 고려갱과 유사한 것으로 봅니다.) 성안에서는 철제품과 줄무늬(繩紋) 기와, 연꽃무늬 막새, 화살촉, 쇠솥, 재갈 등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이 성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은 서문 바깥에 외위성이 있다는 점입니다. 성자산성은 송요대평원에서 비교적 멀리 떨어진 험준한 산줄기에 위치합니다. 산성 북쪽에 연반하(碾盤河)가 흐르고 강을 따라 충적평지가 기다랗게 펼쳐져 있고, 산성 동쪽에서 유수천 서쪽에는 성자구라는 골짜기가 남북방향으로 길게 놓여 있습니다. 따라서 성자산성은 비록 험준한 산줄기에 위치하지만 하천 연안로를 따라 서풍, 개원, 청원 등 주변으로 쉽게 나갈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성자산성은 성의 넓이에 비해 성안 평지는 넓지 않고 동쪽 산비탈은 가파르기 때문에 주거용 공간이 좁은 편입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산성 서문쪽 대동구(溝)와 성자구(溝) 골짜기를 감싼 5㎞의 외위성(外圍城)을 축조했습니다. 외위성에서는 도자기조각, 기와조각, 원통형 기와조각, 쇠사슬과 돌절구 등이 출토되었습니다. 외위성의 남는 벽의 높이는 1~2m, 밑너비 6~9m, 웃부분너비 0.8~1.6m로 석성인 본성과 달리 토성으로 본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늦게 축조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서풍 성자산성은 처음에는 군사방어성으로 구축되었다가, 나중에 지방 지배를 위한 거점성의 기능을 보완한 것으로 보입니다.

외위성까지 합치면 서풍 성자산성은 둘레만 해도 8㎞가 넘는 초대형 성이 되는 셈입니다. 서풍 성자산성은 고구려가 중원세력 보다는 돌궐, 거란 등 북방세력의 침략에 방비하고, 부여를 제압하고 송요대평원으로 진출하기 위해 보축, 또는 신축한 성이라고 생각됩니다. 성은 서문과 수문, 각대 등을 보고, 성 내부로 들어가 건물터, 황주관, 장대 등을 본 후, 동문터 까지 갔다가 비교적 성벽이 잘 남아있는 남쪽 성벽을 타고 돌아오는 코스로 답사를 하고자 합니다.

성 사진은 성자산 소개 사이트 (http://www.chengzishan.com)에서 퍼온 것입니다.

성자산산성 평면도

성자산산성 위치도성자산산성 표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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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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