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contents.nahf.or.kr/id/NAHF.iskc.d_0011_0020
신성(新城)
무순(撫順) 시가지 북쪽 혼하(渾河) 북안의 고이산(高爾山)에 자리잡고 있어 고이산성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해발 230m의 장군봉에서 뻗어내린 산등성이가 동·서·북의 3면을 둘러싸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혼하가 동에서 서로 흐르면서 산성을 마주보고 있다. 이 혼하를 따라가면 요동평원으로 나갈 수 있고, 혼하 상류로 거슬러가면 산간지대로 나갈 수도 있다. 한편 성 안을 관통하고 있는 도로를 타고 북쪽으로 가면 철령(鐵嶺)을 거쳐 요하 중상류로 나갈 수도 있다. 제3현도군(玄鶖郡)을 몰아낸 고구려는 현재의 노동공원(勞動公園)에 있던 토성을 활용하는 한편, 산성을 쌓아 ‘신성(新城)’이라 하였다. 이후 고구려의 요동진출 거점이면서 고구려 서북방면에서 전략적으로 가장 중요한 요충지였다.
둘레가 4km에 달하고 있는 신성은 동성(東城)·서성(西城)·북위성(北衛城)·남위성(南衛城) 그리고 동남쪽의 2중 성곽으로 이루어진 복곽식(複郭式) 산성이다. 동성이 먼저 축조되었고 서성과 여타의 부속 성곽들은 시간차를 두고 만들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축성 직후부터 적의 침입이 신성에 집중되었다는 점에서 방어력을 강화해야 하였고, 지방지배의 거점으로 발전함에 따라 거주공간을 확대할 필요성도 있었던 것이다.
주요 유적과 유물이 나온 동성이 이 성의 주성에 해당한다. 반면 서성은 평상시 활동공간이라기 보다는 유사시에 동성을 보조하던 구역으로 보인다. 장군봉에서 남동쪽으로 뻗은 능선 위의 성벽이 동성과 서성을 구분하고 있다. 동성의 남·북·동벽에 성문이 있고, 서벽에는 서성으로 통하는 작은 성문이 마련되어 있다. 옹성의 구조를 보이는 동성의 남문은 남쪽 골짜기 입구에 있는데, 그 전면이 남위성 구역에 해당한다. 고구려인들은 이곳에 한 줄기 성벽을 하나 더 축조하여 서성과 동성에서 내려온 산등성이와 연결된 방벽을 구축해 두었다. 별도로 동성의 북벽과 동남쪽에서 흘러나간 한 줄기 산등성이에는 각각 북위성과 동남쪽의 2중 성곽을 두어 방어를 강화하였다.
한편 신성 동쪽, 무순시 위생학교(衛生學校)의 뒤편 산비탈에는 약 40기의 고구려 돌방흙무덤(封土石室墓)으로 이루어진 ‘시가구(施家溝)무덤떼’가 있다. 이 무덤의 주인공들과 신성의 관계가 주목된다. 이밖에 남위성의 남단 정상에는 요금(遼金) 대의 팔각전탑(八角塼塔)이 있고 현재는 공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신성에서 지척인 노동공원은 제3현도군치가 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장군봉 아래 동성 내부의 전경(동남→서북)
신성 단면도
동성의 서벽
동성 동벽 구간
동성 서벽 근처의 계단상 대지
동성 동문터
북벽에서 바라본 철령 방면
동성 동남벽에서 서성 남쪽.
- 남위성 남단 정상에 솟아있는 요금대의 전탑이 보인다.
성벽의 축조방식Ⅰ
남문터의 서쪽 벽체
성벽의 축조방식Ⅱ
노동공원고성
시가구(施家溝) 무덤떼
시가구(施家溝) 무덤떼
전경
무덤의 회벽 흔적Ⅰ
무덤의 회벽 흔적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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