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ko.wikipedia.org/wiki/%EC%A0%81%EC%A7%84%ED%8F%AC_%ED%95%B4%EC%A0%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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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진포 해전
적진포 해전(赤珍浦海戰)은 옥포 해전과 합포 해전이 있은 그 다음날인 선조 25년 음력 5월 8일에 발생했다. 전날의 여세를 몰아 조선 수군은 고성의 적진포에 정박 중이던 일본군 함대를 공격하여 모두 11척을 격침시켰다. 이순신의 1차 출정은 적진포 해전으로 마감하고 다시 본영으로 복귀한다. 이때에는 아직 거북선은 전투에 참여하지 않았다.
보통 음력 5월 7일의 옥포 해전과 합포 해전, 그리고 이 적진포 해전까지 합쳐서 옥포 해전으로 분류하는 경우가 많다.
출처 : http://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857979
적진포해전[赤珍浦海戰]
1592년(선조 25) 5월 8일(음력) 합포해전에서 승리한 이순신 함대가 고리량에서 남하하던 중 적진포에서 왜군을 발견하고 일본 수군을 격파한 싸움으로 옥포해전, 합포해전에 이은 3번째 승리한 해전이다.
1592년(선조 25) 5월 8일 이순신(李舜臣)과 원균(元均)이 거느린 조선 수군이 일본 수군을 무찌른 해전이다. 5월 4일 본영인 여수를 출발한 이순신은 당포(唐浦:지금의 통영시 산양읍 삼덕리)에서 경상우수사 원균과 합세하여 옥포·합포 등지에서 31척의 일본 수군을 무찔렀다.
5월 7일에는 남포(藍浦:지금의 마산시 구산면 남포리) 앞바다에 정박하여 하루를 지낸 이순신은 8일 진해(鎭海) 고리량(古里梁)에 왜선이 머물고 있다는 정보가 입수되었으며, 이순신은 섬을 수색하던 중 적진포(지금의 통영시 광도면 적덕리) 앞바다에서 정박시켜 놓은 왜군 대선 13척을 발견하였다.
왜군들은 병선을 포구에 매어두고 상륙하여 민가를 습격하고 재물을 탈취하였다. 이에 낙안군수 신호(申浩), 방답첨사(防踏僉使) 이순신(李純信), 녹도만호(鹿島萬戶) 정운(鄭運) 등의 장령(將領)과 군사들은 도망가는 적을 무찌르고, 대선 9척·중선 2척을 분파하였다. 이 전투는 옥포·합포 해전에 이은 3번째 승리로 조선 수군이 해전에 자신감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이순신은 5월 23일 문산계(文散階) 종2품 하계의 가선대부로 승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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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진포 해전
적진포 해전(赤珍浦海戰)은 옥포 해전과 합포 해전이 있은 그 다음날인 선조 25년 음력 5월 8일에 발생했다. 전날의 여세를 몰아 조선 수군은 고성의 적진포에 정박 중이던 일본군 함대를 공격하여 모두 11척을 격침시켰다. 이순신의 1차 출정은 적진포 해전으로 마감하고 다시 본영으로 복귀한다. 이때에는 아직 거북선은 전투에 참여하지 않았다.
보통 음력 5월 7일의 옥포 해전과 합포 해전, 그리고 이 적진포 해전까지 합쳐서 옥포 해전으로 분류하는 경우가 많다.
적진포 해전 (임진왜란의 일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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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국 | |||
조선 | 일본 | ||
지휘관 | |||
이순신 원균 |
알 수 없음 | ||
병력 | |||
전선 91척 | 전선 13척 | ||
피해 규모 | |||
불명 | 전선 11척 격침, 2840명 전사 |
출처 : http://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857979
적진포해전[赤珍浦海戰]
1592년(선조 25) 5월 8일(음력) 합포해전에서 승리한 이순신 함대가 고리량에서 남하하던 중 적진포에서 왜군을 발견하고 일본 수군을 격파한 싸움으로 옥포해전, 합포해전에 이은 3번째 승리한 해전이다.
1592년(선조 25) 5월 8일 이순신(李舜臣)과 원균(元均)이 거느린 조선 수군이 일본 수군을 무찌른 해전이다. 5월 4일 본영인 여수를 출발한 이순신은 당포(唐浦:지금의 통영시 산양읍 삼덕리)에서 경상우수사 원균과 합세하여 옥포·합포 등지에서 31척의 일본 수군을 무찔렀다.
5월 7일에는 남포(藍浦:지금의 마산시 구산면 남포리) 앞바다에 정박하여 하루를 지낸 이순신은 8일 진해(鎭海) 고리량(古里梁)에 왜선이 머물고 있다는 정보가 입수되었으며, 이순신은 섬을 수색하던 중 적진포(지금의 통영시 광도면 적덕리) 앞바다에서 정박시켜 놓은 왜군 대선 13척을 발견하였다.
왜군들은 병선을 포구에 매어두고 상륙하여 민가를 습격하고 재물을 탈취하였다. 이에 낙안군수 신호(申浩), 방답첨사(防踏僉使) 이순신(李純信), 녹도만호(鹿島萬戶) 정운(鄭運) 등의 장령(將領)과 군사들은 도망가는 적을 무찌르고, 대선 9척·중선 2척을 분파하였다. 이 전투는 옥포·합포 해전에 이은 3번째 승리로 조선 수군이 해전에 자신감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이순신은 5월 23일 문산계(文散階) 종2품 하계의 가선대부로 승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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