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431025


11명 시신 나온 다랑쉬굴, 국가는 콘크리트를 부었다

4·3 유적임에도 정보기관이 콘크리트로 막아버린 다랑쉬굴, 이제 열어야 합니다

18.05.06 14:58 l 최종 업데이트 18.05.06 18:39 l 제주다크투어(jejudarktours) 편집: 김예지(jeor23)


▲  제주 4·3길 ⓒ 제주다크투어


4·3 70주년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70년 가운데 4·3을 제대로 말하지도 못했던 세월이 더 길었기 때문에 오롯한 70년이 아니었습니다. 2000년대에 이르러 노무현 대통령의 공식 사과가 나오고, 4·3 진상조사 보고서가 발표되면서 4·3생존희생자와 유족들의 목소리가 반세기에 가까운 어둠을 뚫고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필자의 지인들 중에서도, 자신의 집안도 4·3유족이라는 것을 그즈음에 부모님으로부터 처음 들었다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본격적인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활동에 있어서 "4·3은 이제 20여 년 된 것"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제주4·3 70주년? 제대로 말하기 시작한 건 '20여 년' 


또 레드 콤플렉스와 트라우마의 측면에서 4·3은 현재진행형의 역사입니다. 비극의 현장을 찾아가 애도하며, 역사의 교훈을 찾는 여행인 '다크투어'를 하면서도 4·3은 여전히 해결과정에 있는 현재의 역사라는 점을 체감하고 있습니다. 


제주에는 수많은 4·3유적지들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유명관광지 중에도 비극적인 학살터였던 곳이 많고, 초토화로 인해 마을들이 통째로 사라지고 마을 터만 남은 곳들, 군경 토벌대를 피해 주민들이 숨어서 피란 생활을 했던 곳 등 대략 8백여 곳의 유적지가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중에서 잘 알려진 유적지 몇 군데에는 이곳이 4·3유적지라는 표지판과 함께 설명이 잘 적혀 있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더 많은 유적지들에는 아예 표지판도 없는 곳이 많습니다. 또 표지판이 있더라도 그곳의 생태적 가치에 대한 설명은 있지만 4·3유적이라는 설명은 없는 곳들이 많은 실정입니다. 


▲  와흘굴도 4·3유적이지만 표지판에는 아직 4·3에 대한 정보가 없다. ⓒ 제주다크투어


역사기행 활성화를 위해서는 이러한 유적지 정비사업과 함께, 유적지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현재 단체로 와서 진행하는 다크투어의 경우 단체버스를 이용해 다니는 편입니다. 하지만 개인 단위의 다크투어 참가자들이 유적지 지도 등을 참고해가며 각자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다니더라도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도록, 유적지와 대중교통이 최대한 연계되어야 합니다.


역사전승의 한 방법, '다크 투어 (dark tours)' 


유적지 접근성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아예 들어갈 수조차 없는 곳이 떠올랐습니다. 바로 유명한 오름 중 하나인 다랑쉬오름 근처에 있는 다랑쉬굴입니다. 다랑쉬굴은 90년대에 발견되었지만 당시 정보기관에 의해 굴 입구가 콘크리트로 덮여 현재까지도 아예 막혀있는 곳입니다. 


세화리에 있는 다랑쉬굴은 1948년 하도리, 종달리 주민 11명이 피신해 살다가 굴이 발각되어 집단 희생을 당한 곳입니다. 군경 토벌대는 1948년 12월 18일, 이 일대를 수색하다가 다랑쉬굴을 발견했고 피란민들에게 나올 것을 종용했지만 주민들은 죽을 것을 우려해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토벌대는 굴 입구에서 불을 피워 연기를 불어넣고 입구를 봉쇄했고, 굴 속의 주민들을 연기에 질식시켜 죽게 했습니다. 


1992년 4월, 유해 11구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다랑쉬굴이 발견되면서, 학살 사실이 전국에 알려졌고 4·3 진상규명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다랑쉬굴은 이렇게 중요한 유적임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도 굴 입구가 콘크리트로 덮여 막혀있습니다. 

 

▲  굴 입구가 콘크리트로 덮여 막혀있는 다랑쉬굴. 갈대와 잡초가 무성해 점점 더 입구를 찾기가 어렵다. ⓒ 제주다크투어


지금도 오랜 암흑 속에 갇혀있는 다랑쉬굴, 4·3의 현재 


당시 유해가 발견된 직후 부검이나 어떤 검증 절차도 거치지 않고, 유해를 매장하는 것이 아닌 화장하는 것으로 급히 결정되었습니다. 관련 기사를 보면 유해를 화장장으로 옮기는 일정도 갑자기 앞당겨져서 취재진과 도의원들이 그 현장을 놓치고, 유해를 뿌릴 유족과 함께 배에 올라타려는 취재기자를 경찰이 가로막으려 했다는 것이 드러나 있습니다. 


다랑쉬굴은 다시 오랜 암흑 속에 갇혀있습니다. 70주년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지금도 갈 수 없는 곳입니다. 다랑쉬굴 발굴 현장은 4·3평화기념관에 다랑쉬굴 모형을 재현해서 전시되고 있을 뿐입니다. 4·3은 2018년에도 지금 여기에 진행 중인 역사라는 것을 막혀있는 다랑쉬굴이 말해줍니다. 이제는 콘크리트 벽을 없애고 다랑쉬굴을 복원해 대표적인 4·3 유적지로 보존해야 합니다.


▲  4·3평화공원에서 다크투어 참가자들이 김종민 제주다크투어 자문위원으로부터 다랑쉬굴에 대한 해설을 듣고있다 ⓒ 제주다크투어


4·3 70주년을 넘어, 다랑쉬로 가는 길 


4·3 70주년은 10년 단위의 큰 추모 주기 중에서 고령의 생존희생자 분들과 함께할 수 있는, 사실상의 마지막 주기라는 점에서 하나의 큰 의미를 지닙니다. 생존희생자 당사자와 유족들의 세대를 지나 어떻게 4·3을 전승해나갈 것인지 사회적으로 논의하고, 지혜를 모으고 있습니다. 교육, 문화예술 등과 더불어 다크투어도 세대전승의 방법 중 하나로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랑쉬굴과 같은 사례는 세대전승도 고민하기 전에 우리 앞에서 막혀버린 역사입니다. 추모하는 것조차, 자연스레 슬픔의 곡소리를 내는 것조차 하지 못했던 시절에도 탄압 속에서 추모제를 올리고 진상규명 활동을 해왔던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열어놓은 길 위에서 70주년을 맞았습니다. 그런 노력을 이어서, 막힌 곳을 함께 두드리는 목소리들이 모여 문을 열고 역사의 물길을 이어갈 것입니다.

 

▲  다랑쉬오름 인근 다랑쉬굴로 가는 길 ⓒ 제주다크투어


덧붙이는 글 | 제주다크투어'는 제주4·3 평화기행, 유적지 기록, 아시아 등 국가폭력 피해자들과의 국제연대 사업 등 제주 4·3 알리기에 주력하는 비영리 단체입니다. 블로그 : blog.naver.com/jejudarktours


다랑쉬굴 유적지 이야기 자세히 보러가기 → 제주4·3 아카이브 http://www.43archives.or.kr/viewHistoricSiteD.do?historicSiteSeq=2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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