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218508&CMPT_CD=P0001 

박작성에서 북녘땅은 정말 '지척'인데......
압록강에서 두만강까지 '국경' 여행 (4)
09.09.17 09:41 ㅣ최종 업데이트 09.09.17 15:14 정만진 (daeguedu)


▲ 왼쪽은 중국, 오른쪽은 북한 박작성 점장대에 올라 내려다보면 시옷을 반대로 써놓은 듯한 도랑이 보인다. 이 중 오른쪽의 넓은 도랑 말고 왼쪽의 아주 좁은 도랑이 바로 유람선이 다니는 도랑이다. 이 도랑의 왼쪽은 중국, 오른쪽은 북한이다. 여기야말로 '국경'이다. ⓒ 정만진

지척(咫尺)은 많이 사용되는 말이지만, 한자로 적어보라고 했을 때에도 누구나 가볍게 쓸 수 있는 상용 한자어는 아니다. 지척의 지(咫)는 여덟 치 정도의 짧은 거리를 의미하고, 척(尺)은 재는 도구인 자를 뜻한다. 척은 30.30cm이고 1/10척인 치[≒寸]는 3.03cm이니, 여덟 치인 지는 대략 24.2cm 가량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지척은 그저 한뼘 정도인 25∼30cm에 지나지 않는다. 지척이라는 단어가 실제 현실에서는 '눈앞, 엎어지면 코가 닿을 곳'을 나타내는 뜻으로 쓰인다는 말이다.
 

▲ 우리땅이 지척인데 박작성 아래 유람선 타는 곳 수양버들 아래에는 북녘땅이 정말 가깝다는 뜻으로 '咫尺'이라는 붉은 글씨가 새겨진 바위가 놓여져 있다. 이곳을 찾는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유람선을 타도록 유도하기 위해 장삿속으로 세운 듯. ⓒ 정만진

대련을 떠나 단동을 31km 앞둔 지점, 압록강이 눈앞에 보이는 박작성(泊灼城)으로 달려가 중국과 한반도 사이의 국경선 가까이에 닿으면 '咫尺' 두 글자가 붉은 글씨로 암각 된 바위를 만나게 된다. 수양버들 가지가 휘영청 늘어진 바로 아래에 놓인 그 바위를 보는 순간,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두 글자가 붉게 새겨져 있는 까닭을 단숨에 알아채게 된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수양버들 아래와 북한땅이 지척지간이라는 말이구나! 남북 분단의 한반도 금수강산은 서해와 동해를 잇는 휴전선을 가로질러야 오갈 수 있으니 지도상으로는 닿아 있어도 실제로는 서로 아득한 천리 먼 곳일 뿐이지만, 이곳은 비록 중국과 북한의 경계이기는 해도 손만 뻗치면 그대로 철조망에 찔려 짜르르 피가 솟을 만큼 가까이 붙어 있는 곳이구나! '咫尺' 두 붉은 글자만큼이나 보는 이의 가슴을 붉게 물들이는 북녘땅 우리 산하가 바로 눈앞에 저렇게 버티고 있구나! 그것을 알려주기 위해 '咫尺' 두 글자가 저렇듯 붉게 바위에 새겨져 있구나.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 박작성을 찾아와 '咫尺' 바위 곁에서 기념 촬영을 하는 이들이 모두  대한민국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사진을 찍는 대신 내심으로 "박작성은 무슨! 호산장성(虎山長城)이라 불러야지" 하고 다짐하는 대다수 관광객들은 틀림없이 한족들일 텐데, 북한땅이 지척지간이라는 것이 그들에게야 무슨 감회를 불러일으킬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咫尺' 두 글자는 대한민국 관광객들의 마음을 건드려 유람선을 타게 하려는 장삿속에 지나지 않는 듯하다. 이 버드나무 아래에서 마냥 바라보기만 할 것이 아니라 저 몇 걸음 폭밖에 안 되는 도랑 안을 돌아다니는 유람선을 타고 좀 더 북녘땅 가까이 다가가 보라는 유혹일뿐! 글씨가 붉은 것은 그저 중국인들이 그 색깔을 좋아해서 어디든 적색으로 글자를 써댄 결과일 뿐, 분단을 살아가는 우리네 한민족의 피같이 붉은 심정과는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일인 것이다.
 

▲ 도랑 너머 철조망 박작성은 3면이 절벽이고, 한쪽으로만 오를 수 있다. 절벽 아래로는 좁은 도랑이 있다. 이 좁은 도랑에 중국사람들은 유람선을 띄워 돈을 번다. 도랑 너머 북녘땅에는 철조망이 줄을 지어 설치되어 있다. ⓒ 정만진

유람선을 탄다. 유람선은 곧장 오른쪽으로 출발하여 박작성 아래 곧추세운 듯한 절벽 밑을 휘돌아 떠다닌다. 과연 지척이다! 철조망은 손만 뻗으면 닿을 만큼 지척에 날카롭게 쳐져 있다. 보는 이의 마음만이 아니라 창공의 푸른 하늘까지도 찢어버릴 듯한 기세로 철조망은 직선으로 곧게 뻗쳐 있다.
 
그러나 그 철조망은 서로 건너다니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북한 사람들이 중국으로 넘어가지 못하게 하려고 설치된 듯하다. 그것은 철조망이 깊이가 몇십 cm 정도에 지나지 않아 보이는 도랑 복판도 아니고, 중국 땅도 아닌, 도랑 건너 북한 쪽에만 줄을 지어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보면 대뜸 확인된다.
 
경제 사정이 안 되어 휴전선 일대에도 철조망을 가설하지 않고 있다는 북한이 무엇 때문에 간첩이 드나들 리도 없는 이 박작성 아래 얕은 도랑 너머를 온통 철조망으로 가로막고 있겠는가. 근무 교대를 하는 북한 병사가 보이고, 초소가 보이고, 그 너머로 광활한 들판과 농가들이 보이고, 임진강이 보이고, 강물 위로 다시 산이 보이고 이윽고 하늘이 보이지만, 눈이 시리도록 새파란, 정말 티끌 하나 없이 맑은 천연의 하늘을 눈이 아프도록 찢고 있는 철조망을 바라보는 순간, 우리는 문득 이곳이 국경 지대임을 눈물겹게 깨닫는다. 아, 저 철조망은 무엇인가…….
 

▲ 고구려 박작성 중국은 이 성을 만리장성의 동쪽 끝이라고 주장한다. ⓒ 정만진

박작성은 배를 대고[泊] 불을 밝힌[灼] 성이라는 뜻이니, 그 이름만으로도 고구려 군사들이 수군과 육군을 연합하여 주둔하면서 중국의 침략을 막은 요충지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중국은 이곳을 호산장성이라 부른다. 그들은 백두산을 장백산이라 하고, 백암성을 연주성(燕州城)이라 한다. 만주벌판을 동북평원이라 하고, 만주를 동북3성이라 한다. 물론 동해(東海)는 공식적으로 일본해(日本海)라 명명한다.
 
그들은 대한민국 사람들의 정서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오로지 자기들의 이익에 복무할 수 있는 새로운 명칭을 정하고, 유적도 자기네 식으로 복원한다. 물론 저들이 고구려 성이었던 박작성을 호산장성이라 바꿔 부를 뿐만 아니라 만리장성의 끝자락이라고까지 견강부회를 하는 것은 동북공정(東北工程)의 일환이다.
 
만리장성은 여기서 서쪽으로 2500km 정도 떨어진 산해관(山海關)에서 시작된다는 역사적 정설도 무시한 채 마구 사실을 왜곡하면서 그들은 이곳에 '萬里長城 東端起點 虎山(만리장성 동단기점 호산)'이라는 표지까지 세워두었다. 옛날의 중국땅을 그처럼 확대함으로써 만주 벌판에서 이어져 온 고대의 역사를 송두리째 자기네 고사(古史)로 만들고 싶은 것이다. '고구려는 중국의 소수민족 지방정권'……. 이것이 바로 박작성을 호산장성이라 바꾸어 말하는 그들의 진심이다.
 
성을 오른다. 정문으로 오르는 계단은 금세 오른쪽으로 길게 이어진다. 물론 지금 우리가 답사하는 이 장성은 고구려의 박작성 유적이 아니라 중국이 1990년에 새로 쌓은 것이다. 고구려 성은 언제나 군사들의 식수를 위해 우물을 가지고 있는데 중국은 박작성 유적을 훼손하면서 그 우물도 메워버렸다.
 
그런데 그 우물 안에서 길이 3.7미터의 목선(木船)이 나왔다고 한다. 당시 우물을 메울 무렵 성 안에서 나온 발굴품 중에는 고구려 시대 것으로는 유일한 목선인 이 배 이외에도 철촉·철창·철 도끼 등 무기류와 거울·낫·괭이 같은 농기구도 있었다고 한다. 어쨌든 중국은 박작성 유적을 자기네 역사의 일부인 것처럼 만들기 위해 만리장성의 모양을 본떠 이곳에 새로이 성을 쌓았다. 그 성을 우리는 지금 걸어서 오르고 있다.
 

▲ 멀리서 본 박작성 꼭대기에 점장대가 있다. 점장대 너머는 절벽이고, 유람선이 떠다니는 물길이 있다. 지금 유람선 물길인 이 도랑이 옛날 전쟁시에는 해자 역할을 했을 것이다. ⓒ 정만진

성은 가파르다. 하지만, 아래에서 쳐다볼 때 '저 높은 곳을 언제 오르나' 싶던 성 꼭대기 점장대에 오르니 이렇게 시원한 바람이 불어올 수가 없다. 옷을 적시고 얼굴이며 손등까지 줄줄 흘러내리던 땀이 어느샌가 바람에 씻겨 사라졌다. 사방이 탁 트여 아니 보이는 곳이 없으니 몸만이 아니라 마음까지 다 서늘할 지경이다.
 
멀리 단동 방향의 도시 분위기가 어슴프레 보이는 것이며 첩첩으로 이어지는 원경의 산세들도 장관이지만, 도무지 눈길을 뗄 수 없는 풍경이 사람의 마음에 저절로 탄식이 일어나게 만드니, 방금 올라온 길을 제외하면 3면이 온통 가파른 절벽인데, 그 절벽 바로 아래에서부터 끝없이 이어진 광활한 평야와 그 들판 곳곳의 집들, 그리고 새파랗게 흐르는 압록강의 정경, 이 모든 것이 바로 중국 땅이 아닌 우리네 한반도 북녘땅이라는 사실이다.
 
고구려가 천하를 호령하던 그 당시, 어찌 감히 수나라나 당나라 군사들이 이 성벽을 기어올라 승리를 노릴 수 있었으랴. 삼족오(三足烏) 깃발을 휘날리며 우리 민족 고구려가 위용을 뽐내었던 이 곳이 이제는 남의 땅이 되었고, 게다가 성벽 아래 펼쳐져 있는 압록강 일대의 북한 지역도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로서는 임의로 범접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으니, 우리의 조상인 광개토대왕과 무수한 고구려 장졸들이 어찌 그런 지경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으랴. 후손들이 농사를 지으며 식구들끼리 모여앉아 오순도순 먹고살 수 있도록 해주려고, 그 때문에 이 가파른 절벽 위에 험난한 박작성을 쌓았건만 모든 것이 다 압록강 물결 위로 떠가는 한낱 물거품이 되고 말았단 말인가.
 

▲ 성에서 바라보는 북녘땅 성 바로 아래로 보이는 도랑에는 유람선이 떠 다닌다. 도랑 너머는 북한이고, 철조망이 설치되어 있다. 멀리 보이는 푸른 강이 압록강이다. ⓒ 정만진

그렇다고 언제까지 이곳에서 한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간 길이 있으면 돌아오는 길이 있는 것도 당연한 법이니, 이제 광개토대왕의 비석과 장수왕의 무덤이 있는 집안(集安)으로 가려면 박작성을 내려가는 수밖에 없다. 비록 압록강 푸른 물과 들판의 북한 집들, 그리고 오가는 병사들까지 모두 눈에 어른거려 아프지만, 하릴없는 일이다.
 
자, 내려가자. "어느 길로 내려갈까요?" 일행 중 누군가가 혼잣말로 중얼댄다. 박목월은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하고 노래했지만, 그것은 시의 한 구절일 뿐 현실에서는 언제나 길은 여러 갈래인 법이니, 어느 길로 갈 것인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오죽하면 노신(魯迅)이 "원래 땅 위에는 길이란 것이 없었다. 걸어다니는 사람이 많이 있으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라고 갈파했을까. 과연 박작성에도 조금 전에 올라온 길만이 아니라 절벽을 타고 가파르게 내려가는 뒷길이 있다. 우리는 그 길로 내려가기로 했다. 여행은 낯선 길을 걷는 것인데, 어찌 온 길을 되돌아갈 것인가.
 
하지만 조금 내려가니 금세 후회가 된다. 엉거주춤 엉덩이를 계단에 얹다시피 하며 어그적어그적 내려가기 시작했지만, 아래를 내려다보니 언제, 과연 무사히 저 아래 물가까지 갈 수 있을까 싶은 걱정으로 머리는 꽉 차버렸다. 게다가, 유람선을 탔던 물가까지 내려간들 평지로 주욱 이어져 성의 정문까지 이어지는 길이 있기는 있는 걸까. 지금 내려가는 이 내리막 절벽 같은 계단을 다시 되돌아 올라와야 하는 것은 아닐까. 저 아래 까마득하게 보이는 작은 건물이 박물관인 것 같은데 이 내리막은 그저 저 곳을 방문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계단일 뿐, 관광객을 위한 새로운 탐방로는 아닌 게 아닐까.
 

▲ 성의 절벽 아래로 다니는 유람선 박작성 3면은 절벽이다. 절벽 아래 물길(이 물이 압록강인 것은 아님)로 유람선이 다닌다. 유람선의 오른쪽은 북한. ⓒ 정만진

그러나 다시 올라갈 기력도 없다. "그냥 계속 가자." 일행 중 누군가가 한숨처럼 내뱉는다. "'태초에 길이 있었다.' 성경도 안 읽어봤나?" 그래, 내려가자. 모두들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묵묵히 내리막을 내려간다. 올라올 때 못지않게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모름지기 등산을 할 때에도 등반시보다 하산시 한층 조심을 하라고 했다. 그만큼 위험하다는 말이다.
 
이미 기운이 빠질 만큼 빠졌고, 정신도 아무려면 처음보다 해이해져 있고, 오를 때에 비해 미끄러지기 훨씬 십상이니 당연한 교훈이다. 게다가 여기가 어딘가. 그저 동네의 앞산도 아니고, 고구려와 당나라 군사들이 목숨을 걸고 피를 흘리며 싸웠던 박작성 아닌가. 그나마 지금은 중국 영토이고, 떨어지면 심지어 북녘땅까지 굴러갈 수도 있는 낯선 절벽 아닌가.
 
그래도 다행이다. 한참 내려가니 왼쪽으로 가면 출발 지점에 닿는다는 안내판이 서 있다. 그 동안 애타게 찾았건만 흔적도 없더니 이제사 화살표와 함께 작은 이정표가 나타난 것이다. 모두들 환호를 내지른다. 더욱이 이 길은 숲이 울창해 그늘 속으로 걸으면 된다. 그뿐이 아니다. 왼쪽은 나무, 오른쪽은 북녘땅이 훤하게 보이는 탁 트인 절경이다. 서양말로는 '가이드'에 해당되는 도유(導游)가 출발 지점에서 "보통의 관광객이라면 압록강 단동이든 두만강 도문이든 그 어느 곳에서도 여기처럼 막힘없이 북녘땅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은 없다"더니, 그 말이 성 꼭대기를 말하는가 싶었는데 이제야 알고 보니 정상이 아니라 이 길이야말로 북녘땅을 가장 가까이서 눈에 넣을 듯 바라볼 수 있는 곳이구나.
 
"정말 이 길로 잘 왔다!" 누구랄 것도 없이 저절로 그런 탄성이 솟아나온다. 정말이다. 아까 유람선을 타고 돌면서 보던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철조망이 조금 더 멀리 보이면서도 오가는 병사들, 집들, 들판과 압록강이 생생하게 논에 들어온다. 언제 또 이 '국경'을 이처럼 가까이서 볼 것인가. 어서 빨리 통일이 되어 지금 같이 '구경'으로가 아니라 참으로 저 땅위를 스스럼없이 걸어볼 수 있기 이전에는.
 

▲ 중국 깃발과 철조망 붉은 중국 깃발이 나부끼는 너머로 철조망이 날카로운 북한이 보인다. 박작성 바로 아래의 풍경이다. ⓒ 정만진

박작성 둘레인 절벽을 타고 가까스로 나 있는 길을 때로는 아슬아슬한 기분까지 느껴가며 한참을 걸으니 이윽고 '咫尺'이 다시 나타났다. 중국인들이 우리를 몰라보는 듯 유람선을 타라며 재차 호객을 한다. 아무려면 아까 그 중국사람이 아니겠지. 우리는 '咫尺'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지금은 지척이지만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면 얼마나 아득하게 먼 곳인가. 사진기를 들여다보니 중국의 수양버들 자락이 온통 렌즈를 가리고, 그 아래로는 북녘땅이 펼쳐진다. 정말 지척이다. 한 장의 사진 속에 중국 버들잎과 북녘 땅이 지척으로 어우러진 것을 보게 되겠구나. 많은 사람들에게 이 사진을 보이며 통일에 대해, 우리의 국경이 과연 어디인가에 대해 말하게 되겠구나.
 

▲ 수양버들은 중국, 그 아래 풍경은 북한 박작성 아래 유람선을 타는 곳에 자라난 수양버들은 중국 땅의 것이다. 그 아래 풍경은 북한이다. 국경은 이처럼 '咫尺'이다. 이 수양버들 아래에는 커다란 바위에 붉은 글씨로 '咫尺'이 새겨져 있다.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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