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contents.nahf.or.kr/id/NAHF.iskc.d_0001_0040
고구려 성과 교통로 및 방어체계
산성은 대체로 큰 하천과 강을 끼고 위치하고 있다. 이는 고대의 교통로가 대체로 강을 따라 만들어지고 있고, 또 천변의 농경지를 중심으로 취락이 발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민들의 취락을 통제한다는 점에서 지방통치의 중심지 역할, 그리고 교통로를 통제한다는 점에서 군사적 방어 성격을 띠고 있음을 그 입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면 고구려 성의 분포 및 교통로와 연관된 방어체계에 대해 살펴보자. 고구려 초기에 축조된 高儉地山城·黑溝山城·轉水湖山城·黑溝山城·自安山城은 초기 영역의 외곽선에 배치된 산성이다. 高儉地山城은 蘇子河나 太子河에서 환인으로 들어오는 길목을 제압하는 위치에, 黑溝山城·轉水湖山城은 蘇子河에서 富爾江으로 따라 내려오는 경로상에 위치한다. 이들 산성을 지나면 부이강과 渾江이 만나는 지점에 覇王朝山城이 위치하여 新開河로 빠지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 自安山城은 渾河와 柳河 상류에서 지금의 통화를 거쳐 국내지역으로 들어오는 경로에 위치한 최북단의 산성이다. 그리고 城墻砬子山城·瓦房溝山城은 환인에서 혼강을 따라 압록강이나 국내성으로 이어지는 경로 중간에 위치한 산성이며, 한편으로는 靉河 상류를 통해 丹東(西安平)으로 이어지는 경로를 방어하는 최서남단의 산성들이다.
이들 외곽 산성에서 수도인 국내지역으로 이어지는 교통로에는 이를 방어하는 城堡와 關隘가 겹겹이 축조되어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본다면 馬鞍山山城·建設山城·英戈布山城 등 소형 城堡는 高儉地山城·黑溝山城·自安山城 등 외곽 산성의 배후에 위치하고 있으며, 기타 관애는 중간 방어선인 紇升骨城·覇王朝山城에서 국내성에 이르는 4개의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다. 즉 국내성의 방어선은 최전선에서 2중 3중으로 구축되어 있는 것이다.
한편 고구려에서 요동지역으로 나가는 출입구라고 할 수 있는 新城을 확보한 4세기 이후에는, 환인일대에서 요동으로 이어지는 2개의 교통로에 鐵背山城·五龍山城·舊老城·羅通山城·太子城·杉松山城 등을 축조하여 종심이 깊은 방어망을 구축하였다.
고구려가 4세기말 5세기에 들어 요동지역을 완전 확보하고, 평양으로 천도한 뒤에는 요동지역에서 압록강을 거쳐 평양으로 이어지는 교통로에 다수의 산성을 축조하여 겹겹이 방어망을 구축하였다. 이러한 방어망들이 효과적으로 기능하면서 수와 당의 대규모 침공을 요동지역에서 격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고구려와 수·당과의 전쟁 기사에는 고구려의 중요한 성의 이름들이 다수 거론되고 있는데, 이를 현재 남아있는 고구려 산성유적과 연관해서 당시의 방어체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당시 요동지역에서 평양성으로 가는 교통로는 여러 길이 있었다. 첫째는 遼東城(요령성 요양시)이나 蓋牟城(요령성 심양시 塔山山城)에서 白巖城(요령성 등탑시 燕州城)을 지나 지금의 본계 - 봉성을 거쳐 남하하는 길, 둘째 安市城(요령성 해성시 英城子山城)에서 지금의 수암을 거치는 길, 세째 발해만을 건너 建安城(요령성 개주시 高麗城山城)에서 지금의 광하를 거치는 길, 네째 요동반도의 남단인 卑沙城(요령성 대련시 大黑山山城)에서 해안길을 따라 가는 길 등이다. 요동반도 남단의 해안길에는 城山山城과 魏覇山城이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본계나 수암을 거쳐오면 烏骨城(요령성 봉성시 鳳凰山城)이란 거대한 산성이 천산산맥을 넘어온 적군을 방어하고 있다. 그 외 요동에서 국내성으로 이어지는 교통로에는 新城(요령성 무순시 高爾山城)을 중심으로 玄鶖城 등이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이들 요동 지역 일대에 널리 산재하고 있는 산성들은 지역별로 독립된 방어망을 구축하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다른 지역의 성들과 유기적으로 연관하여 요동일대에 침공한 적들을 효과적으로 방어하였다.
이렇게 신성·개모성·요동성·백암성·안시성·건안성·비사성 등은 평원지대에서 천산산맥 동쪽의 산줄기로 이어지는 길목에 위치한 요충성들이었다. 이중 요하 하류는 늪지대가 많아 요하를 건널 수 있는 길은 요동성을 향하는 길이 주 교통로이며, 아니면 더 북쪽의 개모성·신성쪽으로 우회하거나, 발해만을 건너 건안성이나 비사성을 제압하는 길 뿐이었다.
수양제의 침략시에는 단지 요동성을 직공하는 길만을 고집하였기 때문에 요하를 건너는 과정에서 이미 상당한 손실을 입었으며, 또 주력을 요동성 공략에만 집중하는 바람에 주변 여러 성의 지원으로 요동성 공격에 실패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당태종이 침공할 때에는 요동성을 제외하고 요하선에 배치된 다른 성들을 우회 공격하여 후환을 없앤 후 요동성을 공격하는 전략을 세웠던 것이다. 이러한 전략은 어느 정도 효과를 보았는데, 당시 비사성·요동성·개모성·백암성 등은 함락되었지만, 고구려는 끝내 현도성·신성·건안성을 지켜냈다. 그 뒤 신성과 건안성·안시성의 고구려군은 위협적인 존재로 남아, 이후 당군의 요동 작전은 큰 제약을 받게 되고 결국 당태종은 안시성 공략에 실패함으로써 군대를 돌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고구려 성과 교통로 및 방어체계
산성은 대체로 큰 하천과 강을 끼고 위치하고 있다. 이는 고대의 교통로가 대체로 강을 따라 만들어지고 있고, 또 천변의 농경지를 중심으로 취락이 발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민들의 취락을 통제한다는 점에서 지방통치의 중심지 역할, 그리고 교통로를 통제한다는 점에서 군사적 방어 성격을 띠고 있음을 그 입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면 고구려 성의 분포 및 교통로와 연관된 방어체계에 대해 살펴보자. 고구려 초기에 축조된 高儉地山城·黑溝山城·轉水湖山城·黑溝山城·自安山城은 초기 영역의 외곽선에 배치된 산성이다. 高儉地山城은 蘇子河나 太子河에서 환인으로 들어오는 길목을 제압하는 위치에, 黑溝山城·轉水湖山城은 蘇子河에서 富爾江으로 따라 내려오는 경로상에 위치한다. 이들 산성을 지나면 부이강과 渾江이 만나는 지점에 覇王朝山城이 위치하여 新開河로 빠지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 自安山城은 渾河와 柳河 상류에서 지금의 통화를 거쳐 국내지역으로 들어오는 경로에 위치한 최북단의 산성이다. 그리고 城墻砬子山城·瓦房溝山城은 환인에서 혼강을 따라 압록강이나 국내성으로 이어지는 경로 중간에 위치한 산성이며, 한편으로는 靉河 상류를 통해 丹東(西安平)으로 이어지는 경로를 방어하는 최서남단의 산성들이다.
이들 외곽 산성에서 수도인 국내지역으로 이어지는 교통로에는 이를 방어하는 城堡와 關隘가 겹겹이 축조되어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본다면 馬鞍山山城·建設山城·英戈布山城 등 소형 城堡는 高儉地山城·黑溝山城·自安山城 등 외곽 산성의 배후에 위치하고 있으며, 기타 관애는 중간 방어선인 紇升骨城·覇王朝山城에서 국내성에 이르는 4개의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다. 즉 국내성의 방어선은 최전선에서 2중 3중으로 구축되어 있는 것이다.
한편 고구려에서 요동지역으로 나가는 출입구라고 할 수 있는 新城을 확보한 4세기 이후에는, 환인일대에서 요동으로 이어지는 2개의 교통로에 鐵背山城·五龍山城·舊老城·羅通山城·太子城·杉松山城 등을 축조하여 종심이 깊은 방어망을 구축하였다.
고구려가 4세기말 5세기에 들어 요동지역을 완전 확보하고, 평양으로 천도한 뒤에는 요동지역에서 압록강을 거쳐 평양으로 이어지는 교통로에 다수의 산성을 축조하여 겹겹이 방어망을 구축하였다. 이러한 방어망들이 효과적으로 기능하면서 수와 당의 대규모 침공을 요동지역에서 격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고구려와 수·당과의 전쟁 기사에는 고구려의 중요한 성의 이름들이 다수 거론되고 있는데, 이를 현재 남아있는 고구려 산성유적과 연관해서 당시의 방어체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당시 요동지역에서 평양성으로 가는 교통로는 여러 길이 있었다. 첫째는 遼東城(요령성 요양시)이나 蓋牟城(요령성 심양시 塔山山城)에서 白巖城(요령성 등탑시 燕州城)을 지나 지금의 본계 - 봉성을 거쳐 남하하는 길, 둘째 安市城(요령성 해성시 英城子山城)에서 지금의 수암을 거치는 길, 세째 발해만을 건너 建安城(요령성 개주시 高麗城山城)에서 지금의 광하를 거치는 길, 네째 요동반도의 남단인 卑沙城(요령성 대련시 大黑山山城)에서 해안길을 따라 가는 길 등이다. 요동반도 남단의 해안길에는 城山山城과 魏覇山城이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본계나 수암을 거쳐오면 烏骨城(요령성 봉성시 鳳凰山城)이란 거대한 산성이 천산산맥을 넘어온 적군을 방어하고 있다. 그 외 요동에서 국내성으로 이어지는 교통로에는 新城(요령성 무순시 高爾山城)을 중심으로 玄鶖城 등이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이들 요동 지역 일대에 널리 산재하고 있는 산성들은 지역별로 독립된 방어망을 구축하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다른 지역의 성들과 유기적으로 연관하여 요동일대에 침공한 적들을 효과적으로 방어하였다.
이렇게 신성·개모성·요동성·백암성·안시성·건안성·비사성 등은 평원지대에서 천산산맥 동쪽의 산줄기로 이어지는 길목에 위치한 요충성들이었다. 이중 요하 하류는 늪지대가 많아 요하를 건널 수 있는 길은 요동성을 향하는 길이 주 교통로이며, 아니면 더 북쪽의 개모성·신성쪽으로 우회하거나, 발해만을 건너 건안성이나 비사성을 제압하는 길 뿐이었다.
수양제의 침략시에는 단지 요동성을 직공하는 길만을 고집하였기 때문에 요하를 건너는 과정에서 이미 상당한 손실을 입었으며, 또 주력을 요동성 공략에만 집중하는 바람에 주변 여러 성의 지원으로 요동성 공격에 실패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당태종이 침공할 때에는 요동성을 제외하고 요하선에 배치된 다른 성들을 우회 공격하여 후환을 없앤 후 요동성을 공격하는 전략을 세웠던 것이다. 이러한 전략은 어느 정도 효과를 보았는데, 당시 비사성·요동성·개모성·백암성 등은 함락되었지만, 고구려는 끝내 현도성·신성·건안성을 지켜냈다. 그 뒤 신성과 건안성·안시성의 고구려군은 위협적인 존재로 남아, 이후 당군의 요동 작전은 큰 제약을 받게 되고 결국 당태종은 안시성 공략에 실패함으로써 군대를 돌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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